<-- 24. 켈라인의 오브 -->
프레이는 머리핀과 에밀리를 번갈아 보았다.
“잠깐... 뭘 어떻게...”
“꼭이에요! 제가 나중에 찾아갈게요!”
에밀리는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뛰어갔다.
프레이는 그녀를 뒤쫓으려 했지만 곧 멈춰 섰다.
“프레이? 어디 가?”
“뭐야, 에밀리는?”
“네? 아니...”
세이렌과 바이런의 물음에 프레이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몰랐으니까.
“지금 저 여자가 문제에요? 500골드를 도대체 어디서...”
“그래도 황태자였는데, 숨겨둔 재산 같은 거 없으세요?”
바이런이 세이렌에게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날이 선 대답뿐이었다.
“있었으면 진즉에 꺼내줬죠.”
“하긴... 500골드라니.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그러게요... 10달 동안 한 푼도 안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인데...”
세이렌이 중얼거리자 프레이와 바이런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왜요?”
“아니, 아닙니다.”
한 달에 50골드를 받으며 생활했다는 이야기.
‘역시 황족은 황족이군.’
바이런은 혀를 내두르며 현실적인 방안을 고심했다.
“뭐, 어디서 범죄라도 저지르지 않는 한... 아니, 범죄를 저질러도 못 모을 돈이야.”
“지금 얼마나 남았어요?”
“어...”
프레이가 묻자 바이런이 인벤토리를 뒤적인다.
여행하면서 금전적인 문제는 바이런이 도맡으니까.
“이제... 한 17골드 정도 남았다.”
바이런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왠지 돈이 부족한 게 자신의 탓인 거처럼 느껴졌기에.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도 483골드를 모아야 되네요.”
“그게 말이 돼?”
세이렌이 당치도 않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아... 말이 안 됩니다. 그게 문제에요. 지금 당장 가진 걸 다 팔아도...”
바이런이 한숨을 푹푹쉬며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곧 프레이의 검으로 향했다.
“그래, 이거.”
“네?”
“이 검! 친위대장이 준 검! 이걸 팔면 값이 좀 나오지 않을까?”
바이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럽다.
정확한 값어치는 상점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푼돈은 절대 아니리라.
“하지만... 이건 제 물건도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 친위대장 양반이 이걸 왜 줬겠어?”
“세이렌을 지키라고 준 거잖아요?”
프레이의 대답에 바이런이 가슴을 쳤다.
“아이고, 이 답답아! 세이렌을 위해서 쓰라는 의미지! 그 검 아니면 못 싸우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 그거 팔고 쓸 만한 검을 새로 사면 그만이야! 나머지 차익은 우리가 쓰고.”
바이런의 말에 프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제트람에게는 내가 잘 말해둘게.”
“봤지? 인마, 황태자의 허락이야. 친위대장의 물건은 곧 주군의 물건 아니겠냐?”
프레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대 마음 한 구석에서 내키지 않은 건, 이 검이 정말 명검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이런 검을 언제 다시 구하겠는가?
그러나 프레이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러면 일단 매지카로 돌아가죠.”
“그래, 솟아날 구멍이 보인다야!”
바이런의 목소리에 힘이 돌아왔다.그들이 있는 곳은 아직 마나홀드 대학이기에 일단 수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학에서 검을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 *
“뭐라고요!?”
“50골드, 그 이상은 안 된다니까요.”
바이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상점 주인을 바라보았다.
매지카에는 대장간이 없다. 마법사는 금속류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찾아온 곳이, 그나마 무기를 매입하는 잡화점이었다.
“아니, 이 수려한 장식과 매끄러운 윤곽을 보십시오! 이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입니다! 게다가 재료는 또 어떻습니까? 켈라디움이에요, 켈라디움!”
바이런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그러나 주인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만 찌푸렸다.
“그말대로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50골드는 도저히 말이...”
“아니, 예술품이라는 말이요.”
“뭐라고요?”
주인이 고개를 흔들자 바이런이 되물었다.
탁탁-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계산대를 두드렸다.
“예술품이라고요. 장식용이라 이 말입니다. 어느 부잣집 마법사가 자택에 걸어둘만한 거라고요. 여기서 검을 쓰는 사람은 당신 같은 외지인뿐이요. 그런데 그런 작자들은 이런 검을 살 돈이 없지.”
주인도 검 자체가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거금을 주고 매입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엘레타스 대륙의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들은 다른 대륙에서 마법재료를 구해 팔 거나, 마법사들의 의뢰를 받으러 오는 이들이다.
개중에는 다른 대륙에서 억압받거나 모종의 이유로 쫓겨난 이들도 있었다.
돈이 있어 이곳에 오는 외지인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팔기 힘든 물건을 사야 된다는 말이요. 어디 정신 나간 마법사가 골드가 넘쳐나서 다 써버려야 정신을 차린다면 모를까. 그나마 50골드가 적정선이니까, 싫으면 그냥 도로 가져가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바이런이 다시 협상을 하려 했지만 주인은 완고했다.
그는 깜빡했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켈라디움인지 뭔지, 광석 얘기는 드워프에게나 하쇼. 어쩌면 그 쪽이 더 값을 쳐줄지도 모르겠네.”
“...그렇지!”
바이런은 눈이 번쩍 뜨였다.
왜 멍청하게 여기서만 무기를 팔 생각을 했을까?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 그리고 이 검까지 모두 처분하면...!’
그는 빠르게 계산대 위에 올려둔 검을 회수했다.
“고맙소!”
“별 이상한 손님을 다 보겠구먼...”
주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뛰쳐나가는 바이런을 바라보았다.
바이런은 밖에서 기다리는 일행을 향해 달려갔다.
“잘 됐어요?”
“아닌 것 같네요...”
세이렌이 묻자 프레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이런의 손에는 검이 그대로 들려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에요? 얼마나 준다 그래요?”
“우리가 너무 급해서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던 겁니다.”
바이런은 손사래를 쳤다. 세이렌과 프레이가 마주보았다.
둘은 그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냐는 눈빛을 교환했다.
“아이오티스, 드워프를 찾아가자.”
“네? 갑자기 드워프는 왜요?”
“내가 바보였지. 마음이 너무 앞섰던 거야.”
바이런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이요?”
“그 붉은 심장! 드워프에게 보여주면 최상급 장비를 줄 거라는 거!”
“아...”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런이 붉은 심장의 정보를 확인한다며 사라지고 돌아와서 했던 말.
“그래, 지금이 바로 그 때야! 거기 가서 이 검도 처분하고, 붉은 심장을 넘겨주면 꽤 짭짤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 돈이 없다면서요?”
세이렌의 말에 바이런은 찬물을 맞은 듯 조용해졌다.
“아... 그렇지... 또 순간이동을 해야 하는데...”
아이오티스는 엘레타스 북동부에 위치한 소대륙이다.
거리가 가까워 다른 대륙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리라. 그러나 수중에 있는 자금으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일단 알아보기라도 하죠. 여기서 팔기 힘든 건 맞잖아요?”
“그래, 가격이라도 좀 알아봐. 나는 조합에 가서 일자리라도 있는지 알아볼게.”
프레이의 말에 바이런은 정신을 차렸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기에, 바이런은 조합을 방문하기로 했다.
“같이 안가고요?”
“혹시 좋은 의뢰를 뺏기면 어떻게 하냐? 끝나고 상인 조합 쪽으로 와.”
“음... 알았어요.”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저었다.
세이렌은 당연하다는 듯 프레이의 곁에 남았다.
* * *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나?”
베르핀의 말에 수정구 속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년 곁에는 기껏해야 유저 나부랭이만 붙어 있을 터, 왜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 이 말일세!”
쾅-
화를 이기지 못한 그가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나 상대방은 미동도 없었다.
고작 이런 위협에 반응할 정도라면 암살자들을 어떻게 통제하겠는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변명이라도 할 셈인가?”
“변명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저희 외에 다른 곳에 의뢰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베르핀이 눈썹을 꿈틀 거렸다.
“저희 쪽에서 데일을 노리는 또 다른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의뢰에 방해가 되기에 처리를 했지만.”
“뭐라...?”
베르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수정구 속 남자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과연... 모르고 계셨군요.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계속 추적중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길.”
“잠깐...”
그가 대화를 마치려 하자 베르핀이 그를 붙잡았다.
“다른 무리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가?”
“아쉽지만, 그들의 죽음은 잊었습니다.”
“음... 알겠네. 그럼 좋은 소식을 기대하지.”
수정구가 검게 물들었다.
베르핀은 수정구를 다시 숨겨놓고 생각에 잠겼다.
‘데일을... 노리는 무리가 또 있다?’
그저 단순한 원한일까?
어쩌면 데일이 도망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원한을 산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메멘토 모리가 보낸 자객을 방해할 정도의 놈들이다.
‘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어중이떠중이는 아닐 터였다. 만약 배후가 있다면 또 다시 데일을 노릴지도 몰랐다.
‘신성제국은 아닐 것이고...’
신성제국 쪽의 인물이라면 자객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공개 수배로 전환하면 했지.
죄목이야 그럴듯하게 붙이면 그만이 아닌가?
신을 모욕했다는 이유에 검을 들 성기사가 수두룩하다.
결국 제국의 후예, 그것도 황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이 분명하다.
‘데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언제나 최악을 상정해야 했다.
베르핀은 가능성이 있을 만한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추려내기 시작했다.
* * *
“왔어?”
“네. 일은 어떻게 됐어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프레이는 다시 바이런과 합류했다.
“자잘한 일거리밖에 없어. 대부분이 마법재료 구하는 일인데 그나마 짭짤한 건 다른 사람들이 다 채갔더라.”
“얼마짜리 일인데요?”
세이렌이 희망을 잃지 않고 물었다. 그래도 일단 돈을 벌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동굴박쥐 날개 개당 1실버, 코볼트의 이빨 개당 1실버, 슬라임의 핵 개당 2실버, 독사의 비늘...”
천천히 나열하던 바이런이 입을 다물었다.
“어휴, 순간이동 비용은 얼마야?”
한숨을 내쉬고 다시 묻는다. 프레이는 손가락을 3개 펼쳤다.
“인당 10골드래요. 총 30골드.”
“허... 항구에서 수도까지 20골드였지? 딱 반값이네.”
바이런이 턱을 쓰다듬었다. 세이렌도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그러면... 가장 쉬운 박쥐랑 코볼트만 해도 얼마냐. 13골드니까 1300실버.”
“이 일대의 박쥐랑 코볼트 씨를 말려도 힘들겠는데요?”
“그쵸?”
다시 분위기가 암울해진다.
“혹시 독은 안살까요?”
“독?”
프레이의 물음에 바이런과 세이렌이 고개를 돌렸다.
“예. 그 정글거미 독액, 남은 거 있잖아요?”
구하는 재료가 하나같이 괴상하니, 독액도 사지 않을까?
게다가 플라모르 대륙에서 구한 것이니 값도 꽤 쳐주리라.
“아, 그런가? 한 번 다시 알아볼게.”
바이런이 다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프레이 님!”
일행 모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여자가 또...”
“에밀리잖아?”
에밀리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에밀리, 여기는 어떻게?”
“하아... 하아... 가져왔어요.”
다급하게 뛰어온 탓일까?
그녀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뭘?”
에밀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허리춤에 있던 주머니를 풀었다.
“이게 뭔데?”
프레이가 물었지만 에밀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프레이의 손 위에 주머니를 뒤집었다.
툭-
둥근 구슬 같은게 굴러 나왔다.
“설마... 이거...?”
“네. 켈라인의 오브에요.”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76%)]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