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104화 (104/141)

<-- 23. 철개미 처리 -->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테이아, 혹시 이 벽을 다시 파낼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적합한 장비가 없습니다.”

프레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 방법이 없다.

돌아갈 길이 없다면 나아갈 수밖에.

“좋아. 일단 알부터 처리하자고.”

“예.”

테이아도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순순히 따랐다. 프레이는 채굴용 폭탄을 꺼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불을 붙이면 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심지가 있으니 불을 붙여서 쓰면 된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이 심지가 얼마나 빨리 타오르는지, 폭발 반경은 얼마나 되는지 묻고자 함이었다.

“됐다. 일단 터트려보면 알겠지.”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막상 불을 붙이려던 프레이는 정작 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불을 붙일 물건은 있지만, 이런 심지에 사용하기에는 화력이 너무 강했다.

‘붉은 심장을 여기다 쓸 수는 없는데...’

화력이 너무 강해 자칫 폭탄이 터질 수도 있었다. 모를 때는 물어보는 게 좋을 터.

슬쩍 돌아보니 테이아가 심지를 구부려 폭탄의 겉에 문질렀다. 그러자 곧 심지에 불이 붙었다.

눈치껏 프레이는 다시 폭탄을 살폈다.

‘아... 여기에 있군.’

심지 끝에 황이 묻어있다. 심지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 까끌까끌한 표면도 있었다.

프레이는 테이아를 따라 심지를 긁었다.

화륵-

불꽃이 튀며 심지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대충 알 사이로 폭탄을 던져 넣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여 모든 폭탄에 불을 붙였다.

“테이아! 여기는 끝났어!”

“이쪽도 끝났습니다. 이제...”

콰앙-!

쿠르르-

폭발과 함께 통로가 흔들렸다. 채굴용이라 폭발반경은 크지 않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알이 깨진다. 투명한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안에 있던 유충이 폭발에 휘말려 조각조각 흩어졌다.

강아지만 한 크기의 유충들이 터져나가는 장면은 그렇게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어서 나가십시오.”

테이아의 목소리 톤은 언제나 한결같아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콰앙-! 쾅-!

그러나 폭발이 연쇄적으로 시작됐다. 그대로 있다가는 유충 사체를 뒤집어쓰리라.

프레이는 빠르게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쿠릉- 쿠르릉-

진동은 계속됐다.

“이런...!”

위쪽 통로를 바라본 프레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변을 감지한 철개미들이 알이 있는 방으로 모인다.

프레이와 테이아를 발견하자마자 적대적인 울음소리를 내뱉는다.

캬아아-!

“밑으로.”

테이아는 레이피어를 굳게 쥐며 프레이를 뒤로 물렸다.

“혼자서 상대할 셈이야!?”

프레이가 놀라서 물었다.

철개미 한 마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프레이는 검을 움켜쥐고 테이아의 옆에 섰다.

“여러 조건을 고려한 결과, 당신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합니다.”

철개미가 앞다리를 내리쳤다. 프레이와 테이아는 양쪽으로 뛰어 피했다.

테이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통로 벽을 타고 철개미 위에 올라탔다. 프레이는 날아드는 앞다리를 잘라냈다.

“같이 가는 게 더 확실하잖아?”

프레이가 소리쳤다. 붉은 진액이 절단면에서 흘렀다.

테이아는 더듬이를 붙잡고 쓰러지는 철개미의 눈을 노렸다.

쿵-

이전처럼 레이피어가 눈을 꿰뚫었다. 철개미는 쓰러진 채로 꿈틀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더 몰려옵니다.”

몇몇 철개미는 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안으로 들어갔다.

캬아아-!

분노일까, 철개미의 울음소리가 통로를 메운다.

콰앙-!

뒤늦게 터진 폭탄에 빛이 번쩍였다.

쿠르르- 쿠릉-!

알이 있던 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쇄 폭발을 견디지 못한 모양.

방에 들어갔던 철개미들은 그대로 생매장당했다.

“여왕개미의 방은 더 아래입니다.”

그러나 철개미의 숫자는 아직도 많았다. 알을 구하지 못한 그것들의 목표는 이제 하나.

침입자의 제거였다.

테이아는 프레이를 밀쳤다.

“테이아...!”

“저와 당신이 모두 움직인다면, 철개미에게 포위당할 겁니다.”

두두- 두두두두-

철개미의 발소리가 울린다. 광산에 퍼져있는 철개미가 모두 몰려오는 것 같았다.

‘확실히...’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할 자신은 없다.

‘여왕개미만 처리하고 켈라디움을 얻으면...’

뒤늦게 자신이 죽더라도 부활하면 될 일이다. 켈라디움을 가진 채로 입구에서 살아날 테니까.

생각을 마친 프레이는 돌아섰다.

“...부탁한다.”

오토마톤은 생물체가 아니기에 엄밀히 말하면 죽지 않는다. 테이아를 희생시켜 시간을 버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테이아도 그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부탁은 제가 드리고 싶습니다.”

테이아는 투구를 벗으며 대답했다.

투구 안에 숨겨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다른 광부처럼 반들반들한 얼굴이 아닌, 마치 인간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모습이었다.

짧은 금발에 초록 눈동자. 만약 밖에서 보았다면 오토마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테이아의 모습이 여성형이었다는 점이었다.

“너... 여자야?”

“오토마톤에게 성별은 없습니다.”

툭-

투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방어보다는 공격일변도로 버텨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여왕개미를 처리해주십시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아가 철개미들을 향해 솟구쳤다.

통로 벽을 타고 날아오른 테이아는 빠르게 철개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프레이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버티는 동안 여왕개미를 상대해야 하니까.

* * *

‘여기인가?’

철로가 끊어졌다. 그러나 아직 통로는 이어졌다.

‘철개미가 만든 통로가 분명해...’

통로의 벽이 울퉁불퉁하다. 매끄럽지 않은 걸 보면 기술을 이용해 만든 공간은 아니었다.

부착된 발광석도 없었기에, 프레이는 테이아에게 받은 발광석 빛에 의지하며 앞을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한참.

‘뭔가 있다.’

발광석을 감싸 쥐어 빛을 차단했다. 하지만 그건 소용없는 일이었다.

철개미는 시력보다 더듬이를 이용해 적을 감지하기에.

캬아아-!

‘들켰나!’

여왕개미를 호위하는 놈들이 분명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시야를 확보했다.

어둠 속에서 철개미의 머리가 나타났다.

‘3마리...!’

다행히 통로는 그리 넓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 정도의 넓이.

프레이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놈이 나오기 전에!’

철개미가 다가오는 프레이를 보며 앞다리를 들었다. 그렇게 공간을 차지하면 뒤에 있는 철개미가 나올 수가 없다.

콰악-

프레이는 날아오는 앞다리를 검으로 내리쳤다. 발목이 잘려나가며 철개미가 앞으로 기울어진다.

‘머리...!’

테이아가 노리는 부분은 눈.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레이피어를 사용했기에 노리는 부분이었다.

프레이의 검은 다르다. 켈라디움으로 제작한 검이니 굳이 눈을 노릴 필요가 없었다.

검을 뒤로 끌어당겼다가 튕기듯 앞으로 내질렀다.

푸욱-

눈과 눈의 정중앙으로 검이 삼키듯 들어갔다.

차칵- 차칵-

몸을 부르르 떨며 앞턱이 흔들린다.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회수했다.

붉은 진액이 검날을 타고 흘러내린다. 앞으로 쓰러진 철개미의 뒤에 또 다른 철개미가 보인다.

캬아아-!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는 걸까?

시체를 밟고 앞으로 나오는 철개미의 모습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앞다리를 피하려고 뒤로 물러난 사이, 철개미는 옆으로 몸을 비켰다.

다른 철개미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두 마리의 철개미는 다리를 이용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은 듯 턱을 이용했다.

차칵- 차칵-

집게처럼 생긴 턱이 프레이를 움켜쥐려 했다.

철광석을 갉아먹을 정도로 강한 힘이다.

프레이는 바닥을 구르며 뒤로 물러났다.

‘나도 가능할까?’

그는 일어서며 생각했다. 테이아가 보여준 움직임을 떠올렸다.

철개미는 구조상 위를 바라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테이아도 위로 올라가 공격을 했을 터.

‘해보자...!’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캬아아-!

갑자기 다가오는 프레이를 위협하려는 듯 철개미가 포효했다.

프레이는 벽을 딛고 도약했다.

‘웃...!’

공중에서 떨어지며 목표로 하는 머리를 보았다. 철개미는 간신히 고개만 들뿐,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테이아는 머리 위에 올라타 눈을 노렸지만, 프레이는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렸다.

“흐아아압!”

자기도 모르게 기합을 넣었다. 추락하는 힘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철개미의 머리가 반쪽으로 갈렸다.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마치 팔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에 프레이는 비명을 내질렀다.

“크악...!”

착지의 충격으로 생겨난 틈, 그 사이를 비집고 철개미가 프레이의 왼팔을 물었다.

우득-

자칫 잘못하면 정말 왼팔을 잃을 위기. 프레이는 빠르게 검으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캉-

그러나 자세 탓인지, 고통 탓인지 힘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이이익...!”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프레이는 연거푸 철개미의 머리를 내리쳤다.

쩌적-

표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균열 사이로 검날이 들어가며 붉은 진액이 흘러나온다.

왼팔을 붙잡던 턱이 풀리며 프레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끄으윽...”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고통이 너무 컸다.

“후우... 후우...”

프레이는 짧게 숨을 내쉬며 팔을 살폈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멀쩡한 부분보다 파란 부분이 더 크다.

이 상태로는 팔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두두- 두두두-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테이아 혼자서 버틴 것치고는 꽤 오래 버텼다.

‘제길... 쉴 틈도 없군...’

잠깐의 휴식도 사치였다.

이대로 포위당하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리라.

‘움직이자...’

인벤토리에서 바이런이 챙겨준 물약을 꺼내 마셨다.

고통이 천천히 잦아든다.

프레이는 철개미의 사체를 지나 발을 옮겼다.

* * *

“끈질기네요.”

세이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수정구를 통해 바깥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말리온 박사가 풀어둔 동물형 오토마톤의 시야에 잡힌 보이드의 모습.

“집념이 대단하군요. 잠도 자지 않고 감시를 하는 걸까요? 어쩌면 오토마톤은 아닐까 싶을 정도네요!”

“오토마톤일리는 없죠.”

“그렇겠죠!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세이렌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저는 다시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바이런은 어디 갔나요?”

“그는 유저라서...”

“알겠습니다! 어제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럼!”

말리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진다.

세이렌은 나무를 오가며 숲을 뒤지는 보이드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아, 세이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로그인한 바이런이 손을 흔들었다.

“바이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니, 뭐 이것저것 조사 좀 하느라...”

바이런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사요?”

“네. 그 철개미가 뭔지 좀 찾아 보느라요.”

바이런은 곧 말을 얼버무렸다. 어차피 세이렌은 NPC니 설명을 해도 모를 테니까.

“그래서 뭘 찾았는데요?”

“아, 맞다. 프레이 아직 안 돌아왔죠?”

“네.”

“후... 아마 프레이가 돌아오려면 며칠 걸릴 거예요.”

바이런은 눈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그는 프레이가 사망할 거라 예상했다.

“왜요?”

“아마... 프레이는 여왕개미를 못 잡을 거예요.”

“네?”

바이런의 말에 세이렌이 되물었다. 여왕개미가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그게... 여왕개미는 다른 철개미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 * *

‘여기인가?’

거대한 동공에 들어섰다.

고요하다.

여왕개미는커녕 다른 개미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안으로 들어가니 희미하게 알이 보인다. 아무래도 여왕개미가 낳아둔 알인 것 같았다.

‘처리해둬야겠지...’

여왕개미는 자리를 비운 것일까?

프레이는 알을 향해 다가갔다.

검을 들어 알을 후려쳤다. 알 자체는 그리 딱딱하지 않아 쉽게 부술 수 있었다.

투명한 액체와 함께 유충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캬아아아-!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여왕철개미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프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파르르-

어둠 속에서 곰처럼 큰 철개미가 내려온다.

‘이런 제길...!’

문제는 그 철개미에게 날개가 달려있다는 점이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57%)]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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