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철개미 처리 -->
세이렌은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아...’
옆을 보니 바이런이 없다. 유저가 사라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니 놀라지 않았다.
‘프레이...’
텅 빈 옆자리를 보니 프레이가 떠올랐다. 바이런과 달리 프레이는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니까.
목이 말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리온은...?’
수다쟁이 드워프의 자랑을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두려고 했다.
그녀는 남아있는 물을 들이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밖에 있나?’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혼자라서 그런 것일까, 말리온의 작업공간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오토마톤이라도 생물의 모습을 흉내 낸 것, 조심스럽게 걷다가 일부분만 남은 오토마톤에 놀라 비명을 삼키기도 했다.
‘어휴...’
아예 완전한 모습이라면 모를까, 상반신이나 하반신만 남은 오토마톤을 보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각- 사각-
세이렌은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른 곳의 은은한 불빛과 달리 환한 빛이 보이는 곳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 말리온이 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집중한 탓인지 그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음...?’
오토마톤의 설계도로 보였다. 관련 지식이 없는 세이렌에게는 마치 사람을 그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내부에는 뼈 대신에 여러 가지 기계 금속 부품이 그려져 있었다.
[테이아]
설계도 상단에 적혀있는 이름.
말리온이 의자를 돌렸다.
“우왓!?”
쿠당탕-
세이렌을 보고 놀라 넘어진 말리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고...”
“아, 죄송해요.”
세이렌의 사과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말리온은 다급하게 일어났다.
“허락도 없이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말리온은 다급하게 설계도를 말았다. 그의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아, 죄송해요... 소리가 들려서.”
“허락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면 곤란합니다!”
시종일관 웃으며 떠들던 말리온이 정색하니 세이렌은 더욱 미안해졌다. 몰래 다가간 건 그녀의 잘못이었으니까.
자칫, 그녀와 바이런이 쫓겨날까 걱정이 들었다. 세이렌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말리온의 기분을 풀어주는 법이 뭘까?
답은 곧바로 나왔다.
“그게 발명품이에요?”
“세기의 역작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훔쳐볼 물건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그런 엄청난 작품이라니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물론 관심은 전혀 없었다.
오토마톤이 흥미롭기는 해도 그녀의 주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리온은 세이렌의 관심에 기분이 좀 풀어졌다.
“확실히 그렇겠죠! 제 작품이 공개되면 오토마톤의 역사가 바뀔 테니까요!”
“테이아가 이름인가요?”
슬쩍 봤던 이름을 언급하자 미끼를 문 월척처럼 말리온이 입을 놀렸다.
“그렇습니다. 테이아, 궁극의 오토마톤! 내 혼신을 담은 발명작이죠!”
“오토마톤이 그렇게 좋으세요?”
시시콜콜한 설명을 듣고 싶지는 않았기에, 세이렌은 조금 화제를 돌렸다.
“물론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오토마톤은 믿을 수 있으니까요. 오로지 주인만을 위하고 주인만을 바라보는 그런 충실한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리온은 천천히 작업장을 거닐며 작업 중인 오토마톤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세이렌도 발을 옮겼다.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있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겁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다양한 종족의 모습을 딴 오토마톤을 만들려 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언젠가는 사람보다 오토마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올 겁니다.”
말리온은 세이렌과 함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저는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어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그럼...”
말리온의 눈길에 그녀는 웃으며 다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프레이는 빠르게 오토마톤의 뒤를 따랐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구해준 오토마톤이다.
“이쪽입니다.”
모퉁이를 돌기를 몇 번, 그러나 철개미의 추적은 끈질겼다.
고개를 돌리면 모퉁이로 비치는 철개미의 그림자. 오토마톤이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는...”
프레이가 멈춰 선 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이대로 당하고 마는 걸까?
“비키십시오.”
오토마톤이 벽으로 다가섰다. 그는 곧 벽을 향해 말했다.
“열어라.”
프레이는 벽과 대화하는 오토마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쩌적-
벽에 균열이 일어났다. 오토마톤은 팔을 들어 프레이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쿠구궁-
벽이 무너지고 사람 하나가 지날만한 크기의 통로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통로 안에는 곡괭이를 들고 있는 오토마톤이 있었다.
얼굴이 없는 훈련용 오토마톤과 유사한 생김새였다. 그 오토마톤을 보며 떠오르는 직업은 하나.
‘광부인가?’
“이리로.”
프레이는 목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철개미의 그림자가 더욱 가까워졌다.
‘확실히 이 정도 크기라면...’
철개미가 들어올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들의 힘이라면 이 정도 통로는 가뿐하게 넓힐 수 있을 터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광부 오토마톤이 무너뜨린 벽을 메우고 있었다.
곧 통로는 어두워졌다.
오토마톤이 파놓은 통로에는 발광석이 없었으니까.
팟-
빛이 생겼다. 돌아보니 광부의 가슴에 발광석이 부착되어 있었다.
“계속 움직이십시오.”
그를 구해줬던 오토마톤은 계속 나아갔다.
철개미에게서 도망쳤다는 생각과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넌 도대체 뭐지?”
오토마톤에게 존대를 할 필요는 없었다. 프레이의 질문에 투구가 돌아갔다.
“테이아.”
“테이아?”
“말리온 박사님의 오토마톤입니다. 광석 채굴 작업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먹히지 않은 오토마톤이 남아있던 건가...’
말리온은 철개미가 오토마톤을 모두 삼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개미를 피한 오토마톤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통로를 걷기를 한참,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그럭-
테이아가 떨어지며 갑옷이 흔들렸다. 프레이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여기는...’
프레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의 벽에는 수십 개의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통로 밑에서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오토마톤들.
“마력을 전부 소진한 오토마톤입니다. 광부들의 숫자가 많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프레이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테이아가 설명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말리온 박사님은 철개미를 처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전투용 오토마톤은 대부분 철개미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광부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왜 돌아가지 않은 거야?”
프레이의 질문에 테이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제 명령은 철개미를 처리하는 것, 돌아가는 건 그 이후의 일입니다.”
“뭐? 하지만 승산이...”
프레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껏해야 광부 몇이다.
겉보기에도 전투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오토마톤들, 그나마 전투가 가능한 건 눈앞에 테이아뿐이리라.
그에 반해 자신이 마주한 철개미의 숫자가 몇이던가?
“승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건 그냥 자살이잖아?”
“오토마톤은 죽지 않습니다.”
프레이는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오토마톤을 상대로 무슨 말싸움을 하겠는가.
“철개미와 정면으로 싸울 계획이 아닙니다.”
“뭐?”
테이아의 말에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현재 광산 내의 오토마톤이 받은 명령은 두 가지. 광석 채굴와 철개미의 처리입니다. 하지만 현재 인원으로는 첫 번째 목표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광부가 있더라도 철개미가 거주하는 이상 광석 채굴은 불가능하다.
“이에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철개미의 처리입니다. 그러나 현재 오토마톤의 수준으로는 이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말리온 박사님은 이후에 추가로 오토마톤을 파견할 확률이 높습니다. 철개미의 숫자가 증식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뭐?”
페이아의 말에 프레이는 어리둥절했다. 숫자가 증식되는 걸 막는다니?
“여왕개미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광부를 동원하여 통로를 뚫고, 여왕개미와 알을 모두 처리할 계획입니다.”
테이아는 고개를 돌렸다. 투구가 프레이를 바라본다.
“그에 앞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확인이라니...?”
“이곳은 말리온 박사님의 소유. 다른 인간은 침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습니까?”
테이아가 레이피어를 붙잡았다. 주변의 광부들도 곡괭이를 들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아니... 잠깐.”
“말리온 박사님은 무사하십니까?”
“무사해. 나도 그의 부탁을 받고 온 거야.”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토마톤과 싸워서 지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이용가치가 있어.’
프레이가 받은 부탁은 켈라디움의 회수지, 철개미의 말살이 아니다.
만약 이 오토마톤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왕개미가 있는 곳에 바로 갈 수 있을 테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
“말리온은 켈라디움을 원해. 그래서 나를 보냈지. 내가 켈라디움으로 만들어진 검이 있으니까 상대할 수 있다고 하던데.”
테이아의 머리가 돌아갔다. 프레이의 검을 유심히 바라본다.
“당신의 검이라면,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왠지 엎드려 절 받은 기분이지만, 프레이는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아직 통로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테이아는 곧바로 광부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프레이는 테이아가 들어간 통로 옆에 몸을 눕혔다.
‘조금만 쉴까...’
잠도 자지 못하고 내려왔다. 개미들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쉬지도 못했다.
프레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쿵-
“헉...!”
프레이는 번쩍 눈을 뜨며 곧바로 검을 쥐었다.
그러나 적은 없었다.
“마정석이 전부 소진됐습니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프레이가 눈을 돌렸다. 오토마톤 하나가 쓰러져있다.
방금 들은 소리는 오토마톤이 쓰러지며 내는 소리였다.
“후우...”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모르게 깊이 잠이든 모양이었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그를 보며 테이아가 말을 이었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다짜고짜 출발이라니. 그러나 프레이도 광산에서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죠.”
“이걸 받으십시오.”
테이아가 검은색 물체를 건넸다. 둥그런 검은 공에 달린 심지.
“이건...”
“채굴용 폭탄입니다. 이걸 이용할 겁니다.”
테이아는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레이는 폭탄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남은 광부는 이제 없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예상합니다.”
“남은 광부라니...?”
프레이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있던 광부들이 모두 쓰러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마정석은 필요 없습니다.”
“아... 그렇군.”
프레이는 테이아의 말을 알아들었다.
광부가 통로를 모두 뚫었으니 이제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마정석의 마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터.
테이아는 광부의 마정석을 빼내 자신에게 부착했다. 그래서 광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
“이걸 받으십시오.”
테이아가 건넨 건 작은 발광석이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테이아가 앞장섰다. 프레이도 어두운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아래로 가파르게 만들어진 통로.
급하게 만들어진 터라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이거 무너지지는 않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프레이는 테이아의 대답에 발을 멈췄다. 그러나 돌아갈 곳은 없었다.
‘후... 무사히 나갈 길은 하나뿐인가...’
이런 급조된 통로가 아니라 원래 광산 통로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미끄러지다시피 아래로 내려갔다. 프레이는 언제 통로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테이아는 성큼성큼 내려갔다.
“도착했습니다.”
테이아의 앞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으로 옅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구멍을 중심으로 균열이 생겨있다. 아무래도 충격을 주면 무너지도록 조정한 모양.
“조금 더 내려가면 여왕개미의 방입니다.”
“여기는...?”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구멍으로 밖을 살폈다.
‘무슨...’
새하얀 알이다. 크기는 말리온과 같은 드워프보다 조금 더 큰 정도.
그런 알이 수십 개. 저 알에서 철개미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제가 알을 처리하겠습니다.”
“뭐?”
“바로 폭탄을 던지고 뒤로 내려가십시오. 그럼 갑니다.”
프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테이아가 벽을 향해 돌진해오는 게 보였다.
쾅- 후두둑-
벽이 무너지며 잔해가 앞으로 떨어진다.
“폭탄을...”
테이아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쿠르릉-
광부가 파냈던 통로가 같이 무너졌다.
“이런...!”
프레이는 생매장 당하기 전에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통로가 무너지며 완전히 메꿔졌다.
“콜록...!”
흙먼지가 프레이를 뒤덮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테이아의 투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잠시 말이 없던 테이아가 물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