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발목잡기 -->
프레이의 질문에 다른 일행들도 말리온을 바라보았다.
말리온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미소를 지었다.
“아하!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하자면, 먼저 제가 아이오티스에서 있을 적의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군요. 그건 제가 어릴 적부터...”
“아니, 간단히 얘기해주시면 안 됩니까?”
바이런이 말을 끊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그러나 말리온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이야기가요?”
“음... 아쉽지만 그럼 조금 최근의 이야기를 드리도록 하죠.”
바이런은 말리온에게 다시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잡아먹는 시간이 오히려 길 수도 있었기에.
“흠흠, 그러니까 보시다시피 저는 발명가입니다. 대부분의 드워프가 대장장이가 아니면, 오토마톤 기계공의 길을 걷지요.”
“하지만 발명가는 좀 다르지 않나요?”
세이렌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말리온이 손뼉를 쳤다.
“맞습니다! 저는 그런 평범한 드워프와는 달라요. 그들은 오로지 정해진 제작법을 반복하죠. 언제나 같은 작품을 만드는 기계 같은 삶이라니! 저는 도저히 그런 삶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는 방금 들어왔던 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시면서 봤겠지만, 저는 새로운 오토마톤 개발에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고지식한 아이오티스의 대가들은 저를 아니꼽게 보더군요. 아마, 제가 그들을 뛰어넘을까 우려한 거겠지요. 분명 미리 손을 쓴 게 분명합니다!”
‘그건... 약간 과대망상이 아닐까...?’
프레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여기서 또 말을 막으면 말리온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시간을 잡아먹으리라.
다른 이들도 같은 마음인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규격에 맞지 않는 오토마톤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에, 저 스스로 나왔습니다. 여기 엘레타스는 생각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니까요! 덕분에 발명은 순조롭게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말리온이 턱을 쓰다듬는다. 그는 고글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이 대륙은 아이오티스만큼 광석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었죠. 재료가 없으면 제 발명은 멈춰버리고 제 명석한 두뇌는 썩어버릴 겁니다! 그런 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왜...”
바이런이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말리온의 목소리에 묻혔다.
“저는 마을을 떠나 광산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광산을 개조하고 저만의 공장을 만들었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아주 훌륭합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프레이 일행도 만족할 것이라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여기가 광산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의 아래에 광석이 아주 풍부하죠!”
그러나 곧 말리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저는 세기의 발명, 아니 전 드워프 역사를 걸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말리온이 좌절하듯 앞으로 쓰러졌다. 마치 한 편의 독백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원래... 드워프가 이런 종족인가...?’
프레이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곧 말리온이 일어나며 프레이의 검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그니스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당신이 제게 온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저... 말씀입니까?”
프레이는 말리온의 지목에 당황했다. 바이런과 세이렌도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검! 켈라디움으로 만든 그 검! 그 검만 있으면...!”
말리온의 눈이 번들거린다. 그의 시선은 프레이가 허리에 머물러 있다.
“잠깐,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프레이는 빠르게 그의 말을 잘랐다.
이건 제트람에게 빌린 것이다. 자신의 검도 아니거니와, 이런 명검을 그냥 내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모르겠습니까!? 그 검보다 위대한 발명이 바로 눈앞입니다!”
말리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뭘 만드는 데요?”
바이런이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말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완성되기 전까지 보여줄 수 없습니다.”
“허...”
그의 독단적인 태도에 바이런은 열이 뻗쳤다. 기가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건 줄 수 없습니다.”
“그게 생명보다 중요합니까?”
말리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구해준 건 고맙지만 그래도...!”
“제 오토마톤들을 모두 상대할 자신이 있습니까? 제가 명령만 내리면 여기가 당신의 무덤이 될 겁니다.”
세이렌의 말을 끊으며 말리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 봐왔던 가벼운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프레이는 검을 뽑았다.
“프레이...!”
“물러서요.”
세이렌과 바이런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말리온은 프레이를 노려보았다.
“정말 내줄 수 없다는 건가요?”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프레이는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는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뭘 노리는 거지...?’
이퀄라이저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말리온은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태도는 무엇일까?
잠시 둘 사이의 정적이 흘렀다.
세이렌과 바이런은 긴장과 불안으로 점철된 시선을 나누었다.
“진심이군요!”
정적을 깨며 말리온이 높은 어조로 말했다.
다른 이들이 황당해하는 가운데 말리온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사람들의 진심을 꿰뚫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지라!”
“그게 무슨...”
“일종의 검증입니다! 그 검의 가치가 여러분께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것 때문에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일까?프레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예! 저는 여러분과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바이런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리온은 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한 일입니다. 아무튼 가장 쉬운 길은 당신이 그 검을 제게 주는 것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말리온은 작은 수정 구슬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 수정 구슬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마음을 풀면 안 되겠어...’
일단 말리온이 물러섰기에 프레이는 검을 거두었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뽑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제가 곤경에 처한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을 구해드린 것도 순수한 선의는 아닙니다. 여러분, 아니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말리온이 다시 프레이를 지목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프레이 일행은 말리온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켈라디움. 그 아름다운 금속이 바로 이 광산 최하층에 있습니다. 그걸 가져다주십시오.”
“켈라디움이 있다고?”
바이런이 놀라서 묻는다.
광산에 금속이 있는 게 그리 놀랄 일인가?
“형, 왜 그렇게 놀라요?”
“아니... 그 켈라디움은 웬만하면 구하기 힘든 광물이라서...”
“맞습니다! 여기 있는 것도 그리 많은 양은 아니죠. 하지만 꼭 필요합니다!”
말리온이 맞장구를 치자 세이렌이 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직접 가지 않는 거죠? 오면서 본 오토마톤이 가면 될 일 아닌가요?”
항구에서 오토마톤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단순 작업에는 인간보다 오토마톤이 더 적합할 터.
살아있는 광부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아... 그게 참 문제입니다.”
말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이 광산에 철개미 집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악독한 곤충들이 광석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어요!”
“철개미?”
“철개미를 모릅니까!? 그 가증스러운 종족들은 철광석을 먹이로 삼는 놈들입니다! 광석을 섭취한 개미는 마치 피부가 금속처럼 단단해지죠!”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토마톤을 내려보낼 수가...’
오토마톤을 내려보내면 철개미에게 식사를 배달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작업용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을 테니까.
전투형 오토마톤이라 해도 철개미의 표피가 금속처럼 단단하다면 속수무책일 터, 오히려 오토마톤이 먹혀 철개미를 강화시켜주니 득이 될 게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라고 다를 게 뭡니까?”
바이런도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말리온에게 물었다. 말리온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바이런을 흘겨보았다.
“켈라디움으로 만든 검이 있는데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아무리 철개미의 피부가 단단하다 한들 켈라디움까지 막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만약 거절한다면...”
프레이가 말을 흐렸다.
“여기서 오래 지내실 수는 없죠. 식객을 늘릴 마음은 없습니다.”
말리온이 곧바로 답을 냈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말리온도 프레이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하아... 좋습니다.”
지금 당장 나갈 수는 없다. 세이렌이 몸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와 여행을 하는 것도 수련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작 전투를 벌이며 스킬레벨을 올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참에 다수의 적을 상대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프레이...”
“괜찮아요.”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른다. 프레이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하! 탁월한 선택입니다! 아무리 철개미라고 해도 켈라디움을 소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개미의 몸을 가르고 위를 확인하면 광석이 남아있을 겁니다!”
말리온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떠들어 댔다.
“악질 건물주로군.”
바이런은 그런 그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자자! 시간도 소중한 자원입니다! 얼른 출발하시죠!”
말리온이 일행을 모두 내보내려 하자 프레이가 그를 제지했다.
“가는 건 저 혼자입니다.”
“뭐? 인마, 그래도...”
“형은 세이렌을 지켜주세요.”
프레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말리온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뭐, 저야 켈라디움만 구해주신다면 몇 명이 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말리온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프레이...!”
“갔다 올게요.”
세이렌과 바이런을 남겨두고 프레이는 빠르게 말리온의 뒤를 따랐다.
우직- 우직-
밖으로 나와 보니 말리온은 벌써 나무 판자를 뜯어내고 있었다.
‘철개미를 막는다고 나무 판자를 덧대놓은 건가...’
왜 철판투성이 내부에 나무 판자가 있는지 이해가 됐다.
“후, 다시 열은 건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여기입니까?”
스으으-
나무 판자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다행히 어둡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통로에 발광석을 부착했으니 횃불은 별도로 필요 없을 겁니다. 철개미를 발견하는 즉시 처리해주세요!”
벽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발광석이 보인다.
‘이 정도 숫자면... 꽤 많은 돈을 들였겠는데...’
그러니 말리온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지금 물러서면 빈털터리 패배자가 될 테니까.
프레이는 허리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광산 철로가 보였다.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탕- 탕-
뒤를 돌아보니 말리온이 다시 나무 판자를 덧대고 있다. 곧 그의 얼굴이 사라졌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프레이는 철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 * *
저벅- 저벅-
발소리가 울린다.
발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에 그림자가 사방에서 어른거린다.
‘후... 얼마나 들어 온 거지?’
철로를 따라 걷기를 한참, 여러 갈래 길이 나왔지만 쭉 앞으로 내려왔다. 계속 같은 광경만 보였기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철개미의 더듬이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나 긴장을 유지하며 걸은 탓인지 피로감은 상당했다.
‘하긴, 초입에 있었다면 소리가 들렸겠지.’
잠깐 머리를 식힐 겸 쉬려고 할 때였다.
가각- 가가각-
발걸음을 멈추니 멀리서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가 갈리는 소리다. 그런 단서가 아니더라도 철개미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광산에 자신 외에 움직이는 건 철개미 뿐일 테니.
‘쉴 틈이 없군...’
되도록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양쪽으로 나뉜 갈림길이 보였다.
소리가 들리는 모퉁이 뒤에 몸을 숨겼다.
‘이런...’
슬쩍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확인한 프레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표면에 윤택이 흐르는 매끈한 검정색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생김새는 일반 개미와 별다를 게 없다.
‘이렇게 크다는 말은 안 했는데...!’
문제는 크기였다.
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개미가 광석을 갉아먹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