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발목잡기 -->
프레이 일행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가 돌아다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
안으로 들어서니 밖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반듯하게 깎아내린 통로, 벽과 천장, 바닥까지 모두 철판으로 도배한 것 같았다.
“허... 뭐 이런 곳이...”
바이런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판타지 세계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이토록 현대적인 시설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으니까.
“형, 혹시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아! 맞네.”
프레이의 말에 성큼성큼 발을 내밀던 바이런이 멈칫했다. 세이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객이라니...’
세이렌은 머리가 복잡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그 무리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보다 내 정체가 어떻게...?’
그녀는 눈을 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자객 때문에 피로가 극심했다.
“세이렌?”
프레이가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그녀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그래?”
“아, 아니에요. 천천히 가고 있으세요.”
바이런이 돌아보며 묻자 프레이가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서 세이렌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아, 프레이. 가자.”
세이렌은 웃었다. 그러나 마음속의 심란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프레이는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요.”
“그런가...? 연기는 그래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세이렌이 실소를 흘렸다.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는 건 바로 프레이와 바이런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자객들이 노리는 건 자신뿐이다. 다른 이들은 그저 휘말린 것뿐.
‘제트람을 가지 못하게 말렸어야 했나...’
후회가 찾아왔다. 제트람을 데리고 왔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세이렌 잘못이 아니에요.”
“응?”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얼굴에 다 나타나요. 미안해하는 표정. 하지만 잘못은 세이렌이 아니라 그 괴상한 놈들한테 있는 거잖아요.”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고 그놈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죠.”
세이렌은 말없이 프레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왁!”
“형? 무슨 일이에요!?”
다행히 프레이의 신경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세이렌도 바로 고개를 들었다.
바이런이 넘어진 채로 궁둥이를 뒤로 밀치며 말했다.
“오, 오토마톤...!”
프레이는 곧바로 검을 꺼내 들었다.
바이런의 앞에는 통로를 갑옷을 걸친 오토마톤이 서 있었다.
‘역시 함정이었나!?’
프레이는 바이런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프레이는 바이런의 앞에서 멈췄다.
“뭐, 뭐해!?”
“형, 이거... 작동을 안 하는 거 아닐까요?”
이퀄라이저 특성이 발현되려면 상호적대가 필수조건이었다. 오토마톤의 공격 의지가 없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던 것이리라.
“어... 그런가...?”
바이런도 다시 오토마톤을 살폈다. 그저 묵묵히 서 있는 오토마톤을 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하하... 갑자기 튀어나와서 경황이 없었네.”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내놓았지만, 프레이와 세이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에서 보던 것보다는 투박하네.”
세이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의 말대로 오토마톤은 마치 목각인형처럼 반들반들한 얼굴이었다.
“일단... 조심하면서 가요. 혹시 갑자기 돌변할지 모르니까...”
프레이는 검을 굳게 쥐고 말했다. 바이런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철컥-
오토마톤은 벽에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통로를 거닐 때마다 일정 간격으로 갑옷을 입은 오토마톤이 걸어 나왔다.
이전처럼 뒤로 나자빠지지는 않았지만, 바이런은 오토마톤이 나타날 때마다 흠칫 놀랐다.
‘뭐지? 자기과시?’
프레이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고민했지만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걷자니 통로 끝쪽에 철문이 보였다.
“후아... 드디어 끝인가.”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바이런은 한숨을 내뱉었다. 말은 안 했지만 다른 일행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거 안 열리는데?”
바이런이 양손으로 문을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프레이가 도우려 앞으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아! 드디어!」
“아씨!”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바이런이 펄쩍 뛰었다.
프레이는 목소리가 아닌 바이런의 돌발행동에 놀라 검을 휘두를 뻔했다.
「제 오토마톤을 공격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손님맞이 상태이긴 한데 공격받으면 자기보호 기능이 있어서 반격했을 겁니다.」
목소리는 또다시 주절주절 떠들었다.
프레이는 철문 위쪽에서 빛을 내는 마정석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입구 쪽에 있던 마정석은 마력이 고갈된 모양입니다.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어서 마력이 소진된 것도 몰랐군요.」
“하... 완전 수다쟁이네...”
세이렌이 지친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하하, 이런 죄송합니다. 오토마톤 외에 대화상대가 얼마 만인지! 어서 들어오십시오!」
쿠궁-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났다.
“미닫이가 아니네.”
바이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프레이 일행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와...”
바이런과 세이렌이 크게 입을 벌렸다.
산 안에 또 다른 작은 산이 있었다.
톱니바퀴와 철판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제작 중으로 보이는 오토마톤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개 중에는 인간형으로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드워프와 엘프, 오크와 트롤 등 다양한 종족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든 것도 많았다.
툴툴- 툴-
프레이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퀴가 달린 기계에 올라타 레버를 조작하며 다가오는 작은 드워프. 그는 두 눈을 가리는 고글을 끼고 있었으며 다른 드워프와 달리 수염이 턱에만 조금 자라 있었다.
“당신이...”
“제 이름은 말리온 박사! 지상 최대의 발명가를 자부하는 드워프입니다!”
프레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말리온이 소리를 높였다.
말리온이 레버를 조작하자 기계의 양쪽 집게발이 높게 들렸다.
차칵- 차칵-
“그리고 이건 제가 애용하는 픽커톤입니다.”
“아하하...”
바이런이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는 작업공간이라 대접하기가 마땅치 않군요. 저를 따라오세요!”
대답도 듣기 전에 말리온 박사가 방향을 틀었다. 바퀴가 굴러가며 그의 모습이 멀어져갔다.
“어쩌지?”
“적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가야죠.”
프레이의 말에 세이렌과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리온을 따라가기를 잠시, 그가 곧 픽커톤을 멈춰 세우고 내려왔다.
드워프답게 말리온의 키는 매우 작았다. 피스칸보다 조금 큰 정도일까.
‘신기하네...’
드워프는 처음 보는 터라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관찰했다. 그가 멈춰선 문 옆에 있는 레버를 잡아당기자 문이 열렸다.
“자자, 들어오세요. 이거 제 위주로 설계해서 문이 좀 작습니다.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
“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바이런이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렌이 뒤이어 들어가고, 프레이도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저기는...?’
고개를 숙이며 옆을 돌아보았더니, 다른 곳과 달리 나무판자로 막혀있는 공간이 있었다.
주변이 모두 철판인데 왜 저기만 나무일까?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말리온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 아닙니다.”
프레이가 뒤이어 들어가고 말리온이 문을 닫았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자리는 적당히 아무 데나 찾으십시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여기 약수가 아주 맛이 좋습니다.”
대접할 게 물밖에 없다는 말을 장황하게 한다. 프레이와 바이런은 손사래를 쳤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 그거 아쉽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대화! 대화를 합시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니 너무 흥분돼서 떨릴 지경입니다!”
프레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말할 틈을 주지 않는 드워프였다.
“허... 원래 드워프가 이랬던가...”
바이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말리온 박사... 님?”
“네!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아! 이거 여러분의 이름도 몰랐군요!”
말리온은 세이렌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떠올리려다 곧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정신없었지만 다행히 말할 기회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프레이는 안도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끝내고 프레이는 말리온이 다시 입을 열기 전에 말했다.
“그보다, 우리가 쫓기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흔적을 지우셨다고 했는데...”
“아아! 제가 혀를 움직이는 것보다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말리온이 벌떡 일어나, 사실 앉은 것과 일어나는 것의 차이가 별로 없었지만, 수정구를 들고 나타났다.
“이건...”
“오토마톤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실제 생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구조를 잘 알아야 더욱 자연스러운 오토마톤을 만들...”
“아니, 이게 뭐냐고요.”
말리온이 다시 이야기하자 바이런이 불쑥 말을 잘랐다.
‘투머치토커에게 말을 할 틈을 주면 이런다니까.’
다행히 말리온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으니까.
“자자, 보십시오. 제가 만든 동물형 오토마톤들이 돌아다니며 제게 주변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모두 수정구에 집중했다. 수정구에는 여러 개의 시야가 분산되어 있었다.
“어디... 아, 여기 있군요.”
말리온이 수정구를 문지르자 하나의 시야가 확대되었다.
“포기를 모르네...”
바이런이 허탈하게 말했다. 수정구 안에는 이튼을 비롯한 정통파 대원들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근데 오히려 도망가는 것 같은데요?”
“아, 저기!”
세이렌이 놀라서 짧게 소리쳤다. 가장 후미에 있던 정통파 대원이 쓰러졌다. 쓰러진 대원의 목덜미에서 피가 솟구쳤다.
보이드였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이튼이 양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대원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추격자는 하나뿐이니 희생자는 하나면 족했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거 소리는 안 들립니까?”
프레이가 물었다. 소리까지 들린다면 더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텐데.
“음파 저장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마력소진이 너무 큽니다. 마력 소모량을 계산해서 약 1주일을 작동시키려면 필요한 마정석 개수가 약...”
“아, 알겠습니다.”
말리온의 말이 다시 길어지자 프레이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보이드와 정통파가 흩어져서인지 시야는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여기까지면 충분하겠군요.”
말리온이 수정구를 들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역시 한패는 아닌 모양인데.”
“한쪽은 세이렌을 납치하려고... 다른 쪽은 명백하게 죽이려 했어요.”
프레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최악과 차악이 싸우는 덕분에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었다.
“일단 쉽게 포기할 놈들은 아닌 것 같아.”
세이렌이 힘없이 말했다.
“네... 그렇겠죠.”
“여기서 조금 숨어있는 게 좋겠어요. 저 남자... 만만치 않은 놈입니다.”
바이런이 동의 하자, 프레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힘을 직접 느껴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마친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얼마간 여기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리고.
“말리온 박사님.”
프레이가 부르자 말리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쏟아지기 전에 프레이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왜 이런 곳에서 계시나요?”
주인의 허락을 맡기 전,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검 손잡이에 손을 옮겼다.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곧바로 그를 죽이고 이곳을 차지하면 될 일이니.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