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발목잡기 -->
메멘토 모리 소속의 자객, 보이드.
그는 또 하나의 의뢰를 성공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목표인 여자는 깊이 잠들어 있었고, 불침번을 선 남자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다.
비록 들고 있는 검만큼은 검을 쓰지 않는 자신이 보기에도 훌륭한 물건이었지만, 정작 검의 주인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불침번을 먼저 상대하면 목표가 깨어날 우려가 있었다. 일단 목표를 제거한 이후에 다른 놈들을 처리할지 결정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말을 먼저 죽였다.
도주 수단을 막는 건 기본이니까. 더불어 불침번의 주의까지 끌 수 있었다.
그다음은 간단하다. 잠들어 있는 목표를 죽이는 것만 남았다.
‘끝이군.’
뒤늦게 불침번이 자신을 발견했지만, 보이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드는 의뢰를 완수하지 못했다. 그를 막은 건 불침번이 아니었다.
‘누가...!?’
손끝이 아릿해지며 감각이 사라졌다. 파르르 떨리는 바늘이 꽂혀 있었다.
‘독...!’
마비 독이다.
“세이렌!”
프레이는 소리치며 보이드를 찔렀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보이드’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갑작스레 빨라지는 프레이의 모습에 보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던 기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신경이 경고를 보내고 있다.
화살보다 빠르게 튀어나간 프레이의 몸이 지척에 다가왔다. 보이드는 이를 악물고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우웅-
낮은 공명과 함께 보이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프레이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프레이...?”
뒤늦게 일어난 세이렌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일어나요! 형! 일어나요!”
“뭐, 뭔데!?”
화들짝 놀라며 바이런이 상체를 일으킨다. 모닥불 뒤로 보이드가 나타났다.
“누구냐.”
그가 낮게 읊조렸다. 프레이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저, 저, 시커먼 놈은 뭔데!?”
바이런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보이드는 프레이를 향해 말한 것이 아니었다.
“너야말로 누군데 우리 계획을 망치는 거지?”
숲속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정체를 숨기려는 듯 복면을 뒤집어쓴 일당이었다.
산적이라고 보기에는 기세가 남달랐다.
“뭐, 뭐야?”
“누군지 몰라도 세이렌을 노리고 있어요.”
프레이의 말에 세이렌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보이드는 해독제를 삼켰다.
“꽤 훌륭한 독이군. 다른 자객이 파견됐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자객? 누가 그녀를 노리는 거지?”
무리의 우두머리, 이튼이 물었다.
데일을 급하게 쫓아왔더니 자객이 그녀를 노렸다. 아직 그녀가 죽어서는 곤란했기에 다급하게 독침을 던졌다.
이튼의 물음에 보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답할 이유는 없다. 죽고 싶지 않다면 방해하지 마라.”
“허... 별 잡놈들이 다 설치는군. 너희들은 저자를 상대해라. 나머지는 저 여자를 잡는다.”
이튼의 명령에 대원들이 빠르게 달렸다.
헤피르가 보내온 지원 병력까지 합하면 추적에 동원한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 12명. 6대 1이라면 금방 끝나리라.
“기억할 죽음은 오로지 하나건만... 너희들의 죽음은 잊히리라.”
보이드가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팔짱을 풀자 양손에 단검이 튀어나왔다.
이튼을 비롯한 대원들은 빠르게 세이렌을 향해 달려갔다.
“도망쳐요!”
“아, 알았어! 세이렌! 이, 이쪽으로!”
프레이가 소리쳤다. 바이런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프레이!”
“뒤에서 시간을 벌어 볼게요!”
세이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달렸다. 프레이는 뒤를 돌아보며 뛰었다.
그들이 갑자기 싸우는 이유는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특히 저 검은 괴한의 능력은 놀라웠다.
‘제트람보다 밑도는 수준이긴 해도... 만만치 않다!’
어디까지나 스테이터스만으로 느낀 점이었다. 괴한의 스킬에 따라 오히려 제트람을 압도할 위력을 보일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맞는 듯 괴한은 빠르게 복면인들을 상대했다.
“잡아라!”
“여자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죽여도 상관없다!”
대원들이 프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남의 싸움을 구경할 틈이 없었다.
“프레이!”
“계속 가요!”
선두로 따라온 두 명의 복면인. 그들이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솜씨가 나쁘지 않아...!’
역시나 산적은 아니다. 그러나 프레이는 보이드의 스테이터스를 얻은 상황이었다.
자객의 특성상 민첩함은 지금껏 상대했던 사람 중 최고 수준이었다.
‘대단하군...!’
마치 주변이 느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복면인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장착한 검의 효과까지 보였다. 검술 레벨의 증가와 더불어 검로, 잔상까지 늘어났다.
눈앞의 복면인을 처리할 방법은 다양했다.
프레이는 날아오는 검을 올려쳤다. 복면인의 검 손아귀가 찢어지며 핏방울이 하늘로 솟았다.
“크으윽!”
눈가에 생기는 주름이 보인다. 프레이는 올린 검을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복면인의 목 옆에 붉은 실선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목이 옆으로 꺾이며 피분수가 솟아난다.
프레이는 곧바로 검을 회수했다. 다시 시간이 빨라지며 복면인이 목을 손으로 막는다.
“무슨...!”
뒤이어 다가온 남자가 놀란다. 뒤로 쓰러지는 동료를 피해 검을 아래로 휘두른다.
‘저 괴한은... 이런 짓을 일삼는 건가?’
심적인 소모가 대단했다.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피로가 극심했다.
아무래도 연거푸 시간이 느려지는 건 아닌 모양인지 두 번째 남자의 습격은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캉-!
검을 들어 막아냈다. 대원의 검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으윽...!”
대원이 팔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에 눈을 찌푸린다. 프레이는 그대로 옆으로 검을 꺾었다.
“우앗...!”
힘을 이기지 못하고 대원이 비틀거린다. 이미 명을 달리한 동료의 몸에 걸려 넘어졌다.
프레이는 넘어진 상대를 처리하려다가 곧 몸을 돌렸다.
이튼을 비롯한 다른 대원들이 몇 걸음을 남기지 않고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제길!”
이튼은 쓰러진 대원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쫓아!”
수습은 나중이다. 지금은 데일을 확보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야 했다.
프레이는 가벼운 몸으로 산을 탔다. 마치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괴한이 이런 속도로 쫓아온다면...!’
도망은 어렵다.
“프레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바이런이 다급하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서!”
바이런의 손에는 횃불이 들려 있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고개를 돌렸다. 추격자들과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왜 더 도망가지 않는가?
“도망쳐요!”
“일단 와!”
바이런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튼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이제는 그가 선두였다.
“끄악!”
짧은 비명에 이튼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보이드가 대원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무슨...!”
대원들이 모두 죽었다는 뜻일까.
그래도 헛된 죽음은 아닌 듯 보이드의 몸 이곳저곳에는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다.
‘제길...!’
계획이 어그러진다. 이 상태로 데일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화르르-
열기와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고개를 돌린 이튼이 놀라서 몸을 던졌다.
“피해!”
뒤에 있던 대원들도 놀라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됐어!”
바이런이 소리쳤다.
도망가면서 미리 기름을 바닥에 흘려뒀던 것. 프레이가 통과하자마자 횃불을 던져 불을 질렀다.
불길은 금방 수풀을 양분삼아 타오르기 시작하고 주변의 나무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어... 이, 이렇게 잘 번질 줄은 몰랐는데...!”
“일단 뛰어요!”
프레이가 재촉하자 바이런을 붙잡고 달렸다. 바이런을 아무렇지 않게 들쳐멘 프레이는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보이드는 타오르는 불길과 옆으로 나뒹구는 이튼의 대원들을 돌아봤다.
‘목표가 우선이다.’
자신을 방해한 놈들이야 나중에 추살하면 될 일이었다. 일단은 의뢰를 완수하는 게 먼저였다.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수인을 맺었다.
근거리 순간이동.
비록 자주 사용할 수 없기에 결정적인 기회에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그 자신이 배운 마법이 아니라 장비의 기능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웅-
짧은 공명과 함께 그의 몸이 장벽 너머에서 나타났다.
그가 빠르게 추적했다. 자객에게 추적술은 기본이었기에, 도망치는 목표의 발자국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상하군...’
추적을 예상이라도 한 걸까.
발자국이 중간에 흐려져 있다. 그건 이상하지 않다.
그 정도 여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상한 점은 그 발자국을 덮은 게 동물의 발자국이라는 점이었다.
‘우연인가?’
예상치 못한 방해로 목표를 따라잡는 시간이 아주 조금씩 늦춰진다. 그리고 발자국의 끝에 다다랐다.
‘없어졌다.’
확실히 우연이 아니었다. 동물의 발자국이 완전히 목표의 발자국을 덮었다.
보이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물들이 그들을 보호하기라도 한다는 뜻일까?
‘그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시간 낭비는 금물, 일단 자신을 방해한 놈들이라도 처리할 셈으로 불을 지른 곳으로 돌아왔다.
‘이해할 수가 없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게다가 복면인들도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복면인이 불을 끄고 갔을 리는 없다.
보이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자객 일을 하면서 이 정도로 엉망인 의뢰는 없었다.
‘기필코... 모두 죽여주마...!’
그는 재정비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 * *
“후우... 후우...”
프레이 일행은 다급하게 숨을 돌렸다. 보이드의 스테이터스가 사라지면서 피로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당장에라도 쓰러져서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세이렌, 도대체... 여기가...”
“나도 몰라... 그냥 오라고 해서...”
“누가...?”
털썩-
바이런이 헐떡이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는 이미 속을 게워냈다.
프레이는 바이런을 걱정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메시지.
[‘말리온 박사의 오토마톤 공장’에 진입합니다.]
[던전에서 사망 시 입구에서 부활합니다.]
‘던전...? 박사?’
세이렌이 벽에서 손짓한 것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다못해 돌벽이 옆으로 열리고, 들어가자 벽이 다시 닫혔을 때 눈치채야 했다.
하지만 너무 다급했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걸렸으니 몸이 먼저 움직였다.
벽 안쪽에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만든 곳이 틀림없다.
「아아, 손님들 흔적은 지워뒀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목소리가 울린다.
“누, 누구. 아니 어디서 말하는 거예요?!”
세이렌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친다. 프레이는 숨을 고르며 소리가 나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벽면에서 빛을 발하는 마정석이었다.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제 발명품은 아직도 많으니까요! 일단 들어오세요!」
“우윽... 도대체 뭐야...”
바이런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목을 축였다.
“어떡하지?”
세이렌이 풀린 다리를 주무르며 물었다. 프레이는 바이런에게 물을 받아 넘겨주었다.
“일단...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야, 이거 던전인데...?”
바이런은 뒤늦게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던전에는 몬스터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프레이가 물었다. 바이런이 생각하는 사이 그도 목을 축였다.
“주인이 있는 던전도 있다고 듣긴 했지만...”
「다시 나가실 겁니까? 원하신다면 열어드릴게요!」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목소리도 들리는 걸까요?”
세이렌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이 발명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음파를 저장해서 전송하는 장치입니다. 순간이동 마법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써, 음의 진동만을 골라서 전송하는 것이죠. 마력 소모가 커서 아직 상용화는 이르지만 보시다시피...」
뚝-
목소리가 끊겼다.
마정석이 빛을 잃었다. 아무래도 마력을 전부 소진한 모양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가 본데...”
바이런이 아리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프레이는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자객이 아직 남아있을지 몰랐다.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좋았다.
“일단... 들어가 보죠.”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