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발목잡기 -->
프레이는 갑자기 다가온 마법사를 경계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다가온 마법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들이 경계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 마법연합에는 처음 오시는 건가 보네요?”
“그걸 어떻게...?”
세이렌이 놀랍다는 듯 물어보았다. 자신들이 그렇게 티가 나던가?
“그거야 쉽죠. 저처럼 순간이동으로 먹고사는 마법사를 경계하는 사람은 두 부류니까요. 처음 온 분들이나...”
주절주절 떠들어 대던 마법사가 입을 닫았다. 곧 그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 아무튼, 엘레타스 대륙에서는 순간이동이 일상이니까요.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얼만데요?”
바이런이 물었다. 금전에 관한 것이라면 그가 거의 총괄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매지카로 가시는 거죠?”
“마나홀드 대학은 못 갑니까?”
프레이가 묻자 마법사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아... 그 근방은 마법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요. 매지카로 가셔서 걸어가시는 게 더 빠를 거예요.”
“마법결계?”
“뭐... 학생과 교수들만 마법을 쓸 수 있다나... 그쪽에서 말하기를, 마법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외부의 마나를 차단했다고 하더라고요.”
마법사는 불만인 듯 입술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곧 손님들 앞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매지카까지 1인당 2골드, 세분이니까 에누리해서 5골드에 모시겠습니다!”
“5골드요?!”
프레이가 놀라서 되물었다. 5골드라니,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형, 우리 돈 얼마 남았어요?”
“어? 잠깐...”
바이런이 눈을 굴린다. 곧 계산이 끝났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갈한테 받은 진주 처분해서 여윳돈은 있어. 한 54골드 정도 남았다. 뭐... 5골드라면 줄 수 있긴 하지만...”
“그래요?”
“섣부른 결정은 금물이지.”
바이런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마법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이, 5골드는 무슨. 아무리 그래도 알아보지도 않았을까?”
“아하하... 정말 좋은 가격입니다. 다른 마법사 찾아도 이 가격에 해주기는 힘들 텐데요?”
“솔직히 더 깎아줄 수 있잖아요.”
마법사가 허탈하게 웃으며 뺨을 매만졌다. 그의 눈이 이리저리 돌아간다.
“좋아요. 그럼 딱 4골드 50실버.”
“4골드 50실버?”
바이런은 짐짓 고민하는 척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법사는 초조해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진짜 안 남기고 4골드.”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을 펼치며 마법사가 눈을 질끈 감는다. 만약 연기라면 꽤 수준급이다. 그러나 바이런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야... 내가 경험상 아는데 원래 이렇게 바로 앞에 있는 곳은 바가지가 심해. 대충 3골드 이하로 해결될 것 같다.”
“그래요?”
“4골드면 많이 깎아준 거 같은데... 2골드나 이익 아니에요? 원래 6골드면...”
세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바이런은 단호했다.
장사치는 다 똑같다. 자신도 장사로 먹고살았으니 알고 있었다.
“다른 데 둘러봅시다. 저 마법사 말이 사실이면 순간이동 마법으로 벌어먹는 마법사가 마을 내에도 많을 거예요.”
“뭐... 그건 형이 더 잘 알겠죠. 세이렌. 그렇게 해요.”
“아... 진짜 싼 것 같은데...”
프레이가 다독이자 세이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를 끝낸 바이런이 몸을 돌렸다.
“그 가격은 좀... 그럼 많이 파세요.”
“네? 아니, 진짜 많이 깎아준 건데?”
은근슬쩍 반말을 한다. 그러나 프레이 일행은 깔끔하게 그를 무시했다.
마법사는 인상을 구기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로브를 입은 마법사와 여러 아인종이 득실거렸다.
[하이펜의 수제 공방 – 수리/제작(재료 필요)]
[여대생 엘프의 정령대여소 – 시간제 정령 대여]
[약쟁이 판타벨 – 물약 판매 / 연금술(재료 필요)]
유저로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노점을 통해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여대생이 뭐예요?”
“응? 아... 왠지 모르게 사람을 끄는 마법의 단어지. 남자 한정이지만...”
바이런이 헛기침을 했다. 인파를 헤치니 마법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데이크의 마법 부여소 – 마법부여(재료 필요)]
[헤이픈의 순간이동 전문점 – 엘레타스 북부까지 가능]
[사츠의 순간이동 전문점 – 마법지부 공식인증]
“여기 있네. 시세 좀 보자.”
다가간 바이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식인증은 또 뭐지?”
“줄은 저쪽이 더 긴데요.”
“고만고만하구만, 뭘.”
사츠라는 마법사의 줄이 조금 더 짧았다. 일단 프레이 일행은 짧은 줄에 서기로 했다.
힐끗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마법진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주황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서 있었다.
마법사가 웅얼거리면 마법진에 빛이 차오르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별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문제는 가격이지.”
바이런이 프레이에게 대답했다.
차례는 금방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매지카까지 가는데 얼마인가요?”
바이런이 물었다.
“수도 말씀이시군요. 매지카는 20골드입니다.”
“네?”
“뭐라고요?”
프레이와 바이런이 동시에 되물었다. 사츠는 익숙한 듯 기계적으로 설명했다.
“마법지부 공인 가격입니다. 불만이 있으시다면 다른 가게를 이용하셔도 괜찮습니다.”
“공인...?”
“예. 적어도 이 광장에서 공인받은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바이런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 사람들이 여기를 뭐 하러 이용합니까? 이렇게 비싼데... 다른 데서는 4골드까지 해주던데요.”
“그 사람들은 공인받지 않은 마법사들입니다. 4골드면... 이제 갓 마법을 배운 초짜겠군요. 마법연합은 비공인 마법사들의 마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바이런이 따지듯 묻자 사츠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책임?”
“예. 뭐, 다른 장소에 떨어진다거나, 심하면 몸의 일부만 순간이동이 된다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세이렌이 입을 동그랗게 벌리자 사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과연... 그럼 저 사람들은 돈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인가...?’
프레이는 다른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유저일 것이다. 목숨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유저밖에 더 있겠는가.
“형, 일단 여기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괜히 공인이겠어.”
바이런도 인정했다. 아무리 돈을 아끼려 한다 한들 목숨까지 걸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의 목숨은 괜찮다. 문제는 세이렌이었다.
그녀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다음 손님을 받아도 될까요?”
대화가 길어지자 사츠가 불쑥 말을 뱉었다.
“혹시 유저십니까?”
“네.”
바이런의 물음에 사츠가 피곤한 눈으로 대답했다.
“유저끼리 에누리 안 됩니까?”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하지만 바이런은 조금이나마 아끼고 싶었다.
“공인 가격입니다. 마법지부에서 수수료 떼면 저도 남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마나 포션까지 복용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빈 병들과 파란 액체가 담겨있는 약병이 보였다.
“바이런... 그냥 제값 줘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매지카까지 부탁드립니다.”
바이런이 말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단속! 단속이다!”
“아이씨!”
“오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바닥의 마법진을 지웠다. 기다리던 유저들은 원성을 내뱉었다.
“아, 또야!?”
“하... 하여간 마법연합 놈들은 돈독이 올랐다니까...”
경비병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뒤쫓는다. 그러나 사츠는 차분했다.
“뭐, 흔한 일입니다.”
“아... 네...”
“저것도 그냥 생색내는 겁니다. 실제로 잡아도 금방 풀려나고요.”
“그래요?”
바이런이 지나가며 물었다. 그러나 사츠는 뭔가 쌓여있던 게 있는 모양이었다.
“네. 저런 불법 마법 노점으로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야 저 같은 공인 노점으로 오거든요. 여러모로 외부인들의 돈을 털기에 좋죠. 불법 노점이 벌어들인 돈을 다시 쓰니까. 결국 이득을 보는 건 마법연합이니까요.”
“허...”
“마법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연합 쪽의 마법사라고 다르지 않나 봅니다. 아, 말이 길어졌네요. 준비하시죠.”
바이런이 20골드를 꺼내 건넸다. 금화 20닢을 확인한 사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20골드 받았습니다. 한 분만 가시는 건가요?”
“예?”
프레이 일행이 막 발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1인당 20골드입니다.”
사츠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3명, 총합 60골드. 전 재산을 털어도 이용할 수 없다.
‘이 정도 가격이면... 목숨 걸만 하네...’
프레이는 새삼 유저들이 불법 마법 노점을 이용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프레이, 어쩌지?”
“돈... 없잖아요?”
“어...”
바이런이 시무룩해졌다.
“거 전세 냈습니까?”
“빨리빨리 좀 합시다.”
슬슬 뒤에 있던 유저들에게서 소리가 나왔다. 사츠는 한숨을 쉬었다.
“마법은 편리한 만큼 비용이 비쌉니다. 더욱이 안전까지 보장된다면 말이죠.”
“으음... 잠깐 상의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일단 별도리가 없었다. 프레이는 일행을 데리고 줄에서 빠져나왔다.
“세상에... 저게 말이 되는 값이야?”
“60골드는 너무 하죠.”
세이렌도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 시절에는 아무렇지 않게 썼던 돈이지만, 지금에서야 골드의 가치를 알게 됐으니.
“차라리 말을 사서 가요.”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프레이가 결론을 내자 바이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있으면 편한 건 현실이나 가상현실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산 넘어 산이라더니...”
세이렌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들이면서도 순간이동을 이용하는 거겠죠...”
바이런은 땀을 훔쳐내며 세이렌의 말을 보충해주었다.
히힝-
투레질을 하며 발굽을 내디디는 말도 동의하는 것 같았다.
프레이는 선두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말 등에 기대어 녹초가 된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해가 졌어요. 가능한 더 가야 해요.”
“알아, 인마. 말도 못 하냐.”
바이런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한참을 산을 타니 그나마 평평한 지역이 나타났다.
여행객들이 자주 이용하던 곳인 듯 풀이 밟혀 있었으며, 중앙에는 까맣게 그을린 부분도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쉼터인 것 같네요.”
프레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의 끝이 걸쳐져 옅은 분홍빛과 푸른빛이 이어져 있었다. 색 도화지 위에는 작은 보석을 뿌려놓은 듯 별빛이 가득했다.
“경치 죽이네.”
바이런이 따라 고개를 들었다가 말했다. 말에서 내린 그는 다시 노숙준비를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단 먹을 준비부터 하자.”
“금강산이 무슨 산이에요?”
“아, 그런 산 있어. 나도 가본 적은 없는데.”
바이런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익숙하게 모닥불을 피웠다.
말을 나무에 매고 식사를 마쳤다.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참 대단한 체력이다.”
“깨워줘. 나도 불침번 설 줄 알아.”
프레이는 말없이 미소로 대답했다.
타닥- 타닥-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와 다른 사람들의 옅은 숨소리가 들린다.
프레이는 앉아서 주위를 살폈다. 오면서 맹수는커녕 짐승 하나 보지 못 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갔다. 프레이는 조금씩 졸기도 하며 불침번을 섰다.
“흐아암...”
작게 하품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풀썩-
소리에 돌아보니 말이 넘어져 있었다. 세 마리 모두.
‘음...?’
뭔가 이상했다. 말이 누워서 잘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서 자니까.
프레이는 검을 빼 들었다. 천천히 말이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저건...!’
어두운 탓이었는지,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핏물이 보였다.
단번에 숨통을 끊은 것 같았다.
다른 일행들을 깨우기 위해서 프레이는 곧바로 뒤로 돌았다.
“메멘토 모리.”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세이렌의 옆에 날카로운 단도를 잡은 괴한이 서 있었다.
빛이 반사되지 않는 듯 무척이나 검은 갑옷과 로브를 뒤집어썼다. 마치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 같았다.
어떻게 다가온 걸까.
그런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프레이는 움직였다.
“세이렌!”
괴한이 단도를 높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7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