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97화 (97/141)

<-- 22. 발목잡기 -->

제트람은 몸을 비틀거리며 옆으로 넘어졌다.

베르핀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를 내려 보았다.

“자네가 충성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미리 눈을 붙여뒀었네.”

눈치챘어야 했다. 어떻게 제트람이 웨이버에 있는 줄 알고 서신을 보냈겠는가.

서신의 내용 때문에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제트람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러나 마음과 몸은 따로 놀았다.

“여러모로 충격이었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어.”

“우윽...”

제트람은 신음을 흘렸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데일이 그런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

“무슨...”

“처음에는 의심했네. 얼굴이 비슷한 여자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자네가 오히려 기이한 행동을 보이더군.”

베르핀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제트람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자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달리했네. 만약 그 여자가 정말 데일이라면,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베르핀... 대공...”

“그거 아나? 데일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잘 따랐어. 반면에 나를 무척 무서워했지.”

베르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추억을 떠올리는 건 아니었다.

“물론 세이란도 나를 무서워했었지. 그 엄마에 그 딸이지. 세이란이 ‘사고’로 명을 달리했을 때도, 그 아이는 나를 무서워했어.”

그는 사고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물론 그게 사고가 아니라는 건 베르핀도 제트람도 알고 있었다.

“데일은 세이란이 세상을 떠나고서도 엄마를 찾았지. 하, 그걸 보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그 어릴 적 모습이 다시 떠오르더군. 이제 그 아이도 어머니를 만나야 할 때가 된 거지.”

제트람은 이를 악물었다. 명백한 살해 예고였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파르르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입을 열었다.

“베르핀 대공... 설마...”

“아, 물론 자네를 부르기 전에 결정한 일이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지.”

베르핀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내 정원사가 혼신을 기울여 가꾼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제트람은 힘겹게 허리춤으로 손을 움직였다.

프레이에게 검을 넘기고 급하게 구한 철검이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다면 여느 명검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그의 몸이 정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그래, 바로 자네야. 자네가 데일 곁에 있으면 아무리 나라도 조금 힘들어지거든.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베르핀이 돌아섰다. 얼굴에는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의 시선이 제트람의 손으로 다가갔다. 그가 뽑은 검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떨린다.

“그걸로 뭘 어쩔 셈인가?”

“저하를...”

제트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에 대답하는 데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단번에 끝낸다.

어쩌면 진즉에 해야 했을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을 감았을 때부터...’

제트람은 세이란 왕비를 떠올렸다. 관속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던 그녀.

그때는 눈을 돌렸다. 자신이 지금만큼 강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허허... 이것 참, 안타까운 일이군.”

베르핀은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통수를 창문에 박았다.

와장창-!

깨진 유리 조각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베르핀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제트람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그러나 곧 베르핀이 노리는 바를 깨달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벌컥 문이 열리며 호위기사가 들어온다. 그리고 곧 그들의 시선이 자신과 베르핀에게 돌아간다.

“이게 무슨...!”

“도, 도와주게...!”

검을 빼 들고 있는 제트람과 쓰러져 피를 흘리는 베르핀의 모습. 호위기사가 누구를 도와야 할지 명확했다.

그 상대가 친위대장 제트람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제트람 경! 도대체 무슨...!”

“이건...”

제트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약효가 퍼지며 그는 몸을 지탱할 힘도 없었다.

호위기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제트람은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사제, 사제를 부르게!”

“우읏...!”

베르핀이 기사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그는 제압당한 제트람을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제트람은 몽롱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스쳐 지나가는 그 비릿한 미소를.

* * *

“세이렌.”

프레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친다. 흩어지는 머릿결을 넘기며 그녀가 돌아섰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 그러나 세이렌은 그저 웃었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황제 폐하도, 제트람도 괜찮으실 겁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어.”

갑판 위에는 돌아다니는 선원 몇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승객이라고는 밀항자인 프레이 일행뿐이었다. 밀항을 한 결과로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프레이, 세이렌!”

바이런이 소리친다. 그는 선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캬, 이쪽 바다가 완전 물 반, 고기 반이야! 낚싯대만 던져도 월척이 줄줄 따라 올라와!”

바이런이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으며 보여주었다. 펄떡이는 놈이 바이런의 뺨을 후려쳤지만,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거 부업으로도 괜찮슴다. 그것도 모르고 탔슴까?”

선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거, 줘 보십쇼. 선상에서 먹는 회가 아주 기가 막힘다.”

“회? 오오...!”

선원이 능숙하게 물고기를 해체했다. 뼈와 살이 분리되고 살점이 넉넉하게 나왔다.

“함 먹어 보십쇼.”

“캬... 살살 녹네!”

바이런이 살점을 집어 혀 위에 올려놓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그렇게 맛있을까.

“야... 이거 현실에서 먹으려면 얼마냐...”

중얼거리면서 다시 하나 더 올린다. 세이렌도, 프레이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다 먹기에요?”

“하하, 물고기 많슴다. 또 낚으면 됨다.”

선원이 웃으며 낚싯대를 던졌다.

세이렌이 질세라 손을 뻗었다. 프레이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디케일 가문, 사저에 만들어둔 지하 감옥.

넘실거리는 횃불 하나가 죄수의 얼굴을 비추었다.

“내가 왜 지금 자네를 죽이지 않는지 궁금할 거야.”

베르핀은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나 주변이 조용했기에 작은 목소리라도 명확하게 들렸다.

“으... 으으...”

제트람은 양 손목과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구속되었다. 베르핀은 슬쩍 눈을 돌렸다.

“기사로서의 자네는 끝일세. 힘줄을 모두 끊어 놨으니. 그래도 노력하면 기어 다닐 수는 있을 거야.”

“왜... 왜...”

“아, 맞아. 자네를 살려둔 이유.”

베르핀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감옥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자네는 내 보험일세. 만약 모든 일이 틀어지면, 자네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되겠지.”

“무슨... 소리를...”

“제트람 경,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하지 않아. 뭐, 여기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네. 자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주 지독하군.”

베르핀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코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마치 배설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차라리 데일이 죽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 아이가 죽으면 자네도 편하게 보내줄 테니까.

“베르핀...!”

짝-

제트람의 뺨이 옆으로 돌아갔다. 베르핀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로 말했다.

“그 혀까지 잘라내기 전에 말조심하게.”

그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아내고 제트람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더럽혀진 손수건이 제트람의 얼굴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 종종 들르겠네.”

“네놈...!”

베르핀은 무시했다. 그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오로지 그만 들어올 수 없는 공간.

‘오랜만에 연락이군...’

베르핀은 서재에서 책 하나를 뽑았다.

쿠궁-

낮은 소리와 함께 기관장치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검은 수정구.

베르핀은 수정구를 꺼내고 주변을 살폈다. 조심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

베르핀이 말을 마치자 수정구가 빛났다.

“메멘토 모리. 기억해야 할 죽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데일 도프람.”

베르핀은 낮게 읊조렸다. 수정구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둠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베르핀은 상관하지 않았다.

메멘토 모리,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이용하는 암살자 집단의 이름이었다.

“데일 도프람, 제국의 후예 제 1 황태자가 맞습니까?”

“그렇다.”

“이상하군요. 그분은 현재 실종상태인 것으로 아는데요.”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나왔다. 베르핀은 살짝 눈썹을 씰룩였다.

“지금은 세이렌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엘레타스 대륙으로 향했지.”

“알겠습니다. 세이렌의 죽음은 기억될 것입니다. 비용은...”

베르핀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무리 자타가 공인하는 권력자라고 해도,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까.

“1천 골드에 1명, 2천 골드에 3명입니다.”

베르핀이 움찔 몸을 떨었다. 고작 세이렌 하나를 처리하는 데 2천 골드나들일 필요가 있을까.

‘제트람도 붙잡아 뒀으니...’

감시자에게 받은 보고에 따르면 유저 둘이 붙어있다고 했다. 그나마 하나는 상업에 종사하는 자였으니, 실질적으로 상대해야 할 유저는 하나였다.

“1천 골드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한 명이면 충분하리라. 메멘토 모리에 소속된 자객의 솜씨는 믿을만했으니.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보수는 성공하면 지급하면 된다. 만약 그가 지급하지 않으면?

기억해야 할 죽음은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세이란도 그렇고, 데일도 그렇고... 참 돈이 많이 드는 모녀로군.”

베르핀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데일이 죽고 나서의 계획에 몰두했다.

* * *

“조심해서 내려요.”

프레이가 세이렌의 손을 잡아 주었다.

“고마워.”

뒤이어 바이런이 내렸다.

“와... 여기서부터 마법연합이군.”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본다.

“형도 처음이에요?”

“그래, 말로만 들었지.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야.”

프레이의 말에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이렌은 신기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오토마톤이 이렇게 많아?”

항구를 오가는 사람들과 오토마톤. 오토마톤 대부분은 짐꾼으로 보였다.

화물칸에서 묵묵히 짐을 내려놓는 오토마톤의 모습이었다.

“아이고, 놀라긴 아직 이름다.”

회를 대접했던 선원이 웃으며 내려왔다. 그는 약간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봤다.

“저기, 저 여자 보이심까?”

선원이 가리키는 곳에는 늘씬한 미녀가 서 있었다. 세이렌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미모였다.

그러나 그녀는 연신 지나다니는 남자들에게 추파를 날렸다. 매춘이 목적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에헤이... 우리는 저런 거 안 합니다.”

바이런이 질색이라는 듯 손을 저었다. 물론 그도 관심은 있었지만, 세이렌이 있었으니 곧이곧대로 관심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유, 아님다. 저거 인간이 아님다.”

“네?”

“저거 오토마톤임다.”

“뭐라고요!?”

세이렌이 놀라서 물었다. 저 여자가 오토마톤이라니?

“생김새 보면 아주 감쪽같지 않슴까? 근데 오토마톤임다.”

“허...”

바이런도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프레이는 유심히 그 오토마톤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이상하긴 했다.

추파를 날리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동작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뭐, 그래도 여러 가지 가능해서 찾는 손님도 많슴다. 진짜 사람보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아, 아무튼 됐어요!”

세이렌이 소리치자 선원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겠슴다. 아, 남성 오토마톤도 있...”

“됐다니까요.”

세이렌이 정색하자 선원이 킥킥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알겠슴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십쇼.”

“햐... 마법사들은 별 걸 다 하는구나...”

바이런이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얼른 가야지?”

세이렌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녀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가 봐요.”

프레이가 그 뒤를 따라갔다. 바이런은 왠지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야! 마법사도 사람이야, 사람!”

바이런은 마법사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의 변명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프레이 일행은 곧 광장으로 들어섰다. 무수히 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와...”

“드워프, 엘프도 있네. 역시 엘레타스 대륙답네.”

여러 인종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애완동물로 키우는지 피스칸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보였다.

“일단 마나홀드 대학으로 가야죠.”

“아아, 그래. 아마 수도, 매지카 옆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바이런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들은 마법사 하나가 다가왔다.

“매지카 가세요? 싸게 해드릴게요!”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24%)]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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