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96화 (96/141)

<-- 21. 입장정리 -->

세이렌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뭐라고...?”

“폐하께서... 위독하다는 전갈입니다...”

제트람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그가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세이렌은 그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느끼는 바는 달랐다.

병상에 누워 몇 번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아니던가.

“아니... 뭔가 잘못된 걸 거야...!”

“저하...”

세이렌은 부정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제트람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렌...”

프레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제트람... 그, 그 서신 누가 보낸 거야?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야!?”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국의 후예를 이끄는 황제다. 그가 사라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은 분이셨다.

“서신은... 베르핀 대공께서 보내신 겁니다.”

베르핀.

그의 이름이 나오자 세이렌의 떨림이 멎었다.

“사, 삼촌이...?”

“예, 죄송합니다.”

제트람은 허리를 숙였다. 세이렌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설마... 설마... 삼촌이...”

“저하...! 그건 아닐 겁니다...”

제트람도 세이렌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짐작하는 단어.

반역.

데일이 사망했다고 생각한다면, 베르핀은 황제를 직접 처리하지 않을까?

왕비이자 자신의 누이를 제거한 것처럼.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울 것이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버지를 보러 가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세이렌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프레이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따뜻한 손길에 흠칫 몸이 떨렸다. 세이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세이렌은 눈물일 날 것 같았다.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프레이와 제트람 뿐이었다.

“아직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황제가 위독하다. 그러나 살아있지 않은가.

자신처럼 부모님이 이미 모두 죽은 상황도 아니다. 지금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프레이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아무리 제트람 경이 있다고 해도... 미치광이 취급을 받겠죠.”

자식이 병세가 깊은 부모를 보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부모와 자식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누가 그녀를 황제의 아들이라고 보겠는가?

“그건... 프레이의 말이 맞습니다.”

제트람이 말을 보탰다. 그도 점차 충격에서 헤어나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마요. 게다가...”

프레이는 세이렌의 이야기를 토대로 판단을 내렸다. 지금 그녀가 돌아가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황제께서 위급한 상황에 세이렌이 이 모습으로 돌아가면... 분명 죽을 겁니다.”

“뭐...?”

세이렌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죽는다는 건 무슨 소린가?

제트람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프레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만약 황제께서 정말... 생명이 위태로우시다면 베르핀은 매우 급한 상황일 겁니다.”

프레이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세이렌이 다시 충격받지 않도록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 상황에서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베르핀 대공은 저하를 인정하시지 않을 겁니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제트람이 말을 붙이자 세이렌이 물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여자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으니까요.”

“최악의 경우... 베르핀 대공이 저하를 암살할 위험이 있습니다.”

암살. 그 단어에 세이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삼촌이 나를?”

“예. 저하께서 여자라는 사실이 공표되면, 베르핀 대공은 모든 걸 잃게 될 테니...”

“그렇게 되느니 차라니 사망 혹은 실종상태가 낫다고 판단하겠죠.”

프레이와 제트람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군... 오히려 마틴 도프람이 정식 승계자로 추대되는 걸 앞당기는 꼴이 되겠어.”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듣던 바이런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제트람은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저하. 지금은 돌아오실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트람...!”

세이렌이 말을 마치기 전에 제트람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시겠습니까? 저하께서 황족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베르핀 대공의 일이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세이렌이 소리쳤다.

“폐하의 곁에는 제가 있겠습니다. 베르핀 대공이 아무런 짓도 하지 못하도록... 저하는 예정대로 움직이십시오. 마틴 도프람을 대신해 신성제국에 몸을 의탁하십시오.”

“뭐?”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황족이라는 사실만 입증할 수 있다면... 신성제국은 저하의 신변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트람이 간절하게 말했다.

“기사님 말이 맞아요. 신성제국 쪽에서는 국제문제를 원하지 않을 테니, 만약 암살자가 오더라도 성기사를 비롯해 신성제국의 병력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요.”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프레이 역시 동감이었다.

“세이렌, 지금 걱정되고 혼란스러운 거 알아요. 그래도 우리는 가야만 합니다.”

침묵이 감돌았다. 세이렌은 고통스러운지 눈을 찡그렸다.

“알았어...”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제트람은 고개를 돌려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 다시 또 부탁해야겠네.”

“제트람 경...”

“부디 저하의 곁을 지켜주게. 이게 그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군...”

제트람은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던 검을 프레이에게 건넸다.

“이건...”

“그대의 잠재력은 직접 보았으니. 자네라면 믿고 맡길 수 있네.”

스릉-

프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검면에 새겨진 각인, 닿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 그리고 과하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장식까지.

[‘글라디오 베리타티스’]

[명장이 제작한 검입니다. 강철보다 가볍고 튼튼한 켈라디움으로 만들었습니다. 검면을 따라 새겨진 룬 각인은 사용자의 잠재력을 이끌어냅니다. 검술 레벨에 따라 부가효과가 적용됩니다.]

[검술 초급 – 검술 레벨 +1]

[검술 중급 – 검로 추가 +3]

[검술 고급 - ???]

[검술 최고급 - ???]

[검술 달인 - ???]

프레이는 눈을 끔뻑였다.

‘이건...’

명검이다.

이름부터 달랐다. 효과는 더더욱 좋았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다. 마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 검으로 대결을 했다면...’

프레이는 레스톤에서 제트람과 했던 대련을 떠올렸다.

그저 수건 하나만 걸치고 자신을 압도했던 제트람이다. 만약 그가 이 검을 사용했다면?

단 한 번의 일격도 받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검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제트람 경...!”

“꼭, 저하를 지켜주십시오.”

프레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트람이 그의 손을 쥐었다.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세이렌을 향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너무 시간을 지체했군요... 저는 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트람은 프레이가 진심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했다. 제트람은 세이렌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하... 나중에 뵙겠습니다.”

“제트람... 조심해...”

세이렌이 제트람의 손을 잡았다. 제트람은 웃었다.

그녀가 걱정하지 않도록 지어낸 웃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멀어졌다.

세이렌은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렌...”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바이런은 슬쩍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곧 출항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선장에게 비용을 지급한 후였다. 조금은 기다려주겠지만, 그대로 떠나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프레이, 이제 가야 하는데...”

직접 세이렌에게 이야기할 자신은 없었다.

“이제 가야 해요.”

“...그래.”

세이렌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트람과 프레이, 그리고 심지어 바이런도 자신을 위해 노력해주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침울해만 한다면,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배신하는 꼴이 아닌가.

‘그래... 아버님은 괜찮으실 거야.’

세이렌은 결의를 다졌다.

제트람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가자.”

프레이 일행은 배에 올랐다.

* * *

“그게... 사실인가?”

“예... 죄송합니다...”

이튼은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었다.

수정구 속의 헤피르 라이언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제트람... 제트람 경이 왜 거기에...”

“베르핀 쪽도 데일 황태자를 쫓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헤어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튼은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기에 제트람과 프레이 일행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헤피르의 물음에 이튼은 입을 다물었다.

베르핀이 데일 황태자를 찾았다면 왜 제트람이 그곳을 떠났겠는가?

‘생각이 짧았어...’

이튼은 자신의 입을 탓했다. 다행히 헤피르는 그의 실패를 탓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엘레타스로 갔다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선장을 매수해 밀항한 것 같습니다.”

“허... 황태자가 밀항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헤피르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그녀가 데일이 맞는 걸까?

그가 아는 황태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의구심은 곧 사라졌다.

제트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어쩔 수 없군... 그들을 뒤쫓도록.”

“예?”

“제트람 경은 헤어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준비를 마치는 대로 그들을 추격하게.”

헤피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면... 제트람 경 말고 문제가 또 있나?”

“그건... 아닙니다.”

이튼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대답했다. 같이 있던 놈들은 쉽게 제압했으니까.

제트람만 없었더라면 데일을 생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이번에 실패하지 말도록. 지원은 하루 정도 뒤에 도착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이튼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곧 떠오르는 게 있다는 듯 머리를 들었다.

“아, 그런데 그 유저는 어떻게 할까요?”

“유저? 아...”

크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헤피르는 잠시 고심했다.

“흠... 어쩔 수 없군... 우리 쪽에서 처리하는 걸로 하지.”

“그 말씀은...?”

“안전가옥에 감금하고 계속 죽이게. 그러면 더 이상 부활하지 않을 거야.”

헤피르의 말에 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수배서가 뿌려졌으니 도망치기는 어려웠다. 계속 크젤을 보호하자니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

“우리를 배신했다고 하면 되겠어. 그러면 다른 대원들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자네의 습격이 실패한 것도 그자의 책임이라고 해두게.”

“알겠습니다.”

배신자에 대한 처단이라는 명목이면 충분할 것이다. 배신자와 말을 섞으려 하는 대원은 없을 테니까.

* * *

똑- 똑-

“제트람 경이 오셨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달그락-

베르핀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제트람이 황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께서 위독하시다고...!”

“일단 앉게. 제트람 경.”

베르핀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제트람은 그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무작정 폐하를 만나 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닌 건가...?’

대륙 간 순간이동으로 피로가 쌓여 있었다.

어쩌면 오는 사이에 황제폐하의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닐까?

제트람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베르핀은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일단 숨 좀 돌리시게.”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뭔가 이상했다. 제트람은 찻잔을 잡았다.

“제트람 경. 황제폐하께서는 무사하시네.”

“하지만... 서신에서는...?”

“자네를 급히 불러야 할 일이 있었네. 물론 폐하께서는 언제나 위독하시지.”

베르핀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비릿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제트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차를 한 모금 머금고 내려놓았다.

“급한 일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서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까?”

“그럼.”

베르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입만 웃을 뿐, 눈은 제트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제트람을 관통했다.

“제트람 경, 내게 할 말은 없는가?”

“할 말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트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왠지 방이 춥게 느껴졌다.

베르핀은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대에게 무슨 일을 맡겼는지, 기억하고 있나?”

“그건...”

“데일을 찾아오라고 했네. 그런데 자네는 다른 일을 하고 있더군.”

제트람은 식은땀을 흘렸다. 수배범을 쫓는 걸 그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뭐... 그것 역시 충성심의 하나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

베르핀은 자신의 찻잔을 잡았다.

“데일을 발견하고 내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나?”

“그걸... 어떻게...”

속이 메슥거렸다.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트람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베르핀이 찻잔을 슬쩍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찻잔은 깨끗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24%)]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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