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94화 (94/141)

<-- 21. 입장정리 -->

바이런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암살? 아니, 그보다 크젤이 여기에 있었다고?”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렌의 표정도 심각했다.

둘은 짜고 장난을 칠 인물들이 아니었기에, 바이런 역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언제 또 암살자가 세이렌을 노릴지 몰라요.”

“그자는... 내가 데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세이렌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다시금 목에 닿았던 섬뜩한 칼날이 떠올랐다.

프레이가 옆에 있었기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그나마 프레이는 유저였기에 피로가 사라졌지만, 세이렌은 신경이 날카로워 선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크젤과 같이 있던 것도 그렇고... 그 습격을 의뢰한 패거리들 짓일까?”

“정통파...”

프레이는 다시금 레스톤의 전투를 상기했다. 그를 막았던 무리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크젤에게 의뢰를 한 놈들이니 연줄이 남았을 수도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피신한 거겠지. 안 그러면 마법사 하나가 수배를 피해서 오겠어?”

바이런은 손쉽게 추리해냈다. 주어진 단서가 넘쳐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어제가 끝이 아니겠지. 아마 계속 놈들이 찾아올 거야.”

바이런이 말을 맺자 프레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그렇게 쉽게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세이렌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계승자의 자리는 자기 마음대로 내려갔다가 올라올 수 없었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리에 연관된 인물이 너무 많았으니까.

“아무튼 배를 알아보자고.”

“네?”

“배. 마도연합에 가야 할 거 아냐? 이미 위치가 노출됐는데 멍하니 있을 거야?”

바이런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아...”

세이렌이 작게 소리를 냈다.

“아는 무슨 아. 표정이 왜 그래요? 그럼 여기서 가만히 죽을 날만 기다릴 셈이었어요?”

바이런이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게 아니면 빨리 움직여야지. 당장 배를 타고 떠납시다. 프레이, 뭐 따로 준비할 거 없지?”

“네? 아, 그렇죠.”

“거봐, 내가 어제 미리 준비 안 했음 어쩔 뻔했어. 우리가 할 일은 어차피 하나야. 마나홀드 대학에 가서 그 누구냐, 켈타스?”

“켈라인이요.”

바이런이 눈살을 찌푸리자 세이렌이 정정해주었다.

“맞아요. 그 켈라인의 오브라는 걸 가져와서, ‘내가 황태자다. 나를 모셔라!’ 이렇게 하면 끝 아닙니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일까. 바이런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

어이가 없는지 세이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면 직접 보여주시던지. 자, 일단 갑시다. 시간은 금보다 중요한 거예요.”

“알았어요. 세이렌, 가죠.”

프레이가 일어났다.

바이런의 말이 맞다. 아직 닥치지 않은 위험에 벌벌 떨기보다는 시간이 있을 때 위협에서 멀어져야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긴 프레이 일행은 곧장 항구로 갔다.

선원들이 분주히 짐을 옮기고 있었고, 많은 유저들이 엘레타스 대륙으로 가는 정기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유저들이 마법사인 듯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프레이...”

“괜찮아요. 그놈은 제가 죽는 걸 봤으니까요.”

크젤이 잿빛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했다. 부활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터, 이곳에 마법사들은 그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일 뿐이다.

“저기가 매표소인 것 같아.”

바이런이 손가락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게 보였다.

“으... 사람 엄청 많네.”

“이른 시간인데도 대단하네요.”

프레이는 순수하게 감상을 말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일단 줄부터 서자고.”

바이런이 눈을 훑었다. 그나마 여러 줄 중에서 가장 짧아 보이는 줄에 붙었다.

그렇게 잠깐 서 있자니 곧 앞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매표소 직원은 난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분명 어제 예약을 했는데, 자리가 없다니요!?”

남자의 목소리가 우렁찼기에, 직원의 말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뭐야, 무슨 소리야?”

“자리가 없다니?”

앞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지금 돈이 문젭니까!? 빌어먹을!”

“잠깐, 도대체 무슨 문제입니까?”

소란이 일어나자 경비병이 다가온다. 목소리를 터트린 남자는 경비병 앞에서는 조금 온순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리저리 손짓하며 설명하고, 직원도 경비병에게 설명한다.

전후 사정을 들은 경비병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저기, 무슨 일입니까?”

줄을 서 있던 사람이 물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자리가 하나도 안 남았답니다. 저는 어제 예약을 해둔 건데...”

“자리가요?”

“예. 아니, 근데 황당한 건 지금 배 위에는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남자는 다시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가 가리킨 배 위에는 선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씩씩거리며 사라지자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점점 늘어갔다.

“아니 다음 배도 자리가 없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야?”

“그런데 정작 타는 사람이 없잖아!”

바이런은 얼굴을 굳히고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프레이... 이거...”

“네... 아무래도 정통파가 손을 쓴 것 같군요.”

“설마... 엘레타스로 가는 배표를 전부 사들였다고?”

세이렌이 당황한 눈으로 물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바이런의 차례가 돌아왔기에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엘레타스로 갈 수 있는 자리가 남은 배가 있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직원은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손님들의 화풀이를 모두 받아내야 하는 건 그였다. 사람들이 탓할 수 있는 건 눈앞에서 사과하는 남자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예...?”

직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눈을 마주쳤다. 바이런은 정말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오늘 내에 엘레타스로 갈 수 있는 배가 있나요?”

“그게... 없습니다.”

“음... 혹시 누군가 표를 전부 산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오늘 엘레타스로 가는 배표를 사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없다는 말만 전하라고 해서...”

직원이 울먹였다. 바이런은 이해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런... 알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런데 도저히 방법이 없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직원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바이런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휴, 그냥 물어본 거예요. 고생하세요.”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오는 바이런을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금이 풍부한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다. 표를 전부 살 정도면 뭐...”

“그럼 어떻게 하죠?”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다시 습격당하는 건 아닐까?

“일단 놈들의 목표는 우리를 여기에 붙잡아 두는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다른 방법?”

바이런의 말에 프레이가 물었다. 표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표는 저치들이 팔지만, 정작 배를 운항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그가 슬쩍 눈을 돌렸다. 분주히 짐을 옮기는 선원들이 보였다.

“아...”

“어차피 그놈들은 실제로 배를 타는 게 아니니까. 뒷돈 좀 찔러 주면서 태워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어.”

프레이는 바이런의 말을 이해했다.

승객도 없이 배를 띄우나, 승객이 많으나 선원들은 상관없다. 이미 정통파가 표 값을 전부 지급했으니까. 하지만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공간이 부족해 사람을 추가로 태우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간도 넉넉해 문제가 없고, 정규표가 아니라 웃돈까지 받을 수 있을 터.

선원들이 거절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밀항이군요...!”

“쉿! 경쟁자를 늘리면 안 돼!”

바이런이 속삭였다. 방금 표를 사지 못한 사람들이 이 방법을 시도하면, 그것대로 문제가 될 테니까.

“그런데 선원들은 선장의 명령을 따르니까... 선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지. 그건 내가 알아볼 테니까. 너는 세이렌을 잘 지켜보고 있어.”

일개 선원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바이런은 선장에게 직접 부탁할 셈이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주점. 그런데 거기 가면 세이렌이 희롱당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혈기 왕성한 선원들이 북적거리는 곳, 술과 여색을 즐기는 곳. 세이렌이 그런 곳에 가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심하면 돈 대신 세이렌을 요구할지도 모르니까...”

바이런은 세이렌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그녀가 들어서 기분 좋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프레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너는 여기서 여분의 표가 생기는지 기다려봐.”

“알았어요. 조심해요.”

바이런이 손을 흔들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프레이는 세이렌의 손을 붙잡았다.

* * *

이튼은 슬쩍 눈을 돌렸다.

목표 중 한 명이 빠져나가고 데일과 유저 하나만 남았다.

‘귀찮은 짐을 덜어냈군.’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인가...’

어제 새벽, 헤피르 라이언은 마틴 도프람을 은밀히 보좌하던 병력까지 웨이버로 보냈다. 순간이동을 통해 속속 도착한 지원군은 이튼의 휘하로 편성됐다.

‘차라리 암살이라면 편할 텐데...’

죽이는 일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했으리라. 그러나 생포가 목적이기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군데군데 잠복한 대원들에게 눈짓했다.

지원군에서도 엄선한 다섯 명의 대원들. 실질적으로 데일 도프람을 확보하는 건 이들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맡은 임무가 있었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간다.

“뭐야!?”

“뭔가 폭발했는데!?”

그와 동시에 경비병들이 달려간다.

“서둘러!”

이게 신호였다. 다른 대원들이 폭파 공작으로 경비병들의 시선을 돌린다.

대낮부터 여자를 납치하려는 남자들을 경비병들이 곱게 보내줄 리 없었으니까.

더불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공간이 확보된다.

목표의 주위로 대원들이 접근한다. 이튼 역시 움직였다.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했을 때, 이튼은 손을 들었다.

스릉-

날카로운 단검이 대원들의 품에서 나왔다.

“프레이...!”

세이렌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튼은 세이렌을 향해 달려갔다.

“뭐, 뭐야!?”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물러선다. 마치 경기장처럼 사람들이 프레이와 대원들을 에워싼다.

“크아악!”

프레이는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달려드는 대원 하나를 베었다. 이튼이 놀랐다.

“어떻게...!?”

“네놈들... 정통파인가?”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폭발이라니?

너무나 수상쩍은 상황이었다. 그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고, 폭발지점으로 눈을 돌리지 않은 인간들을 골라냈다.

이튼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상처가 나도 괜찮다!”

대원들이 적극적으로 덤벼들었다.

“이벤트야?”

“모르겠는데? 일단 좀 지켜보자.”

주변의 유저들이 소곤거렸다.

도움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프레이는 잔상을 따라 움직이며 방어에 치중했다.

‘한 놈 한 놈 처리하기엔 세이렌이 위험해...!’

그녀를 지키면서 싸워야 했기에 본 실력을 낼 수가 없었다. 프레이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쏴아악-

“큭...!”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어깨에 박힌 날카로운 침.

그와 동시에 시야가 일그러졌다.

“귀찮게 하는군...”

이튼이 중얼거렸다.

“프레에이이이!”

“쳐으라아!”

감각이 어그러진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늘어진다.

‘독...인가...’

프레이는 비틀거렸다. 이튼이라는 남자에게 독 면역력은 없었다.

세이렌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늘이 뒤집어지고 땅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를 지킬 힘이 없었다.

깜빡,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누구...?’

세이렌에게 달려드는 남자들이 피 분수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11%)]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24%)]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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