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93화 (9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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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는 치솟은 머리를 정리했다.

‘다행히 옷까지 불타는 건 아니로군...’

여기저기 생겨난 그을림이 보였다. 하지만 알몸이 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유저의 기본 복장은 파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프레이는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게...’

크젤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번에 끝내기 위해서 준비한 마법을 퍼부었다.

‘화염저항까지 갖췄다고?!’

아무리 저항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워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저 여유로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뿌드득-

크젤은 이를 갈았다. 마지막으로 꺼낸 마정석이 비밀을 밝혀낼 열쇠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비밀을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당장 다가오는 프레이를 처리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대로 도망갔으면 좋았을 것을...”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크젤을 향해 달렸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 이상 두려울 건 없었다. 다만, 크젤의 스테이터스로는 이전처럼 속력을 낼 수 없었다.

다가오는 프레이를 보며 크젤은 연신 눈을 굴렸다.

‘도망쳐야 하나...!?’

고민이었다.

그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일단 습관적으로 수인을 맺었다.

“소용 없...”

쏴아악-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로 얼굴을 가리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화륵-

불화살이 충돌하며 밝게 빛을 내뿜었다. 불꽃이 그의 몸을 덮었다가 사라진다.

크젤은 연거푸 불화살을 던지며 뒷걸음을 쳤다.

“죽어! 죽으라고!”

“아직도 모르겠나? 네 마법은 소용없다.”

프레이는 줄어들지 않는 간격을 보며 대답했다. 저 불화살로 견제를 하니 쉽게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크젤이 도망치는 방향은 웨이버, 아무리 경비병이 없더라도 마을 내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을 터. 이미 수배자의 몸인 크젤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건 프레이 쪽이다.

‘하지만...’

프레이는 날아드는 불화살을 피하며 점차 간격을 좁혔다.

‘확실하게 처리를 하는 편이 좋겠지.’

크젤이 제국의 후예를 떠나 여기까지 왔다는 건, 경비병들이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는 뜻. 신성제국의 경비병이라고 다를까.

여기서 자신의 손으로 놈의 목숨을 끊는 편이 좋았다. 세이렌과 바이런을 노리겠다고 선언한 이상 후환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제길! 제길...! 어째서!”

크젤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저런 이상한 놈한테 두 번이나 지다니.

그것도 실력차이가 아니라 아이템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의 자존심을 긁기에 충분했다.

‘도망쳐야 해!’

그러나 자존심은 그의 목숨을 살려주지 않는다. 재차 던진 불화살이 통하지 않는 걸 보며 확신했다. 게다가 프레이는 점점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크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프레이는 불화살과 달리 캐스팅이 길어지자, 크젤이 다른 마법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네 마법은 소용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프레이는 불화살의 방해로 늦춰졌던 속도를 다시 끌어올렸다.

크젤의 양손에 화염구 2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화염구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이거나 먹어라!”

크젤이 소리치며 화염구를 던졌다. 그가 노리는 건 프레이가 아니었다.

쾅-! 콰쾅-!

화염구가 모래사장에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프레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양손을 교차해 얼굴을 막았다.

폭발에 튀어 나온 모래와 바위 파편이 그의 몸을 때렸다.

“큭...!”

격통이 스쳐 지나간다. 원래대로라면 그저 눈살을 찌푸리고 말 정도지만, 크젤의 체력은 현저히 낮았다.

“그렇게 쉽게...”

크젤은 프레이가 신음을 흘리자 반색했다.

왠지 모르지만 이전과 달리 움직임이 굼뜨다. 유령선장을 상대하던 움직임이 아니다.

‘뭔가 제약이 있는 거다!’

자신의 마법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다. 그에 따른 패널티가 있는 게 아닐까?

크젤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다면, 승산은 있다.

불화살만으로는 폭발을 이끌어낼 수 없다. 프레이에게 큰 피해를 주려면 모래로는 부족했다.

‘바위를 폭파해야겠군!’

크젤은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해안가에 드문드문 있는 바위들은 그에게 훌륭한 무기가 되리라.

“크젤...!”

프레이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전에 막아야 했다.

프레이는 검을 넣고 대신 묵색 단검을 꺼냈다.

‘어차피...!’

용암 거인을 상대하면서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기에 꺼내지도 않았던 단검. 어딘가에 닿기만 해도 산산조각이 날 물건이었다.

프레이는 단검을 던졌다.

크젤의 스테이터스로는 정확한 조준은 무리, 그러나 단검으로 크젤을 처리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려는 것뿐.

쏴악-

크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뭣...?”

묵색 단검을 판 대장장이는 가격을 후려치다가 바이런에게 걸렸지만, 단검에 대한 설명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묵색 단검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컥...!”

힘도 부족한 탓일까. 단검은 목표로 했던 크젤의 상반신에서 떨어지며 허벅지에 박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크젤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상체를 바다에 박았다.

풍덩-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붉은 피가 바닷물에 흩어졌다.

“이런... 미친...!”

프레이가 단검을 사용한다는 걸 알지 못했던 크젤은 그저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크젤은 다급하게 수인을 맺었지만, 그의 머리 위를 감싸는 그림자.

“하아... 하아...”

지친 숨소리, 그러나 크젤의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자, 잠깐...!”

프레이는 주저 없이 검을 찔렀다. 크젤의 어깨에 검이 박혔다.

“끄악...!”

크젤이 낮은 비명을 질렀다.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다 바닷물에 흐트러진다.

프레이는 검을 옆으로 비틀었다. 상처를 벌리며 검날이 뼈를 긁어낸다.

“끄아아아악!”

크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프레이는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복수... 복수, 나도 이해해.”

덤덤한 목소리. 그러나 크젤은 프레이가 뭐라고 하는지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프레이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을 이었다.

“복수를 하려면 2개의 무덤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지. 대상과 복수자의 무덤을 말이야.”

복수를 꿈꾸는 자, 2개의 무덤을 파두어라. 복수의 위험성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 말의 의미를 달리 해석했다.

“유저를 향한 복수는 조금 달라. 유저는 다시 살아나니까.”

“무슨... 개소리... 끄아악!”

프레이는 천천히 검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2개? 아니, 나는 몇 개든 무덤을 파낼 거야. 네놈들은 계속 돌아올 테니까.”

크젤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통증의 한도가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버틸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내 목적은 너 따위 피라미가 아니야. 그러니까 잘 알아둬라. 나는 너를 찾지 않아, 너 역시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마라.”

크젤이 입가에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검을 멈췄다. 자기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죽어서는 곤란하니까.

“하지만 다시 우리를 찾아와서, 네 무덤을 늘리려 한다면 사양하지는 않겠다.”

“끄윽...”

간신히 크젤은 정신을 차렸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크... 크흐흫...”

프레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고통이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실성이라도 한 걸까?

크젤이 실실 웃음을 흘린다.

“뭐가 웃기지?”

“네가... 고통스러워할 꼴을 생각하니...”

크젤은 마치 졸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프레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지금 죽어가는 크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건 무슨 말이지?”

“이미 늦었... 너랑... 같이 다니는 연놈들...”

크젤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의 몸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세이렌... 바이런!’

그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세이렌과 바이런을 놔두고 온 자신을 자책하며.

* * *

탁- 타탁-

여관 지붕 위로 떨어진 그림자.

한 인영이 지붕에 매달려 창문을 살핀다. 그림자가 멈추어 창 안을 들여다본다.

‘하...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인지...’

이튼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방안을 살폈다.

크젤의 부탁은 프레이에게 서신을 보낼 것, 그리고 프레이의 일행을 암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튼은 목표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사라락-

커튼이 밤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이튼은 빠르게 창문을 닫았다.

이불 속에 목표가 몸을 뒤척였다.

‘원한은 없지만...’

스릉-

이튼은 검을 빼 들었다. 날카로운 검날에 달빛이 비친다.

그의 그림자가 천천히 침대를 향해 간다.

“으음...”

프레이와 함께 다니는 여자다. 유저가 아니라고 들었기에 이튼은 더욱 내키지 않았다.

‘원망하려면 그 유저를 원망하도록...’

유저와 붙어 다니며 잠자리를 제공하는 여자라고 들었다. 침대 위로 드러나는 굴곡은 크젤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이튼이 검을 들었다.

“음...”

세이렌이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우뚝-

이튼의 검이 멈추었다.

‘어디서 많이 본...’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 곧 이튼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길어져 첫눈에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데일... 도프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가 기억하는 황태자의 모습이 다시금 겹쳐졌다.

이불로 몸이 가려져있기에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이게 도대체...?’

데일 도프람이 여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틴 도프람을 황제로 옹립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이건... 보고를 드려야 한다!’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었다. 비록 거짓 황태자라고 하더라도 황족이다. 황족의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힐 수는 없었다.

“프레이 뭐...”

세이렌이 눈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이튼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녀도 곧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가 프레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

그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 했다. 이튼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충분히 수상해 보였으니.

그가 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으며 칼을 겨눴다.

“읍...!”

세이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섣불리 움직이면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당신... 데일 도프람이 맞나...?”

이튼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세이렌이 놀랐다.

“읍...!?”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도록.”

세이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튼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 크젤의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당신 어떻게...!?”

세이렌이 되려 물었다. 그러나 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창밖으로 사라졌다.

세이렌은 잠시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다가 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쿵-!

“세이렌!”

거칠게 문이 열리며 프레이가 들어왔다. 세이렌은 황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프레이...”

세이렌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 *

“이게 도대체...”

이튼이 들고 있는 수정구에 헤피르 라이언의 얼굴이 보였다.

헤피르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튼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데일 도프람이 살아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튼은 웨이버 마법지부를 방문, 염사(念寫) 마법으로 그의 기억 속 세이렌의 모습을 전송했다.

“도대체... 왜 거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이튼도 마찬가지였다.

“웨이버에 있다는 건... 엘레타스 대륙으로 향한다는 의미일 터...”

헤피르가 생각을 정리하듯 중얼거렸다. 이튼은 주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렇군... 여자라는 게 밝혀진 이상 엘레타스로 가서 몸을 의탁할 셈이었던 거야.”

“확실히 그래야만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연합은 출신과 종족에 구애받지 않는 곳이니 그녀도 자유로운 삶을 누리리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헤피르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절호의 기회야.”

“예?”

“이튼, 그녀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게. 어떤 수를 써도 좋네.”

이튼은 잠시 헤피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그도 깨달았다.

“아...! 지금 데일 도프람이 황성으로 돌아가면...”

“맞아. 베르핀 디케일은 파멸할 거야.”

헤피르가 미소를 지었다.

데일 도프람이 여자라는 걸 증명시키기 위해 고블린에게 강간 의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다시 나타난 그녀는 창녀로 오해받을 정도의 외모를 갖추고 있다. 지금 그녀를 보고 남자라고 할 사람은 미치광이뿐일 터.

완연한 여자가 된 데일 도프람이 황성으로 돌아간다면?

제 1 황태자의 정체가 낱낱이 까발려질 것이고, 디케일 가문은 황제를 속인 죄로 몰락을 면치 못하리라.

그다음은 정통파의 세상이다. 제 2왕비인 자신의 누이는 제 1왕비로 승격할 것이고, 조카인 마틴은 황제가 되리라.

“곧바로 지원 병력을 파견할 테니, 그들이 도착하면 그녀를 확보하게.”

“알겠습니다!”

이튼은 웃었다.

데일 도프람을 확보하고 정통파의 승리를 확보한 공로자, 그에게 주어질 영광과 부는 얼마나 될까?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있기를!”

절로 충성심이 솟는다. 이튼은 그 어느 때보다 열의를 불태웠다.

========== 작품 후기 ==========

2화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9%)]

[초급 단검술 Lv9 (2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24%)]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89%)]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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