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88화 (88/141)

<-- 20. 도망자들 -->

마을을 나섰던 이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고 바이런은 입구로 나왔다.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프레이의 모습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프레이는 어디에...”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일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바이런은 마을 밖으로 나간 사람 중 절반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태연한 그들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

“그게...”

그나마 숨을 돌린 길잡이가 바이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바이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도망쳤다고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뻗어졌다. 길잡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그가 거칠게 바이런의 손을 뿌리쳤다. 길잡이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거기서 다 같이 죽을까요?”

“그래도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 주제에 마음대로 혀를 놀리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굶주리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겁니까!”

길잡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나라고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그래도 내게는 맡은 의무가 있었어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 것뿐입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순번이 넘어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해야 했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렸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자신조차 속였다.

“여기서 산다는 건 그런 겁니다! 빌어먹을... 우리는 도망자예요! 평범한 삶을 기대할 수 없다고요! 당신도 여기서 지내려면 잘 알아둬요!”

길잡이는 얼굴을 붉힌 채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외침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바이런은 마을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적대적인, 외부인을 향한 경계의 눈빛이 느껴졌다.

‘제길...’

아쉽게도 자신은 프레이처럼 강하지 않다. 그는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바이런은 다시 할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처방해준 약 덕분인지 세이렌은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없었다.

“하...”

프레이가 사망했다면, 적어도 4일 뒤에나 돌아올 터. 그때까지는 자신이 세이렌을 지켜야 했다.

그것이 프레이와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바이런의 눈은 할산의 집에 가득한 서적으로 돌아갔다.

‘책이라도 읽을까...’

침실의 문을 닫고 어지러이 흩어진 책을 살폈다.

[바보라도 할 수 있는 연금술의 기초]

[집에서도 쉽게 즐기는 연금술]

[마나란 무엇인가?]

[마법진 기초 연구]

[지금, 마법사가 되어라 – 원소 이해 편]

[그림으로 설명하는 마법재료 일람]

이외에도 세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두께부터 종이 재질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 책이라도 좀 읽어두자.’

일단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을 중점으로 뽑았다.

사락- 사락-

바이런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 * *

어느새 해가 졌다.

바이런은 눈두덩이를 주무르며 일어났다.

으드득-

“아이고...”

굳은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책 읽는 것도 장난이 아니네...”

다행히 손에 잡은 책들은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애초에 마법에는 관심이 없던 그였지만 흥미가 생길 정도였다.

‘이래서 마법사 유저들이 그렇게 노력하는 건가...?’

바이런은 마법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그는 기본적으로 상인의 사고방식을 가졌다. 투입되는 비용 대비 소득이 적다면 시도하지 않는다.

다른 게임의 마법사들은 스킬북이라는 책을 사서 마법을 배우고, 수치화된 마나를 관리한다. 마법 사용도 스킬의 이름을 외치면 그만. 이른바, 음성인식 마법이 대부분이다.

‘진짜 마법에 로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기 힘들지...’

그러나 《T.O.Y》의 마법사는 여타 다른 게임에서의 마법사와 다르다.

마법을 배우려면 사용하려는 마법의 원소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화염계라면 불의 성질을, 빙결계라면 얼음의 성질을 알아야 했다.

뇌 데이터를 사용하는 게임인 만큼 유저가 성질을 정말 이해했는지 구분할 수 있다. 이해도에 따라 마법의 효율이 결정되니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 얼추 알겠는데...’

그래 봐야 자신이 이해한 수준은 기초가 아닌가. 이런 걸로는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힘들 것이다.

더불어 마법을 사용하려면 시동어가 아닌 수인을 맺어야 한다. 자신이 사용하려는 마법의 수인을 하나하나 외워둬야 하며, 연습을 통해 몸으로 익혀야 한다.

‘가상현실에서까지 공부라니 끔찍하군. 왜 여러 원소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없는지 이해가 가네.’

지금까지는 몰랐다. 그저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 추측만 했을 뿐.

이제 보니 공부할 양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러니 마법사가 대접을 받는 거지.’

의사, 박사, 검사, 판사 등 현대의 사자 직업과 다를 게 없다. 마법사도 사자 직업이 아닌가.

지금까지 마법연합 지부의 요금이 바가지라고 생각했던 바이런은 조금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물론 흥정은 계속하겠지만.

‘그나저나 마나라는 게 그런 의미인 줄은...’

밤공기를 마시며 사색에 잠겼던 바이런의 눈에 할산의 모습이 보였다. 마을 입구 근처에 할산과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뭐 하는 거지?’

그들은 각자 짐을 들고 있었다. 할산은 그들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음... 결국 떠나는 사람도 있는 건가.’

이해가 된다. 여기 있으면 언젠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까.

어떻게든 엘레타스 대륙으로 가기만 하면 자유는 보장될 테니.

그들은 마을을 벗어났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 * *

“그럼... 여기서 흩어집시다.”합의된 일이었다.

해가 졌다고는 하나 엘드리안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었으니.

흩어지는 편이 그나마 생존확률이 높으리라.

“그럼 저희는 이쪽으로.”

“행운을 빕니다.”

사람들은 흩어졌다.

행운. 그들이 생각하는 행운은 모두의 행운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사하고, 그들이 먹히기를 바란다. 엘드리안이 다른 사람들을 사냥하면 그만큼 안전한 시간이 늘어나니까.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손을 붙잡고 숲을 헤쳐 나갔다.

“괜찮겠지?”

“이미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어.”

숨을 죽이고 나무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불가피할 경우라도 일정 크기 이상의 나무에는 접근하지 않는다.

“효과가 있을까?”

“없어도... 어쩔 수 없지.”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걱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다리를 움직이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숲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엘드리안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르릉-

“쉿...!”

남자가 급하게 몸을 숙이며 말했다. 여자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멀지 않다. 소리가 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조용히...!”

자박- 자박-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곧 터질 것만 같았다. 혹시 이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

남자와 여자, 모두 식은땀을 흘렸다.

크릉-!

“들켰어!”

남자가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를 내버려 두고.

“자, 잠깐!”

여자가 당황해 소리친다. 그러나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사랑을 고백한 사이였지만, 목숨 앞에서 사랑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맹수를 붙잡아주기를 바랐다.

푹-

괴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들렸다.

“우아아아!”

정신없이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발목을 휘감은 나무 줄기.

그걸 확인하는 순간, 공포가 그를 삼켰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는 여자의 모습을 찾았다. 자신을 대신해 줄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늑대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여자 역시 다른 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어리석은 짐승... 엘드리안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사신의 목소리가 이러할까.

거꾸로 매달려서인지, 바짓가랑이에서 나온 뜨거운 액체가 몸통을 타고 얼굴까지 흘렀다.

“아... 아아...!”

남자는 그저 부들부들 몸을 떨 따름이었다.

쿵- 쿵-

엘드리안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거칠게 흔들린다. 줄기가 점점 그의 몸을 얽어맸다.

“만찬에 앞서... 간식을 좀 즐겨볼까...”

늑대의 피가 엘드리안의 다리로 스며든다. 순식간에 말라버린 늑대의 사체를 보며 남자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의 정신은 쉽게 그를 놔주지 않았다.

“트리언. 몇 명이나 잡았지?”

“우드스톡, 여기는 2명이다.”

“그런가. 나는 3명을 잡았다. 그럼 돌아가지.”

엘드리안의 목소리. 남자는 마을을 나온 모두가 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리언과 우드스톡은 길리언에게로 돌아왔다.

“길리언 님. 인간들을 잡아 왔습니다.”

“음, 잘 했네.”

트리언은 잡아 온 인간들을 한곳에 모아두었다.

우드스톡은 몸을 돌리며 정신을 잃은 프레이를 옮기려 했다.

“그 인간은 놔두어라.”

“무슨 일로...?”

“저 인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길리언의 말에 우드스톡은 줄기를 거두었다. 엘드리안의 수장이 하는 말이니, 우드스톡은 몸을 돌렸다.

“아이들을 데려오너라.”

길리언의 명에 우드스톡은 어린 엘드리안을 데리고 왔다. 묘목처럼 작은 크기부터 이제 막 사람 크기 정도로 자란 엘드리안도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잡아온 인간들이 애걸복걸한다. 그러나 트리언은 줄기로 만든 감옥을 유지할 따름이었다.

“나는, 나는 병이 들었소! 나를 먹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트리언은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는 맑은 피만을 골라낼 수 있으니.”

어린 엘드리안들이 다가오자 트리언은 감옥을 열었다. 얽혀있던 줄기가 열리며 입구가 생겼다.

“으음...”

프레이의 눈이 꿈틀거렸다. 길리언이 그를 바라보았다.

“인간, 정신이 드나 보군.”

“으윽...”

정신이 몽롱했다. 프레이는 몸을 얽매는 길리언의 줄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를... 왜... 살려뒀지...?”

“저리 가! 으아아아!”

프레이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어린 엘드리안이 사람들의 피를 빨아내고 있었다.

‘도대체...!’

끔찍한 광경이었다.

가느다란 줄기가 여럿이 눈과 코, 입과 귀 등 가리지 않고 들어갔다. 어린 엘드리안은 몸을 관통할 만큼 줄기를 뻗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아!”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 채웠다. 프레이는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길리언의 얼굴,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옹이구멍이 다가왔다.

“너는 무엇이지?”

“그게 무슨...!”

“나를 속이려 하지 마라. 너는 다르다.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프레이는 갑자기 이 괴물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길리언은 프레이의 표정을 읽어냈다.

“피는 마나를 담은 액체로다. 너의 피는 저 인간들과 다르다. 그 이질적인 마나는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무슨... 헛소리냐...!”

프레이가 이를 악물었다.

“효과가 없었어...! 그 약은... 실패작이었어! 속았다, 속은 거야!”

“괴물... 솔리스가 만든 괴물들...! 저주하리라... 죽어서도 저주를...”

사람들은 점차 메말라갔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이 마나다. 너의 마나는 저 인간들과 다르다. 너는 인간이 아닌 것이냐?”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지? 죽이려면 얼른 죽여라...!”

프레이는 소리쳤다. 어차피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그러면 더 빨리 부활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길리언은 그의 바람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네가 인간이 아니라면 곤란하다... 그럼 너는 솔리스 님을 믿느냐?”

“뭐...?”

프레이는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갑자기 신을 왜 거론하는가.

“이곳의 인간들은 모두 솔리스를 믿지 않는 인간이라 들었다. 그러나 너는 다른 인간과 다르니 물어보는 것이다.”

‘들었다고...?’

프레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솔리스를 믿는다면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가?”

“우리는 솔리스의 자손. 같은 자손을 죽일 이유가 있는가? 하긴, 인간들은 동족을 무참히 살해하곤 했지.”

프레이는 나무도 미칠 수 있는지 순간 고민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솔리스의 자손이라고? 솔리스는 태양과 생명의 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살육을 자행하는 네놈들이 솔리스의 자손이라고 말하는가?”

프레이의 말에 옹이구멍이 옆으로 벌어졌다.

‘웃는 건가...?’

마치 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에 웃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것은 너희 인간에게 배운 것이다.”

“뭐...?”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6%)]

[중급 검술 Lv5 (9%)]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8%)]

[초급 도축 Lv3 (62%)]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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