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살아있는 숲 -->
프레이는 세이렌의 뺨을 어루만졌다.
딱딱하다. 차갑다.
그녀의 피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왜...!?”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바이런이라고 알 턱이 없었다.
“어떡하지?! 세이렌도 거기로 옮겨야 하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바이런, 그런 그를 보며 프레이는 자신이라도 침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요...!”
보로프의 경우를 보면 원인은 엘드리안이 분명하다.
‘언제...?’
세이렌은 가장 먼저 마을로 들어왔다. 엘드리안이 자신을 습격하기 전이었으니 공격받았을 리 없다.
‘정말 전염이 되는 건가!? 하지만...’
보로프가 이미 감염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면, 자신과 바이런은 왜 무사하단 말인가.
‘유저라서...?’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상했다.
병과 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병에 면역이 있다면 독에 당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일단 할산을 불러올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는지 바이런은 급하게 문을 나섰다.
“알았어요!”
프레이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누군가는 그녀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지금 그녀를 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세이렌...”
그녀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다.
프레이는 마치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가장 먼저 보로프를 발견했으니...’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발견된 보로프,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가는 세이렌의 모습. 자신은 다른 엘드리안이 나타날까 경계를 했다.
‘그런 건가...!’
바이런은 약을 찾느라 보로프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가 약을 붓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접촉했다. 하지만 세이렌은 보로프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와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세이렌만 그런 건가...?’
벌컥-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비켜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할산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프레이는 옆으로 물러났다.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했으니.
“이걸로 확실해졌네요... 전염병이라는 게...”
할산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뒤에서 바이런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치료법은요?!”
“있으면 저 환자들이 왜 고통받고 있겠어요.”
날이 선 목소리에 바이런은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혹시 도움이 될까 자신의 추리를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확실히 살펴봐야겠어요...”
그녀는 유심히 세이렌의 몸을 살폈다. 세이렌의 갑옷을 벗겨내자 새하얀 피부결이 드러났다.
바이런은 흠칫 놀라며 눈을 돌렸다.
“정말 상처가 없군요. 상처로 인한 감염이 아니라면...”
할산은 다시 세이렌의 옷을 추슬렀다.
마스크로 가려져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포자...”
“네?”
할산이 중얼거리자 바이런이 물었다. 잘 들리지 않았기에, 크게 말해달라는 의미로.
“포자, 포자에요. 엘드리안의 포자가 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겁니다.”
“포자라고요?”
프레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자라는 단어는 버섯을 딸 때나 들었던 말이었기에.
“하지만... 지금까지 엘드리안의 포자가 이런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바이런이 물었다. 할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일반적인 엘드리안이라면 그렇겠죠.”
“일반적이라고요? 그럼 여기 엘드리안은 다릅... 아니, 확실히 다르지만...”
바이런은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는 상반된 모습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
“네. 하지만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치료제를...!?”
프레이는 바이런과 할산의 대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치료제라면 달랐다.
“어떻게 말입니까? 아니, 지금 만들 수 있나요?”
프레이는 도중에 질문을 바꾸었다.
할산이 어떤 방법으로 치료제를 만드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치료제의 유무니까.
“당장은... 어렵습니다. 아직 이론에 불과하고 일단 재료가...”
“뭐가 필요한 데요?”
프레이는 할산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잠깐... 아파요...!”
할산이 프레이를 밀어내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제야 할산에게서 손을 뗐다.
“아... 죄송합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할산은 마스크를 벗었다.
“이런 바보 같은 마스크는 이제 쓸 필요가 없군요.”
“네? 하지만... 포자라면서요?”
할산이 마스크를 벗자 바이런이 놀라 물었다.
저 마스크가 얼마나 포자를 막아 줄지는 모른다. 그래도 할산이 지금까지 감염이 안 됐다면 계속 쓰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아뇨. 여러분이 건강하니 쓸 필요가 없죠.”
할산은 고개를 저었다.
마스크를 벗으니 촉촉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습기가 차기 쉬웠던 것.
“만약 포자가 계속 발생했다면 여러분도 감염이 돼야겠죠. 환자를 돌보던 저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저희 모두 멀쩡하잖아요? 발병되면 포자가 더 나오지 않는 게 확실해요.”
그녀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필요한 게 뭡니까?”
프레이는 바이런과 할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포자야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치료제가 아닌가.
“엘드리안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할산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도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엘드리안을 잡아 오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바이런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네. 껍질이든 수액이든 잎이든, 부산물 중에 이 포자를 중화하는 물질이 있을 거예요.”
“그런...”
바이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세운 벽만큼이나 큰 엘드리안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벌컥-
바이런은 눈을 돌렸다. 프레이가 문을 열었다.
“인마! 어디 가!?”
“들었잖아요?”
“뭘?!”
“엘드리안을 잡아야 한다면서요.”
프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바이런은 할산과 프레이를, 그리고 세이렌을 번갈아 보았다.
“아니,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쉽지는 않겠지만...”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국 해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막는 건 바이런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이 급한 건 알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바이런과 프레이의 눈이 돌아갔다. 할산이 세이렌의 양어깨에 손을 넣어 그녀를 옮기려 했다.
“어차피 밤에 나가봐야 엘드리안을 찾기 어려울 거예요. 일단 내일, 마을 사람들과 같이 가도록 하세요.”
“하지만...”
“이런 밤중에 나가봐야 당신을 반기는 건 엘드리안이 아니라 산짐승들이에요. 보고만 있지 좀 말고 도와줘요.”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이런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 그녀 말이 맞아. 일단 침착하게 계획도 짜고 그래야지.”
바이런은 할산의 의견에 한 표를 보탰다.
지금 프레이는 세이렌을 구하겠다는 마음에 뒤도 안 보고 나서려 한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알았습니다.”
프레이는 할산을 도와 세이렌을 침실로 옮겼다. 다행히 전염병이 급하게 퍼지지 않는지 세이렌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당한 게 아니라서 감염 속도는 느린 것 같아요.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말이죠...”
할산이 그녀에게 모포를 덮어주며 말했다.
“일단 날이 밝는 대로 식량을 구하러 사람들이 나갈 겁니다. 그때 같이 가도록 해요.”
“식량이요?”
“네. 그 사람들이 엘드리안과 싸우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엘드리안과 싸울 마음이라면 그들이 더 안전해지겠죠.”
프레이는 할산을 내려보았다. 그녀는 당당했다.
‘나를 미끼로 쓰겠다는 건가...’
자신이 엘드리안과 싸우는 사이, 마을 사람들은 식량을 구해 마을로 돌아갈 것이다.
“잠깐, 마을 사람들은 같이 안 싸우는 겁니까?”
바이런이 입을 열었다. 치료제를 만든다면 그들도 혜택을 받을 텐데, 왜 싸우지 않는가?
“아쉽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할산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은 도망자들의 마을이에요. 같은 처지라 유대감은 있을지라도...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로프와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 바이런이 구했던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과연... 서로 필요로 인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건가...’
“식량을 구하러 가는 것도 순번제로 돌아가요. 여자라고 예외는 아니죠. 그나마 저는... 특별하기에 나가지 않지만...”
할산은 마을을 지키는 마법진을 관리한다. 그녀가 나갔다가 변을 당하면 마을의 전멸도 예정될 터.
“알겠습니다.”
“일단 세이렌의 병세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괜히 혼란만 커질 것 같으니... 일단 제 집을 쓰세요. 저는 보로프의 집을 쓰면 되니까.”
할산은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죠.”
그녀는 뒤돌아서서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바이런은 프레이를 돌아보며 성을 냈다.
“어떻게 할 셈이었던 거야?! 그렇게 무턱대고 나서면 해결이 되냐?”
“미안해요. 급한 마음에...”
프레이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바이런은 그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어휴... 큰일이네. 착한 일을 해도 돌아오는 게 이런 불운이라니. 현실고증 제대로네... 아무튼, 그래서 내일 갈 거야?”
“네. 가야죠.”
프레이는 씁쓸하게 말을 내뱉었다.
“저 아니면 엘드리안을 상대할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마을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 할 뿐, 엘드리안과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런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마, 내가 아무리 전투 스킬이 낮아도 그렇지. 나를 쏙 빼놔?”
“아뇨, 형은 할 일이 있잖아요.”
“뭐? 야, 다시 말해봐.”
“네?”
바이런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프레이는 어리둥절했다.
“할 일이 있다고요?”
“아니, 그거 말고 인마!”
“형...?”
“그래!”
바이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방금까지 인상을 찌푸린 모습은 연기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 드디어 이 자식이 날 형이라고 부르네.”
“아...”
프레이도 조금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형이라고 불렀던 것.
‘그만큼... 바이런에게 의지하고 있는 건가...’
호칭은 대상과의 거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이런은 바이런대로 기분이 좋았다. 줄곧 친근하게 다가가려 했지만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느껴 왔었다. 그런데 드디어 프레이가 자신을 편하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래, 형님이 할 일이 뭐냐? 내가 다 해줄게.”
과장되게 가슴을 두드리는 바이런의 모습에 프레이는 옅은 미소를 보였지만, 곧 세이렌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했다.
“세이렌을 지켜주세요.”
“음?”
바이런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는 슬쩍 밖을 살폈다.
그도 세이렌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다. 마을 사람들 중에 흑심을 품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도 남자였지만, 레이판에게 당한 이후로 남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이런이라면 믿을 수 있다.
“형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음? 그럼! 인마, 내가 눈 똑바로 뜨고 있을게!”
바이런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이만 눈 좀 붙여요.”
“그래. 밀린 일이나 처리해놔야겠다. 로그아웃하고 아침에 올게!”
바이런은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프레이는 침대에 누운 세이렌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옆에 누웠다.
* * *
이른 아침.
프레이와 4명의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모였다.
마을 사람들은 힐끗 프레이를 쳐다보았다.
“유저라면서...?”
“죽어도 살아나는 인간들 말이지...?”
“우리 대신에 엘드리안을 막아줄 거라던데...”
“하긴... 다시 살아나는 데 뭐가 무섭겠어...”
작게 이야기해도 다 들렸다. 프레이는 굳이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는 남자가 사람들에게 가방과 무기를 나누어 주었다. 사실 무기라고 보기도 힘든 물건이었다.
‘사냥용인가.’
그가 지급하는 건 활과 화살, 그리고 기다란 막대에 날붙이를 엮어 만든 조악한 창이 전부였다.
“그건 어디다 쓰는 겁니까?”
“이거 말이오? 열매를 따는 데 쓰는 거지.”
남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무의 열매를 창으로 쳐서 떨어뜨리나 보다.
“활은 쓸 줄 아시오?”
“예.”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활을 넘겼다.
“엘드리안에게는 박히지도 않으니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프레이를 포함해 활잡이는 3명, 창잡이는 2명이었다.
“그럼, 행운이 있기를.”
끼이익-
문이 열렸다.
프레이는 숲의 지리를 몰랐기에 선두에 창잡이 한 명이 길을 안내했다. 그 뒤에 프레이가 붙었다.
대화는 없었다.
그저 식량을 구하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여정이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는 이는 없었다.
숲이 천천히 그들을 삼켰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8%)]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