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살아있는 숲 -->
프레이 일행은 그저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침묵을 깬 건 바이런이었다.
“방금... 뭐지?”
“잘못 본 거 아니죠? 프레이, 너도 봤지?”
세이렌이 물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 마을은 문제투성이네요.”
인간을 사냥하는 엘드리안이 돌아다니는 숲, 신성제국으로부터 도망친 사람들, 그리고 나무처럼 변해가는 환자들까지.
“어떡하지...?”
세이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프레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시간은 있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였기에, 아직 하늘은 푸르렀다.
문제는 제때 숲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가였다. 엘드리안이 돌아다니는데 무작정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바이런, 엘드리안도 잠을 자나요?”
“응? 아... 아무래도 햇빛이 없는 시간대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더군. 그래서 사냥꾼들도 늦은 밤에 포획한다고 했어.”
바이런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프레이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햇볕은 따스하기만 했다.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 다들 여기 계셨군요.”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보로프였다.
“아...”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도 할산이 들어간 집을 바라보았다.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죠.”
보로프는 발걸음을 옮겼다. 프레이는 슬쩍 일행을 돌아보았다.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여기서 있어 봐야 멀뚱멀뚱하게 서 있기만 할 뿐이니.
* * *
“앉으십시오.”
할산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보로프 쪽의 집이 더 정리 정돈이 잘 되었다는 것과 서적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프레이는 의자에 앉았다. 보로프가 물병을 들고 왔다.
“대접할 게 마땅치 않네요.”
“아, 괜찮습니다.”
이미 사정을 어느 정도 든 터라 개의치 않았다. 프레이는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였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세이렌이 입을 열었다. 돌려서 물을 필요는 없었다.
보로프도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숲에서 발견된 사람들입니다.”
“숲이라면...?”
바이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로프는 물을 모두 따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식량을 구하러 간 사람들이죠. 그중에 운이 없는 사람들은... 저런 꼴이 되어 돌아옵니다.”
보로프가 인상을 찡그렸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릅니다. 할산 님이 만들어주신 영약으로 변화를 늦추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는 건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혹시 전염병일지도 몰라 격리를 해놓았습니다만...”
“엘드리안과 관계가 있습니까?”
바이런이 물었다.
마치 작은 엘드리안처럼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변한다. 당연히 엘드리안이 떠오를 수밖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하지만 저대로 놔둘 수는 없잖아요? 왜 마을로 돌아가지 않는 건가요?”
저 환자들이 신성제국으로 돌아가면, 사제들의 회복마법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세이렌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저 사람들은...”
보로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들에게 남은 건 막대한 세금과 노역, 노예로서의 삶이다.
“그게 목숨보다 중요해요?”
하지만 세이렌은 그의 말을 끊었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한때 죽고자 했던 세이렌이었다. 그러나 프레이를 만나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자신도 변했으니 이들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의 선택입니다.”
“뭐라고요?”
“저 병에 걸리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갑니다. 하지만 의식은 멀쩡합니다. 고통도 그대로죠.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보로프는 씁쓸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왜 돌아가지 않냐고요? 당신이 뭘 알죠? 그들은 노예로서 사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죽으려 하는 겁니다...!”
낮고 침울한 목소리. 보로프의 표정을 본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라고 이런 괴물이 돌아다니는 숲에서 살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보로프...”
프레이는 보로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몸을 부르르 떨던 보로프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을...”
보로프는 떨리는 손으로 물 잔을 잡았다.
“보로프...?”
바이런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로프의 안색이 너무나 창백했다.
쨍그랑-
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
“보로프!”
쿠당탕-
프레이가 급히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넘어지는 보로프를 잡을 수는 없었다. 급하게 프레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보로프? 보로프! 정신 차려요!”
“끄... 끄악...!”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프레이! 이 사람 손이...!”
세이렌이 놀라서 소리쳤다. 프레이가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천천히 손가락을 타고 퍼져나갔다.
“세이렌! 할산을 불러와요!”
“어!? 아, 알았어!”
놀람도 잠시, 세이렌은 프레이의 말에 따라 문을 나섰다.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보며 말했다.
“좀 잡아줘요! 옮겨야겠어요.”
“그, 그래. 근데 이거 전염병은 아니겠지?”
바이런이 웅얼거리며 보로프의 다리를 잡았다.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염병...’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이렌을 먼저 내보냈다.
바이런과 자신은 혹여나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부활하면 그만이니.
쿵-
바이런이 등으로 문을 열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그를 붙잡고 움직였다.
“보로프?”
“저, 저거...!”
마을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그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프레이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켜요!”
물론 그 말을 하기 전에 사람들은 멀찍이 비켜섰다. 그중에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끄... 끄윽...”
“보로프, 조금만 참아요.”
프레이는 보로프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 진땀이 배어 나왔다.
“프레이!”
세이렌의 목소리. 할산도 함께였다.
“세상에... 어서 이쪽으로!”
할산의 인도에 따라 환자들을 격리한 집까지 움직였다. 그녀는 마스크를 씌워주며 말했다.
“전염병인지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알았습니다.”
처음 써보는 마스크가 불편했다.
슈욱- 슈욱-
숨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할산이 문을 열어주었다. 프레이는 보로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으윽...”
“끄악...”
낮은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프레이는 참혹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진행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나눠놓은 것 같았다.
“여기로...”
할산이 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프레이와 바이런이 보로프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빠르게 보로프의 신발을 벗겨냈다.
“역시...”
발등까지 변화가 진행됐다.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가장 심한 사람은 목 밑이 전부 변해버렸다. 그는 아예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나가죠.”
할산의 말에 바이런이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프레이는 잠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집을 나왔다.
“푸하!”
바이런이 숨을 뱉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혹여나 전염될까 숨을 바짝 참고 있었던 것.
“잠시, 제 집으로 가시죠.”
할산은 마스크를 걸어 놓고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프레이 일행이 아닌 주변의 마을 사람들을 향했다.
프레이도 그녀를 따라 눈을 돌렸다. 마을 사람들이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할산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보로프를 만났을 때, 그는 멀쩡했나요?”
“그건...”
프레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걸 왜 묻는 걸까.
“바로 변이가 시작된 환자는 처음이에요. 어쩌면 원인을 확실히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할산이 빠르게 설명을 붙였다. 프레이는 보로프를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엘드리안이 원인이군요. 아마 여러분의 치료로 발병이 늦춰진 것 같습니다.”
“발병이요?”
“네. 다른 환자들도 엘드리안에게 당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것에 찔린 듯한 상처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할산은 말을 끝맺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레이...”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이런은 불안한 듯이 눈을 굴렸다.
“역시 지금이라도 떠나는 게 좋겠어.”
“해가 지는 대로 떠나세요.”
할산이 나오며 말하자, 바이런은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자기 딴에는 작게 말한 건데 그녀의 귀에 들어간 걸까.
“지금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밤을 노려야 해요.”
할산은 프레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그녀는 작은 약병을 내밀었다.
“이건...?”
“혹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둔 겁니다. 엘드리안에게서 몸을 숨기기 위한 시약이죠.”
연녹색의 액체가 담겨있었다. 할산은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험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효과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세이렌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할산도 인정하는 것 같았다.
“네... 효과가 없으면 목숨을 잃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마을을 떠나는 분들께만 드리려는 겁니다.”
엘드리안에게 발각되었을 경우, 시약이 효과가 있으면 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시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죽을 운명일 터.
“감사합니다.”
프레이 일행은 약병을 받았다. 할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해가 지기 전까지는 여기 있으세요. 마을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게 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저는 보로프의 집을 조사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
“알겠습니다.”
세이렌이 대답하기 전에 프레이가 말을 끊었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럼...”
할산이 문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세이렌이 불만어린 표정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왜 여기에 숨어야 하는 거야?”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바이런이 프레이의 의견을 거들었다.
지금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멀쩡한 것처럼 보이던 보로프가 사실은 병에 걸렸으니. 그들의 눈에는 프레이 일행도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환자로 보일 터였다.
전염병인지도 모르는데 마을을 돌아다닌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길지 누가 알겠는가?
“맞아요. 우리는 해가 지면 마을을 떠납니다. 그것만 생각해요.”
프레이는 세이렌을 다독였다. 그리고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밤에 나가야 하니 지금 미리 자두세요. 어떻게든 이 숲을 빠져나가야 하니까...”
“하긴, 그렇겠네. 미리 자두는 편도 나쁘지 않겠어.”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았어...”
* * *
프레이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땅히 잘 곳이 없었기에 의자에 앉아서 불편하게라도 잠을 청했다.
“으...”
낮게 앓는 소리가 그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으...”
“음...?”
바이런이 고개를 들었다. 잠을 방해받아서인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프레이도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으으...”
세이렌이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소리는 그녀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세이렌...?”
“흐암... 악몽이라도 꾸는 건가?”
바이런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프레이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새 해가 진 모양.
“세이렌. 일어나요.”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신음은 멈추지 않았다.
“세이렌...?”
“뭐야? 왜 그래?”
바이런도 이상을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프레이는 그녀의 어깨를 돌렸다.
“세이렌!”
그녀의 뺨에 아주 조그맣게, 그러나 확실하게 균열이 일어났다.
나무껍질처럼 굳어진 부분, 세이렌도 그들처럼 변하고 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8%)]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