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84화 (84/141)

<-- 19. 살아있는 숲 -->

프레이를 비롯한 일행들은 당황했다.

“마을이...!?”

“화재가 난 거야!?”

세이렌은 말을 잇지 못했고, 바이런은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닙니다! 저건 엘드리안을 막기 위한 불입니다! 서두르세요!”

보로프의 외침에 프레이는 다시 박차를 가했다. 말은 뜨거운 열기에 주저하는 듯했지만 이내 속도를 높였다.

일렁이는 불꽃 사이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서둘러!”

입구를 붙잡은 남자가 프레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크워어어-!

터져 나오는 흉성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불길에 막힌 엘드리안들이 입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 벽만큼이나 큰 크기의 나무들이 걸어온다. 그것도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다가오니 그 압박감이 대단했다.

“빨리...!”

다행히 엘드리안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덩치가 커서 그런 걸까.

세이렌이 가장 먼저 입구를 통과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태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거의 다 왔어...!’

얼굴이 화끈하다. 프레이는 치솟는 불길을 조심하며 방향을 조정했다.

“조심해요!”

그런데 갑자기 고개가 쑥하고 내려간다. 보로프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우웃...!”

다급하게 고삐를 붙잡았지만, 보로프는 작정한 듯이 프레이를 끌어당겼다. 덕분에 두 남자는 바닥을 굴러야 했다.

전신에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가만히 누워있을 상황은 아니었기에, 프레이는 몸을 일으켰다.

“무슨 짓...!”

프레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이 몸을 움찔거렸다. 원인은 말의 몸에 박혀있는 나무뿌리, 아니 그건 마치 날카로운 기둥 같았다.

꿀럭- 꿀럭-

괴상한 소리와 함께 나무뿌리가 맥동한다. 그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보로프가 프레이를 잡으며 소리쳤다.

“뭐해요! 뛰어요!”

프레이는 고개를 입구로 돌렸다. 막 바이런의 말이 통과한 시점이었다.

“프레이!”

말에서 내린 세이렌이 소리쳤다. 문을 붙잡은 남자는 나무뿌리를 보고 기겁한 표정이었다.

“지금 닫아야 해요!”

“안 돼요!”

남자와 세이렌이 실랑이를 벌인다. 보로프는 인상을 찡그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어서!”

다른 엘드리안이 다가온다. 엘드리안의 팔, 정확히 말하면 팔처럼 보이는 부분이 그를 향해 뻗어졌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있던 자리로 나무뿌리가 날아와 박혔다.

‘무슨...!’

활, 아니 엘드리안의 크기를 고려하면 공성 병기에 가까운 위력이었다. 정면으로 맞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리라.

프레이는 보로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조금만 더 기다려!”

보로프가 소리친다. 세이렌을 밀친 남자가 잔뜩 인상을 쓰며 문을 밀기 시작한다.

“불을 붙여!”

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들이 횃불을 아래로 던진다. 횃불이 떨어지며 입구 쪽에 불길이 치솟는다.

보로프는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통과했다. 그 뒤를 따르던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었다.

“프레이!”

세이렌이 소리쳤다. 불길이 프레이를 삼켰다.

크워어-!

사냥감을 놓쳤기 때문일까. 엘드리안은 마을 주변을 서성이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옷에 붙은 불똥을 털어냈다.

세이렌과 바이런이 다가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어디 다친... 앗! 뜨거!”

바이런이 프레이에게 손을 댔다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프레이는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만지지 마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고통은 없었다. 그가 가진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 덕분.

“다행이다...”

세이렌은 프레이가 미소를 짓자 안심이 되었다. 바이런은 손을 연신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프레이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벽 뒤편에 서서 굳은 얼굴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나 아이들은 건물 안에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뒤늦게 보로프가 와서 안부를 묻는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감사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프레이를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말과 함께 프레이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프레이의 감사에 보로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닙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엘드리안이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제야 집에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보로프, 그 사람들은?”

문을 닫으려던 남자였다. 그의 시선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내 은인이다. 안 그래도 할산 님께 데려가려고 했으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곤란한 건 알고 있지?”

프레이 일행은 그의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태도가 마치 자신들을 골칫덩어리로 보는 것 같았으니까.

보로프는 대답 없이 눈을 돌렸다. 남자 역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뭡니까? 태도가 아주...”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런 괴물들에게 시달리면 사람들이 예민해져서요...”

바이런은 성을 내려 했지만 곧 보로프가 저자세로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할산 님은 누굽니까?”

“아... 저희 마을의 촌장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생각하면 된다니...”

세이렌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촌장이면 촌장이지, 촌장이라고 생각하라는 건 무슨 말인가.

“할산 님은 자신이 이 마을을 책임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거든요.”

보로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어갔다. 프레이 일행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그를 따라갔다.

마을은 매우 단순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무를 베어 만든 통나무집이 대부분이었다.

특이한 점은 상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대장간은 있군.”

바이런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대장간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매우 초라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같은 처지니까요. 공동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보로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바이런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도망자들이니 화폐가 필요할 리는 없을 테고. 작은 공산주의 마을이라고 보면 될 것 같군.”

“공산주의가 뭐예요?”

세이렌이 돌아보며 물었다. 프레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몰라? 흠... 이런 곳처럼 생산물을 공유하는 사회를 말하죠. 그리고...”

바이런은 뒷말을 삼켰다.

‘이런 곳은 망하기 마련인데...’

공산주의 사회가 성공하는 역사는 없다.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라면 유지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바이런은 불안한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 역시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깁니다.”

보로프의 말에 모두 시선을 돌렸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집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촌장이면 조금 큰 데 살지 않나?’

프레이는 여러모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할산이라는 사람은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똑- 똑-

“할산 님. 보로프입니다.”

보로프가 노크와 함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보로프는 프레이 일행을 보며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보로프를 따라 들어가니 집안에는 각종 서적이 가득했다.

“아, 보로프. 무슨 일이죠? 마법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안쪽에서 걸어 나온 건 젊은 여성이었다. 보로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마법진은 정상적으로 작동됩니다. 새로 오신 분들이 있어 데려왔습니다.”

보로프는 한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할산은 그제야 프레이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최근에 새로 오시는 분들이 없었는데, 반갑습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할산이에요. 마법연구가입니다.”

프레이가 대표로 그녀의 악수를 받았다.

“저는 프레이. 이쪽은 바이런, 그리고 세이렌입니다.”

바이런과 세이렌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산은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시죠? 듣자 하니 길이 봉쇄됐다고 들었는데...”

프레이는 슬쩍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할산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대단하시네요. 아, 내 정신 좀 봐. 서서 손님 대접을 할 수는 없죠.”

그녀는 다급하게 책을 치우며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로프를 향해 손짓했다.

“손님들은 제가 대접할 테니 볼일 보세요.”

“예, 그럼...”

보로프가 나가고 할산이 자리를 가리켰다. 프레이 일행은 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얘기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물자가 부족하신 것 같더군요. 저희도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이런이 말했다. 아무래도 입구를 담당하던 남자의 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할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네, 죄송하지만... 보셨다시피 엘드리안이 사냥을 하는 통에 식량 수급이 어렵습니다. 원래는 농사로 식량을 충당했었는데... 엘드리안이 주변에 출몰하면서 일궈낸 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어요.”

할산은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농사는 불가능해졌고, 잡초들을 태우고 있긴 하지만 언제 다시 농사를 할 수 있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숲으로 가서 열매나 숲 짐승들을 사냥해야 하는데... 엘드리안이 사람들을 사냥하니 목숨을 걸어야 하죠.”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로프는 사냥을 나갔다가 당한 것이 분명했다.

“마법진 이야기를 하시던데... 마법도 쓸 줄 아세요?”

세이렌이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성에는 여성 마법사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법연구가에요. 차이점이 뭐냐고 말한다면... 저는 마나운용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마법의 혜택이 돌아갔으면 해서요.”

할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슬픔이 배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저는 엘레타스 대륙 출신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마법을 쓸 줄 몰라요. 아무래도 제게는 마법의 재능이 없던 것 같아요.”

“아...”

프레이는 짧게 탄식했다. 세이렌은 괜한 질문을 꺼낸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바이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엘레타스 대륙 출신인 그녀가 굳이 다른 대륙의, 그것도 도망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올 이유가 있을까?

“뭐... 현실적인 이유죠.”

할산은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

“마법을 연구하는 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거든요. 이름 좀 날린 마법사들이야 후원자들이 줄을 서 있겠지만... 마법도 못 쓰는 제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았어요.”

결국 돈 문제였다.

“엘드리안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법재료거든요. 근데 돈이 없으니... 살 수는 없고... 여기, 살아있는 숲에 엘드리안이 거주한다는 말을 듣고 직접 엘드리안에게 부탁하려고 왔었죠.”

“부탁이라고요?”

“네. 잎이나 가지 같은 거라면 조금 나눠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엘드리안이 저렇게 난폭할 줄이야...”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급하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법진을 마을 주변에 설치했어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죠.”

“그렇군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할산이 마을을 살린 셈이었다.

“프레이... 그러면 여기 빨리 벗어나야겠는데?”

바이런이 속삭였다. 프레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의 처지가 딱하긴 했지만, 그들로서는 엘드리안을 처리할 수 없었다.

‘내 특성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엘드리안이 얼마나 있는 줄 알고 사냥에 나서겠는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는 법.

“그럼 지금은 뭘 연구하고 계시는데요?”

바이런과 프레이가 쑥덕거리는 사이 세이렌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 그건...”

할산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

“할, 할산 님!”

문이 열리며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남자 하나가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잠시 실례할게요!”

할산이 다급하게 일어섰다.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남자를 따라갔다.

“프레이...!”

“네!”

바이런이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미 일어서고 있었다.

“어디 가?”

남자들이 할산을 따라 나가자 세이렌이 뒤따라 나왔다. 할산은 마을 구석에 있는 집 앞에서 멈췄다.

“왜 따라오셨어요?!”

“아, 무슨 일인가 해서...”

바이런이 얼버무렸다. 할산은 상관없다는 듯 문 옆에 걸린 마스크를 잡았다.

마치 새의 부리처럼 주둥이가 튀어나온 마스크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바이런이 중얼거렸다. 할산은 마스크를 쓴 채로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녀의 말에 프레이 일행은 뒤로 물러섰다. 문이 열리고 할산이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어떻게...?”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광경에 세이렌과 바이런이 경악했다.

프레이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피부가 마치 나무껍질처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탁-

할산은 빠르게 문을 닫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8 (8%)]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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