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83화 (83/141)

<-- 19. 살아있는 숲 -->

프레이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기에 바이런의 말을 잘 듣지 못했다.

“그게 무슨...! 아무튼 일단 이 사람부터 좀 치료해요!”

“아, 맞네, 맞아!”

세이렌의 호통에 바이런이 놀라서 다가왔다. 그는 다급하게 가방을 뒤졌다.

“이거, 이거면 될 거야.”

세이렌은 바이렌이 건네준 빨간 약병을 낚아챘다. 그녀는 다급하게 뚜껑을 열어 상처에 들이부었다.

치이익-

마치 뜨거운 판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연기와 함께 물약이 사라진다. 세이렌이 놀라서 뭐라고 하려는 찰나, 상처 부위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으... 으으으...!”

정신을 잃은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쳤다. 바이런은 그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세이렌! 다리, 다리 잡아요!”

“알았어요!”

부들부들 떠는 무릎을 잡고 누르며 세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으! 끄윽...!”

게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남자, 세이렌은 불안한 눈으로 바이런을 바라보았다. 바이런은 진땀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원래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니까...”

그러나 바이런도 그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세이렌은 더욱 불안해졌다.

프레이는 남자가 내지르는 앓는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자, 검을 내렸다. 돌아보니 남자의 발작은 점차 가라앉았다.

“괜찮아요?”

“어... 적어도 목숨은 구한 것 같다.”

바이런은 떨림이 잦아들자 땀을 훔쳐내며 뒤로 주저앉았다. 세이렌은 의식을 잃은 남자의 몸을 살피며 다른 상처는 없는지 확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퍼렇게 질린 남자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자 세이렌은 안심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답은 남자가 일어나야만 알 수 있으리라.

“그보다... 엘드리안이라고요?”

프레이가 재차 확인하듯 바이런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움직이는 나무를 따로 알고 있지 않다면...”

“하지만... 엘드리안은 평화적이라면서요?”

세이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이런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튼... 안전한 곳이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제가 불침번을 설 테니까, 다른 분들은 눈 좀 붙이세요.”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이런과 세이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피곤하면 교대해.”

“괜찮아요. 유저는 쉽게 지치지 않으니까.”

세이렌의 걱정 어린 말에 프레이는 옅은 미소로 답했다.

* * *

“그럼, 편안하게 이용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제트람은 마법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좁은 방안에 홀로 남은 제트람은 수정구 앞에 앉았다.

이윽고 수정구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며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렌 님. 어떻게 됐습니까?”

떠오른 사람은 바로 글렌. 제트람의 부탁으로 먼저 플라모르 대륙에 도착해 있던 그였다. 글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낌새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렇군요.”

제트람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이요?”

“예. 제트람 경께서 수배지를 붙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트람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교께 직접 부탁한 일이 아니었던가.

“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지금 도착한 도시에는 수배지가 없습니다.”

글렌의 말에 제트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배지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대주교의 명이라고 해도 수배지가 단번에 전 대륙으로 퍼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벽 곳곳에 뭔가가 뜯긴 흔적이 있었습니다.”

“수배지가 뜯겼다...?”

제트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글렌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곧바로 교단에 문의하니 교단 쪽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쪽에서 다시 수배지를 붙였습니다만... 교단은 빈민들이 종이를 뜯어갔다고 판단하더군요.”

“음...”

“그런데 유독 수배지만 뜯어가는 빈민이 있을까요?”

“확실히 수상하군요. 지금 계시는 도시가 어디라고 하셨죠?”

제트람은 벽면에 붙은 지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페트렘입니다. 수도 동쪽에...”

“아아, 알겠습니다.”

제트람은 곧 도시의 위치를 찾았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놈은 마법사... 만약 엘레타스로 놈이 넘어간다면...’

그의 손가락이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엘레타스로 넘어가는 항구 도시는 두 곳.

‘웨이버와 시스트...’

웨이버는 남동쪽, 시스트는 북동쪽에 있었다. 만약 자신이 범인이라면 어디로 도망을 갈까?

“제트람 경?”

글렌의 목소리에 제트람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실례했습니다. 도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글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저 조용히 숨어 살며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지만, 제트람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몰랐다.

“시스트와 웨이버...”

제트람이 중얼거렸다. 아일렘은 수도 남쪽에 위치한 도시, 그는 곧 결정을 내렸다.

“글렌 님, 시스트로 향해주십시오. 저는 웨이버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상으로 글렌은 시스트로, 자신은 웨이버로 가는 편이 좋았다. 이동 시간은 최대한 줄여야 놈을 잡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시스트.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연락 때 뵙겠습니다.”

수정구가 천천히 빛을 잃었다. 제트람은 마법 지부를 나왔다.

* * *

타닥- 타닥-

모닥불의 빛이 약해지자 프레이는 마른 나뭇가지를 더 밀어 넣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하늘은 점차 푸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우... 으...”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과 바이런은 곤히 잠든 상황이었고 모닥불 근처에 있던 남자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우... 우웃...”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간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드십니까?”

“여기는...”

그는 아직 몽롱한지 눈에 초점이 없었다. 프레이는 일어나려는 그를 부축해 허리를 세워주었다.

“감사합니다...”

기운 빠지는 목소리. 프레이는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죄송하지만... 물을...”

프레이는 바이런 곁에 놓인 물병을 건넸다.

벌컥- 벌컥-

그가 물을 쉬지 않고 마셨다. 프레이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아... 살 것 같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기운을 차린 것 같지만 여전히 피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프레이는 빈 물병을 다시 돌려놓고 물었다. 남자의 안색은 더욱 안 좋아졌다.

“제 실수입니다. 숲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프레이와 다른 일행들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쩐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교단 쪽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저희는 유저입니다. 엘레타스 대륙으로 가기 위해 웨이버로 가는 길입니다.”

프레이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의 눈에서 경계심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웨이버... 꽤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군요. 어지간히 급하셨나 봅니다.”

“네? 아... 뭐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남자는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아,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저는 보로프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저는 프레이, 저쪽은 바이런. 그리고 세이렌입니다.”

“프레이, 좋은 어감이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동할 수 있을까요.”

보로프는 살짝 인상을 구기며 일어섰다. 아무래도 상처가 완벽하게 완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네?”

“불이 꺼지면 엘드리안이 찾아올 테니까요. 그 전에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엘드리안이요?”

프레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바이런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네...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들어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엘드리안은 다릅니다.”

보로프의 눈이 흔들렸다. 타닥거리던 모닥불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다르다고요?”

“예, 여기 엘드리안은 사람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사냥...?”

프레이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 사이 바이런과 세이렌이 눈을 떴다.

“아... 잘 잤어요?”

“후아암... 어휴, 노숙은 해도 해도 익숙하지가 않네. 아, 좀 괜찮아졌나 보네요.”

바이런이 엉거주춤 일어나다가 보로프를 보고 말했다. 세이렌도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가 보로프를 보고 일어났다.

“예,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마을로 가시죠. 다른 사람들이 저를 걱정하고 있을 것 같군요. 그리고 거기가 더 안전할 겁니다.”

보로프는 다른 일행을 다독였다. 그는 프레이에게 했던 설명을 빠르게 마쳤다.

사락- 사락-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세이렌과 바이런은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엘드리안이 사냥을 해? 사냥당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군요. 일단 마을로 가보죠.”

엘드리안이 사람을 사냥하는 숲. 안전한 곳을 찾는 게 좋았다. 자신들도 보로프와 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이런은 묶어두었던 말을 풀었다.

“제 말에 타세요.”

프레이는 손을 내밀었다. 보로프는 그의 손을 잡아 뒤에 걸터앉았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연기를 따라가세요.”

보로프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가려져 있지만, 하늘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자고.”

숲은 세 마리의 말과 네 명의 사람들을 더 깊이 삼켰다.

* * *

“왜 이런 곳에 사시는 거예요?”

세이렌이 고요를 깨뜨렸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보로프였다.

“우리라고 이런 곳에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교단으로부터 도망치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망을 쳐요?”

“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서...”

보로프가 뒷말을 흐렸다.

신성제국의 국민이면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 전사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예.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대신 부과되는 세금이 어마어마합니다.”

“세금을요?”

세이렌이 놀라 물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금을 매긴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명목이죠. 그만큼 교단에 더 많은 세금을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보로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는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세금을 내지 못하면 부역을 해야 합니다. 동상과 석상을 세우고, 거대한 교회를 짓죠.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을 위해서 일을 하라는 겁니다.”

“허... 난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다 신실한 신도들인 줄 알았는데?”

바이런은 놀라서 말했다. 보로프는 냉소를 지었다.

“신이 자비롭다고 교단도 자비롭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튼... 부역과 세금을 피해 이곳으로 사람들이 도망쳤습니다. 저를 비롯해 말이죠. 아무리 교단이라도 엘드리안은 쉽게 건드리지 못하니까요.”

“엘드리안의 보호를 받는 셈이군요?”

“예...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라, 숲의 일부분을 태우고 농사를 시작했어요. 물론 엘드리안의 영역 밖에서 말입니다.”

이야기하던 보로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엘드리안이 갑자기 사람들을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단 쪽도 손을 못 대는지 이쪽 길을 아예 폐쇄했죠. 그래서 여러분이 온 게 이상하면서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폐쇄요?”

세이렌이 놀라서 물었다. 문이 닫혀 있었던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막아놓은 이유가 있었군...”

바이런이 세이렌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아, 다 왔군요.”

숲의 한 가운데, 나무를 세워 만든 마을이 보였다. 마을을 중심으로 일대 근처는 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밭이 모두 망가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엘드리안이 밭을 모두 헤집어 뒀습니다. 덕분에 식량을 구하려면 숲으로 들어가야 하죠...”

보로프는 씁쓸하게 말했다.

“게다가 초지가 점점 마을로 확장해서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몇몇 사람들이 밝은 아침임에도 횃불을 들고 이리저리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중 가까운 한 사람이 프레이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보로프! 살아 있었군!”

“예, 이분들 덕분에...”

보로프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다행이네... 우리는 모두 자네가 죽은 줄로만...”

“끄아아아악!”

다가온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찢어지는 비명이 공기를 갈랐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마치 날카로운 창에 꿰뚫린 것처럼 예리한 나무뿌리에 들려진 남자. 그 뒤에는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나무가 있었다.

“에, 엘드리안...!”

보로프와 인사를 나누던 남자가 경악하며 마을로 달렸다.

“뛰어요!”

“뭐야!? 뭐!?”

보로프가 소리치자 바이런이 당황했다. 세이렌도 마찬가지였다.

보로프는 프레이가 잡고 있던 고삐를 낚아챘다.

“잠깐...!”

히힝-!

말이 소리를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못 들어갑니다!”

“뭐라고요?”

세이렌과 바이런이 프레이의 뒤를 따랐다. 일단 가만히 있을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잠깐! 잠깐만...!”

보로프와 인사를 나누던 남자가 뒤처졌다. 바이런이 그의 손을 낚아챘다.

“꽉 잡아요!”

“우아아악!”

남자는 비명을 질렀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숲속에서 나타난 엘드리안이 육중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마을 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

보로프의 재촉에 프레이는 박차를 가했다. 곧 마을 벽 위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화르르륵-

사람들이 횃불을 던졌다. 떨어진 횃불이 크게 불타올랐다.

마을 벽을 둘러싸고 불길이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7 (79%)]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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