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
프레이와 바이런은 유심히 지도를 살폈다. 그러나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가장 빠른 길은 역시 여기로군요.”
“그렇지, ‘살아있는 숲’을 통해서 웨이버까지 가는 게 가장 빨라. 음... 마차까지는 필요 없겠고, 말을 빌려서 가면 사나흘 정도 가면 되겠는데?”
바이런은 빠르게 셈을 마쳤다. 비용은 아르갈에게 받은 진주를 처분하면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근데, 이 ‘살아있는 숲’은 뭐 하는 곳이에요?”
세이렌이 슬쩍 끼어들었다. 물론 시선은 바이런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가 특별히 그를 지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익숙한지 바이런도 기억을 더듬었다.
“엘드리안이 거주하는 곳인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예전에 오가면서 상인들한테 들은 이야기가 전부야.”
“엘드리안?”
프레이가 눈을 껌뻑였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었다.
“아, 그... 프레이 정신 차릴 때 썼던...”
세이렌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되살렸다.
유령선 레이드 당시 프레이가 갑작스럽게 정신을 못 차리자 바이런이 그의 얼굴에 발랐던 진액, 그것의 이름이 어린 엘드리안의 잎이었다.
“아인종 중의 하나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나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무척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라서 신성제국도 쉽사리 건드리지 않으니까.”
“건드린다고요?”
프레이의 물음에 바이런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음... 아무래도 인간이 세운 제국이니까. 태양의 신 솔리스가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고는 해도, 인간 사제들은 다른 아인종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해.”
바이런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기, 엘드리안은 쉽게 건드리지 못하지. 아무래도 인간보다 태양이 절실한 존재들이니까. 오히려 인간보다 솔리스의 자식에 가까운 게 엘드리안이야. 그런데 솔리스의 사제들이 엘드리안을 공격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긴... 그건 좀 이상하겠네요.”
세이렌이 수긍했다.
“위험하지는 않나요?”
“응?”
프레이의 질문에 바이런이 고개를 돌렸다. 곧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말에 집중 안 하냐?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니까?”
“아뇨, 숲 말이에요. 숲에 엘드리안만 살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프레이는 바이런이 오해하자 말을 덧붙였다. 정글에서 거미와 사투를 벌인 게 눈에 선명하다. 살아있는 숲이라고 다를까?
“아... 짐승들이야 당연히 있겠지. 그런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우리가 숲 깊이 들어갈 것도 아니고.”
“그럼 여기를 거쳐서 웨이버로, 웨이버에서 배를 타고 엘레타스 대륙에 도착한 다음 마나홀드 대학에 가면 되는 거죠?”
바이런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세이렌이 다시금 경로를 확인했다.
“그렇죠. 웨이버까지 길어야 나흘, 배 타고 하루면 도착할 겁니다.”
“좋아요. 그럼 바로 출발하죠.”
계획이 확정된 이상 늦장 부릴 이유는 없었다. 세이렌이 곧바로 일어서자 프레이와 바이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전에...”
프레이가 말을 꺼냈다. 세이렌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뭐 잊은 거 있어?”
“아뇨. 그건 아니지만, 필요한 건 있어요.”
“필요한 거?”
“네. 우리가 무사히 마나홀드 대학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들이 뭘 믿고 우리에게 그...”
프레이는 엘타란의 입에서 나온 아이템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켈라인의 오브.”
바이런이 기억의 빈틈을 채워주었다. 프레이는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그 오브를 그냥 주겠어요?”
“하긴, 네 말이 맞네. 우리가 무턱대고 가서 ‘오브 좀 주십쇼.’ 하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져가시죠.’ 하지는 않을 거 아냐.”
바이런이 동감한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세이렌은 살짝 짜증이 난 듯 머리를 헝클었다.
“그럼 어떡하지?”
“적어도 우리가 그 오브를 갖고 도망갈 놈들이 아니라고 증명해야지. 황태자라면 확실한 보증이 될 테지만...”
바이런이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만으로는 황태자라고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현장에서 입증하면 되지 않을까요?”
세이렌이 해결됐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최악을 대비해야죠. 세이렌도 신성제국에 도착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잖아요?”
“응... 그렇지...”
프레이가 맞는 말을 했기에 세이렌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생각만 믿고 따라와 준 프레이에게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너무 기죽지 말아요. 그러라고 한 소리는 아니니까. 아무튼,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뭔가 방법이 있어?”
바이런과 세이렌이 눈을 빛냈다.
자신들이 사기꾼이 아니며, 물건을 들고 도망갈 도둑도 아니라고 증명할 만한 방법이 그들에게 있단 말인가?
“네.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향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프레이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세이렌과 바이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확인한 건 둘다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뭔데?”
“그 성기사가 대주교에게 받았다는 서신이요. 그걸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요?”
“아...!”
세이렌이 눈을 크게 떴다.
신성제국의 대주교가 직접 쓴 서신이라면 수상한 의도가 없다는 걸 충분히 증명할 터였다.
“그걸 그 성기사가 줄까?”
“안 줄 이유가 있을까요?”
프레이가 되묻자 바이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모르지.”
“그렇죠. 그러니 가봐야 알죠.”
“좋아, 얼른 가보자. 엘타란이라는 이름이었어.”
* * *
“대주교님의 서신을...?”
엘타란은 갑작스레 나타나 서신을 요구하는 프레이에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프레이의 설명을 들은 그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그럴 수 있기는 합니다만...”
“대주교님의 서신이 있다면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프레이가 다시금 확신했다. 엘타란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똑- 똑-
그사이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엘타란 님, 병사들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음? 아아... 알겠네.”
엘타란은 자신을 찾는 병사의 말에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는 프레이에게 헤리엇의 서신을 내밀었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세이렌이라는 여자가 황태자라고 한다면, 서신을 내어주지 않았을 경우 문제가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거짓을 말한다면, 이 서신을 가져가야 한들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할 테니까.
눈앞의 이들이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이상, 대주교의 서신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어느 경우라도 서신을 주지 않는 쪽보다 주는 편이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작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는 서신을 곱게 접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엘타란은 빠르게 장비를 착용했다.
“그러면 바로 출발하십니까?”
“네? 아, 그럴 예정입니다.”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프레이는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음... 아마도 웨이버가 가장 가깝겠군요.”
엘타란은 갑옷을 입으며 자신이 아는 최적의 경로를 떠올렸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프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그대의 앞길에 햇살이 비치기를.”
엘타란은 인사를 마치고 빠르게 문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병사가 그를 보좌했다.
혼자 방에 덩그러니 남은 프레이는 곧 그곳을 빠져나갔다.
병사를 따라가던 엘타란은 깜빡했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가 있던 방안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음... 괜찮겠지...’
“엘타란 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아니다.”
엘타란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살아있는 숲으로 가지는 않을 테니까.’
경비병이 막을 테니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 * *
푸르륵-
투레질을 하는 말 3마리가 발을 구르고 있었다. 말을 잡고 있는 바이런은 세이렌을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예?”
바이런은 세이렌의 시선을 따라갔다.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며 남쪽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네요. 훈련이라도 하나?”
“그런 걸까요?”
다시 빈자리를 채우는 침묵.
바이런은 짧은 침묵에도 괴로워했다. 사회생활을 겪어본 그로서는 이런 침묵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화 주제를 고르고 있을 때, 다행히 프레이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프레이!”
세이렌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바이런과 단둘이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기에, 바이런은 대강 프레이를 향한 세이렌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여간, 신기한 놈이라니까.’
어떻게 황족에게 환심을 살 수 있을까. 바이런은 말을 진정시키며 프레이를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별 고민 없이 주던데요.”
프레이가 옅은 미소와 함께 서신을 꺼냈다. 세이렌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럼 이제 가면 되겠네.”
“네, 출발하죠.”
바이런이 프레이에게 고삐 하나를 내주었다.
“건강한 놈들로 골랐으니까 걱정은 말아.”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프레이가 엘타란을 만나는 사이 세이렌과 바이런은 여행 준비를 맡았다.
바이런의 수완을 알고 있기에 믿을 수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말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이쪽 마구간은 무슨 일인지 영업을 안 하더라고.”
“그래요?”
동쪽 출구에 위치한 마구간은 굳게 문을 닫았다. 덕분에 바이런은 북쪽까지 갔다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일행이 말에 올라타려 할 때였다. 출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맥클란! 너 왜 여기 있어!?”
“예? 오늘은 제가 동쪽 담당하는 날 아닙니까?”
“이 멍청아! 당번 표 제대로 확인 안 해? 지금 엘타란 님께서 오셨는데 네가 없어서 출발을 못 했잖아!”
“예?!”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사색이 된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원래 당번한테는 내가 얘기하러 갈 테니까! 너는 얼른 움직여!”
“하, 하지만...!”
“빨리!”
병사들이 흩어졌다. 준비를 마친 프레이 일행은 출구로 향했다.
“어라... 문을 닫아 놓고 간 모양인데?”
바이런이 멀어져가는 병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쪽 출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쩌죠?”
“기다려야 하나?”
“금방 올까요?”
“말 들어보니까 담당하는 병사가 금방 올 것 같기는...”
끼기기긱-
프레이와 바이런을 말을 나누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말에서 내린 세이렌이 문을 밀어, 말이 들어갈 만한 틈을 만들어 놓았다.
탁탁 손을 털어낸 세이렌이 고개를 돌렸다.
“왜?”
“어... 그냥 가도 되나요?”
“기다릴 이유는 또 뭐야? 병사들이 열어주면 문이 더 잘 열리기라도 해?”
세이렌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유유히 자신이 열어놓은 틈으로 빠져나갔다.
“먼저 간다!”
바이런은 프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황족이라 그런지 거침없네.”
그도 세이렌의 뒤를 따랐다. 프레이는 웃으며 출구로 나왔다.
세이렌의 뒷모습이 보였다.
‘변했네.’
이전에는 시키는 일만 하던 그녀였다. 꼭두각시 황태자로서 연기를 하던 때에는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세이렌은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황태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자,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 하게 되었으니까.
“이랴!”
프레이는 속도를 내어 세이렌과 바이런을 따라잡았다.
* * *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쪽 출구에 도착한 병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왜 열려 있어...?”
기껏해야 말 하나가 지나갈 만한 틈이었지만, 동쪽 출구가 열려있다는 사실은 그를 당혹케했다.
‘맥클란...! 이 병신같은...!’
그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이미 봉쇄되었던 출구라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없는 사람들도 출구 쪽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끼이이익-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속삭였다.
‘아무도 안 나간 거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만 입 다물고 있다면 아무 일도 없던 게 된다. 굳이 문제를 만들어서 무엇하겠는가.
설령 이쪽으로 나간 자가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업보였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21%)]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