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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과 바이런의 시선이 프레이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도, 그도 프레이가 필요했다. 바이런은 전투 능력이 부족했기에 세이렌을 도와줄 수 없었고, 세이렌 역시 바이런보다는 프레이를 믿었으니까.
프레이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좋습니다.”
프레이의 대답에 세이렌과 바이런이 활짝 웃었다.
“다만...”
프레이가 말을 덧붙였다. 다른 둘의 웃음이 어색해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모두가 대답을 기다렸다. 프레이는 씁쓸하게 말을 뱉었다.
“제가 항상 여러분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프레이는 인정했다. 자신은 이들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죽은 후에 얻은 새로운 인연. 세이렌과 바이런은 그에게 더없이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복수가 그의 최우선목표지만, 그들을 굳이 저버리면서까지 추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프레이는 생각 끝에 말을 뱉었다.
잠시 시간이 정지한 듯 멈췄던 둘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또 뭐라고... 인마. 나도 널 그렇게 구속할 마음은 없어.”
바이런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프레이에게 한 것은 부탁이지 강요가 아니니까. 만약 프레이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조금 아쉽긴 해도 같이 다른 일을 알아봤을 것이다.
“비록 내가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네가 날 보러 오면 되잖아?”
세이렌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프레이가 곁에 머물러 준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심이니까.
“그러면 결정된 거다? 어디 보자... 엘레타스 대륙으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이...”
바이런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톤을 높였다.
“텔레포트는 돈이 너무 많이 들겠죠?”
“어휴, 말도 마요. 대륙 간 텔레포트 가격이 얼만데...”
세이렌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프레이가 마음을 돌리기 전에 얼른 출발하고 싶었다.
프레이는 옅은 미소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제국의 후예, 수도 팔라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높은 성이 세워져 있었다.
성문이 열리고 호화스러운 마차가 들어갔다.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성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건 알현실. 그러나 황좌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언젠가 저곳에...’
남자, 베르핀 디케일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그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그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알현실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황제의 침실, 베르핀은 몸가짐을 바로 했다.
비록 성의 주인은 침대에서 몸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황제는 살아있었으니까.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 앞을 지키는 친위병이 입을 열었다.
“전하, 베르핀 대공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호위병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들라 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들 정도의 목소리였다. 친위병은 고개를 숙이며 문 옆으로 비켜섰다.
베르핀은 문을 천천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쇠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인지 침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인사치레는 되었다. 무슨 일인가...”
베르핀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려 했지만 황제는 그의 말을 끊었다. 베르핀은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허리를 펴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전하의 건강이 염려되어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대로 건강이 염려되어 찾아왔다. 데일 또는 데일을 대체할 허수아비를 찾기 전까지는 황제가 목숨을 부지해야 했으니까.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움직일 힘도 없다는 뜻일까.
‘어쩌면... 승계가 더 빨리 이뤄질지도 모르겠군...’
현재 데일이 실종된 상황이니 만약 급작스럽게 승계가 진행된다면 신성제국의 마틴을 불러오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 2황태자 파에 밀려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게 될 터였다.
물론 반란으로 황좌를 차지하는 방법도 있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우조스 경계 지역에 몰려 있는 상황이니 용병들과 사병들을 동원하면 황좌를 차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야 얻게 되는 건 반쪽짜리 국가에 불과하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반동분자들이 사사건건 방해할 테고, 제국의 후예는 내전에 돌입할 것이다.
외부와 내부의 적을 신경 쓰면서까지 얻은 황좌가 가치가 있을까? 베르핀이 원하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데일은... 잘 지내는가?”
베르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직까지는 데일의 실종 사실을 통제하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였다. 곧 황제도 알게 될 터였다.
“예, 국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기에 친위대와 함께 여러 곳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베르핀은 망설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지금은 황제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니었다.
“알았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보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히 쉬시기를...”
베르핀은 조용히 침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 맞은편에서 오는 남녀를 발견했다.
“아, 클렘 전하, 그리고 헤피르 님.”
제 2 왕비 클렘 라이언, 그리고 그의 남동생 헤피르 라이언이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베르핀 대공, 인사도 없이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헤피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황제의 침실 앞이었기에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클렘 전하께서 아무 말이 없으신데, 왜 그대가 성을 내십니까?”
베르핀은 꼿꼿이 머리를 세우며 대답했다. 대공은 공작보다 높은 직위였기에.
그의 눈과 마주친 클렘은 옆으로 눈을 돌렸다.
“괜히 소란 일으키지 말자... 황제 전하의 침실 앞이니...”
“하지만 누님...!”
헤피르가 뭐라고 말을 덧붙이려다 굳게 입을 다물었다. 베르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멀어지자 헤피르가 토해내듯 중얼거렸다.
“건방진 놈...”
“헤피르...!”
클렘은 헤피르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라. 데일의 실종 사실이 황제께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야...”
데일의 실종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황제께 직접 그 사실을 이야기할 용기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구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흘러 들어갔는지 베르핀이 눈치챈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기에.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데일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황제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허나 그 아이가 대체 왜...”
클렘의 표정은 곧 어두워졌다. 헤피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을 돌렸다.
“헤피르?”
“누님, 저 대신 전하께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저는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클렘이 대답하기도 전에 헤피르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자신이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는 방안을 샅샅이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품속에서 통신용 구슬을 꺼냈다. 손 위에 올린 구슬은 푸르스름한 빛을 냈다. 곧 구슬에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있기를.”
남자는 상대를 확인하고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헤피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 유저는?”
“현재 보호 중입니다. 그런데 제트람 경이 그자를 집요하게 추적 중입니다. 교단 쪽에도 수배를 요청했는지 수배서가 붙고 있습니다.”
“음...”
헤피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클렘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데일의 습격을 명령한 장본인이었다.
마틴 도프람을 정식 승계자로 추대하려는 정통파의 리더가 바로 그였다.
“일단 그 유저는 원하는 대로 엘레타스 대륙으로 보내게. 제트람 경이 그를 쫓아야 베르핀을 견제하기가 쉬워지네.”
제트람은 황실의 친위대장을 맡을 정도로 무예가 출중하다. 그런 인물이 베르핀의 밑에서 일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위협요소는 가능한 배제하는 편이 좋았다.
다행히 그가 크젤이라는 유저를 뒤쫓고 있었기에 베르핀의 전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마틴이 황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가 외부에 머무는 편이 정통파에게는 좋으리라.
헤피르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통신을 마친 정통파 대장은 다른 대원들에게 헤피르의 명을 전했다.
“자네들은 수배서를 보이는 대로 찢어버리게.”
“알겠습니다.”
일련의 무리들이 지하실을 벗어났다. 그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트람 경의 위치를 바로 보고하도록. 그는 마을간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것 같으니 마법지부를 중점적으로 감시해.”
“예!”
또 다른 무리가 빠르게 흩어졌다. 그는 나머지 무리를 향해 말했다.
“나머지는 마틴 저하를 계속 보좌하도록. 나는 그 유저를 데리고 엘레타스로 가겠다. 그는 어디에 있지?”
“침실에 있습니다.”
“팔자도 좋군... 아무튼 알았네.”
대장은 대원의 안내를 받아 침실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누워있던 크젤이 일어나며 말했다.
“드디어...!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습니까?”
“원하시는 대로 엘레타스로 모시겠습니다.”
대장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일하지만 이 유저라는 작자들은 오로지 이득만을 추구하는 족속들이었으니까.
“후... 다행이네. 진짜 그 미친 기사가 날 뒤쫓고 있다고요?”
“예. 저희가 먼저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크젤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유저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유저라도 같은 소속인 사람이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본다고 생각해보라.
다른 대원들의 사기에 영향이 미칠 터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붙잡히면 저런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마도연합까지만 도착하시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무리 황실 친위대장이라고 해도 마도연합에서 행패를 부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크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연합은 외부의 제약 없이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국가였다. 게다가 우조스와도 거리가 있어 국가적인 이해관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쉽게 말해 남의 나라 눈치 보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걸 하려는 사람들, 게다가 그 사람들이 모두 마법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들이 인정하는 권위는 지식과 마법의 수준밖에 없었다. 나이는 물론 핏줄의 귀천은 전혀 따지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엘레타스로 가게 되나요?”
크젤은 정통파의 안전가옥을 떠날 준비를 하며 물었다.
챙길 건 많지 않았다. 마법사는 도구보다 자신의 지능에 의지하니까.
“플라모르 동부에 웨이버라는 항구마을이 있습니다. 조금 거리가 있지만 엘레타스로 가는 정기 여객선이 있으니 그걸 타면 될 겁니다.”
“그냥 바로 텔레포트를 시켜주면 안 됩니까?”
크젤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돈도 많아 보이는데... 쩨쩨하게...’
그의 말에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우리 쪽 자금도 여의치 않습니다. 사비를 들이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안타깝다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아쉬우면 네 돈 내고 가라는 말이었다. 크젤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지식과 마법이 곧 권력인 곳이니만큼 마법의 전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전수한다고 모두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위 마법을 배우려면 마법을 전수해 줄 스승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재야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후대를 양성하려는 마법사들은 모여서 대학을 설립했다.
재야에 숨은 은둔 마법사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일과 다름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대학 입학을 선택한다.
문제는 입학금이었다.
마법사라는 작자들은 연구를 목적으로 재료를 물 쓰듯이 쓴다. 아무리 고상한 현자라도 자본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대학은 막대한 입학금을 요구했다.
‘50골드를 겨우 모았는데...!’
크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통파의 의뢰를 받은 이유 또한 그것이었다.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여, 좀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을 배우려는 것.
제국의 후예에서 여기까지 넘어오는 데 이미 돈을 꽤 썼다. 다시 대륙 간 텔레포트를 하며 돈을 들인다면, 그가 애써 돈을 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가요. 갑시다.”
크젤은 툴툴거리며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