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78화 (78/141)

<-- 18.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

신성제국, 도시 아일렘의 한 교회.

제트람은 응접실에서 고위사제를 기다렸다.

꽤 늦은 시간에 방문한 터라,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급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크젤은 마치 귀신처럼 행방을 감추었다. 어쩔 수 없이 솔리스 교단의 힘을 빌려야 했다.

끼익-

고요함이 감도는 깊은 밤이라서인지 문 열리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다. 제트람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약간 헝클어진 금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옷은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자, 그를 보고 제트람은 고개를 숙였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헤리엇 대주교님.”

“아닙니다. 황실 친위대장께서 어쩐 일로...”

헤리엇은 손사래를 치며 슬쩍 용건을 물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면 어지간히 급한 일일 터, 인사치레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데일 황태자 습격 사건의 범인을 추격 중입니다.”

제트람 역시 빠르게 설명했다.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는 편이 양쪽 모두에게 좋으리라.

“하여, 대주교님의 권한으로 신성제국에 수배를 해주기를 요청드립니다.”

“음... 과연,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자가 신성제국에 발을 디딜 수는 없는 일. 날이 밝는 대로 수배를 내리겠습니다.”

헤리엇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데일 도프람의 실종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던 만큼 그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설마 친위대장이 직접 범인을 추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대답에 제트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정도야 뭐... 그리고 깨어있었으니까요.”

헤리엇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가 곧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바로 다른 도시로 수색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자는 마법사니 마도연합 쪽으로 도망칠지도 모르니까요.”

제트람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자신이 쉬는 만큼 범인은 그의 손을 벗어나리라.

“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네. 그럼, 외람되지만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붙잡을 수가 없군요. 그대의 앞길에 햇빛이 비치기를...”

제트람이 퇴장하자 헤리엇은 곧바로 미소를 거두었다. 그는 응접실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뉘였다.

곧 고위사제가 노란 액체가 넘실거리는 유리병을 들고 왔다.

“후...”

헤리엇이 지친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익숙한 듯 고위사제는 같이 가져온 유리잔에 노란 액체를 부었다.

달콤한 향이 흘러나왔다. 헤리엇은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향기와 달리 화끈한 알콜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도대체 친위대장이나 하는 남자가 여기는 왜 왔나 싶었더니...”

헤리엇이 중얼거리자 고위사제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단의 이목이 쏠릴 수 있으니, 그 수배는... 알아서 하도록.”

“예.”

헤리엇의 잔이 비자 고위사제가 다시 잔을 채웠다. 웬만한 귀족들도 쉽게 먹지 못하는 고급술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축복받을 여신도들도 좀 바꿔주게.”

“아... 무슨 문제라도...?”

헤리엇의 말에 고위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이제 익숙해진 모양이네.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더군.”

“알겠습니다.”

헤리엇의 말에 고위사제는 머릿속으로 여러 후보를 떠올렸다.

신성제국에서 교회가 가지는 권력은 제국의 후예에서 귀족이 가지는 것과 강했다. 신의 말씀이라는 명목 아래 부당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헌금이라는 이름 아래 부당한 세금을 착취하고, 여신도들의 믿음을 이용해 육체를 취한다. 대주교 중에서도 헤리엇은 특히 욕망에 충실한 자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실해 보이지만 그 속은 세속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 아무래도 3명은 무리겠지?”

제트람이 오기 전에 마무리했던 잠자리를 떠올리던 헤리엇이 말을 툭 내뱉었다.

고위사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잔을 채웠다.

* * *

철컹-

감옥 문이 닫히며 쇳소리를 냈다. 프레이를 비롯한 일행들은 손을 구속당한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왜 믿어주지 않는 거죠!?”

세이렌이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그러나 엘타란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데일 도프람이라고요!”

“그대들의 정체는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엘타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뭐라고 다시 말하기 전에 엘타란이 말을 덧붙였다.

“솔리스님의 계시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진실은 때로 믿기 어려울 때가 있나니,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라.’, 그대의 말은 믿기 어려우나 날이 밝는 대로 대주교님께 전달할 것이다.”

“대주교...?”

세이렌이 눈을 빛냈다. 대주교라면 그녀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일 터.

“그렇다. 헤리엇 대주교님이 가까운 아일렘에 계신다. 이미 전갈을 보냈으니 내일이면 회신이 올 것이다.”

“헤리엇 대주교... 좋아요. 그 사람이라면...!”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기로 다른 대주교와 달리 자기 관리가 깔끔한 인물이었기에 믿을 수 있는 인상을 주었던 남자였다.

“프레이, 프레이...!”

바이런이 속삭였다.

“네.”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프레이의 모습에 바이런은 기가 찼다.

“저 여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가 황태자라니?”

“음... 그게...”

프레이는 슬쩍 세이렌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엘타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접 밝혔으니 바이런이 알아도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모두의 앞에서 공개한 일이니 숨기는 건 아닐 터,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어떤 사정이냐면...”

그는 간략하게 세이렌의 상황을 설명했다. 정통파의 존재와 연금술로 만들어진 약을 복용 후 저런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뭐...? 그런 약이 있어?”

“네. 제가 직접 봤어요.”

바이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프레이의 얼굴을 보고 수긍했다. 굳이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면 그 의뢰라는 건...?”

“여자가 됐으니 마틴 도프람을 황실로 돌려보내려는 거죠.”

바이런은 눈을 번쩍 떴다. 프레이의 말에서 돈 냄새가 났으니까.

‘제 2 황태자가 황좌를 승계한다면...!?’

권력 구조가 완전히 뒤집어진다. 상인에게 필요한 건 좋은 물건을 구하는 것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귀족과 결탁한 상인 길드가 난리가 나겠군...!’

바이런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로비를 벌이며 일부 물품들의 판매권을 독점한 상인 길드, 그러나 마틴이 승계자가 된다면 줄을 잘못 선 귀족들은 변방으로 밀려날 게 분명했다.

프레이는 그의 생각대로 남달랐다. 일개 유저가 어떻게 황실의 인물들과 연을 맺겠는가.

물론 리반처럼 위에서 노는 물이 있지만, 프레이가 그 정도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재밌네. 아주 재미있어.”

“네?”

바이런이 실실 웃자 프레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그러나 바이런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예측할 수가 없다니까. 아무튼 저분을 그럼 수도까지 모셔야겠네?”

“네. 황족의 피를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으로 세이렌이 황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거기서 그녀와의 인연은 끝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 하는 것이니 말릴 수도 없었다.

“아, 그런데 그럼 내가 실수한 거 아냐?”

바이런이 뒤늦게 놀라서 물었다. 하지만 프레이는 가볍게 흘려 넘겼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애초에 유저들은 귀족이라고 굽실거리지 않으니까.”

“그런가? 그러면 다행이지만...”

바이런은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곧 세이렌이 돌아왔기에 입을 닫았다.

“괜찮아요?”

“뭐라고 하던가요?”

프레이는 걱정을, 바이런은 대화내용을 궁금해했다. 세이렌은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메리나 때처럼 미친년 취급은 안 받았어.”

세이렌은 프레이를 보며 대답했다. 그녀는 엘타란과의 대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헤리엇 대주교에게 그녀가 한 말이 전달 될 것이고,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황족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럼...”

“그래, 내가 데일인 게 밝혀지면 수도로 가게 될 거야. 거기서 마틴을 풀어달라고 하고, 내가 대신 볼모로 잡혀 있어야지.”

세이렌은 그렇게 말하고 프레이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아쉬워하기를 바라며, 그러나 프레이는 덤덤했다.

‘괜찮은 건가...’

세이렌은 조금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프레이도 유저였으니까.

“그런데 신성제국 쪽에서 둘 다 볼모로 잡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바이런은 어색하게 존댓말을 쓰며 물어보았다. 세이렌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갑자기 어색하게 그러지 말아요. 유저면서.”

“아하하... 티가 많이 나나요?”

바이런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프레이도 동의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냐, 그렇게 되면 양국 관계가 냉랭해질 텐데. 교황이 바보도 아니고.”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신성제국으로 향할 때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다.

마틴과 자신이 동시에 볼모로 잡힐 경우, 신성제국은 제국의 후예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왜요? 지금 황제 상태가 말이 아니... 아, 실언이었습니다.”

바이런은 급하게 입을 닫았다. 자식 앞에서 아버지를 흉보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그의 우려와는 달리 세이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까요.”

공공의 적.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우조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프레이는 움찔 몸을 떨었다. 다시금 자신의 목적을 되새겼다.

‘우조스...’

프레이는 문득 그날을 떠올리다가 의문이 들었다.

‘리반은 도대체 왜 더스틴 마을에 온 거지...?’

“결국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럼 잠이나 잡시다. 수면모드로 오래 하니 죽을 맛이네.”

그의 생각은 바이런의 투덜거림에 멈췄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 * *

뎅- 뎅- 뎅-

이른 아침,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침 기도를 위해 모인 신도들이 하나씩 발걸음을 옮기며 자리에 앉는다.

“어서 오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사제들이 신도들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신도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엘타란 경으로부터 대주교님께 전갈이 있습니다.”

신도들 틈에 섞여 있던 전령이 사제에게 말했다. 그는 곧바로 행렬에서 빠져나와 교회 안 깊숙이 들어갔다.

“주십시오.”

전령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고위사제에게 넘겼다. 고위사제는 서신 겉에 붙은 성기사단 인장을 확인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대주교님께서 회신을 주실 겁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헤리엇의 방에 도착한 그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똑- 똑-

“들어오게...”

낮은 목소리에 고위사제는 문을 열었다.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것인지 토사물이 여기저기 보였다.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고위사제는 발을 조심하며 헤리엇에게 다가갔다.

“전갈이 왔습니다.”

“우으... 물 좀 더 가져다주게.”

서신을 붙잡고 손을 흔들었다. 고위사제는 허리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헤리엇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서신을 거칠게 뜯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숙취로 짜증이 잔뜩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데일 황태자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다는 내용의 서신은 불쾌함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성기사들은 할 일도 없나...’

별 해괴한 말을 하는 놈들도 다 상대해주니 이런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홀히 상대했다가는 성기사가 직접 교단 쪽에 이야기할 터였다.

성기사가 만족할 정도의 수준으로 상대하면서도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대안이 필요했다.

‘음...’

헤리엇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곧 묘안을 떠올렸다.

그는 빠르게 휘갈겨 답신을 적었다.

글씨체는 상관없었다. 고위사제가 똑바로 정자로 옮겨줄 테니까.

‘됐어...’

“대주교님, 물을 가져왔습니다.”

헤리엇은 단숨에 물을 들이마시고 답변을 적은 종이를 건넸다.

“이렇게 회신하게.”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전령은 헤리엇의 회신을 들고 아일렘을 벗어났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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