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후회는 항상 늦는다 -->
브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핏방울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브류는 고통도 잊은 채 고개를 돌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심장이 멎을 뻔했다. 파충류의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헤미타!”
스틸리오 족장, 헤미타가 브류의 뒷덜미를 들어 올려 목숨을 구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불타는 시체 골렘에서 뛰어내렸다.
“크윽...!”
프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악귀와도 같은 표정에 브류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추악하구나.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때다.”
헤미타는 차갑게 프람을 내려다보며 곡도를 높이 올렸다.
“아, 안 된다피!”
“정신 나간 피스칸이 하나 더 있었군.”
브류가 다급하게 헤미타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피스칸의 체격은 너무나 왜소했다. 헤미타는 귀찮다는 듯 브류를 뒤로 던졌다.
헤미타는 주저 없이 곡도를 휘둘렀다. 프람의 가슴에 곡도가 떨어졌다.
촤아악-
검은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러나 헤미타는 눈을 감지 않았다.
“끄으으으...!”
프람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헤미타는 손목을 비틀어 곡도를 후벼팠다.
“내 아들의 원수...”
“끄아아아악!”
상처가 벌어지며 검은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브류는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영혼을 더럽힌 죗값이다.”
헤미타는 그대로 곡도를 아래로 그어 내렸다. 프람의 배가 갈라지며 악취가 풍겼다.
이미 부패해버린 프람의 육체가 뿜어내는 악취였다.
“아아... 아아아...”
브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끝까지 믿었던 친구는 자신을 죽이려 했고, 원수라고 믿었던 스틸리오의 손에 목숨을 부지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선과 악이 뒤집혀버린 상황, 브류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친구가 죽어서 슬픈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 한심해서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소리죽여 흐느끼는 브류를 뒤로 하고 프레이가 헤미타에게 다가갔다.
“헤미타...! 여긴 어떻게?”
“착각하지 마라.”
헤미타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녀는 검은 피를 털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 부족의 원수를 갚았을 뿐, 네놈들이 걱정돼서 온 게 아니니까.”
프레이는 브류를 돌아보았다. 헤미타는 프레이를 지나쳐 브류의 멱살을 들어 올렸다.
“언제까지 질질 짜고 있을 셈이지?”
“흐윽...”
브류가 간신히 숨을 뱉었다. 헤미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윽박질렀다.
“한심하군! 그렇게 울기만 해서 해결될 일이 어디에 있나!”
“프람, 프람이...”
“프람? 저 괴물 말이냐?”
헤미타는 그대로 브류를 잡고 프람의 주검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친구라고!? 그렇다면 왜 네 손으로 구원해주지 않았지?”
“나는... 나는...!”
”네가 정말 친구였다면, 왜 친구가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걸 막지 않았지!?“
프레이는 놀라서 헤미타를 말리려 했다. 저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그러나 헤미타의 기세가 흉흉해 쉽게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브류를 해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나는... 몰랐다피...! 저렇게 프람이 힘들...”
“몰랐다고? 고작 생각해낸 변명이 그것이냐!?”
헤미타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브류의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지 마라! 울어도 바뀌는 건 없어!”
“그럼, 그러면 어떡하라는 거냐피! 다른 피스칸은 모두, 모두 프람을 싫어했다피!”
브류도 악이 받쳤는지 소리쳤다. 헤미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바꿔라.”
그녀는 마치 최면을 걸듯 브류에게 속삭였다.
“네 친구를 이렇게 만든 게 무엇이든, 바꾸어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정말 친구를 위한다면, 저런 피스칸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막아라.”
헤미타는 브류의 멱살을 놓았다. 브류가 땅에 떨어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모두라고 했나? 정말 친구를 위한다면 그 모두와 싸웠어야지. 정작 친구가 힘들 때 방관하다가 다가가서 위로마냥 몇 마디 건네주는 일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거냐?”
헤미타는 브류를 차갑게 내려 보았다.
“너는 저 괴물의 친구가 아니다. 저 괴물을 이용해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는 위선자에 불과하지.”
브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쩌면 죽어가는 프람을 돌봐준 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은 다르다고 자기 위로를 했던 걸지도 몰랐다.
자신은 다른 피스칸과 다르다고.
“인간.”
헤미타의 시선은 다시 프레이에게 돌아왔다.
“시체 골렘을 처리하고, 저 사악한 무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건, 감사한다.”
“아, 그건...”
“그러나.”
그녀의 말이 프레이의 말문을 막았다.
“우리를 속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손이 허리춤으로 다가갔다.
헤미타와 싸워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스틸리오와 인간 사이에 빚은 없다.”
“빚...?”
프레이는 곧 발타의 가죽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들을 속였음에도 그걸 빚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다른 피스칸들에게도 전하도록. 스틸리오는 누구와도 적이 아니다. 그러나 아군도 아니라는 사실을.”
헤미타는 말을 마치고 빠르게 정글로 사라졌다.
프레이는 씁쓸한 얼굴로 브류를 돌아봤다.
더 이상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지, 그저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챙겨줄 게 이것밖에 없다피.”
아르갈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주머니를 내밀었다. 바이런은 주머니 속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아이고, 어르신.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뭔데요?”
세이렌이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진주가 가득했다. 피스칸은 인간의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돈 대신 진주를 구해주었던 것.
“이야... 이거 다 제값에 팔면 5골드는 넉넉히 나오겠는데.”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떠난다니 아쉽다피.”
프람을 해치우고 이틀이 지났다. 프레이 일행은 정비를 마쳤고 떠날 때가 오게 된 것.
“저, 브류는...”
세이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르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알았어요.”
브류는 자기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프람의 일로 충격을 심하게 받은 모양이었다.
프레이는 세이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는 한참을 돌아보다가 결국 몸을 돌렸다.
“후... 드디어 사람 사는 곳에 갈 수 있겠어.”
바이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을 옮겼다.
“브류... 괜찮을까?”
“글쎄요... 아마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요...”
프레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역시도 확신이 없었다.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저 브류가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브류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 밖을 나섰다.
그런 일을 겪고도 몸뚱이는 배고픔을 호소했다. 결국 무언가를 먹어야 했기에 집을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다른 피스칸들의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가 마을 안에 식료품점에 들렀을 때, 다른 이들은 마치 브류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오늘 과일은 아주 잘 익었다피. 하나 사면, 하나 더 준다피!”
“이거랑 요거 2개만 달라피.”
“알았다피.”
심지어 늦게 온 손님도 브류 보다 빨리 계산을 마쳤다. 다른 손님들이 물건을 모두 사고 나서야 브류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브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거랑 이거 사겠다피.”
브류가 힘없이 목소리를 냈다. 가게 주인은 그를 외면했다.
“내 말이 안 들리냐피?”
“오늘 장사는 끝났다피.”
비록 늦은 저녁이었지만 이 시간에 장사가 끝내는 일은 없었다.
“끝났다피. 문 닫을 거다피.”
가게 주인은 브류를 내쫓았다. 안 그래도 힘이 없었던 브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몇몇 피스칸들이 넘어진 브류를 바라보았지만 곧 외면했다.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브류가 오면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브류는 깨달았다.
‘모두가 나를 따돌리고 있다피...!’
피스칸들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브류를 따라나선 피스칸의 대부분이 언데드가 되었다.
프람의 짓이었지만, 프람은 이미 죽었다. 비난의 화살은 프람의 친구였던 브류에게 돌아갔다.
‘결국 바뀌지 않았다피...’
브류는 허탈했다. 인간들과 훈련하며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피스칸들은 그대로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지 못했다.
브류는 그제야 프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됐다.
‘프람... 미안하다피...’
자신이 내뱉었던 위로의 말이 떠올랐다. 정작 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프람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는 나선 적이 없었다. 헤미타의 말대로 프람의 옆에서 다른 이들과 맞서야 했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소용이 없었다.
브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다.
* * *
“여기가 아르갈이 말한 동굴인가?”
늪지대의 끝에 도달하자 동굴이 보였다. 바이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것 같아요.”
“여기를 통과하면 도시가 나온다는 거지?”
세이렌이 지친 얼굴로 물었다. 언데드를 처리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또 다른 적이 튀어나올까 바짝 긴장한 탓이었다.
“동굴 안은 안전할까?”
바이런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초행길이었고, 아르갈도 이 동굴로 들어선 적이 없었으니까.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먼저 앞장섰다.
“어차피 돌아갈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어차피 지나가야 할 길이었다. 바이런은 주섬주섬 가방에서 횃불을 꺼냈다.
“횃불도 많이 들고 다녀요?”
세이렌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했을 때도 바이런은 횃불로 거미를 쫓아낸 적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고 다니는 거죠. 노숙할 때를 대비해서. 동굴 때문에 준비한 건 아니에요. 평소에 동굴 들어갈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제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탁- 탁-
부싯돌을 부딪치니 불똥이 튀었다. 곧 횃불에 불이 붙었다.
“내가 뒤에서 들고 갈 테니까.”
바이런은 자진해서 횃불을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전투 능력이 가장 낮았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전투가 벌어지면 횃불을 들고 싸우기가 껄끄럽지 않겠는가.
“그럼 갈까요.”
프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그 뒤를 세이렌이 따랐다.
어두컴컴한 동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후... 동굴이라 그런지 좀 쌀쌀하네.”
바이런이 침묵을 깼다. 다행히 몬스터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이 얼마나 길까? 여기서 노숙하지는 않겠지?”
세이렌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해야 하면 할 수밖에 없죠. 어쩌겠습니까.”
“으...”
“바닥이 울퉁불퉁하니까 조심하세요.”
프레이가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구불구불 이어진 동굴을 지나가기를 한참, 프레이는 멀리 밤하늘이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저기가 출구인가 봅니다.”
“후... 드디어.”
바이런이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 혹시나 적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출구는 어느 산의 중턱으로 이어져 있었다.
“조심해요.”
프레이가 세이렌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녀가 가볍게 프레이의 품에 안겼다.
“야, 나는...!”
바이런이 뒤에서 소리쳐 자연스럽게 프레이는 그녀를 밀쳐내고 바이런을 잡아주었다. 세이렌은 힐끔 바이런을 흘겨봤다.
바로 그때.
사락- 사락-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다수의 병사들이 숲 속에서 나타났다.
“어, 어?”
몸을 가누며 일어선 바이런이 놀라서 소리쳤다. 프레이는 빠르게 세이렌의 앞을 막아섰다.
석궁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은빛 갑옷을 착용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떻게 그곳에서 나왔지?!”
“당신들은 누굽니까!?”
정체도 밝히지 않는 사람들에게 순순히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프레이의 물음에 남자가 검을 빼 들었다.
“신성제국 소속 성기사, 엘타란이다.”
성기사라는 말에 프레이 일행 모두 놀랐다. 왜 성기사가 이런 곳에 있는가.
“저 동굴 너머로 악한 기운이 나오고 있었다는 계시가 내려왔었다.”
그런 의문에 답하듯 엘타란이 말을 이었다. 경계 어린 눈으로 프레이 일행을 훑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프람... 때문인가...?’
프레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수적으로나 전력으로나 너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대들이 떳떳하다면 조사에 응하라.”
“조사라니... 갑자기 무슨...!”
엘타란의 말에 바이런이 발끈했다.
“좋아요.”
“세이렌...?”
세이렌이 대답했다. 프레이가 놀라서 돌아봤다.
“저항하지 않다면 이쪽 역시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겠다.”
엘타란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허... 참나, 살다가 이렇게 검문까지 받아보는군.”
바이런이 투덜거렸지만 곧 양손을 들었다. 혼자서 싸울 수는 없었으니.
프레이는 엘타란에게 프람과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모르테미안 토템을 꺼냈다.
“그건...!”
엘타란이 얼굴을 찡그렸다. 혐오, 그 자체를 뜻하는 듯한 표정.
“과연... 그대가 모르테미안을 처치했다는 것인가. 그 불결한 물건은 이쪽에서 처리하겠네.”
프레이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토템을 건넸다. 굳이 가지겠다고 했다가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병사들의 경계가 누그러지자 세이렌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엘타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이렌...?”
프레이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세이렌은 돌아보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책임자는 당신이죠?”
“그렇다만...”
엘타란은 세이렌의 위아래를 훑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의 상관 혹은 가장 가까이 있는 대주교에게 전달하세요.”
“음...?”
엘타란의 표정은 더 이상해졌다.
“제국의 후예, 제 1 황태자가 찾아왔다고.”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5 (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