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74화 (74/141)

<-- 17. 후회는 항상 늦는다 -->

헤미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시체 골렘에 사용된 재료는 비단 피스칸 뿐만 아니라 스틸리오도 포함되었기에.

자연을 숭상하는 스틸리오에게 언데드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죽음 역시 자연의 순리였으니까.

그런데 자신의 동족들이 추잡한 괴물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니, 가죽을 남기고 후대에게 존경을 받아야 할 이들이 동족들을 공격하니, 끓어오르는 화를 멈출 방법이 없었다.

샤아악-!

분노는 빠르게 전염되었다. 스틸리오 일족의 눈이 날카로워지고 입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헤미타...!”

“전원! 집결하라!”

프레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헤미타를 말리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헤미타는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지 않고 다른 부족원을 불렀다.

스틸리오 병사들이 빠르게 그녀를 중심으로 진을 구축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시체 골렘을 만드느라 언데드 병사 대부분이 소모되었기에 그들을 막을 적은 없었다.

“헤미타! 이건 무모한...”

“닥쳐라!”

헤미타의 노성에 프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인간이 낄 일이 아니다...! 이건 우리 스틸리오가 해결할 일...!”

샤아악-!

다시금 헤미타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나오자, 모여 있던 병사들이 신속하게 시체 골렘을 포위했다.

「훌륭한 재료들이 아주 많구나피...」

시체 골렘이 꿀렁이며 소리를 냈다. 거대한 시체 골렘의 가슴팍에는 프람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끄아아악...」

「끼에엑...!」

시체 골렘에 섞인 언데드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지옥에 온 기분이었다.

프레이는 그 소름 끼치는 비명에 인상을 찌푸렸다.

“악몽이다피... 이건 꿈일 거다피...”

브류가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세이렌을 돌아봤다.

“세이렌, 브류를 데리고 돌아가요! 바이런, 살아남은 피스칸을 데려가세요!”

“아, 알았어. 근데 너는!?”

세이렌은 간신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였다. 주저앉은 브류를 붙잡으며 묻는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 지금 저 괴물을 상대하려는 거야? 그건 미친 짓이야!”

바이런은 몸을 오들오들 떠는 피스칸들을 한데로 모으며 소리쳤다.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다.

“어차피 저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럼, 그럼 나도...!”

세이렌이 브류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브류는 실성한 듯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요. 지금 실랑이를 벌일 때가 아니에요. 어서 돌아가요!”

그나마 스틸리오가 시간을 벌어줄 때 도망쳐야 했다.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며 달렸다. 더 이상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시체 골렘 ‘프람’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느껴지는 힘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이건...!’

스틸리오 병사들이 시체 골렘을 구성하는 언데드를 베어낼 때마다 힘이 줄어들었다. 육중한 체구 덕분인지 민첩함은 덜하지만, 힘으로는 지금껏 상대한 적중에 가장 강했다.

심지어 용암 거인보다 더 강한 힘.

“프레이...!”

“제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저 녀석 말대로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합니다!”

바이런이 소리치며 피스칸들을 인솔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피스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세이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하지만 바이런의 말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남아봤자 프레이의 발목밖에 더 잡겠는가. 강력한 적을 앞두고 느껴지는 무력함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도... 나도 유저였다면...’

만약 되살아날 수 있었다면, 프레이의 곁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만약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도움을 줄 수 없다면 방해는 되지 말아야 했다. 세이렌은 브류를 꼭 부여잡고 정글로 뛰었다.

* * *

샤아악-!

또 하나의 스틸리오가 튕겨 나갔다. 아무리 가죽이 튼튼하다 한들 시체 골렘의 힘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왜 모르냐피? 모두가 하나가 되면 갈등도 차별도 없다피...」

시체 골렘이 늪지로 떨어진 스틸리오를 찾으려 거대한 손을 헤집었다.

“마니켈!”

헤미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동료를 구하러 갔지만 이미 늦었다.

꿀럭-

시체 골렘의 손에 축 늘어진 스틸리오 병사가 들려 있었다. 언데드로 이루어진 손 마디마디가 스틸리오를 물어뜯었다.

“끄아아악!”

빠직- 빠지직-

병사가 울부짖었다. 시체 골렘이 손을 움켜쥐자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걸스럽게 먹이를 뜯어대는 언데드들, 스틸리오 병사의 머리가 밑으로 떨어졌다.

“마니켈...!”

파악-!

식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거친 손길이 휘둘러졌다. 시체 골렘의 팔은 4개, 나머지 3개의 팔로 방어는 충분했다.

“크아아악!”

동료를 구하려던 스틸리오 병사들이 허공을 날아 늪지로 떨어졌다. 마니켈이라는 스틸리오 병사는 스멀스멀 시체 골렘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피스칸은 약하다피. 피스칸은 언제나 도망쳐야 했다피.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피!」

울음소리가 섞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마치 시체 골렘을 구성하는 언데드들의 목소리를 합친 듯했다.

「모든 생명을 하나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피!」

키이이이-

프람이 소리치자 강렬한 진동이 퍼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헤미타를 비롯한 스틸리오 병사들이 귀를 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샤아악-!

“헤미타...!?”

뒤늦게 달려온 프레이가 헤미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가 그랬다.

‘이건...!?’

[‘망령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일정 확률로 공포에 빠집니다.]

[일정 확률로 방향감각을 상실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그러나 곧 메시지는 흐릿해졌다.

‘이것도...’

프레이는 자신만 괜찮은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 자신이 이퀄라이저였기에.

프람은 무릎을 꿇은 스틸리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일어선 인간을 바라보았다. 시체 골렘에 달린 무수히 많은 눈알들이 프레이를 향했다.

그 광경이 너무 괴이해 오히려 프레이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악몽같군...!’

「인간... 너도 우리와 하나가 될 거다피...!」

질퍽- 질퍽-

늪지에 발을 담그며 다가오는 시체 골렘. 프레이는 질척한 땅을 박차며 시체 골렘을 향해 나갔다.

“헤미타! 모두 도망쳐요!”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프레이는 소리치며 검을 잡았다. 시체 골렘의 양팔이 날아들었다.

“큭...!”

이를 악물고 앞으로 몸을 굴렸다. 머리 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곧장 몸을 일으켰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눈앞에 죽은 스틸리오가 이빨을 드러냈다. 발 부분을 구성하는 언데드들이 팔을 휘저으며 그를 잡으려 했다.

‘제길...!’

가까이서 보니 더 괴이했다. 프레이는 휘적거리는 팔을 잘라내고 옆으로 돌았다.

「도망은 소용 없다피!」

프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화산 동굴에서 상대한 용암 거인보다는 작지만, 만만치 않은 크기였다.

‘이놈 역시 어딘가에 토템이 있을 거야...!’

유령선장 알리칸처럼, 토템의 힘을 받는 게 분명할 터였다. 이런 넓은 늪지에 토템을 숨겨뒀을 리는 없을 테니, 분명 저 골렘의 몸 사이에 있을 것이다.

‘가장 깊숙한 곳이겠지...!’

다행히 프레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골렘의 몸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쏴아악-

양쪽에서 시체 골렘의 팔이 날아들었다. 마치 모기라도 잡는 듯한 행동이었다.

프레이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용암 거인을 상대한 경험 덕분에 힘을 조절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시체 골렘의 팔이 4개라는 점이었다.

‘이런...!’

공중으로 떠오른 프레이를 향해 날아오는 또 다른 팔들. 뛰었으니 피할 방법도 없었다.

“인간!”

퍽-!

강렬한 충격과 함께 프레이는 빠르게 떨어졌다. 그 뒤로 시체 골렘의 손뼉이 부딪쳤다.

“쿨럭...! 고마워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소리쳤다.

“정신 차려라...!”

헤미타가 소리쳤다. 프레이가 시간을 끄는 사이 상태를 회복한 헤미타가 다른 스틸리오의 도움을 받아 도약했던 것.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헤미타는 남은 병사들을 보살폈다.

“인간, 이길 방법은 있는 건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헤미타는 스틸리오 만으로는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프레이에게 물었다.

“토템... 토템만 찾으면...!”

“토템이라고...?”

헤미타가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그러나 시체 골렘의 어디를 바라보아도 오로지 시체뿐.

「어리석다피...! 저항하지 말고 운명을 받아 들여라피!」

스틸리오 병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체 골렘의 주의를 끌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 발타의 가죽과 토템을 같이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새로 만들었겠죠.”

프레이는 짧게 대답하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가 있던 자리에 시체 골렘의 주먹이 떨어졌다.

「벌레 같은 놈들...!」

프람의 외침과 함께 떨어진 주먹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주먹을 구성하던 언데드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르륵-!

‘이런...!’

프레이는 일어서는 언데드를 검으로 후려쳤다. 언데드를 분리하여 힘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괴력은 괴력.

언데드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헤미타 역시 곡도로 언데드의 사지를 절단했다.

“대단하군...!”

“칭찬은 고맙지만... 한눈을 파시면 안 됩니다!”

프레이는 헤미타의 뒤에서 덤벼드는 피스칸 좀비들을 향해 검을 날렸다. 검격 하나하나에 놈들의 몸이 터져나간다.

“크아아악!”

다시금 스틸리오 병사가 날아갔다. 다른 병사들이 동료를 부축해 물러섰다.

헤미타와 프레이 역시 시체 골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마을로... 마을로 돌아간다피...!」

시체 골렘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돌렸다.

“이런...!”

프레이는 낭패라는 듯 탄식했다. 놈이 마을에 도착하면 더 많은 피스칸을 흡수할 터, 그 전에 막아야 했다.

“족장님, 부상자가 너무 많습니다.”

“크윽...”

헤미타는 눈을 감았다.

저 사악한 괴물에게 사로잡힌 동족들을 절반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 무리하게 되면 부족 전체가 위험에 빠질 터였다.

“인간...”

“돌아가세요.”

프레이가 먼저 말했다. 헤미타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미안하군... 그러나...”

“아뇨, 이해합니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스틸리오에 대한 원망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지키십시오.”

만약 헤미타와 같은 상황이라도 자신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럴 기회라도 있었다면...’

다시금 더스틴 마을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었다. 프레이는 곧바로 프람을 쫓아 달렸다.

헤미타는 놀랐다. 비록 많은 인간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언제나 이득을 노리고 이기적인 족속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헤미타는 고개를 돌렸다.

“모두 부상자를 데리고 돌아가라!”

그리고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병사 하나가 놀라 물었다.

“족장님? 어딜 가십니까?”

“인간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이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곧장 부족원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피신하도록!”

“허나...!”

병사의 눈이 떨렸다. 그러나 헤미타는 단호했다.

“언제부터 내 명령에 거부할 권리가 있었지?”

“...알겠습니다. 족장님.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병사는 고개를 숙였다. 헤미타는 빠르게 돌아섰다.

* * *

우지끈-

나무가 쓰러졌다. 정글에 살던 짐승들이 놀라서 달아난다.

프람은 멀리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몸을 숨기고 있었던 피스칸 마을이 보였다.

곧 저 마을의 모든 피스칸도 하나가 될 것이다.

“멈춰!”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더 없이 기분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고작 인간 하나로 막을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프람은 인간의 외침을 무시하고 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쿠웅-

몸이 기울어지면서 반사적으로 팔을 짚었다. 무슨 일인가 돌아보니 마치 폭발한 듯 무릎의 절반이 날아갔다.

「죽음을 재촉하는 구나피!」

바닥에 흐트러진 언데드의 사체들, 프람은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천천히 상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숨을 골랐다.

‘역시... 의식이 있는 쪽이 약점일 가능성이 높다...!’

의식도 없는 언데드가 토템을 이용할 수는 없을 터. 결국 처리해야 할 쪽은 저 프람이었다.

“여기서 더 가게 놔둘 수는 없다.”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땅을 박찼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4 (81%)]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