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후회는 항상 늦는다 -->
바이런은 마른 침을 삼켰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흉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호위병이 보였다.
‘프레이... 괜찮은 거야?’
작전대로만 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불안했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계획대로 흐름이라면 발타의 가죽을 들고 왔으니 스틸리오에게 환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뭔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무릎을 꿇고, 당장에라도 목이 달아날 것 같았다.
게다가 사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자신의 일이었지만, 프레이는 한사코 자신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가죽의 소재에 대해 아는 건 자신이니, 바이런이 말하면 거짓이 금방 탄로 날 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바이런의 시선은 프레이의 얼굴로 돌아갔다.
“왜 말이 없지?”
헤미타가 다시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길쭉한 주둥이 위로 난 두 개의 구멍에서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프레이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들키지 않는다.’
잠깐 눈을 감았다. 할 이야기를 떠올리고 다시 눈을 떴다.
“먼저 발타의 가죽을 어디서 찾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미타가 눈을 깜빡였다. 마치 이야기를 재촉하는 표정이었다.
프레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정글에서 길을 잃었다가 거미에게 붙들렸습니다.”
“거미라고...? 그 정글 거미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둥지까지 잡혀갔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오크 부족의 토템이 있었습니다.”
프레이가 인벤토리에 손을 대자 호위병들이 곡도를 휘둘렀다. 칼날은 프레이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그 역시 더 움직이지 않았다.
“됐다. 꺼내 보거라.”
헤미타가 손을 들자 호위병이 힐끗 쳐다보고는 곡도를 거두었다. 프레이의 목젖이 꿀렁였다.
그는 천천히 인벤토리에서 전사의 토템을 꺼냈다. 헤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예전에 본 적이 있다. 어느 부족인지는 몰라도, 네가 그 정도 인정을 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겠지.”
조금 태도가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프레이는 속으로 안도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덕분에 거미를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토템의 효력 덕분이었죠.”
“그러나.”
헤미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눈이었다.
“정글 거미들의 둥지에는 여왕이 있었을 텐데?”
“맞습니다. 타리아난이라는 이름이었죠.”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왕 거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여왕 거미가 순순히 보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제가 처리했습니다.”
프레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뭐라...?”
헤미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진심으로 놀란 모습이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여왕 거미를 처치하고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건... 믿기 어려운 말이구나.”
프레이는 다시금 인벤토리를 열었다. 호위병이 제지하기 전에 헤미타가 먼저 손을 들었다.
“이것이 여왕 거미의 독낭입니다.”
독을 전부 빼서 텅텅 빈 독낭을 보여주었다. 비록 내용물은 없었지만 그 크기가 남달랐기에, 헤미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조금 대단하군. 확실히 오크들에게 인정받을 실력이로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를 흡입했다. 그러나 곧 헤미타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게 내 아들, 발타와 무슨 관계가 있지?”
“가죽을 둥지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둥지에서...? 그렇다면...”
헤미타가 눈을 내리깔며 연기를 내뿜었다.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최후였다.
발타는 새끼 거미의 먹이가 되었을 터, 가죽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었다.
“발타, 나의 아들, 그 아이의 가죽은 어디에 있지?”
헤미타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다행히 바이런은 태연하게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대부분 진실이었다면, 이제 할 이야기는 거짓이었다.
진실을 먼저 이야기에 신뢰를 얻고, 그 뒤에 이어지는 거짓을 믿게 만들 계획이었다. 절대로 수상하다는 낌새가 보여서는 안 된다.
“저희에게 없습니다.”
“뭐...!?”
빠직-
그녀가 들고 있던 담뱃대가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졌다. 슬픔은 분노로, 그리고 족장의 감정은 호위병에게 전파되었다.
“네놈, 나를 우롱하려는 게냐!”
“정말입니다.”
바이런은 그녀의 기세에 몸을 흠칫 떨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입 밖으로 나왔다.
샤아악-
헤미타의 입에서 짐승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성큼 앞으로 다가와 프레이와 바이런의 앞에 섰다.
“내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줄 입은 하나로도 충분하다. 필요 없는 머리는 잘라내도 상관없겠지!”
헤미타가 허리춤에 찬 곡도를 빼서 바이런에게 겨누었다. 칼날이 닿았는지 그의 목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허나, 사실입니다. 발타의 가죽은 저희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프레이가 빠르게 대답했다. 잘못하면 둘 중의 한 명이 목 없는 시체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숨결이 가까이 느껴질 만큼, 헤미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디냐! 어디에 발타가 잠들어 있지?”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늪지, 늪지에 있습니다.”
헤미타의 표정도 굳었다. 그녀는 예리한 이빨을 드러냈다.
“늪지... 늪지라고? 왜 거미 둥지에 있던 가죽이 늪지에 있다는 거지!?”
“저희는 가죽을 들고 여러분의 마을을 찾았습니다. 스틸리오에게 가죽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허나 이곳으로 오는 도중 재규어 무리에게 쫓겼습니다.”
“재규어?”
“예.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늪지가 나오더군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재규어들이 늪지까지 쫓아오지는 않더군요.”
거짓말이었다. 재규어라고는 거미에게 잡힌 한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늪지는 멀리서나마 봤다. 그럼에도 재규어가 쫓아오지 않았다고 말한 건 브류의 말 때문이었다.
‘스틸리오는 늪지를 두려워한다.’
헤미타는 곡도를 잡고 서성였다.
“흠... 하긴 늪지는 갈 곳이 못 되지...”
“예, 저희도 얼른 늪지를 벗어나 이곳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근처에 도착할 때쯤에야 가죽을 늪지 어딘가에 흘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프레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내며 말을 마쳤다.
늪지를 무서워하는 스틸리오를 늪지로 끌어들이려면? 당연히 이유가 필요하다.
‘발타가 족장의 아들인 건... 차라리 잘된 일이군.’
일반적인 부족원이어도 스틸리오가 나설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족장의 아들이라니, 성공확률이 더 높아진 것이 아닌가.
“네놈들... 그 말이 만약 거짓이라면...”
“저희는 당황스러울 따름입니다. 선의로 이곳에 온 것이지, 이렇게 목숨을 위협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프레이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헤미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그냥 그대로 이곳을 빠져나가도 될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시니...”
바이런이 빠르게 말을 받았다. 억울하다는 듯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헤미타는 눈을 감았다.
확실히 인간들의 말 대로였다. 굳이 가죽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아니, 뭔가 원하는 게 있었겠지...’
인간들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인간이란 그런 족속들이다.
“뭘 원하지?”
헤미타가 눈을 뜨며 물었다. 프레이와 바이런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 눈을 마주쳤다.
왜냐하면 이건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으니까.
그저 가죽으로 스틸리오를 유인할 생각만 했지 보상을 바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이었으니까.
“왜 말이 없느냐? 다 알고 있다. 너희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원하지. 그렇기에 가죽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려고 온 것이 아니더냐?”
다시금 헤미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레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런...’
이대로 있다가는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될 터였다. 그는 빠르게 눈을 굴렸다.
벽에 걸려 있는 선대 족장들의 가죽이 보였다.
“가죽.”
“음?”
“스틸리오는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가죽을 나눠주십시오.”
바이런이 눈을 끔뻑였다. 탈피한 가죽이라니? 그걸 어디다 쓴단 말인가?
‘무슨 생각이야?’
헤미타도 궁금한 표정이었다.
“왜지?”
“비록 탈피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스틸리오의 가죽. 손질하여 쓰면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는 빠르게 말을 뱉었다. 실제로 그런지는 몰랐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상인이온데, 스틸리오의 가죽은 특상품으로 취급이 됩니다. 그 튼튼함이 마치 강철과도 같은데 무게는 무척 가볍기 때문이죠. 그러나 살아있는 스틸리오의 가죽을 취할 수 없는바, 탈피한 반쪽짜리 가죽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찾아왔던 것입니다.”
바이런이 빠르게 프레이의 변명을 보충했다. 물론 그 역시 거짓말이었다.
헤미타의 눈이 그에게 돌아갔다.
‘탐욕스러운 인간들...’
역시 노리는 것이 있었다. 헤미타는 손을 들어 호위병에게 명령했다.
“인간들을 앞세우고 늪지로 간다. 모두 준비하라고 명하라.”
“알겠습니다.”
호위병 하나가 밖으로 나갔다. 바이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내해라.”
헤미타의 말에 프레이와 바이런이 일어섰다.
“가죽을 못 찾으면 네놈들 가죽을 벗겨낼 것이다.”
서늘한 눈으로 말을 마친 헤미타. 프레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모두 준비 끝났지?”
세이렌은 다른 피스칸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방에는 단창을 들고 있는 피스칸이 대열을 이루며 서 있었다. 후방에는 새총과 화살을 짊어진 피스칸이 모여 있었다.
“브류는?”
정작 중요한 브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세이렌이 물었다. 아르갈이 고개를 돌렸다.
“아, 잠깐 집에 들렀다가 온다고 했다피.”
“집에요?”
“그래. 프람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다고 했었다피.”
아르갈의 말에 세이렌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브류는 프람의 욕조를 들추었다.
“프람...”
말라 비틀어져서 언제 죽을지 모를 것 같은 몰골이었다.
친구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의 마음에 다시금 스틸리오에 대한 증오가 타올랐다.
“이제 복수하러 갈 거다피. 프람, 너와 그리고 너희 마을 사람들까지피.”
프람의 간호는 아르갈에게 맡겼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돌아서야 했다.
툭-
막 발을 돌리려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브류는 고개를 돌렸다.
툭- 툭-
욕조 뚜껑이 들썩였다.
“프람...?”
브류는 천천히 다시 욕조를 열었다. 아까와 똑같은 모습의 프람이었다.
“프람?”
다시 이름을 불러 보았다. 반응이 없다.
‘잘못 들은 건가피...’
촤악-
그 순간 프람의 앙상한 팔이 브류를 붙잡았다.
“프람, 일어났냐피?!”
프람의 초점 없는 눈이 보였다. 브류는 프람을 부축했다.
“브류...”
“프람, 정신이 들었구나피!”
브류는 다급하게 아르갈을 부르려 했다. 프람이 일어난 건 좋았지만 지금은 그가 피스칸을 이끌어야 할 때였으니까.
“브류...!”
프람이 억세게 브류의 팔을 쥐었다. 프람은 천천히 욕조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나도... 나도 데려가라피...”
“프람...? 지금 움직이면 안 된다피!”
“복수의 순간을 보고 싶다피...!”
브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프람을 바라보았다.
모든 걸 잃은 친구의 모습, 언제 죽을지도 모를 친구였다.
그 친구의 마지막 바람처럼 느껴졌다. 브류는 눈물을 흘렸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고통받아야 할까.
“알았어... 가자피!”
브류는 프람을 다시 욕조에 넣었다. 그리고 욕조를 질질 끌어 밖으로 나왔다.
“브류? 무슨 일이냐피?”
아르갈이 놀라서 물었다.
“프람도 데려 간다피!”
“그게 무슨 말이야?”
세이렌도 놀라서 물었다. 그러나 브류는 울면서 소리쳤다.
“프람은 볼 권리가 있다피! 우리의 복수를 봐야 한다피!”
“브류, 하지만...”
“세이렌! 이건 우리의 일이다피!”
브류가 세이렌의 말을 잘랐다. 곧바로 브류는 다른 피스칸 2명을 불렀다.
그들은 금방 수레를 끌고 왔다. 프레이는 프람의 욕조를 수레에 실었다.
“이제 출발한다피!”
피스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이렌은 그들을 바라보다 어쩔 수 없이 뒤따라갔다.
프레이와 바이런이 스틸리오를 늪지로 유인할 테니까. 그 전에 매복을 마쳐야 했다.
프람을 데려가느니 마느니 실랑이를 벌이며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모두 조심해라피!”
아르갈이 소리쳤다. 멀어져가는 피스칸을 배웅하고 그는 브류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질러진 그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엉망이다피...’
프람의 욕조가 있던 자리 뒤쪽에는 나뭇조각이 흐트러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4 (2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