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71화 (71/141)

<-- 16. 화산 동굴 -->

화산 내부에는 정적이 흘렀다.

‘음...’

프레이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용암 거인의 사체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 광경에 의문이 들었다.

‘왜 정령들이 모두...’

화산 정령들이 사라졌다. 남아 있는 건 그들의 핵을 보호하던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들뿐.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

‘이걸... 내가 빼서?’

인벤토리를 열어 다시금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을 꺼냈다.

‘보기에는 그냥 예쁜 돌인데...’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지자는 열기에 면역을 얻기 때문, 실제로는 그 일대가 지글지글 달아올랐지만 프레이는 느낄 수 없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 * *

프레이가 다시 마을로 돌아온 건 태양이 수평선으로 떨어질 때쯤이었다.

“전사님이 돌아왔다피!”

보초가 소리쳤다.

“프레이!”

“아... 세, 세이렌?”

세이렌이 자신의 품에 안기자 프레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바이런이 음흉한 눈길을 보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네, 네. 괜찮아요.”

아르갈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전사여, 정말 화산 심층부에 갔다 왔느냐피?”

“아, 맞다. 여기 화산석을...”

프레이가 인벤토리에서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을 꺼내자 주변의 모든 이들이 반사적으로 손을 올렸다.

“뜨겁다피!”

“바다! 바다로 가라피!”

풍덩- 풍덩-

때아닌 피스칸 일족의 해수욕. 움직일 기운조차 떨어진 아르갈은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혀를 내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와우... 그건 도대체 뭐야?”

얼굴이 익을 듯한 열기에 인상을 찌푸린 바이런, 그러나 그의 호기심은 누르지 못했다. 프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보여줄게요. 여기서는 좀...”

“무... 무울... 피...”

아르갈이 헐떡이자 세이렌이 빠르게 물을 퍼왔다.

촤아악-!

물이 쏟아지자 아르갈이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살았다피...! 고맙다피...!”

“죄송합니다. 멋도 모르고...”

“아니, 괜찮다피. 이걸로 스틸리오를 상대할 수 있게 됐다피!”

아르갈은 후들거리며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물을 뚝뚝 흘리며 브류가 다가왔다피.

“후아, 놀랐다피.”

“미안...”

“그것보다 할 말이 있다피.”

머리를 흔들던 브류가 프레이의 손을 잡았다. 프레이는 다른 사람을 돌아봤다.

“아, 우리는 이미 들었어.”

“그래요?”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류는 프레이를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다른 피스칸이 없는지 확인하는 브류, 프레이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아무도 없냐피?”

“그런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인데?”

“프람이 정신을 되찾았었다피.”

프람, 프레이는 머릿속에 저장된 이름을 뒤적였다. 분명 스틸리오가 습격한 마을의 생존자였다.

“되찾았었다...?”

“잠깐 정신을 차렸다피. 다시 쓰러졌다피...”

브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보다 프람이 이야기해준 게 있다피. 스틸리오가 늪지를 무서워한다고 했다피.”

“늪지를 무서워해?”

브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피. 프람이 늪지대까지 도망쳤는데, 쫓아올 수 있는 거리였어도 쫓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피.”

“그런데 이유는 모르고?”

“그 전에 다시 쓰러졌다피...”

프레이는 턱을 매만졌다.

‘스틸리오가 늪지를 무서워한다고?’

이유가 뭘까. 그러나 프레이는 알 턱이 없었다.

“스틸리오를 늪지로 유인해 줘라피!”

“유인?”

“그렇다피! 놈들을 늪지로 유인해서 우리가 기습할 거다피!”

프레이는 브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마을을 비운 사이 브류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전에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조금 어른스러워진 느낌.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던가?

‘음... 늪지에서 기습이라...’‘

나쁘지는 않은 작전이었다. 정면 승부보다는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을 테니. 문제는 늪지로 유인할 방법이었다.

‘그렇군...!’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일단 훈련이 더 필요하겠지. 당분간은 훈련에 집중하도록 하자.”

“알았다피! 고맙다피!”

브류는 빠르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훈련이다피!”

* * *

3일이 흘렀다.

브류와 세이렌, 바이런은 훈련을 담당했다. 프레이는 일행과 함께 틈틈이 대련했다.

밤낮없는 훈련 덕분인지 이제 피스칸은 협공에도 능숙해져 바이런이 저항해도 쉽게 무너뜨렸다. 물론 바이런의 전투 스킬이 미숙한 것도 문제가 되긴 했지만, 세이렌도 번번이 넘어지는 걸 보니 요행은 아닌 것 같았다..

새총을 담당한 피스칸들은 백발백중은 아니더라도 60% 이상의 명중률을 보였다. 훈련으로 자신감이 생긴 덕분인지 무리를 지어 재료를 구하러 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프레이는 스틸리오 마을에 대한 정찰을 잊지 않았다. 프레이는 이전에 브류가 안내해준 언덕으로 올랐다.

‘음... 오늘도 변함이 없나?’

멀리 스틸리오 마을이 보인다. 늘 그렇듯이 사악해 보이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날과 달리 스틸리오들이 한쪽에 몰려 있었다.

‘뭐지?’

모여있던 스틸리오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곧 한 스틸리오가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그 손위에는 큼지막한 알이 들려 있었다.

‘알?’

스틸리오는 알을 들고 사라졌다. 다른 스틸리오도 서로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프레이는 곧장 마을로 돌아왔다.

넘어져 있던 바이런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대답했다.

“아... 아무래도 산란기가 된 모양이네.”

“산란기요?”

“그래, 그놈들도 파충류니까 알을 낳거든. 어... 맞아. 산란기라도 알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아. 스틸리오는 암컷이 그리 많지 않거든.”

바이런은 머리를 더듬었다. 예전에 검색했던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그래도 떠오르긴 했다.

“나름 밸런스 유지를 하는 거지. 그놈들이 쪽수도 많아봐.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거 아니겠냐. 아무래도 태어나는 스틸리오는 수컷 쪽이 많은 것 같아.”

바이런이 모래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 잠입하기에는 무리군요.”

“응?”

“아무래도 경계심이 최고조일 테니까요.”

대부분의 짐승은 새끼를 낳았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극도로 예민해졌을 테니까.

“음... 그러려나?”

“네. 슬슬 시작할 준비를 해둬야죠.”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런에게 맡긴, 발타라는 이름을 가진 스틸리오의 가죽.

그 가죽을 이용해 마을로 침투할 속셈이었다.

* * *

다시 3일이 흘렀다.

프레이와 바이런은 준비를 마쳤다.

“조심해라피.”

“예, 여러분도 준비를 해두세요.”

세이렌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같이 갈 수 없었다.

“세이렌, 피스칸을 부탁해요.”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면 될 터였다.

“그럼 제가 뒤쪽에서 붉은 심장을 꺼낼 겁니다. 그때를 노리세요.”

“알았다피.”

브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갈을 비롯해 노인들과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피스칸이 준비를 마쳤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프레이와 바이런은 빠르게 마을을 벗어났다. 전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괜찮겠지?”

“위험하니까 우리가 가는 거잖아요.”

바이런이 불안한 목소리로 묻자 프레이가 담담하게 되받았다. 스틸리오 마을에 잠입이 실패하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우리라.

그렇기에 유저인 바이런과 프레이만 가기로 했다. 바이런은 얼굴을 긁적였다.

“진짜 나보다 더 이렇게 빠져있는 놈은 처음이다.”

“네?”

“너 말이야, 너. 어떨 때 보면 네가 NPC같아.”

“아... 뭐, 그런가요.”

프레이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 얼버무렸다.

“아니, 나쁜 뜻은 아니고. 그래서 너랑 다니는 게 좋은 거니까.”

“그래요?”

“그럼. 다른 놈들이랑 다녀봐야 이런 모험을 즐기겠냐? 스킬 올려야 된다고, 득템 해야 한다고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만 하겠지. 무슨 인생을 쫓겨 사는 것도 아니고.”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저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웠다.

“놈들이 피스칸을 보기나 해봤겠냐? 이런 열대우림을 와보기나 했겠어? 참 안타까워, 그런 사람들 보면.”

“왜요?”

프레이는 되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물어보는 게 좋았다.

바이런이 술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니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아도 대화는 이어졌다.

“왜기는 인마. 현실에서 못해본 경험을 하려고 게임을 하는 건데. 참, 옛날보다 기술은 좋아졌는데 왜 사람은 안 바뀌나 모르겠다.”

“그래도 바이런은 다르잖아요?”

“그럼. 인마, 나 같은 형 또 없다. 잘해 인마.”

프레이는 돌아보며 웃었다. 그리고 칼을 꺼내 휘둘렀다.

서걱-

독사가 반 토막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바이런은 어색하게 웃었다.

“고, 고맙다야.”

“조심해야죠.”

“다음에는 말도 해줘...”

슬쩍 독사 옆으로 비켜나며 바이런이 말했다.

얼마 후 스틸리오의 마을이 보였다. 프레이는 입가에 손을 올렸다.

“계획대로, 알았죠?”

“그래.”

낮은 목소리로 다시 확인을 끝낸 둘은 천천히 마을로 다가갔다.

“누구냐!?”

스틸리오 경비병이 다가오는 둘을 보며 소리쳤다.

“오... 완전 새된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는데...”

바이런이 놀랐다. 겉보기와 달리 중후한 목소리였다.

“인간?”

경비병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눈을 깜빡이자 2개의 눈꺼풀이 번갈아 닫혔다가 열렸다.

“아, 저...”

“인간이 여기에는 무슨 볼일이지!”

경계심이 대단하다.

프레이는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일단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야 했다.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멍청한 소리! 애초에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적다. 무슨 꿍꿍이지!?”

겉보기에도 예리한 곡도를 들고, 여차하면 휘두르겠다는 기세. 게다가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바이런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쩌지?”

뒤에서 바이런이 속삭였다. 프레이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피스칸 족이 늪지로 출발했을 터였다.

“발타.”

프레이의 말에 경비병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눈이 더욱 매섭게 변했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지!?”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하겠습니다.”

프레이는 말을 마치고 입을 닫았다. 경비병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굴렸다. 그러나 곧 무기를 집어넣었다.

“네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여야 할 거다.”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경비병은 옆으로 비켜섰다. 프레이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느껴지는 시선, 스틸리오는 인간의 등장에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아, 헤미타 족장님.”

경비병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프레이는 헤미타라고 불린 스틸리오를 바라보았다.

‘족장인가.’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알 텐데, 외부인 하물며 인간이라니?”

헤미타는 목소리로 경비병을 찌르듯 내뱉었다. 경비병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허나, 이 자들이 발타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발타라고...?”

헤미타가 눈을 껌뻑였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다. 들어와라.”

경비병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프레이와 바이런을 향해 고갯짓했다.

따라 들어가라는 뜻.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캉-

곡도가 그들을 겨누었다. 안에 있던 호위병들이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이다.”

헤미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몸을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 내용에 따라 먹이가 될지도 모르지.”

꿀꺽-

바이런이 침 넘어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헤미타가 손을 들었다. 호위병들이 무기를 내렸다.

“자, 그대들의 목숨을 구제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라지.”

헤미타는 긴 파이프 담배를 톡톡 두드렸다. 곧 담배의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스틸리오는, 가죽을 중요시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군.”

헤미타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주둥이 끝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저희는 발타라는 스틸리오의 가죽을 찾았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헤미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발타, 그가 누구인지는 아는가?”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프레이는 생각해둔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그에 앞서 헤미타가 말을 받았다.

“나의 자식이자, 차기 족장이 될 아이였다. 그런데 너희들이 발타의 가죽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족장의 분노를 느껴서일까. 호위병은 다시금 곡도를 꺼냈다.

차가운 칼날이 뒷목에 느껴졌다. 그녀의 명령이면 프레이와 바이런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너의 말에 추호의 거짓이라도 느껴진다면, 내 아들을 보게 될 줄 알아라.”

헤미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레이는 저런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포식자가 먹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5%)]

[중급 검술 Lv4 (23%)]

[초급 단검술 Lv9 (2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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