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70화 (70/141)

<-- 16. 화산 동굴 -->

프레이는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큰 돌주먹이 자신을 향해 쇄도해 왔다.

급하게 검을 들려던 프레이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건... 부러진다...!’

이런 거대한 돌주먹에 검을 맞댄다?

만약 버틴다면 그 검은 명검은 아니더라도 꽤 훌륭한 물건일 것이다. 하지만 프레이는 브란에게 빼앗은 검이 그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쿠웅-!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세상이 멈춘 것과 같은 고요함이 찾아왔다.

콰지직-

용암 거인은 힘껏 주먹을 밀었다. 수호자로 만들어진 그것에게는 오로지 지켜야 한다는 본능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단단한 주먹에 생긴 균열은 처음으로 위협이라는 걸 느끼게 했다. 그동안 이곳을 방문한 도전자는 많았지만, 모두 화산 정령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동굴에 들어오면 강렬한 열기로 인해 도전자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기에 화염을 퍼붓는 화산 정령들까지 상대하려면 어지간한 화염 내성을 갖춰야 했다.

그 관문까지 통과하고 상대해야 하는 게 이 용암 거인이었다. 앞선 관문을 통과하면 지칠 대로 지쳤을 터, 용암 거인은 언제나 손쉽게 도전자를 물리쳤다.

그런데 이 도전자, 이 작은 인간은 달랐다.

“후우...”

지친 기색 하나 없다. 그것만으로도 비범하거늘, 황당하게도 다른 도전자와 달리 무기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맨주먹으로 자신의 주먹을 상대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주먹이 자신의 주먹을 버틴 것도 모자라 일부분을 파쇄했다.

투두둑-

주먹의 잔해가 바닥에 떨어졌다.

프레이는 철렁 내려앉은 심장을 추슬렸다. 아무리 이퀄라이저 특성을 믿는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큰 주먹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된다...!’

그래도 버텨냈다. 눈앞에 솟아난 용암 거인의 힘은 무지막지하다.

다행히 몸이 용암 속에 잠겨있는 걸로 보아 저기서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기동성은 자신이 위였다.

‘목적은 이 괴물을 상대하는 게 아니야...!’

그의 목적은 오로지 용암 거인의 뒤쪽에 있는 화산석. 저것만 가져가면 될 일이었다.

‘이 힘이라면 단번에 뜯어낼 수 있겠어.’

슈우우욱-

프레이는 바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주먹으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아예 용암 거인이 바닥에 먼지를 털 듯,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이런...!’

피할 방법도 없다. 다시금 정면으로 부딪쳐야 했다.

쿠우웅-!

작은 인간의 주먹과 거대한 돌 벽의 격돌.

쩌적-

용암 거인의 팔에 균열이 생겼지만 팔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프레이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잠시 후.

“크악!”

강렬한 충격에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벽에 부딪친 프레이는 그대로 앞으로 떨어졌다.

“으...”

고통은 크지 않았다. 용암 거인의 방어력이 적용되고 있었으니까.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

살면서 하늘을 날아 벽에 처박히는 경험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으니 2차 공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용암 거인은 이 작은 도전자를 봐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제길...!”

짧게 한탄했다. 그러나 한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프레이는 빠르게 위로 도약했다.

‘우앗...!?’

급한 나머지 전력을 다해 뛰었다. 프레이는 멀어지는 땅바닥과 그 위를 지나가는 용암 거인의 팔을 보고 당황했다.

용암 거인의 힘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 도약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프레이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바닥을 굴렀다.

“크윽...”

너무 강한 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레이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젠장... 너무 강해도 문제군...’

그 뒤로 연거푸 공격을 피하며 프레이는 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얼마만큼의 힘을 주어야 하는지, 용암 거인의 공격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다시금 날아오는 돌주먹. 프레이는 살짝 발에 힘을 줘 옆으로 뛰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주먹. 프레이는 곧바로 돌아서서 몸을 날렸다.

콰지직-!

그의 주먹이 용암 거인의 돌주먹에 박혀 들었다. 용암 거인이 빠르게 다시 팔을 들었다.

‘부순다...!’

프레이는 용암 거인의 주먹을 따라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래도 주먹을 놓지 않았다.

다른 주먹으로 연거푸 손목 부분을 후려쳤다.

한 번, 균열이 일어났다.

두 번, 균열이 벌어진다.

세 번,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네 번, 손목이 들썩였다.

크워어어어어-!

용암 거인이 포효했다. 프레이는 팔 부분에 매달려 다리로 벌어진 손목을 내리쳤다.

쿠우웅-!

주먹이 떨어지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거기서 프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높이 들린 팔을 타고 어깨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힘 그대로 용암 거인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꿀럭- 꿀럭-

용암 거인이 흔들리며 용암이 넘치기 시작한다. 프레이는 빠르게 몸을 굴려 바닥에서 일어섰다.

툭- 투둑-

턱 부분이 부서졌다. 그 사이로 용암이 떨어진다.

‘이 정도면 정신을 못 차리겠지.’

프레이는 빠르게 앞으로 내달렸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화산석이니까.

그런데.

꿀럭-

거인 주변에 용암 수위가 낮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거인의 입.

촤아아악-!

‘뭣...!?’

프레이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가 있던 자리로 찐득한 용암 줄기가 떨어졌다.

‘용암을 뱉어?’

용암 거인이 얼굴을 돌렸다. 뱉어낸 용암은 고온을 유지하며 길을 막는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꽤나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제기랄...’

다행이라면 용암을 보충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프레이는 그 틈을 노려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내 곧 다시 거인의 입에서 용암이 분출된다.

‘끈질기군!’

용암을 맞아도 살아날 자신은 있었다. 용암 거인의 몸이 용암에 잠겨 있으니 피해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프레이가 걱정하는 건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 인벤토리야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의 무기와 갑옷은 용암을 버텨낼 수 없을 테니까.

그대로 용암을 맞으며 돌진한다면, 그는 알몸으로 피스칸 마을에 돌아가야 할 터였다. 피스칸도 변변한 장비조차 구하지 못하는 곳이니, 지금 장비를 잃으면 곤란했다.

‘거추장스럽게...’

다행이라면 공격 패턴이 용암 뱉기 하나로 고정됐다는 점이었다.

점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 프레이는 결국 단검을 빼 들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다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용암. 프레이는 옆으로 피하고 용암 거인을 향해 뛰었다.

높게 떠오른 그의 몸은 거인의 가슴께에 떨어졌다.

“크윽...!”

있는 힘껏 양손에 든 단검을 내리쳤다. 단검이 거인의 가슴에 박혀 들어가며 추락을 면했다.

검은색 일변도의 단검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단검이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프레이는 빠르게 단검을 빼내 용암 거인의 몸을 타고 올랐다.

촤아아악-

‘큭!’

용암 거인이 입을 여는 순간, 프레이는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가 있던 자리에 용암이 쏟아진다.

‘쉴 틈이 없다!’

콱- 콱- 콱- 콱-

단검을 쉴 새 없이 박아 용암 거인을 올랐다. 단검은 이제 시뻘겋게 달아올라 원래의 색을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됐다...!’

목까지 올라온 프레이는 단숨에 용암 거인의 입을 잡았다. 다른 한 손은 뺨에 박아 넣었다.

“흐아아아!”

크워어어어-!

모든 힘을 쏟아 용암 거인의 턱을 뜯었다. 입가를 타고 용암이 흘러내린다.

쩌적- 쩌저적-

턱에 일어난 균열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크게 허리를 뒤로 뺐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균열 부분을 걷어찼다.

턱이 떨어짐과 동시에 프레이는 거인의 어깨를 넘었다.

‘이걸로 분출은 막았다!’

용암이 길을 막는 일은 없으리라.

등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간 프레이는 곧바로 화산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손이 화산석을 붙잡았다.

맥동하듯 화산 벽으로 퍼지던 붉은빛이 거꾸로 화산석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됐어...!’

프레이는 손에 든 화산석을 바라보았다.

* * *

“미쳤어요!?”

“가야 해요! 프레이가...!‘

바이런은 빠르게 앞을 막았지만 세이렌은 막무가내였다.

프레이가 화산 안에 갇혔다. 아직 늦지 않았다.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하다니까요!”

바이런이 세이렌의 손목을 낚아챘다. 세이렌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뿌리쳤다. 아직 그녀에게 프레이 외의 남자가 손을 대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미안, 미안해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요.”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세이렌은 바이런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바이런도 할 말은 있었다.

“프레이 말 못 들었어요? 위험한 거 알고 간 거예요. 게다가 유저니까 죽어도 며칠만 기다리면 살아난다고요!”

“알아요. 그래도, 그래도...”

세이렌은 바이런의 설명을 듣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그녀도 프레이가 부활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두렵게 만드는가?

“진정하고, 일단 마을로 돌아가서 프레이를 기다립시다. 예?”

‘그런...’

세이렌에게 바이런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해답을 찾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나...’

프레이가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게 두려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대로 영영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신성제국 수도에 도착해 마틴을 대신해 볼모로 잡힌다면, 헤어지게 될 운명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불안해하는 걸까.

답은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프레이와 함께하고 싶었기에. 자신에게 자유를 찾아준, 자신의 운명을 바꿔준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이렌은 마치 홀린 듯이 피스칸 마을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브류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세이렌! 무슨 일이냐피!? 화산이 터졌다피?”

세이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친 듯이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덕분에 질문은 바이런에게 돌아갔다.

“그게...”

설명하려는 찰나 아르갈도 바이런을 찾았다. 아르갈의 모습을 보자 바이런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르갈 어르신! 말씀하신 거랑 다르잖아요!”

“아니, 무슨 말이냐피?”

아르갈이 놀라 되물었다.

“가보니까 무슨 정령들이 득실득실하던데요!?”

바이런의 설명을 들은 아르갈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 심, 심층부까지 들어갔단 말이냐피?”

“그러면요? 화산석이 거기 있더만!”

“아니다피! 화산석은 동굴만 뒤지면 나온다피! 전사가 찾은 건 화산석이 아니다피!”

아르갈이 되려 성을 냈다. 바이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정해야 했다. 프레이에게 선두를 맡긴 나머지, 주변을 살피는 데 소홀했다는 것을.

아르갈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화산석은 동굴 초입부에서 살펴보면 금방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것에 이끌렸고, 열기를 피해 도망쳐 나왔다.

프레이를 놔두고.

“예? 아니, 잠깐 그러면 그건...?”

“화산이 멈췄다피!”

브류의 외침에 바이런은 화산을 돌아보았다. 마치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깨어난 화산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 * *

[‘이그니스의 붉은 심장’]

[불의 신 이그니스의 정수가 담긴 마정석입니다. 마정석 자체로 강력한 열기를 내뿜을 수 있으며 소지자는 화염과 열기에 면역을 얻게 됩니다. 장비 및 오토마톤 등에 부착할 수 있으며 효과는 부착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름이...?’

설명은 둘째치고 일반적인 이름과 달랐다. 마치 이름이 있는 적이 다른 놈들보다 강한 것처럼, 다른 아이템보다 좋은 건 아닐까?

크워어어어-!

‘아차...!’

아이템 메시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용암 거인이 포효를 내질렀다. 프레이는 뒤이은 공격을 대비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쿠쿵- 쿵-

용암은 빠르게 굳었으며 거인은 형태를 잃고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프레이가 느꼈던 강력한 힘 역시 사라졌다.

‘이런...!’

그러나 그건 지금 없어져서는 곤란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내달렸다. 용암 거인의 사체가 길을 막기 전에.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9%)]

[초급 단검술 Lv9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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