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화산 동굴 -->
같은 시각, 피스칸 마을.
피스칸 족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 일행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힘들다피! 좀 쉬자피!”
“이거 또 부러졌다피!”
바이런을 대신해 인간 크기로 세워둔, 나무와 줄기로 엮은 허수아비를 상대하는 게 재미있을 리 없었다. 바이런은 넘어지면서 반응이라도 했다.
‘당했다!’던가, ‘정말 대단하다!’는 둥 피스칸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허수아비는 아무런 말도 없었고, 넘어뜨리고 나서 다시 세워야 한다는 귀찮은 과정까지 있었던 것. 그렇기에 피스칸은 점차 훈련을 미루기 시작했다.
“우리도 쉬자피!”
“갈퀴가 찢어지겠다피!”
새총 훈련도 매한가지. 단창을 훈련하는 무리와 달리 쏘는 재미는 있었지만 줄기를 당길 때마다 갈퀴가 걸려 고통이 느껴졌다.
훈련을 독려하거나 감시할 세이렌도 없는 상황. 결국 새총 쪽도 늘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뭐 하는 거냐피!”
브류가 버럭 화를 냈다. 쉬고 있던 피스칸 족은 인상을 찌푸렸다.
“브류! 왜 화를 내냐피!”
“지금 쉴 때가 아니다피! 아직 스틸리오를 이길 수 없다피!”
브류는 답답했다. 온종일 훈련에 매진해도 스틸리오를 이길 수 있을까 걱정되는데,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동족들을 보니 열불이 터졌다.
“휴식도 훈련이다피.”
“인간들에게 맡기면 안 되냐피?”
“맞다피. 그들은 강하다피.”
피스칸 족이 소곤거렸다. 브류는 이런 점이 싫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건만, 그런 일은 쉽사리 인간에게 맡기다니. 그렇게 도망쳐서야 되겠는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쩔 거냐피!”
“인간들 사라졌냐피?”
“우리를 버린 거냐피?”
피스칸 족이 놀라서 물었다. 브류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다피! 그들은 화산 동굴에 갔다피!”
“그럼 뭐가 문제냐피?”
인간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는 물음.
“그들이 계속 여기 있는 건 아니다피. 우리는 우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피!”
브류는 절친한 프람의 상태를 계속 지켜봐 왔다. 그렇기에 안전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그들 역시 프람처럼 변해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스틸리오를 상대하다가 죽으면 어떡하냐피.”
인간들이 있을 때는 하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계속 맴돌았던 질문.
전쟁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발생할 터. 누구도 그 사상자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피.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되냐피?”
“맞다피. 스틸리오도 해안가까지 오지는 않을 거다피.”
힘든 훈련,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피스칸 족은 언제나 도망치며 살아왔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마을을 옮겼다. 프람네 마을은 그저 도망치는 게 늦었을 뿐.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거냐피?”
브류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바다로 도망친다? 오히려 육지보다 그곳에 포식자가 더 많았다.
“우리는 정글에서, 바다에서 도망쳤다피. 결국 우리는 육지도 바다도 아닌 해안가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피.”
브류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브류는 세이렌의 말을 기억했다.
겁쟁이를 버리지 않는다. 겁쟁이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갑자기 용기를 내라 한들 용기가 샘솟을까?
‘용기는 어떻게 내는 거냐피?’
‘나도 같은 질문을 했었어. 스승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지.’
브류는 그 대답을 떠올렸다.
“우리가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피? 이대로 스틸리오를 놔두면 해안가까지 오게 될 거다피!”
이유 없는 용기를 만용이라고 부른다. 겁쟁이에게 필요한 건 만용이 아니었다.
“우리의 자식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피? 우리의 모습을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냐피?”
‘용기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겁쟁이들에게 싸워야 할 이유를 알려줘라.’
세이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브류는 아직 어린 피스칸을 가리켰다. 그의 손을 따라 다른 피스칸들이 눈을 돌렸다.
꼬물거리는 아기 피스칸을 품에 안은 어미 피스칸이 보였다.
“후대에도 도망치는 삶을 물려줄 거냐피? 아니다피! 우리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켜야 한다피!”
브류는 모두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프람과 같은 피스칸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그의 진심을 담아서.
“창을 들어라피!”
브류가 소리를 높이자 피스칸족이 움찔했다. 그들은 모래 위에 내려둔 단창을 바라보았다. 하나씩, 피스칸 족이 단창을 쥐었다.
“무기를 놓지 마라피!”
브류는 고개를 돌려 새총 쪽을 바라보았다. 하나씩 새총을 다시 잡았다.
모두의 시선이 브류에게 쏠렸다. 아기를 안은 어미도 힘들어 누워 있던 병사들도, 그 사이에서 묵묵히 연습하던 일부 피스칸의 눈이 브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되찾는다피!”
“맞다피! 더 이상 도망은 지쳤다피!”
“우리는 전사도 쓰러뜨렸다피!”
바이런은 엄밀히 말해 전사가 아니었지만, 피스칸은 프레이 일행 모두가 전사라고 생각했다.
아르갈 역시 그들의 오해를 굳이 고쳐주지 않았다. 전사가 많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든든할 테니까.
“피스칸도 싸울 수 있다피!”
“피스칸도 싸울 수 있다피!”
브류가 선창하자 다른 피스칸들이 따라 한다.
“훈련이다피!”
“간다피!”
피스칸이 일어나 허수아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새총 무리 역시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였다.
브류는 그들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세이렌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피...!’
누구도 그들의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꾸려 하면 바꿀 수 있었다.
“브류! 여기 있었구나피!”
“아르갈 할아버지? 무슨 일이냐피?”
브류는 아르갈의 표정에 놀라서 물었다. 브류가 프레이 일행을 대신해 훈련을 감독하는 동안 프람의 간호를 부탁했었다.
아르갈이 지팡이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프람, 프람이 정신을 차렸다피!”
* * *
화르륵-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프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화살과 화염구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중에 하나라도 적중하면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콰앙-!
프레이에게 화염구가 적중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프레이는 그 충격에 뒤로 쓰러졌다.
화산 정령은 이 멍청한 침입자가 통째로 구워졌으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아... 충격은 면역이 아니구나...”
벌떡, 상체를 일으킨 프레이.
웅- 웅웅-
화산 정령들은 당황한 듯 공명했다. 분명 정확히 화염구가 적중했건만, 어떻게 멀쩡히 서 있단 말인가?
프레이는 욱신거리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화염 자체는 완전 면역이군.’
이퀄라이저 특성의 이점. 알라칸과 타리아난 등 독을 사용하는 적들과 싸우며 깨달았다. 독을 사용하는 적은 그 자신이 사용하는 독에 보통 면역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스테이터스를 이용하는 프레이 역시 면역력을 얻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이 극대화되는 게 바로 눈앞에 있는 정령류의 적이었다.
화산 정령이 내뿜는 불길에 화산 정령이 다치겠는가?
문제는 화염구가 터져 나오는 충격까지는 버틸 수 없었다. 프레이는 처음 공격에서 배운 점을 기억하며 움직였다.
‘검이 무겁다...’
프레이는 단검을 빼 들었다. 아무래도 속성공격을 주로 하는 적이다 보니 힘과 민첩이 낮았던 것.
화르륵-!
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크젤이 사용했던 것처럼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마법.
그러나 불길이 잦아들고 나타난 프레이의 모습은 멀쩡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머리카락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올랐다.
‘거추장스럽게...’
단검을 쥐었지만 싸우려는 마음은 없었다. 바이런의 말대로 저런 돌에 부딪쳐봤자 단검만 상할 뿐이었다.
최대한 화산 정령과 부딪치는 일을 피하며 화산석을 향해 달려갔다. 이전과 비교해 답답할 정도로 느린 속도였지만, 화산 정령이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도망칠 틈은 충분했다.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화산 정령이 쫓아오지 않았다.
‘후...’
문제는 계속 화산 정령에게 시비를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자칫 이퀄라이저 특성이 해제되기라도 한다면 그 자리에서 통구이가 될 테니까.
그렇게 일정 구간마다 화산 정령을 건드리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다 왔다...!’
심층부에 도달했다. 위에서 바라봤던, 시종일관 붉게 빛나는 돌이 보였다.
이것만 가져가면 끝이다.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쿠르르르릉-
우웅- 웅- 우우웅-
화산, 그 자체가 몸을 떨 듯이 지반이 흔들렸다. 화산 정령들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고, 공명 소리는 커졌다.
꿀럭- 꿀럭-
용암이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뭐야? 뭐가 어떻게...!?’
* * *
세이렌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요?”
“뭔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바이런은 눈을 껌뻑였다. 세이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바이런은 검을 휘휘 저으며 줄기를 잘라냈다.
“프레이때문에 그래요? 걱정 돼서 조금 예민해진 거 아닙니까?”
“그런가...”
세이렌도 단검을 들어 열대우림을 헤쳐 나갔다. 어디서 독사나 독충이 나타날지 몰랐기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그래도 고놈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뭘 했는지 몰라도 실력 하나는 확실하니까.”
“그건... 알고 있어요.”
제트람을 상대로 몇 수를 버텼던 몸이다. 제트람의 실력을 알고 있는 그녀가 프레이를 과소평가할 리 없다. 그러나 그래도 불안했다.
‘나도 참...’
언제부터 이렇게 프레이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 걸까.
자신을 고블린들에게 구해줬을 때부터? 그 엿 같은 레이판에게서 구했을 때?
‘아니면... 처음 내 속내를 털어놨을 때일까...’
처음에는 동경이었다. 구속받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유저들에 대한 선망, 그러나 인연이 겹쳐 결국 그의 보호를 받게 되고, 프레이와 함께 여행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누가 이런 처지가 됐으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의 말대로 운명이라는 건, 정해지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그래... 프레이라면...’
프레이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프레이를 믿기로 했다.
콰아아아앙-!
“우악! 뭐야!?”
강렬한 폭발음에 바이런이 반사적으로 엎드리며 소리쳤다. 세이렌도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맙소사...”
세이렌은 입을 크게 벌렸다. 높이 솟은 화산구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바이런은 주위를 살피다가 세이렌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화산이 폭발했다.
* * *
프레이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정신이 없었다.
쿠릉- 쿠르르릉-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화산이 흔들렸다. 꿀렁이던 용암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가 생겼다. 용암이 흘러넘쳐 화산석으로 가는 길이 잠겨버렸다.
‘용암도 버티려나...?’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용암까지는 버티지 못하니까 정령들이 밖에 나와 있지 않겠는가. 무리한 시도로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돌아가야 하나...!?’
목표가 바로 눈앞이었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곧 더 큰 문제가 드러났다.
촤아아악- 쿵-!
암석이 용암 속에서 솟아나더니 곧 바닥을 내리찍었다. 프레이는 그 충격에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뭣...!?’
프레이는 중심을 잡으며 솟아난 암석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암석과 연결된 짧은 암석 5개.
‘이건... 마치...’
손처럼 보였다.
촤아아악- 쿵-!
곧이어 다른 쪽에서도 똑같은 암석이 솟아났다.
‘이런 제길...!’
프레이는 곧장 뒤로 돌았다. 그러나 넘쳐흐른 용암이 출구를 막았다.
촤아아아아악-!
먼저 솟아오른 암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암석이 솟아올랐다.
프레이는 눈앞에 솟아오른 거대한 인간형의 암석을 마주했다.
‘몬스터인가!?’
크워어어어-!
바위가 포효했다. 암석 사이로 흐르는 마그마가 눈에 선명했다.
마치 화산석을 지키듯 상반신을 드러낸 거인은 길을 막아섰다.
프레이는 단검 대신 검을 쥐었다. 비록 검이 통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용암 거인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용암 거인은 기다리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마치 하늘을 뒤덮듯 프레이를 향해 손이 날아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9%)]
[초급 단검술 Lv9 (14%)]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