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화산 동굴 -->
경계선.
화산 근처는 마치 사막처럼 풀 한 포기 나지 않았다. 반면 뒤쪽에는 울창한 우림이 건재하게 모습을 과시하고 있었다. 열대우림과 화산은 마치 선을 그어놓은 듯 그 모습이 달랐다.
“후아... 벌써부터 덥네.”
“그러게요...”
바이런과 세이렌은 진땀을 흘렸다.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바이런도 세이렌도 소매를 걷어 올렸다. 프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르갈이 말한 입구가 이 근처일 겁니다.”
프레이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냈다. 다른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랐다.
피스칸은 열기에 약하기에 이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브류가 특히 미안해했지만 어쩌겠는가. 같이 따라왔다가는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다.
“그 화산석이라는 거,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세이렌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바이런은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껌뻑였다. 그녀는 그에게 물어보는 게 맞다는 듯 짧게 머리를 움직였다.
“어... 뭐, 찾기만 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유저들은 보면 대충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있거든요.”
프레이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세이렌은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산을 따라 돌기를 한참.
프레이는 기껏해야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들어갈 틈을 발견했다. 그 뒤쪽에는 어두운 굴이 있었다.
“여기에요?”
“음... 그런 것 같은데요.”
“하... 뭔 입구가 이러냐.”
바이런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곧 프레이가 앞장서자 그는 목을 닦아내며 발을 내디뎠다. 세이렌은 가장 뒤에서 그들을 따랐다.
좁은 틈을 지나 둥그런 공터가 나왔다.
“대놓고 여기서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장소네.”
“준비요?”
“보나 마나 뻔하지. 그냥 화산 동굴이겠어? 던전이지, 던전.”
바이런은 능숙하게 인벤토리를 열어 물건을 점검했다. 도시에 들르지 않았으니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어디 보자... 여기 안에 있는 놈들한테 독이 통하면 좋겠는데...”
바이런은 미리 만들었던 정글 거미 독을 한 병 꺼내 세이렌에게 건넸다.
“이게...”
“독이니까 조심해요. 거, 직접 만지지는 말고 화살촉이나 단검을 넣었다가 빼면 될 겁니다.”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독약병을 붙잡았다. 프레이 역시 독약병을 받고 세이렌에게 말했다.
“되도록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활을 이용해주세요.”
“그런데 우리가 맞고 막...”
바이런이 큭큭거리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세이렌은 진담으로 받아들였는지 표정이 굳었다.
“아, 죄송함다...”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짐을 정리하는 바이런을 뒤로하고 프레이는 미리 검에 독을 부었다.
“일단 전투는 제가 주로 할 겁니다. 바이런은... 세이렌 옆에서 보조해주세요.”
솔직하게 바이런은 실력이 없었다. 전투 쪽 스킬을 익히지 않아서인지 전력이 되기에는 어려웠다. 차라리 세이렌이 나으면 나았지.
문제는 세이렌은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는 점, 그렇기에 되도록 바이런이 대신 막아줘야 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바이런이 씩 웃었다. 프레이는 세이렌을 돌아보며 조용히 소곤거렸다.
“바이런 좀 잘 부탁해요.”
“알았어요.”
세이렌은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주의했다. 프레이가 자신에게 부탁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적어도 그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럼 들어가죠.”
프레이가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녹아내리는 화산 동굴’에 진입합니다.]
[던전에서 사망 시 입구에서 부활합니다.]
“아, 역시 던전이네.”
바이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던전의 이름처럼 마치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모닥불을 직접 앞에서 쬐고 있는 기분, 문제는 그 모닥불이 사방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네.”
바이런이 연신 이마에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세이렌은 입을 열 기운조차 없는 것 같았다.
‘혼자 올 걸 그랬나...’
프레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그가 혼자 왔다면 신경이라도 덜 쓰였을 텐데.
‘그래도... 꼭 와야 한다니까...’
세이렌이 고집을 부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바이런 역시 피스칸 사이에 남는 건 싫다고 말했다. 게다가 화산석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니 되도록 많은 사람이 가는 편이 안전하다는 이유에 설득당했다.
‘괜히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프레이는 어깨에 얼굴을 문질러 땀을 닦아냈다.
동굴은 어두웠지만 벽이 은은한 붉은색으로 빛이 났다.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붉은빛이 주기적으로 어둠을 밝혔다.
“화산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세이렌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급하게 손을 들었다.
“쉿...”
“왜... 뭐야?”
“뭔가 있습니다.”
프레이가 입가에 손가락을 올렸다. 세이렌과 바이런 모두 숨을 죽였다.
웅- 웅웅-
뭔가가 공명하고 있었다.
프레이는 자세를 숙였다. 다른 이들 역시 그를 따라 했다.
벽이 점점 좁아지며 동굴의 끝이 보인다. 그 뒤에는 마치 횃불을 세운 듯 밝았다. 프레이가 천천히 끝으로 움직였다.
웅- 웅웅-
공명은 더욱 커졌다. 프레이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기어서 끝을 내다보았다.
“오...”
“맙소사... 정령이잖아?”
세이렌이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바이런은 인상을 찌푸렸다.
바위가 허공에 떠다닌다. 부유하는 바위는 불이 붙은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 속에 또 다른 불길이 눈과 입처럼 움직였다.
“정령이요...?”
“딱 봐도 정령이지. 아... 아르갈 그 할배, 아무것도 없을 거라더니...!”
바이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땀 흘리며 왔는데 정작 정령들이 있으니 화산석은 구경도 못 할 처지가 아니던가. 아르갈이 정확하게 이야기해줬다면 시간과 체력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왜요? 정령은 못 해치웁니까?”
“아니, 잡기야 잡지. 정령도 몹이니까. 그런데, 카운터가 있어야지.”
“카운터?”
세이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이런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정령은 신체가 자연물질로 돼 있어서 일반적인 무기로는 상대가 어려워. 그래서 반대되는 성질의 마법이나 마법무기로 상대해야 해. 지금 저 불타는 놈들을 상대하려면 빙결계나 대지계열 혹은 바람계열이 좋겠지.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잖아?”
불을 잡으려면 물을 뿌리든 흙을 뿌리든, 아니면 공기를 차단하든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마법무기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속수무책이라는 사실.
“그냥 무기로는 못 잡아요?”
“그게... 그럴 수 있기는 한데, 웬만큼 강해야 할 거야. 내가 알기로 정령들 몸에는 핵이 있거든. 그 핵이 정령들의 형태를 구성하는 데 핵이 없으면 다시 정령계로 돌아가지. 그런데 그 핵이 보시다시피 저런 튼튼한 바위 같은 걸로 보호를 받고 있단 말이야.”
바이런이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프레이도 그의 시선을 따라 불타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러면 무기가 상해버려요. 솔직히 수지가 안 맞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유저들은 정령이 나타나면 무식하게 덤벼들지를 않아요.”
바이런이 손을 내저었다.
이건 불가능이다. 괜히 나섰다가 피해만 볼 게 분명했다.
그는 셈이 빠른 남자였다. 비록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지만 뺄 때는 빼야 했다. 지금까지 쓴 시간이 아깝다고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돌아가자. 어차피 저놈들 독도 안 통해. 신체가 저딴 바위랑 불로 되어있는데 독이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세이렌은 눈을 돌렸다. 프레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산석은 저건가...’
그의 눈이 길을 따라 움직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선으로 뻗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부글거리는 용암이 보인다. 용암 근처에 정령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벽에는 붉은빛을 머금은 돌이 박혀 있었다.
다른 벽이 맥동하듯 붉은빛을 내뿜는 반면, 그 돌들은 시종일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저것이 화산석이리라.
“돌아가요.”
프레이는 결정을 내렸다. 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게 옳은 결정이다. 바이런이 빠르게 돌아서며 말했다.
“좋아, 얼른 돌아가자고. 사우나도 오래 하면 쓰러진다니까.”
“사우나가 뭐에요?”
세이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쉽게 돌아가겠다는 건가. 그녀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게 있어요. 프레이? 뭐해?”
바이런이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돌아가요.”
“그래, 돌아가자고.”
바이런이 눈을 껌뻑거렸다. 돌아가자면서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아뇨, 두 분 돌아가시라고요.”
프레이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세이렌과 바이런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너는?”
“저 혼자 가보겠습니다.”
프레이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뭐? 미쳤어?”
세이렌이 놀라서 낮게 소리쳤다. 바이런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아니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두 분은 일단 마을로 돌아가 계세요.”
“아니, 이건 안 된다니까? 어떻게 잡게?”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위험하니까 일단 돌아가요.”
프레이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정령들의 모습을 보고서 떠오른 가능성.
‘일단 내 이퀄라이저 특성이 들켜서는 안 되니까...’
이퀄라이저 특성은 리반에게 복수를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특성을 숨겨야 했다. 만약 그의 특성이 리반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에 따른 대책을 준비할지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의 특성은 온전히 자신만 알고 있어야 했다.
“하... 미치겠네. 뭔 고집이 이렇게 세.”
“프레이...”
바이런은 혀를 내둘렀다. 세이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유저니까.”
프레이는 엷은 미소와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이런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졌다, 졌어. 네 맘대로 해라. 아유, 한 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백번 말해 무엇하랴. 직접 당해보면 알 것이다. 바이런의 생각은 그랬다.
프레이는 다시금 세이렌에게 속삭였다.
“무사히 돌아가도록 부탁할게요.”
“하...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세이렌은 프레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프레이도 몸을 돌렸다.
“꼭 돌아와야 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약속은 지킬 테니까.”
프레이는 가볍게 웃었다.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에 프레이는 곧장 밑으로 내려갔다. 용암이 가까워지자 숨이 턱 막혔다.
뜨거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고작 몇 걸음 내려왔을 뿐인데 환경이 바로 달라졌다.
‘확실히... 아르갈의 말과는 전혀 다르군...’
그가 어릴 때라니 얼마나 오래전인지는 몰라도, 화산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이런 열기 속에서 피스칸은 물론 웬만한 생물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전신이 축축해졌다.
동굴 안이 모닥불과 같은 열기였다면, 지금은 마치 화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만약 자신의 몸이 철이었다면,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리라.
웅- 웅웅-
공명은 정령들의 의사소통일까. 소리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렁이는 불길, 정령들이 프레이의 등장을 눈치챈 듯 몸을 돌렸다.
‘혹시 적대적이지는 않다거나...?’
아주 낙관적인 기대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손은 검을 빼 들었다.
화르륵-!
프레이 근처의 정령들의 불길이 치솟았다. 역시 무사히 보내줄 리 없었다.
‘제발 생각대로 돼야 할 텐데...!’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화산 정령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느껴졌던 열기가 가라앉았다.
프레이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숨이 막히던 열기가 마치 청량한 산들바람처럼 느껴졌다.
‘좋아...’
웅- 웅웅- 우우우웅-!
공명이 터져 나왔다.
불타는 바위가 프레이를 향해 달려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9%)]
[초급 단검술 Lv8 (96%)]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