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피스칸 -->
바이런은 눈을 껌뻑였다.
“뭐?”
“스틸리오도 종교가 있나 해서요.”
그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 질문이 왜 나오는 걸까.
‘몬스터 중에 종교가 있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바이런은 기억을 더듬었다. 스틸리오에 대한 특성을 조사하면서 기억해두었던 정보들.
“아니... 내 기억에 종교는 없어. 스틸리오의 종교관은 오크랑 비슷해. 조상과 자연을 섬기지. 신 자체는 믿지 않을걸.”
“음... 그렇군요.”
“그 가죽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스틸리오 놈을 만난 거야?”
“네? 아, 그건 아니고요.”
프레이는 짧게 설명했다. 여왕거미의 둥지를 털었다는 내용.
“오오... 역시 리퀴두스가 보낸 전사로다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아르갈이 찬사를 보냈다. 프레이는 그저 멋쩍게 웃을 따름이었다.
“운이 좋은 겁니다. 다행히 상대할 독이 있었으니까요.”
독이라는 말에 세이렌이 흠칫 몸을 떨었다. 뒤늦게 프레이는 실수를 눈치챘다.
“아... 그...”
그녀에게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으리라. 세이렌은 고개를 돌렸다.
눈치가 빠른 바이런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곤란한 상황이라는 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 그, 그래도 그 가죽이 있으면 스틸리오 마을에 잠입할 수 있겠는데?”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행히 시선은 자신에게로 집중되었다. 바이런은 팔짱을 끼고 설명했다.
“아까 말했듯이 스틸리오는 조상과 자연을 섬겨. 자신들이 죽게 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순리라고 생각해.”
바이런은 프레이가 들고 있는 가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스틸리오의 가죽은 쉽게 부패하지 않아. 그래서 스틸리오는 죽어서 남는 것이 자신의 가죽이라고 생각을 하지.”
“음... 그렇군요.”
“그래서 스틸리오는 가죽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가족은 죽은 스틸리오의 가죽을 벗겨서 집안에 걸어두지. 죽은 스틸리오가 가족을 지킨다는 의미로 말이야. 그게 스틸리오의 장례식이야.”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의 가죽이라고 생각하니 역겨웠기에.
“그런데 그게 잠입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뭐... 그 가죽을 돌려주려고 왔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스틸리오는 개체 수가 적어서 동족애가 강하거든. 그 가죽을 돌려주면 꽤나 좋아할걸?”
프레이는 가죽을 내려다보았다. 이리저리 돌려보니 어깨 부분에 뭔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발타]
아무래도 죽은 스틸리오의 이름이 아닐까.
“잠입을 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프레이는 턱을 매만졌다.
“그 독은? 여왕거미를 해치운 독은 다 썼어? 아...!”
바이런은 입을 열었다가 황급히 닫았다.
다행히 세이렌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 다 썼어요.”
“으... 아깝다.”
만약 독이 남았다면 음식에 섞든 물에 섞어서라도 중독을 시킬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 자체가 없으니 문제였다.
“여왕거미 독은 어떨까요?”
“아, 차라리 그게 낫겠네.”
“혹시 빈 병 있어요?”
“응? 아아, 있지.”
빈 병이라면 많았다. 알뜰한 바이런은 포션을 먹고 나서 빈 병을 챙겨뒀으니까.
프레이는 독낭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독낭을 쥐고 단검으로 구멍을 냈다.
주르륵-
“조심해요. 묻지 않게.”
프레이는 구멍으로 흐르는 독액을 병에 흘렸다. 천천히 초록 독액이 병에 찼다.
그렇게 병 하나를 다 채우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글 거미 독]
[정글 거미의 독낭에서 추출한 독액. 독에 노출되면 피부가 부어오르며 고통이 느껴진다. 독의 지속시간은 약 8시간.]
8시간 동안 고통에 겨워한다. 게다가 죽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짜증 나는 독이군.’
차라리 죽는다면 모를까, 독에 당한 동료를 놔두고 갈 수는 없으리라. 스틸리오의 동족애가 강하다니 꽤 유용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독낭을 비우고 프레이는 여왕거미의 독낭을 꺼냈다.
“우와... 이건 또 뭐야?”
“여왕거미 독이죠.”
바이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독낭보다 월등히 컸으니까.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독액을 추출했다.
‘음?’
[여왕거미 독]
[여왕거미의 독낭에서 추출한 독액. 독에 노출되면 피부가 부어오르며 고통이 느껴진다. 중독된 대상이 두려워하는 환상을 보게 되어 공포 상태에 빠진다. 지속 시간은 약 8시간.]
‘공포?’
정글 거미의 독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부가적인 효과가 있었다. 일단 여왕거미 독은 아껴 쓰기로 했다.
“후, 됐다.”
바이런은 진땀을 닦아냈다. 독이 흘러내릴까 마음을 졸였던 시간도 끝났다.
작업이 끝나자 아르갈이 다가왔다.
“자네들... 정말 스틸리오의 마을에 갈 생각인가피?”
“되도록 적을 약하게 만들어야죠.”
프레이의 대답에 아르갈은 눈을 돌렸다. 바이런은 차곡차곡 독병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큰 인간에게 들었다피. 열기가 스틸리오를 약하게 만든다고피.”
“음... 그랬죠?”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런도 맞다는 의미로 마주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피. 그렇기에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그대들이라면 다르다피.”
“뭘 말입니까?”
“화산이다피.”
아르갈이 팔을 들었다. 짧은 팔은 열대 우림 사이로 솟아난 산을 가리켰다.
“화산...?”
“그렇다피. 예전 어릴 적에 화산 동굴에 간 적이 있었다피. 그건...”
아르갈이 아련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던 바이런은 요점을 물었다.
“뭐가 있습니까?”
“음, 화산 동굴 깊숙한 곳에 화산석이 매장되어 있다피. 아주 강한 열기를 머금은 돌이다피. 그 돌 때문에 놀라서 나온 적이 있다피.”
“음... 그렇군요. 그런데요?”
바이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화산석이 뭘 어쨌다는 말인가.
“그 돌을 이용해서 스틸리오를 탈피시키자는 의미로군요?”
프레이는 곧바로 아르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맞다피. 놈들이 탈피했을 때 우리가 습격하면 이길 수 있다피!”
아르갈이 주먹을 쥐었다. 바이런도 대강의 계획을 떠올렸다.
“아... 독은 물론이고 가죽까지 벗겨내자는 말씀이군요. 와... 그러면 뭐 너무 쉬워지겠는데?”
내부는 독으로, 외부는 열기로. 안과 밖을 모두 공략하자는 계획.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도저히 화염석을 만질 수 없다피. 하지만 그대들이라면 할 수 있다피.”
아르갈이 수염을 매만졌다. 그는 다시금 리퀴두스에게 감사를 올렸다.
“몬스터는 없습니까?”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오지 않았는가피.”
프레이의 질문에 아르갈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덧 밤이 되었기에 지금 가는 건 무리였다.
“그럼 내일이라도 살펴보도록 하죠.”
“알았다피. 정말 고맙다피.”
* * *
늦은 밤, 프리헬름.
남문의 경비를 맡은 병사들은 다가오는 사람에게 손을 들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오는 사람이라니.
“잠시...”
입을 열던 병사는 불빛에 그림자가 걷히자 곧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기, 기사님께서 무슨 일로?”
본래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히 방문 목적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사라니? 기사가 이런 변두리 마을에 올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기사, 제트람은 말에서 내렸다.
“찾는 사람이 있다.”
“누, 누구를...?”
“혹시 이런 자를 본 적이 있는가?”
제트람은 수배지를 꺼냈다. 그는 곧 말을 덧붙였다.
“아, 수염은 없네.”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왔었습니다.”
“고맙네.”
제트람은 더 이상 들을 말이 없다는 듯 빠르게 달렸다. 범인이 여기에 온 이유는 자신이 짐작한 바와 같으리라.
경비병은 뒤늦게 동료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 우리도 도와드려야 하는 거 아냐?”
“그럼 여기는 누가 지켜?”
“그렇긴 한데...”
제트람은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순간이동 브로커를 만나는 방법을 떠올렸다.
‘멜튼이라는 남자.’
프리헬름에 사는 멜튼이라는 남자를 찾아야 했다. 제트람은 막 문을 닫는 대장장이를 발견했다.
“이보시오.”
“음? 무슨 일이십니까?”
대장장이는 제트람의 행색을 보고 공손히 대답했다. 제트람은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 멜튼이라는 남자가 어디 삽니까?”
“멜튼? 허, 그 친구 찾는 사람도 많군. 저쪽입니다.”
대장장이는 손을 들어 집을 가리켰다. 제트람은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예, 잠시만요.”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깐,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타났다.
“그...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이 멜튼이요?”
“예... 그렇습니다.”
멜튼은 조금 긴장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기사가 나타났으니 당황할 법도 했다.
“여기 이런 남자가 왔소?”
수배지를 내밀었다. 멜튼은 수배지를 잡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글쎄요... 잘...”
제트람은 조급함에 눈을 돌렸다.
집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다른 사람이 사는 것 같은데 동거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음...?’
날카롭게 곤두선 그의 감각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냈다.
“기억이 잘 안...”
“비키시오.”
제트람은 멜튼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 무슨 짓입니까!?”
멜튼이 뒤늦게 그를 말리려 했지만 제트람은 막무가내로 들어와 주방 바닥을 향해 검을 찍었다.
콰직-
나무가 부서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스팟-!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제트람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멜튼, 무슨 일...”
멜튼의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트람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코앞이었는데...!’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 분명 순간이동 마법진이었다. 제트람은 성큼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어디로 갔지?”
“그, 그게...”
“어디로 보냈어!?”
제트람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녀는 기세에 압도되어 벌벌 떨며 대답했다.
“프, 플라모르 대륙이면 된다고...”
“위치는?!”
“저, 정하지 않았어요. 나머지는 자기가 아, 알아서 한다고...”
제트람은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악...!”
‘제길... 약삭빠른 놈이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무작위 순간이동을 시도한 것이다.
본래 마법지부에서 사용하는 마법진과 마법진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아닌,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만을 지정하여 이동하는 마법.
정밀한 마법이 아니기에 비용이 적게 들고,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사용된다. 물론 그 도착점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도망자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했으리라.
‘너무 안일했군...’
제트람은 다시 그녀를 내려보았다.
“똑같은 조건으로 날 이동시켜라.”
“뭐, 뭐라고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제트람은 검을 빼 들었다.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을 추적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차이는 있겠지만 동일한 조건으로 이동하는 게 놈을 추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마을로 가서 마법지부를 통해 안정적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시간이 오래 걸릴 터. 그 사이에 놈은 더 멀리 도망갔으리라.
“마... 마법진 위로...”
그녀가 조심스럽게 마법진을 가리켰다. 차라리 빨리 보내버리는 편이 편할 테니까.
제트람은 마법진에 올라섰다.
“어, 어디로 떨어질지 정말 모릅니다. 괘, 괜찮으십니까?”
대답대신, 제트람은 그녀를 다시금 노려봤다.
그는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침묵도 하나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마법진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제트람은 짧게 호흡했다.
스팟-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제트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후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멜튼이 내려왔다.
“괘, 괜찮아?”
“으... 갑자기 왠 미친놈이야?”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료로 순간이동을 시켜줬으니 기분이 매우 나빴다.
“약, 좋은 거 하나 만들어줘.”
“알았어.”
멜튼은 그녀를 토닥여주었다. 그에게는 어깨너머로 배우긴 했지만 솜씨 좋은 기술이 있었다.
지금 그의 품에 있는 여자도 미약을 이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9%)]
[초급 단검술 Lv8 (96%)]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