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66화 (66/141)

<-- 15. 피스칸 -->

프레이는 일단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눈앞의 적이 있더라도 재규어는 동물이니까.

동물은 본능에 따르기 마련이고, 지금 간신히 살아난 재규어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우리라.

사냥꾼의 감이었다.

크르릉-

그의 예상대로 재규어는 낮게 울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로 나를 상대할 셈이냐?”

타리아난이 비웃었다. 자신도 아닌 정글 거미에게 붙잡힐 정도로 약한 짐승이었다.

두려움에 선뜻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습이 코웃음이 나왔다.

크헝-!

재규어가 다시금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털었다.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작은 거미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게다가 겁도 많군. 이제 얌전히 먹이가 되어라!”

타리아난은 확신했다. 저런 짐승 하나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피부는 강철과도 같으니 재규어의 이빨과 발톱은 무용지물이었다.

배 아랫부분이 연약하지만 그녀도 그 사실을 알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밑으로 다가오지 못하리라.

타리아난은 자신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크릉-!

짧게 울음소리를 내뱉고 재규어가 달렸다. 아무래도 맞서기보다 도망치는 쪽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본능 중에서도 가장 강한 생존본능. 재규어는 타리아난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걸 어쩌나? 네 자랑스러운 애완동물이 꽁무니를 뺐구나.”

타리아난은 한껏 비아냥거렸다. 이 작은 인간이 공포에 떠는 꼴을 보고 싶었다.

프레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다시금 나무뿌리 사이로 내달렸다. 정면승부가 소용이 없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게로구나!”

쿵- 쿵- 쿵-

타리아난이 다리를 움직였다. 작은 새끼거미들이 위치를 알려준다. 게다가 그놈이 도망치는 쪽은 둥지 깊숙한 곳, 출구 따위는 없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타리아난은 인간이 무슨 짓을 했는가 싶어 잠시 멈췄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타리아난이 혀로 입술을 훑었다.

다리 하나쯤은 뜯어 먹어도 되지 않을까. 인간 고기를 먹는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으니까.

“내 아이들이 아주 천천히, 네 몸속부터 갉아먹어 줄 테니.”

쿵- 쿵-

프레이는 들려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숨을 곳은 없었다.

막다른 곳, 구석까지 몰렸다.

‘아직인가...!’

프레이는 검을 굳게 쥐었다. 나무뿌리 뒤에 숨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타리아난이 나오면 곧바로 공격할 셈이었다.

“찾았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목소리는 위쪽에서 들렸다.

“뭣...!?”

천장에 거미줄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내려온 타리아난. 그녀가 다리를 빠르게 휘둘렀다.

콰지지직-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뿌리가 박살이 났다.

완전히 피하는 건 무리였다. 뿌리에 부딪혀 프레이는 바닥을 굴렀다.

“크악...!”

신음이 절로 나왔다. 연거푸 바닥을 구르고서야 프레이는 멈출 수 있었다.

“까다롭군.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타리아난은 일반 정글 거미와 달리 지성이 있는 여왕거미. 프레이의 옷에 묻은 녹색 점액질이 독액이라는 건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중독시키면 사냥감을 잡는 게 편했건만, 이 작은 인간은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이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번거롭게 거미줄을 이용해야 했다.

“그럼, 만찬을 즐기도록 하지.”

그러나 이제 그런 번거로움도 끝났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녀는 한걸음, 한걸음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샤아악-

그녀가 입을 벌리자 입가가 찢어지며 숨겨진 이빨이 드러났다. 프레이는 그 역겨운 몰골에, 그리고 온몸을 쑤시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크헝-!

그 순간 뒤에서 재규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둥지 입구에 도착한 재규어는 거미줄로 입구가 막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도 둥지를 돌아다녔지만 출구는 없었다.

도망치 가능성이 사라졌다. 재규어의 생존 본능은 곧바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테니, 그 이상한 인간과 협력해 여왕거미를 처리하는 쪽으로.

“헛수고다!”

재규어가 뒤에서 발톱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타리아난의 뒤에 붙었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발톱은 피부를 파고들지 못했다.

촤아악-!

크헝-!

딱 좋은 위치였다. 거미줄이 뿜어지며 재규어가 뒤로 날아갔다. 거미줄에 묶여 버둥댈수록 거미줄은 재규어를 얽매였다.

“큭...!”

타리아난은 따끔한 통증에 뒤로 물러섰다. 프레이의 검 끝에 엷게 피가 묻어 있었다.

“감히...!”

혹시나 배를 노릴까 봐 바닥에 붙여뒀었다. 그런데 조금 틈이 있던 걸까.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널 용서...”

“용서는 무슨.”

프레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타리아난은 먹잇감이 실성한 줄 알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이변을 감지했다.

“무슨... 짓을...!”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었다. 타리아난이 몸을 부들거렸다.

“독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지.”

테트론 독.

레이판에게서 빼앗은 독이었다. 독을 전부 검에 붓고 시선을 끌기 위해 빈 병을 던졌었다.

프레이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싫었다.

독소 양에 따라 마비 시간이 결정된다. 간신히 틈으로 검을 비집어 넣었다. 마비는 그렇게 길지 않을 터.

“네놈...!”

타리아난이 다리를 들었다. 단번에 죽이리라.

새끼 거미의 양분으로 삼겠다는 계획은 취소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실수였다. 독소가 퍼지며 그녀의 몸이 굳었다.

다리를 들어 배가 훤히 드러난 채로.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프레이는 얼굴을 굳히고 배에 검을 집어넣었다.

타리아난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다시금 테트론 독이 그녀의 몸을 타고 퍼졌다.

프레이는 마치 검술 연습을 하든 타리아난의 배를 찢었다.

옆으로, 위로, 아래로, 대각선으로. 찌르기도 하고 베기도 했다.

타리아난의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8개의 눈이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빛을 잃었다. 붉은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그리고 타리아난의 내장이 쏟아질 때가 되어서야 프레이는 검을 거두었다.

“후우...”

깊은숨을 내뱉었다.

프레이는 그대로 쓰러진 타리아난을 내려 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이왕 챙기는 거...’

단검을 들었다. 여왕거미라면 더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무참히 찔러서 혹시 독낭이 터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곧 다른 정글 거미의 2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독낭을 발견했다.

‘대단하군...’

조심스럽게 독낭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혹시 살아있는 동물이 있지는 않을까?’

프레이는 천천히 고치를 살폈다. 미동이 없는 고치를 검으로 뜯어냈다.

철퍼덕-

곤죽이 되어 버린, 알 수 없는 사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체에서 새끼 거미들이 빠르게 퍼졌다.

‘음...’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다른 고치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이건... 스틸리오인가.’

가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속살은 전부 먹혔는지 흐물흐물했다. 아무리 가죽이 튼튼해도 독과 거미줄에는 소용이 없던 모양이다.

‘응...?’

가죽을 통째로 들고 갈 생각으로 뒤적거리던 프레이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왜...?’

질척한 피로 덮여 있는 해골 문양의 토템.

모르테미안 토템이었다.

* * *

브류와 세이렌은 나무와 줄기를 한 아름 지고 돌아왔다.

쿵-

“아이고!”

바이런이 넘어지자 피스칸 족이 빠르게 붙는다. 단창을 들고 바이런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쓰러뜨렸다피!”

피스칸 족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잘 하고 있네요.”

“으... 아, 왔어요.”

세이렌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바이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세이렌과 브류는 가져온 재료들을 바닥에 쏟았다.

“어때요? 연습은 성과가 좀 있어요?”

“예. 여러 번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긴 모양입니다.”

바이런은 모래를 털어내고 허리를 툭툭 쳤다. 푹신한 모래사장 위였기에 다행이지, 맨 돌바닥이었으면 이미 허리가 나갔으리라.

“알아서 연계도 잘하더라고요. 한 명이 상대의 시선을 끌면 바로 다리에 달라붙어서 관절을 치고 잡아당기고... 아휴, 아주 봐주는 법이 없어요.”

그가 손을 흔들며 한풀이를 했다. 세이렌은 웃으며 몇몇 피스칸 족을 불렀다.

“자, 그나마 탄성이 좀 있는 나무들을 골라 왔어.”

“어떻게 만드냐피?”

“어? 그건...”

재료를 가져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이렌도 활을 만드는 방법은 몰랐다.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은 바이런으로 향했다.

“혹시...”

“아뇨, 아뇨. 제작은 할 줄 몰라요.”

바이런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상인이지 대장장이가 아니니까.

제작 스킬이라고는 연금술밖에 없었고, 그 연금술로 만드는 것도 맥주와 기초적인 회복 포션이 전부였다.

“어쩐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활의 외형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가져온 나무막대의 양 끝을 잡아당겼다. 아치형으로 휘어진 나무를 잡고 브류를 돌아보았다.

“브류! 줄기를 양쪽에 묶어봐!”

“알았다피!”

바이런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세이렌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연습은 계속하시고요!”

“아, 그러죠.”

피스칸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바이런과 함께 연습을 하는 쪽, 세이렌과 활을 만들려 애쓰는 쪽.

한참을 그렇게 보냈다. 세이렌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뭐 이렇게 어려워!”

“힘들다피...”

브류도 벌렁 뒤로 누웠다.

줄기로 엮었는가 싶으면 나무막대를 쏙 빠져나갔다. 그래서 단단히 묶으니 이번에는 나무가 뚝 부러졌다.

나무의 탄성과 줄기의 장력이 맞춰지는 지점을 찾아야 했는데, 맨손으로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하...”

세이렌은 울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짐이었던 걸까. 애꿎은 시간만 낭비한 셈이 아닌가.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스칸이 정면으로 스틸리오와 부딪치는 건 가망이 없었기에.

게다가 다른 피스칸에게는 화살까지 만들라고 해뒀던 터였다. 그녀의 곁에는 나무에 돌로 만든 촉을 묶은 돌화살이 쌓여있었다.

활을 만들지 못하면 모두 무용지물이 되리라.

“저기...”

바이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세이렌은 누워서 고개만 돌렸다.

“왜요.”

그녀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그냥 속이 상해서 그런 것이지만, 바이런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꼭 활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세이렌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조금 거리는 짧더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있긴 한데.”

“뭔데요?”

그녀가 되물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왜 진즉에 말해주지 않았냐는 눈빛과 함께.

* * *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프레이는 다시금 피스칸 마을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엎드려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당겨라피! 정확히 목표를 보고 쏘라피!”

착-

따닥- 딱-!

돌화살이 벽에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조준이 어렵다피!”

“될 때까지 하는 거다피!”

브류는 다른 피스칸에게 소리쳤다. 프레이는 열심히 꼼지락대고 있는 세이렌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프레이! 무사했구나!”

세이렌이 일어서서 프레이를 반겼다. 넘어져 있던 바이런도 프레이를 발견했다.

“아, 왔어?”

“바이런, 뭐 하는 거예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프레이는 세이렌이 만들고 있던 물건을 바라보았다.

“이건...”

“새총이야!”

새총. 바이런이 생각해낸 무기는 바로 새총이었다.

Y자 나무 막대와 탄력 있는 줄기만 있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무기. 비록 사정거리는 활보다 짧지만 만드는 방법은 쉬웠다.

잘라둔 돌화살을 짧게 잘라 재활용했다. 피스칸 족은 단거리에서 새총을 연습하고 있었다. 세이렌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 좋은 방법이네요.”

“그치? 그렇지?”

세이렌은 프레이가 인정해주자 기분이 좋았다. 바이런은 작게 중얼거렸다.

“새총은 내 아이디어인데...”

“거미는? 잡았어?”

“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요.”

프레이는 곧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타리아난의 둥지에서 얻은 스틸리오의 가죽을 꺼냈다.

“그건...!?”

바이런이 놀라 물었다. 프레이는 가죽을 펼쳤다.

“히엑!”

피스칸이 놀라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곧 살아있는 스틸리오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보며 물었다.

“스틸리오도 신을 믿나요?”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9%)]

[초급 단검술 Lv8 (96%)]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49%)]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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