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65화 (65/141)

<-- 15. 피스칸 -->

독액이 닿은 피부가 붉게 부어올랐다. 저릿저릿한 느낌과 함께 고통이 찾아왔다.

“크아아악!”

쿵-!

프레이는 튕겨 나가듯 바닥을 굴렀다. 그와 느껴지는 격통에 기절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편하게 기절할 수는 없었다.

샤아악-!

프레이가 구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정글 거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났다.

샤악- 샤아-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며 나타난 정글 거미. 프레이는 곧바로 품속에 있던 단검을 던졌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정글 거미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후아... 후아...”

메시지가 나타나고 나서야 피부에 올라왔던 발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샤아아-!

물론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독을 해결했지만 거미가 남아있었으니까.

그가 던진 단검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쳐낸 모양이었다.

“후우...”

고통이 잦아들며 정신이 또렷해졌다. 정글 거미는 상대를 가늠하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프레이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거미가 입을 다물었다. 프레이는 검을 굳게 쥐었다.

촤악-

독액이 뿜어졌다. 프레이는 피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앗!”

끈적한 녹색 액체에 기분이 나빴지만 프레이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정글 거미는 설마 독액에 정면으로 부딪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모양인지 뒤늦게 물러섰다. 너무 늦은 게 문제였다.

프레이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한 번에 처리는 못 한다.’

단칼에 죽일 수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그가 노린 건 몸통이 아닌 다리 쪽이었다.

샤아악-!

8개의 다리 중 2개가 절단됐다. 고통 때문인지 거미의 눈이 이리저리 굴렀다. 8개의 붉은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황급히 뒤로 물러선 거미는 몸을 돌렸다.

‘또 당할까 보냐...!’

언뜻 보면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거미줄에 당했던바, 프레이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촤아악-

그가 있던 자리에 흰 거미줄 뭉치가 떨어졌다. 프레이는 곧장 몸을 일으켜 거미 몸통 옆부분으로 검을 찔렀다.

물컹한 감각이 손으로 전해졌다. 검의 절반이 거미의 몸통에 박혔다.

움찔움찔, 거미가 몸을 떨었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촤아악-

붉은 핏물이 상처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프레이는 고스란히 핏물을 뒤집어썼다. 그래도 숨이 끊이지 않았는지 정글 거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쿠웅-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정글 거미가 옆으로 쓰러지며 축 늘어졌다.

프레이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후우...”

짧게 숨을 뱉었던 프레이는 거미의 사체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곧 다시 검을 들어야 했다.

샤아악- 샤악-

정글 거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 * *

“브류! 브류, 잠깐만!”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는 브류,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세이렌은 금방 브류를 따라잡았다.

“브류... 혼자 가면 위험해...”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록 황태자 시절에는 폭군 노릇을 하며 남들 기분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녀가 남의 감정조차 눈치 못 챌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으니까.

“다들, 다들 겁쟁이다피.”

브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굴은 돌리지 않은 채.

세이렌은 말없이 브류를 따라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하지 못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기에, 그녀는 브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다피. 프람이 우리 마을에 도움을 청했을 때, 그때 갔다면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거다피.”

“브류...”

“다들 겁쟁이처럼 도망쳤다피. 해안가까지 무서워서 모두 버렸다피. 지금 스틸리오 마을은 원래 프람네 거였다피!”

브류가 성을 내며 바닥을 찼다. 세이렌은 그제야 브류가 마을이 잘 보이는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있었다.

본래 왕래가 잦았던 마을이었으니 주변 지리를 익혀뒀으리라.

“분명 스틸리오가 한 짓이다피. 늪지대도 점점 늘어난다피.”

“늪지대가 늘어나?”

세이렌이 물었다. 브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피. 프람네 마을이 공격당하고 늪지대도 늘어났다피. 분명 스틸리오 짓이다피.”

브류는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떨어진 나무를 줍기 시작했다. 세이렌도 도왔다.

줄기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서 모았다.

“브류... 스승께서 이런 말을 했어.”

“무슨 말이냐피?”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인상을 찡그린 브류가 물었다. 세이렌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지휘관은 겁쟁이를 버리지 않는다. 대신, 겁쟁이의 곁을 지킨다.”

“그게 무슨 말이냐피?”

브류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브류의 가방에는 줄기가 차곡차곡 쌓여 들어갔다.

“겁쟁이는 전쟁에서 필요 없잖아? 그래서 보통은 겁쟁이를 놔두고 전쟁을 시작하지.”

“그렇다피. 겁쟁이는 오히려 방해다피!”

브류가 맞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훌륭한 지휘관은 겁쟁이의 곁을 지켜. 겁쟁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말이야.”

세이렌이 말을 맺었다. 브류는 눈을 껌뻑거렸다.

“용기를 낼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것, 그게 지휘관이 할 일이라는 말이지.”

세이렌은 새삼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브류에게 그대로 말한 건 아니었다.

‘데일 저하. 그들에게 부족한 건 용기이지, 실력이 아닙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면 그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병사들은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실력 차이는 미미하다.

그렇기에 전쟁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활용하려면 용기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은 게 지휘관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냐피. 그러면 인간이 용기를 줄 수 있냐피?”

브류는 눈을 돌렸다. 그러나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못하지. 난 인간이잖아? 피스칸은 피스칸 지휘관이 필요하지.”

“인간, 그럼 누가 하냐피? 아르갈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드셨다피.”

브류는 눈을 굴렸다. 자신이 아는 피스칸 중에서 지휘관을 맡을 인물을 고르듯.

“세이렌이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

“알았다피. 세이렌이다피.”

“그래.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지휘관이겠지.”

브류는 다시 눈을 껌뻑거렸다. 세이렌은 브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브류, 네가 다른 피스칸에게 용기를 심어줘.”

* * *

프레이는 바닥을 굴렀다. 꼴사나워도 상관없었다.

몸을 굴려 정글 거미의 배 쪽으로 파고들었다. 곧바로 검을 쳐올렸다.

촤아악-

이미 온몸이 거미의 피로 흥건했다. 주변의 쌓여있는 거미의 사체를 보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다른 생물의 피를 덮어쓰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곧 프레이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정적.

또 다른 정글 거미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던 모양이다. 프레이는 피를 털어내고 단검을 빼 들었다.

‘도축은 오랜만이군...’

바이런에게 배워두길 잘했다. 흩어진 거미사체를 갈랐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아냈다. 독을 품은 녀석이라 그런지 냄새가 고약했다.

내장을 헤집어 보니 녹색 독액이 가득 찬 독낭이 보였다.

‘후우... 조심조심...’

전투가 끝났으니 독 면역력이 없는 상황, 자칫 독낭이 터졌다가는 다시 중독될 터였다. 물컹거리는 독낭을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 넣었다.

‘꽤 큰데?’

어림잡아 20회 정도는 바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잡은 정글 거미는 총 4마리였으니 충분했다. 피스칸 족이 모두 사용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도축을 끝내고 마지막 독낭을 담으려 할 때였다.

“아아... 내 아이들이...!”

목소리였다. 그것도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

프레이는 황급히 독낭을 인벤토리에 넣고 고개를 돌렸다.

몸체는 분명 거미인데 상반신은 여자인 괴물이었다.

그 풍만한 가슴을 보면 몇몇 특이한 취향의 인간들은 혹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얼굴로 올라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마치 수정을 박아 넣은 듯한 8개의 눈, 인간과 거미가 교배하면 저런 혼종이 나올까.

“네놈...! 내 아이들을 감히...!”

8개의 눈이 프레이를 향했다.

“제길...”

쉽게 나가기는 글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벤토리에 넣어둔 물건은 손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독낭이 터져서 인벤토리는 쓸 수도 없을 테니까.

“네놈의 몸으로 새로운 아이를 키우리!”

쿠르르-!

굴 전체가 떨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프레이는 귀를 막고 다급하게 몸을 숨겼다.

프레이는 떨어진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목적을 이룬 이상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촤아악-

“네놈을 죽여 내 아이들의 양분으로 삼겠다!”

거미줄이 튀어나와 입구를 막았다. 아무래도 쉽게 보내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제기랄... 싸우는 수밖에.’

물론 죽어서 나간다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4일 뒤에 깨어난다. 굳이 그런 악수를 택할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굴 안쪽에는 굵은 나무뿌리가 기둥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가 다른 거미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좋아... 간다.’

프레이가 검을 쥐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정글 여왕거미 ‘타리아난’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역시 이름이 있으면 강하군...!’

프레이는 진땀을 흘렸다. 힘과 민첩 모두 일반 거미보다 월등히 높았다. 몸이 마치 깃털같이 가벼워졌으니까.

“쥐새끼 같은 녀석!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타리아난의 외침,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프레이는 슬쩍 얼굴을 내밀어 타리아난의 위치를 파악했다.

프레이는 황급히 타리아난의 뒤로 돌았다. 정면승부보다는 기습이 낫지 않겠는가.

“거기구나!”

“뭣...!”

어찌 알았는지 타리아난이 돌아서며 달려왔다. 타리아난의 다리는 일반 정글거미와 달리 마치 날카로운 창과 같았다.

콰지직-

타리아난의 다리가 나무뿌리를 통째로 뜯어냈다. 프레이는 흩어지는 나무 조각 사이로 몸

을 굴려야 했다.

‘대단하군...!’

순수한 감탄, 그리고 이어서 걱정이 들었다.

‘검이 부러질 수도...’

배를 탄 이후부터 수리를 하지 못했다. 저런 강력한 힘에 맞부딪히면 부러질지도 몰랐다. 하르판에게 수련을 받았던 터라 눈대중으로도 검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단검을 던졌다.

“이까짓 날붙이는 소용없다!”

타리아난은 파리를 쫓듯 단검을 쳐냈다. 그리고 동시에 프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길...!’

프레이는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타리아난은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연거푸 다리로 프레이를 찍어 눌렀다. 반격은커녕 프레이는 피하기에 바빴다.

“후우... 후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다시금 프레이가 몸을 숨기자 타리아난이 버럭 성을 냈다. 타리아난의 눈은 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아래를 잘 보지 못했다.

‘저건...’

프레이는 나무뿌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있었다. 그의 눈에 뿌리 벽면에 붙은 거미줄 고치가 보였다.

‘여기에 먹이를 모아둔 건가...’

프레이는 빠르게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 사이 고치 하나가 열리며 작은 거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뭣...!?’

잡아 온 고치에 알을 까놓은 걸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고치 모두 부화할 것이다.

“거기 숨었느냐!”

“이런...!”

쏴아악- 콰지직-

프레이는 다급하게 기어 나왔다. 뒤에서 뿌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아, 후아...!”

“어디로 숨든 내 아이들이 너를 찾아낼 것이다!”

타리아난은 새끼거미들이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주변을 서성이는 자글자글한 거미들을 바라보았다.

‘숨기는 힘들겠군...’

다행히 시간은 벌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꿈틀거리던 고치 하나가 떨어졌다.

“네 자리를 만드는 것이냐?”

타리아난은 비웃었다. 하지만 프레이는 웃지 않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을 믿어 봐야지.”

크허헝-!

고치에서 재규어가 숨을 토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4 (11%)]

[초급 단검술 Lv8 (95%)]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3 (28%)]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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