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64화 (64/141)

<-- 15. 피스칸 -->

아침이 되자 프레이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의 눈앞에 입술을 내민 바이런이 서 있었다.

“아... 바이런...”

“팔자 좋다. 아주, 형님한테 일 떠맡겨놓고 말이야.”

“예...?”

프레이는 저릿한 팔을 주무르려 고개를 돌렸다가 바이런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이렌이 그의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바이런이 보기에는 일을 떠맡기고 팔자 좋게 늘어진 것으로 보였으리라.

“아니 이건...”

“알아, 알아. 그 아가씨가 멋대로 들어왔겠지.”

“우웅...”

세이렌이 일어나 눈을 비볐다. 갑옷을 벗은 상태라서 그런지 그녀의 몸매가 옷 위로 도드라졌다.

“언제 들어온 거예요?”

프레이가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세이렌이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아니 뭐... 따로 자면 무섭잖아.”

“다 큰 처자가 무섭기는... 아무튼 너도 수면모드 너무 오래 하지 마라. 하긴 금수저라서 괜찮은가...”

바이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프레이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일어났다.

“인간! 일어났냐피!”

브류가 벌컥 들어와 소리쳤다. 세이렌은 졸린 얼굴로 브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브류 왔어?”

“호에에...”

브류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가 곧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피! 훈련하려고 다른 피스칸이 모였다피!”

“훈련?”

바이런이 놀라서 물었다.

“아, 네. 아무래도 전투 경험이 미숙하니까요.”

프레이는 일어나서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둘 다 도와주셔야 해요.”

“나도?”

세이렌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일어났다. 프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준비하세요. 나가서 얘기하죠.”

프레이는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모두를 데리고 나가 세이렌이 갑옷을 입기를 기다렸다가 마을회관을 나섰다.

“아... 전사여, 일어났는가피.”

아르갈이 프레이를 반겨주었다.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는가피?”

“예, 덕분에 편하게 잤습니다.”

피스칸의 몸집이 크지 않았기에 기본적으로 건물의 크기가 작았다. 그나마 잘 장소는 가장 큰 마을회관뿐이었다. 아르갈은 프레이 일행에게 흔쾌히 마을회관을 숙소로 내어주었던 것.

“자, 두 분은 피스칸의 상대를 해주시면 됩니다.”

“어? 우리가?”

“상대라고?”

바이런과 세이렌이 놀란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피스칸을 상대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피스칸 족은 스틸리오를 상대해 본 적이 없다네요. 그렇다고 훈련을 피스칸 족끼리만 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일단 몸집부터 차이가 나잖아요.”

전날 아르갈에게 설명을 들은 프레이는 피스칸 족에게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막상 스틸리오와 전투를 벌일 때 높낮이에 적응을 못 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일단 몸집이 비슷한 우리를 상대해 보기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세이렌도 키가 큰 편이니까요.”

“음... 그런데 너는?”

고개를 주억거리던 바이런이 되물었다. 왜 자신은 쏙 빼놓고 말한단 말인가?

“저는... 따로 준비할 게 있어서요.”

“준비?”

“네.”

“우리는 같이 안 가고?”

프레이는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 말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곧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정글 거미를 잡으려고요.”

“거미...!?”

“그 커다란 놈?”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글 거미의 독이 강하다는 설명을 들은 터였다.

“보시다시피 피스칸 족의 무기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바이런은 고개를 돌렸다. 모여 있는 피스칸이 들고 있는 무기는 돌촉에 나무를 끼운 단창.

철도 아니고 돌이다. 이런 무기로 스틸리오의 가죽을 꿰뚫을 수 있겠는가.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였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바로 정글 거미의 독, 독을 돌촉에 발라두면 두꺼운 가죽이라도 독이 스며들지 않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쓸만한 정보 찾았어.”

“그래요?”

프레이가 놀라 되물었다. 역시 바이런이었다.

물론 그가 한 일이라고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었지만 프레이는 알지 못했다.

“응. 스틸리오는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 데, 헌 가죽을 벗고 새 가죽을 입는 셈이지.”

“음... 그래서 계속 가죽을 유지하는군요.”

아무리 튼튼한 가죽이라도 세월은 못 이기는 법. 그러나 스틸리오는 탈피를 통해 주기적으로 가죽을 교체했다.

“그래, 그런데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 자동으로 탈피를 한다는 거야.”

“온도요?”

“그래. 확 뜨겁게 만들면 가죽이 벗겨진다는 거지.”

프레이는 순간 크젤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염 마법을 이용했다면 쉽게 해결했을 일.

‘아니...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차피 육지에 도달하면 크젤을 처리하기가 더 어려웠으리라.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문제는 피스칸 족도 열기를 싫어한다는 거죠.”

“음... 그렇긴 하지...”

바이런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해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감사해요. 그럼 피스칸들 상대 좀 잘 해주세요.”

“알았어. 조심해라.”

“다치지 않게 조심해.”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프레이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가봤자 짐밖에 더 되겠는가.

‘적어도 방해는 되지 말자...’

프레이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만큼, 그녀도 자제할 줄 알아야 했다. 프레이는 다른 이들을 뒤로하고 마을을 나섰다.

이미 아르갈에게 정글 거미 출몰 지역이 어디인지 들었던 터였다.

피스칸 족은 정글 거미를 피하기 위해 파악해 놓은 사항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글 거미를 찾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쪽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습기가 있어서인지 발자국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프레이는 거미의 발자국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샤아아-

나무를 타고 움직이는 뱀들이 혀를 날름거렸다. 프레이는 되도록 몸을 숙여 정글을 헤쳐 나갔다.

크헝-!

그렇게 발자국을 추적하기를 한참,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지!?’

프레이는 다급하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샤아악-!

정글 거미가 재규어 한 마리를 거미줄로 얽매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를 쓰는지 재규어가 몸부림을 쳤다.

‘먹이를 잡아가는 건가...?’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재규어를 끌고 간다.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 모양인데...’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저 거미의 뒤통수를 치느냐, 아니면 둥지까지 따라가 보느냐.

결론은 금방 나왔다.

‘고작 한 마리로는 부족하니까...’

혼자서 쓸 독이 아니었다. 피스칸 족 전체 인원에게 나눠주려면 넉넉히 5마리는 잡아둬야 하지 않을까.

정글 거미의 독낭이 얼마나 큰지 몰랐으니 둥지의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프레이는 되도록 멀찍이서 정글 거미를 추적했다.

* * *

“아니지! 더 높게!”

“알았다피!”

세이렌이 소리치자 피스칸 병사가 단창을 높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간신히 가슴께에 닿는다. 세이렌은 들고 있는 나무판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한숨이 나왔다.

‘노크하는 것도 아니고...’

팔을 높게 들면 힘이 빠진다. 피스칸의 체격은 한계가 있었다.

마치 애들과 어른의 싸움. 그것도 애들은 장난감 같은 무기를, 어른은 살상용 무기를 쥐고 하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로는 부족해...’

세이렌은 열심히 가슴을 향해 단창을 날리는 피스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상태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몰살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황성에서의 배웠던 걸 기억해냈다. 비록 수업은 졸면서 들었지만, 그래도 머리에 남는 건 몇 가지 있었다.

“다들 멈춰!”

“왜, 왜요?”

바이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열심히 연습하던 피스칸 족도 마찬가지였다.

세이렌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시간 낭비야.”

“시간 낭비라니피?”

“우리가 헛고생한 거냐피?”

피스칸들이 웅성거렸다. 세이렌은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내 스승께서 말씀하셨지. 전쟁은 상대에 맞춰서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내게 맞추는 것이다.”

“스승...?”

바이런은 조용히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세이렌은 그 궁금증을 해소해줄 마음이 없었다.

“자, 지금 우리가 하는 훈련은 스틸리오를 상대하기 위해서야, 맞지?”

“맞다피.”

피스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이렌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문제야. 그렇게 상대하니까 너희들이 가진 이점을 활용하지 못하잖아.”

“이점이라니?”

바이런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 작은 피스칸에게 이점이 있을까?

세이렌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스틸리오는 너희들을 잡기 위해 자세를 낮춰야 해, 원래 싸우던 자세에서 크게 흔들리는 거지.”

세이렌이 허리를 숙이며 말하자 바이런은 얼른 눈을 돌렸다.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었으니까.피스칸은 세이렌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너희들은 상대의 다리를 노릴 수 있어. 한 번에 스틸리오를 처리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자세에 맞지 않는 방법을 연습하는 거야.”

“그렇다피! 팔이 아프다피!”

피스칸 하나가 소리쳤다.

“그래. 그러니 먼저 다리를 공격해 쓰러뜨리는 거야. 스틸리오가 넘어지면 그때 숨통을 끊는 거지.”

세이렌은 솔선수범하여 앞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피스칸의 단창을 잡고 자신의 머리를 향해 끌어당겼다.

“이렇게 말이지.”

“하지만... 그래서야 다가가기 전에 당하는 피스칸이 생기잖아요?”

바이런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결국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적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놔둘리 없었다.

그의 의견도 맞는 말이었기에 피스칸은 다시 세이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러니까 창으로는 부족해.”

세이렌은 일어나며 모래를 털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글을 향했다.

“우리는 활을 만든다.”

“활?”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에게 급하게나마 배웠던 궁술이지만 피스칸에게도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

“그래. 원거리에서 피스칸 놈들을 괴롭히고, 다가가서 쓰러뜨리는 거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꽤 괜찮은 전술인 것 같았다.

“원래 전쟁에서 병과가 나뉘는 건 기본이라고.”

“오오오...!”

피스칸들이 짧은 손으로 박수를 쳤다.

“어디서 배운 겁니까, 그런 건...?”

바이런이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세이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여자는 비밀이 많다잖아요?”

물론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바이런은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캐물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았으니.

“그럼 일단 재료를 구해야 해. 브류, 튼튼한 나무랑 시위로 쓸 만한 줄기가 있는 곳을 알아?”

조금만 걸어나가면 정글이었다. 나무든 줄기든 넘쳐나는 곳이 아닌가. 그러나 그중에서도 좋은 걸 골라내야 했다.

“내게 맡겨라피!”

브류가 자신 있게 나섰다. 그러나 다른 피스칸들은 머뭇거렸다.

“또 없어?”

선뜻 나서는 피스칸은 없었다. 세이렌은 황당했다.

정글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스틸리오와는 어떻게 싸우겠다는 말인가?

“...다들 겁쟁이다피! 나 혼자 가겠다피!”

브류는 씩씩거리며 움직였다.

“브류...!”

세이렌이 브류를 뒤쫓았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다른 피스칸을 돌아보았다.

“부끄러운 줄 알아...!”

피스칸들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 했다. 세이렌은 바이런에게 부탁했다.

“잘 좀 봐주고 있어요. 일단... 내가 말한 방법대로 연습해주세요.”

“그럴게요.”

바이런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렌이 브류를 따라 나가자 그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일단 연습을 시작하자.”

* * *

‘저긴가...?’

프레이는 거미줄로 묶인 재규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나무, 나무 둘레는 마치 건장한 오크 셋을 묶은 듯했다.

거미는 그 밑으로 재규어를 끌고 갔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굴 입구 옆에 숨었다.

기다렸다가 정글 거미가 나오면 기습을 할 셈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거미는 나오지 않았다.

‘한 마리뿐인가?’

어쩌면 잡아 온 먹이를 먹는 중일지도 몰랐다. 프레이는 슬쩍 굴 입구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안을 내려다보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프레이의 발이 미끄러졌다.

‘웃...!’

다른 침입자를 막기 위해 거미가 독액을 뿌려놨던 것. 그는 빠르게 굴속으로 떨어졌다.

아직 정글 거미의 스테이터스를 얻지 못한 프레이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가려움에 미칠 것만 같았다.

“크악...!”

가려움은 곧 고통으로 변했다. 독 면역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그와 동시에 프레이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글 여왕거미 둥지’에 진입합니다.]

[던전에서 사망 시 입구에서 부활합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3 (97%)]

[초급 단검술 Lv8 (8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4 (4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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