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여기는 어디 -->
프레이는 곧바로 공격하기 위해 검을 높게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나타난 생물체의 모습에 그의 팔이 멈췄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매끈한 푸른 비늘, 그리고.
‘지느러미?’
얼굴 양옆으로 난 지느러미. 뒤에는 꼬리까지 있다. 전체적으로 물고기와 비슷하지만 팔과 다리가 있다.
“인간? 도망치라피!”
그 어인(漁人)도 프레이를 보고 놀랐다가 소리쳤다.
“말을...?!”
프레이가 놀라는 것도 잠시, 어인의 뒤에서 다시금 수풀이 흔들렸다.
“도망, 도망치라피!”
어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프레이는 곧바로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어인의 키는 무척 작았다. 기껏해야 프레이의 허벅지에나 올까. 그렇게 작은 어인이 프레이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위험하다피! 어서 움직이라피!”
“도대체 뭐가...”
캬하학-!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추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이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거미가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건 거미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웬만한 대형견만큼의 크기에 그 기다란 다리라니. 게다가 연녹색의 침을 뚝뚝 흘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그 입이라니.
“뭐, 이런...!”
“정글 거미, 위험하다피!”
어인은 황급히 달렸다. 그러다가 해안가에 쓰러져 있는 세이렌과 바이런을 발견했는지 그쪽으로 다가갔다.
“젠장...!”
일단 적대적이지는 않았기에 말리지 않았다. 그보다 확실히 적대적인 놈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정글 거미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힘이 느껴졌다. 정글 거미는 근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매우 날렵했다.
샤아악-
정글 거미가 입을 벌리자 연녹색 독액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프레이는 피하지 못했다.
“인간! 인간! 일어나라피!”
어인은 작은 손바닥으로 누워있는 세이렌과 바이런의 뺨을 두들겼다.
“우으...!”
“아... 아!”
세이렌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바이런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어인의 손을 막았다.
“인간! 다른 인간이 죽는다피!”
“뭐, 뭐야. 도대체...!”
바이런이 짜증난다는 듯 일어섰다. 그의 눈에 독액을 뒤집어쓴 프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이!?”
“프레이!”
세이렌도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정작 프레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거미의 독은 통하지 않아...’
언데드 때와 마찬가지였다. 프레이는 빠르게 거미에게 달려들었다.
거미는 먹잇감으로 생각했던 인간이 멀쩡해 보이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프레이가 빠르게 검을 내리쳤다.
정글 거미는 잽싸게 옆으로 움직이며 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도망치려는 건가!?’
프레이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미의 몸에서 실이 뿜어져 나왔다.
“큭...!”
마치 화살처럼 날아온 거미줄은 프레이의 전신을 휘감았다. 프레이는 속절없이 뒤로 넘어졌다.
“으읍...!”
“말했다피! 도망치라고 했다피!”
어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지금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외침이었다.
샤아악-!
정글 거미는 다시금 독액을 뿜었다. 그러나 프레이의 기분만 나빠졌을 뿐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그것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독을 버티는 먹잇감은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러나 그렇다고 식사를 늦출 생각은 없었다.
거미는 빠르게 프레이를 향해 다가갔다.
“이 자식 따라다니고부터는 완전 적자야!”
바이런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방을 뒤졌다. 그의 생각은 간단했다.
짐승은 불을 무서워한다. 그러니 일단 불을 보여주면 도망갈 것이라는 가설.
그는 프레이를 향해 달려가며 기름을 먹인 횃불과 부싯돌을 꺼냈다. 상인은 노숙을 자주 하기에 필수적인 물건들이었다.
화르륵-
횃불에 불길을 지폈다. 바이런은 다가오는 거미를 향해 횃불을 휘둘렀다.
“에비! 에비!”
“프레이...!”
그 사이 세이렌은 빠르게 단검으로 거미줄을 끊었다.
정글 거미는 쉽사리 독액을 뱉지 못했다. 프레이에게 통하지 않았으니 같은 놈들로 보이는 바이런에게도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단하다피!”
결국 정글 거미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가 숲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인은 인간들의 활약에 활짝 웃음을 지었다.
“후아...!”
엉켜있는 거미줄을 풀어낸 프레이가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프레이는 입안에 들어간 거미줄을 뱉고 대답했다. 바이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뭐 저런 몬스터를 만들어놨어.”
“저렇게 큰 거미는 처음 봅니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곧 그의 시선은 어인에게 돌아갔다.
“바이런.”
“응?”
“이건 도대체 뭐죠?”
프레이가 어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보니 등에 작은 가방까지 메고 있었다.
바이런이 대답하기도 전에 어인이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이거 아니다피! 내 이름은 브류다피!”
“브류다피?”
“아니다피! 브류다피!”
“그러니까 브류다피?”
어인은 답답하다는 듯 갈퀴가 달린 손가락을 들고 바닥에 글자를 썼다.
[브류]
“브류?”
“맞다피!”
이제야 알았냐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브류. 바이런은 곰곰이 브류를 바라보다가 곧 깨달았다는 듯 소리쳤다.
“아! 피스칸. 피스칸 족이구나!”
“인간! 우리를 알고 있구나피!”
“피스칸 족...?”
프레이는 어리둥절했다. 세이렌은 브류가 귀여운지 가까이 다가가 여기저기를 매만졌다.
“와, 보들보들하네. 비늘이 어쩜 이러지?”
브류는 세이렌의 손길에 흠칫 몸을 떨었다가 헤실헤실 웃음 지었다.
“인간 손길 부드럽다피.”
바이런은 프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어인족인데 생김새가 귀여워서 애완동물로 삼고 다니는 유저도 많아.”
“애완동물이라고요?”
프레이가 놀라서 물었다. 바이런은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받았다.
“어... 뭐, 아무래도 귀여움을 노리고 만든 종족이니까. 저거 봐라.”
바이런이 고갯짓을 하자 세이렌이 브류의 턱을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브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고 있었다.
“특성상 인간의 손길을 좋아하고, 말끝에 ‘피’를 붙이지. 인간에게 우호적이야.”
“다행이네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브류에게 다가갔다.
“브류?”
“불렀냐피?”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한 브류의 모습에 프레이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인간, 브류를 구해줬다피. 브류도 인간 도와준다피!”
브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렌은 여전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래, 브류. 여기가 어디지?”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어디로 휩쓸려 왔는가였다. 브류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브류 어려운 건 모른다피. 아르갈 할아버지는 알 거다피!”
“아르갈?”
“우리 마을 할아버지다피! 아는 게 많으시다피!”
프레이는 바이런과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눈빛만 봐도 프레이가 묻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야지, 뭐.”
바이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애들이 더 있는 거야?”
세이렌은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모두의 동의를 받았다.
“브류, 마을로 안내해 줘.”
“알았다피! 잘 따라 와라피!”
브류가 짧은 다리로 빠르게 백사장을 따라 걸었다. 프레이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 * *
그렇게 걷기를 한참,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돌을 세워서 벽을 만들고, 숲에서 구해온 잎과 나무로 건물을 올렸다.
“다 왔다피! 인간, 횃불은 이제 꺼라피!”
“아아, 그래야지.”
바이런은 또다시 거미나 다른 짐승이 나올까 계속 횃불을 들고 왔었다. 그는 횃불을 모래에 파묻어 불을 껐다.
“피스칸 족은 열기에 민감하거든.”
누가 묻지도 않았건만 바이런은 프레이와 세이렌을 바라보며 설명했다.브류가 신이 났는지 빠르게 뛰었다. 그래 봐야 다리가 짧아 프레이 일행의 발걸음과 비슷한 속도였다.
“브류, 또 멋대로 나가면 어떡하냐피!”
“괜찮다피! 하나도 안 다쳤다피. 손님을 데려왔다피!”
다른 피스칸 족이 프레이 일행을 보고 놀랐다.
“브류? 이 인간들은 왜 온 거냐피?”
“인간들, 길 잃었다피. 나를 살려줬다피!”
프레이는 난색을 표했다. 피스칸 족의 크기에 맞춰진 입구가 너무 작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바이런이 먼저 엎드려서 포복으로 입구를 통과했다.
돌벽의 크기가 프레이의 키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건 실례일 것 같았다.
“뭘 멍하니 있어? 들어가자.”
세이렌이 바이런의 뒤를 따랐다. 프레이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아...’
프레이는 곧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고개를 들면 세이렌의 둔부가 도드라져 보였기에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아르갈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냐피?”
“마을회관에 계시다피.”
브류를 질책한 피스칸 경비병이 손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그나마 피스칸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브류가 고개를 돌려 프레이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라피! 약만 전해주고 오겠다피!”
“약?”
그제야 프레이는 브류가 맨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브류는 대답 없이 사라졌다.
“착한 아이다피. 다친 사람 도와준다피.”
경비병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다쳤어요?”
세이렌의 물음에 경비병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피. 스틸리오의 짓이다피.”
“스틸리오?”
세이렌도 프레이도 자연스레 바이런을 돌아봤다. 이쯤 되니 바이런도 부담스러웠다.
‘내가 무슨 사전인 줄 아나...’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는 종족이었다.
“스틸리오, 파충류 인간인데. 다른 게임에서는 보통 리자드맨이라고 부르지. 근데 다른 게임과 좀 다른 면이 있긴 해.”
“스틸리오는 가죽이 마치 강철과도 같다피. 우리도 무서워서 마을을 여기로 옮겼다피.”
경비병은 진저리를 쳤다.
“생존자는 프람뿐이었다피. 프람이 스틸리오가 친구들을 잡아먹는 걸 봤다고 했다피.”
프레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이었던 그는 자연의 법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사냥꾼이었던 아버지와 그가 악인이라는 뜻일 테니까.
‘사냥꾼과 사냥감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지.’
피스칸 족의 처지가 딱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이렌과 바이런은 달랐다.
“저런... 스틸리오 완전 나쁜 놈들이네.”
세이렌은 자연스레 경비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파충류가 원래 그렇지. 생김새도 완전 소름 끼치니까.”
바이런이 질색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주변을 서성이던 피스칸 족이 신기하다는 듯 프레이 일행을 바라보았다. 세이렌은 모여든 피스칸 족을 쓰다듬으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있자니 곧 브류가 돌아왔다.
“조금 오래 걸렸다피! 날 따라 와라피!”
브류가 앞장서자 세이렌은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브류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메기수염이 달린 피스칸 족이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고, 브류가 그의 뒤에서 나왔다.
“나를 찼았냐피?”
조금 쉰 목소리. 그러나 나이가 들었음에도 귀여움은 남아 있었다.
“아르갈 어르신 되십니까?”
프레이는 공손하게 물었다. 아르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피. 궁금하게 있다고 들었다피.”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바다를 표류하다가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프레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르갈은 고개를 끄덕이며 프레이의 말을 들었다.
“만지면 안 되겠죠?”
세이렌은 조심스럽게 바이런에게 말을 걸었다. 바이런이 프레이를 구하는 걸 보고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겠죠?”
프레이가 말을 마치자 아르갈이 수염을 매만졌다.
“인간, 고생이 많았다피. 여기는 플라모르 대륙 남부다피.”
“플라모르 대륙...!”
세이렌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신성제국에서 멀지 않다는 말이었다.
“인간들의 나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피.”
“그런가요?”
프레이도 기쁜 표정으로 되물었다.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신성제국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르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피.”
“네? 어째서...?”
“스틸리오... 그 괴물들 때문이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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