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여기는 어디 -->
바이런은 어떻게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세이렌과 프레이가 크젤에게 복수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다.
“크윽...”
크젤은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애써 상처를 손바닥으로 막아보지만 꿀럭거리며 흘러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씨발... 갑자기... 왜...”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한 나라가 뒤집어질 뻔했어. 그런데 아무런 느낌도 없어?”
프레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태자가 어떤 사람인가?
한 국가의 후계자다. 황제가 될 사람이다.
말 한마디에 도시는 물론 다른 국가와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다.
고작 사냥꾼의 자식이었던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이 크젤이라는 놈은 마치 엄마 심부름하듯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미친... 누가 그렇게 NPC를...”
크젤은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게임을 즐긴 것에 불과했다.
어차피 황태자라고 해도 NPC,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유저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NPC가 찾아와 퀘스트를 주었고, 자신은 승낙했을 뿐이다.
그게 게임이 아니던가?
보상을 챙기고 강해지는 게, 게임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미친놈이 갑자기 나라가 뒤집어진다느니, 안일했다느니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부활하기 전에 똑똑히 알아둬. 여기에 사는 사람들 모두 쓰다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는 걸.”
“지랄...! 네들도 뒤졌어...!”
크젤은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준비해둔 마법을 사용했다.
“프레이!”
바닥에 생겨난 붉은 마법진을 본 바이런이 세이렌과 프레이를 향해 뛰었다. 마법진의 빛이 차올랐다.
콰아앙-!
난데없이 치솟은 불길은 작은 상륙선을 폭파하기에 충분했다.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세이렌을, 세이렌을 안은 프레이를 바이런이 안았다.
풍덩- 풍덩-
강렬한 충격에 튕겨 나간 프레이 일행이 바닷속으로 빠졌다. 열기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푸아!”
프레이는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쉬었다. 그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세이렌?! 바이런!?”
의지할 것이라고는 별빛뿐. 어두운 바다 위에서 간신히 실루엣만 구분할 수 있었다.
“후아!”
“세이렌? 바이런?”
“나야!”
바이런이 소리쳤다. 그는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등이 아려오는 걸 보니 불길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세이렌은요?”
“몰라! 나도 방금 나왔잖아!”
바이런이 주변의 잔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프레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잠수했다.
그러나 바깥도 어두운데 아래라고 밝을까. 한 치 앞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세이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그녀는 살려놔야 했다.
팔을 휘적거리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푸하!”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온 프레이는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후아!”
“세이렌!”
“프레이, 미쳤어?! 왜 더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거야!? 수면이 어디인지 몰랐어?”
세이렌이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소리쳤다. 그녀는 아무래도 프레이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뇨, 아니에요.”
프레이는 안심했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수영을 할 줄 안다고 말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저기, 분위기 깨고 싶지는 않지만. 이거라도 잡는 게 어때?”
바이런이 널찍한 나무판자를 잡고 다가왔다.
“크젤은...?”
“죽었어.”
세이렌이 판자를 붙잡으며 물었다. 바이런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시체가 사라지는 걸 봤어. 조금 아쉽다. 수배범이니까 잡아갔으면 포상금을 받았을 텐데...”
바이런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프레이는 현상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죠?”
“몰라. 배를 폭발시킬 줄이야... 확실히 나쁜 놈은 맞는 것 같더라.”
바이런은 다시금 머리를 흔들었다. 죽어가는 마당에 최후의 일격이라니.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갑자기 낯 간지럽게 왜 그래?”
“그래도 막아줬잖아요.”
프레이는 바이런이 몸을 던지며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크젤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이퀄라이저 특성이 발현되었다.
폭발하기 직전 프레이의 스테이터스는 크젤의 스테이터스와 같았다.
크젤은 체력이 낮은 마법사였으니, 만약 바이런이 폭발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나도 도망치려고 한 거지 뭘.”
바이런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그을린 등 쪽을 본 프레이는 다시금 고마움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육지에 닿지 않을까?”
세이렌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녀의 말대로 조류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럼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메리나로 돌아가나?”
바이런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 같아요. 유령선을 피하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잖아요. 한동안 왔으니 메리나로 가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그럼...”
세이런은 프레이와 바이런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 * *
제트람은 결국 메리나로 돌아왔다.
그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이미 동이 튼 이후였다.
“후우...”
지친 몸을 이끌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펠린이 그를 맞이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펠린이 퉁퉁 부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제트람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펠린 경, 설마 여기서 밤을 새운 건가?”
“예? 아하하, 그렇죠. 선배님이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서...”
제트람은 자신을 걱정해준 펠린이 고마웠다. 그는 펠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네. 하지만... 아쉽게도 소득은 없었어.”
“그렇습니까... 하긴, 유령선 공격대가 당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 끔찍한 광경이었... 잠깐, 자네가 어떻게 그걸 아는가?”
제트람은 바다를 떠도는 언데드를 떠올리다가 의아한 눈으로 펠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야 직접 보고 와서 안다지만, 펠린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아... 그 부활한 유저들이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뭐, 유저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거야 익숙한 일 아닙니까.”
“과연... 그렇군. 그래, 그러면 되겠어. 고맙네, 펠린 경!”
제트람이 웃으며 펠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펠린은 얼떨떨했지만 그가 좋아하니 헤벌쭉 웃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제 활약 잊지 마십시오!”
제트람은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빠르게 여관을 찾았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유저는 죽어도 살아 돌아온다.
공격대는 2인으로 참가할 수 없다.
분명 프레이, 그리고 그와 같이 다니는 여자와 공격대를 한 유저가 있을 것이다.
‘프레이가 죽었다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하지만 사체는 발견하지 못했으니, 프레이와 같은 공격대인 유저를 찾으면 된다.’
그 유저에게 프레이와 같이 있던 여자의 인상착의를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러려면 프레이와 같은 공격대에 참가한 유저의 정보를 알아야 했다.
“뭐요? 프레이?”
“아, 그 사람 아닌가? 고위 사제한테 축복을 받았던 남자.”
“아... 기억난다. 맞아 완전 주목받았었지.”
제트람은 여관에서 휴식 중인 유저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위사제에게 축복을...?’
고위사제에게 축복을 받으려면 웬만큼 중요한 의뢰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같이 다니는 유저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음... 그 여자가 가장 눈에 띄었지.”
“아냐, 마법사도 좀 눈에 띄었어.”
“갑판에서 물건 팔던 상인도 같은 공격대 아니었나?”
유저들은 저마다 기억나는 점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제트람은 실망했다.
‘풍만하고 키가 크다고...? 머리가 길다니...’
그가 기억하는 데일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역시 다른 사람이었던 걸까.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데일 저하께서 돌아가셨다면... 주검이라도 수습하는 게 기사의 도리...’
“아, 그런데 그 공격대는 마지막에 도망쳤다는데?”
“도망?”
“어...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한테 들었는데 결계로 안 들어오고 바로 바다로 빠지는가 싶었더니 상륙선을 타고 도망가더래.”
“헐... 의리 없네.”
“의리는 무슨.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인데.”
유저들이 서로 투닥거리는 사이 제트람은 정중히 감사를 표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럼...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건가?’
제트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만약 무사히 빠져나갔다면 여기서 기다려봤자 시간 낭비일 터.
“아이고!”
막 여관을 나가던 제트람은 들어오는 사람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튼튼한 몸에 부딪힌 남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죄송...”
“눈을 어디다...”
급하게 사과하던 제트람과 성을 내려던 남자의 눈이 맞았다.
“글란... 성주님?”
“제, 제트람 경...!”
글란, 이제는 이름을 바꾼 글렌이었다. 그 역시 유령선 레이드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던바, 프레이가 돌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여관을 방문했던 것.
“나, 날... 자, 잡으러 온 겁니까!?”
글렌은 공포에 질렸다. 그의 머릿속에 효수된 전 경비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도 그렇게 목이 잘리는 걸까, 아니면 교수형에 처해지는 건 아닐까.
“아, 아닙니다. 진정하십시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글렌의 모습에 제트람은 난색을 보였다. 일단 넘어진 그를 일으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 그러면...?”
“그러는 글란 님께서는... 아...”
제트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란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쉬, 쉿! 글렌, 글렌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예? 아... 알겠습니다.”
“저를 잡으러 온 게 아니라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글렌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제트람이 그를 붙잡았다.
“글란... 아니, 글렌 님.”
“기, 기사가 이렇게 빨리 말을 바꿔도...!”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제트람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네...?”
* * *
하얀 모래가 가득한 해안가.
촤아- 촤아아-
잔잔한 바다가 반복해서 모래를 쓸고, 모래를 뱉는다.
“우으...”
따사로운 햇살에 프레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천히 껌뻑거리던 눈이 이내 떠졌다.
“아...!”
프레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이런과 세이렌이 모래사장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다급하게 다가가 숨을 확인했다.
‘후... 다행이군.’
둘 다 잠을 자는 중이었다. 프레이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바이런이 건네준 회복 포션을 마시고 잠든 기억이 났다. 그대로 바다에 표류하면서 체력이 점점 줄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회복 효과는 높지만 부작용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포션이었다. 잠을 자다가도 힘이 빠져 바다에 빠져 눈을 뜨고, 다시 판자를 붙잡기를 반복하면서 떠내려왔다.
그러니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는 건 당연지사.
일단 세이렌과 바이런이 무사한 걸 알았으니 걱정은 없었다.
‘그것보다는...’
프레이는 옷 곳곳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메리나의 해안처럼 언데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모래사장은 양쪽으로 쭉 펼쳐져 있었고, 자신이 바라보는 정면은 울창한 숲이었다.
‘나무가... 특이한데...?’
산에서는 보지 못했던 나무였다. 어쩌면 해안가에서만 자라는 걸까?
나무를 올려다보니 열매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웬만한 알보다 큰데?’
그는 다시금 숲으로 눈을 돌렸다. 해안가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식물이 빽빽했다.
‘짐승이 살고 있긴 한 것 같은데.’
프레이는 바닥에 새겨난 작은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가 알고 있는 어떤 짐승의 발자국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프레이는 검을 손으로 매만졌다.
부스럭- 부스럭-
프레이는 들려오는 소리에 곧바로 검을 빼 들고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우람한 수풀이 양옆으로 흔들렸다.
‘이런...! 세이렌과 바이런을 깨워야...!’
혹시 위험한 놈들이라서, 혼자서 상대할 수 없다면?
프레이가 아차 하는 순간,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3 (97%)]
[초급 단검술 Lv8 (8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