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여기는 어디 -->
크젤은 프레이의 말에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대장!?”
“서둘러요!”
프레이는 크젤의 말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세이렌은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곳의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프레이였으니.
“프레이!? 아이 씨... 냄새 진짜!”
바이런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에 묻은 진물에서 나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세이렌! 상륙선에 타요!”
“알았어!”
프레이가 생각한 탈출 방법은 상륙선이었다. 그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고위사제가 결계를 만들었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금 바짝 붙어있는 유령선까지 있는데 결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미쳤어!?”
바이런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그는 세이렌이 배 밖으로 뛰어내리자 놀란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 아래를 내려다보자 세이렌이 다급히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야?”
“이거죠.”“아씨...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바이런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상륙선으로 뛰어내렸다.
크젤은 갈팡질팡하면서 머리를 헝클더니 곧 프레이 쪽으로 다가갔다.
“미치겠네, 진짜!”
마치 답을 모르는 OX퀴즈 같았다. 보통은 사람이 많은 쪽이 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크젤은 달랐다.
애초에 내기의 배당은 사람이 적게 건 쪽이 높지 않은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크젤이 추구하는 게임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황태자 암살 퀘스트를 넙죽 받아들인 게 아니던가.
‘에라, 모르겠다...!’
그는 냅다 프레이 쪽으로 달렸다.
“프레이...! 그 자식도 같이 가게 놔둘 거야?!”
“...아직이에요!”
세이렌은 프레이가 내려오지 않자 그가 크젤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앗...!”
뒤늦게 출발한 크젤은 촉수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크젤은 불화살을 던져 갑판에 붙은 촉수를 뗐다.
“기다려!”
크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요!”
“우아씨! 진짜 뒤질 뻔했네!”
쿠웅-
크젤이 다급하게 뛰어내리자 상륙선이 좌우로 흔들렸다. 뒤이어 프레이가 내려오며 연결된 밧줄을 끊었다.
첨벙-!
상륙선이 바다위에 떨어졌다.
“조심해요!”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붙잡으며 프레이가 소리쳤다.
“저어! 어서 저어!”
바이런이 노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러나 한 쪽으로 흔들어봐야 한 방향으로 돌기만 할 뿐.
“세이렌! 저어요!”
“내가!?”
“그럼 누가요!?”
바이런이 남은 노를 던졌다. 세이렌은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활을 꺼냈고, 크젤은 빠르게 수인을 맺는 중이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사람은 둘뿐이었다. 잉여인력인 바이런과 세이렌이 노를 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세이렌은 이렇게 힘쓰는 일을 할 거라 생각도 못 해봤겠지만, 당장 죽게 생겼는데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으으...!”
“동시에! 하나! 둘! 하나! 둘!”
바이런이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합이 맞지 않으면 속력이 나지 않는다. 프레이는 크젤에게 소리쳤다.
“저쪽!”
역시나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유령선에서도 언데드 선원들이 작은 배를 띄워 추격해왔다.
콰직- 콰지지직-!
마치 천둥이 치듯 강렬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배가 결국 두 동강이 나며 선미가 바다에 잠기기 시작했다.
“후아...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크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프레이는 활을 겨누며 소리쳤다.
“저놈들... 속도가 빨라요!”
이제 막 노질을 시작한 프레이의 배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언데드 선원들의 노질은 비교 거리도 되지 않았다.
빠르게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는 추격선. 프레이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시위를 놓았다.
‘젠장...!’
명중이다. 하지만 피해가 없다.
화살이 박힌 채로 노질을 계속하는 좀비 선원. 프레이는 크젤을 돌아보았다.
“내가 없으면 어쩔 뻔했어요!?”
크젤의 손위에서 일렁이던 불화살이 날아갔다. 적중당한 좀비가 뒤로 쓰러지며 밤바다를 밝혔다.
“그런데 솔직히 남은 마나가 얼마 없어요! 노질 좀 빠르게 해봐요!”
세이렌은 이를 악물고 노질을 했다. 당장에라도 크젤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싶었지만, 프레이가 그를 왜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유효한 방어수단은 크젤의 마법뿐이었으니까. 복수를 하자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것도 되살아나는 유저를 향한 복수라면 더욱 그랬다.
“하나! 둘! 하나! 둘!”
바이런은 구령을 맞추며 노를 저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으아아아아!”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선수 쪽으로 다가온 유령선에서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라켄은 결계를 연거푸 촉수로 두드리고 있었다.
풍덩- 풍덩-
두려움에 빠진 유저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은 없었다.
“서둘러요!”
“큰 거 한 방이 낫겠네! 저 대신 엄호 좀 해줘요!”
크젤은 추격선을 아예 침몰시킬 생각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마법인 만큼 수인과 캐스팅이 필요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시위를 당겼다.
해골 선원의 두개골에 화살이 박혔다. 그러나 그 정도 충격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골 선원은 앙상한 손뼈로 화살을 빼냈다.
‘노질을 하는 놈들을 노려야 해...!’
프레이는 다시금 시위를 걸었다. 그런데 추격선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뭐지!?’
“뭐야, 저놈들 왜 저래?”
크젤은 막 캐스팅을 마쳤다. 그런데 목표가 도망치니 어리둥절했다.
프레이는 곧 그것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추격선은 바다로 떨어진 유저들을 공격했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던 유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그래봐야 고통만 길어질 뿐, 언데드 선원의 공격에 바다 위에 떠다니는 시체가 점점 늘어났다.
‘해안가로 밀려드는 언데드들이 저렇게 해서...!’
시체가 꿈틀거리더니 다시금 움직인다. 그러나 추격선은 언데드를 건지지 않는다.
바다를 떠도는 언데드들은 해안가로 휩쓸릴 터.
“휴... 다행이다. 그래도 살았네요!”
크젤이 안심하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안심을 일렀기에 바이런과 세이렌은 노질을 멈추지 않았다.
크젤은 힐끗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땀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갑옷으로 가렸지만 그 풍만한 몸매는 가릴 수 없었다.
“메리나로 돌아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프레이는 세이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를 달라는 뜻.
“아냐, 괜찮아. 내가 할 수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네, 뭐.”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재미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황태자가 아니다. 프레이의 곁에 있으려면 자신도 쓸모가 있어야 했다. 애물단지 취급은 사양이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지! 빌어먹을! 아직도 냄새가 나잖아!?”
바이런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제야 프레이도 바닷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메리나로 돌아간다니.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이었잖아요? 안 그래요. 대장?”
“대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프레이는 차갑게 대답했다.
멀리 침몰하는 배가 보였다. 결국 결계가 부서진 것 같았다.
“딱딱하기는...”
크젤은 입술을 내밀었다.
* * *
제트람은 작은 배를 바라보았다.
펠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최선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억만금을 줘도 안 나가겠다고 해서... 그냥 배를 샀습니다.”
“아니... 괜찮다. 이걸로도 충분해.”
제트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급하게 구한 것 치고는 괜찮은 배였다.
본래 귀족들이 타고 다니는 배였지만, 유령선이 출몰한 이후로 이곳을 찾는 귀족은 없었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배 하단에 부착한 기계장치로 추진력을 얻는 배였다. 유지비는 물론이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마석이 다량 필요했지만, 제트람이 누구던가.
그에게 돈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출발하지.”“지금 말입니까?”
“그래, 도와줘서 고마웠다.”
펠린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혼자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유령선이 나타나면...”
“펠린 경.”
펠린은 제트람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실언이었다.
그가 뭐라고 제트람의 앞길을 막겠는가.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트람은 말없이 마석을 넣었다. 펠린이 뒤로 물러섰다.
우웅-
마석이 빛을 내며 배가 약간 흔들렸다. 이내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트람은 키를 붙잡고 굳은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발 무사하시기를...!’
비싼 돈 주고 산 배답게 속도는 단연 발군이었다. 제트람은 빠르게 바다를 내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거뭇한 바다 위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제트람은 천천히 속력을 줄였다.
크륵- 크르륵-
바다 위를 헤매는 좀비들이 손을 뻗었다. 제트람은 얼굴을 굳혔다.
‘이런... 실패한 건가...!’
제트람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이 사체들 사이에서 데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없어...’
제트람은 안도했다.
떠내려오는 사체들 사이에서 데일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마치 자신의 신세처럼, 배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졌다.
‘데일 저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어두운 바다, 떠내려가는 시체들 사이에서 제트람은 답을 구하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프레이 일행은 모두 지친 몸을 가누었다. 이제 유령선은 물론 바다에 떠다니는 언데드도 보이지 않았다.
“으... 영락없이 수면모드네...”
바이런은 연신 바다에 손을 씻으며 투덜거렸다.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왜요?”
“왜긴 인마. 여기서 로그아웃하면 다시 메리나 행이잖아.”
“기껏 나왔는데 돌아가면 너무 허무하잖아요.”
크젤이 맞장구를 쳤다. 바이런은 젖은 손을 털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세이렌은 지친 얼굴로 프레이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네 사람이 눕기에는 상륙선이 너무 좁았기에 그렇게라도 잠을 청한 모양이었다.
침묵을 깬 건 프레이였다.
“크젤.”
“왜요?”
수인을 맺으며 마법을 준비하던 크젤이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제국의 후예에게 쫓기고 있어요.”
“프레이?”
바이런이 되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크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프레이가 고백해서 바이런이 당황한 것으로.
“그건 갑자기 왜...?”
“그래서 어떻게든 신성제국으로 가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쪽도 우리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크젤은 미소를 지우고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궁금해서 묻고 싶었어요.”
“뭘?”
크젤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존대도 사라졌다.
바이런은 불안한 눈으로 크젤과 프레이를 번갈아 봤다.
“레스톤에서의 습격 사건, 당신 짓이잖아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너무 경계하지 말아요. 저도 정통파에게 의뢰를 받았었거든요.”
프레이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눈치 빠른 바이런은 꾹 입을 다물었다.
“정통파...?”
“브렌이라는 이름 알죠? 황태자 습격 의뢰를 준 사람.”
프레이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름을 말했다. 크젤의 눈썹이 씰룩였다.
이내 그가 웃음 지었다.
“설마 나 말고 다른 유저에게도 의뢰를 했을 줄이야.”
바이런은 눈을 끔뻑였다. 그는 레스톤에서 봤던 수배서를 떠올렸다.
‘그럼...?’
프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왜 그 의뢰를 받은 거예요?”
“왜긴, 당연히 보상이 짭짤했으니까 그렇지. 무려 50골드를 약속했는데, 아쉽게도 실패해서 선금밖에 못 챙겼지.”
크젤은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래도 10골드면 수지가 맞는 장사지. 마법이라는 게 원체 돈이 많이 들어가는 터라. 남는 것도 없어.”
“그것뿐이에요?”
“응?”
크젤이 되물었다. 프레이도 다시 물었다.
“돈 때문이에요? 그래도 꽤 큰 사건이잖아요. 제국의 후예 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는데.”
“아... 난 또 뭐라고.”
크젤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것까지 알게 뭐야. 바뀌든 말든, 내가 챙길 것만 챙기면 충분한 거 아니겠어?”
“...다른 사람들은요?”
“다른 사람이라니?”
“다른... NPC들은...?”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다.
“NPC? 하하, 대장.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크젤은 웃으며 대답했다.
“NPC라고 해봐야 데이터에 불과하잖아? 우리를 위해 사는 놈들인데 뭐.”
“그런...!”
듣고 있던 바이런이 발끈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프레이가 움직였다.
“헉...!”
기대고 있던 세이렌이 놀라서 눈을 떴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짓...!”
“프레이!?”
프레이의 검이 크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기습. 바이런이 놀라 소리쳤다.
“대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속삭이듯이 내뱉은 말소리. 프레이는 검을 빼내며 말을 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 마라. 이곳은 네놈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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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