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여기는 어디 -->
프레이는 물론, 배 위에 모든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사제들이었다.
“설마 크라켄까지... 언데드로...!”
“어, 어찌해야 합니까!?”
어린 사제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고위사제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떠올랐다.
신의 이름을 걸고 나온 성전, 그 성전에서 패퇴한다면?
곧 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위사제는 눈을 감았다.
‘솔리스께서도 이해해주실 것이다...!’
그는 결심과 함께 눈을 떴다.
모르템의 사도와 저 추악한 언데드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수치스러우나,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모두! 배를 돌리시오!”
“퇴각! 퇴각하라!”
배가 옆으로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아아앗!”
“아무거나 잡아!”
생존한 유저들 중 몇몇은 갑판을 구르기도 했다. 프레이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거야?!”
크젤이 열이 받은 듯이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한 마법을 모두 사용하여 유령선을 격퇴했다. 정작 목숨을 건 사람은 유저들인데 왜 사제들이 멋대로 배를 돌린단 말인가?
이대로 돌아가면 언제 신성제국으로 갈 수 있을지 몰랐다.
“대장, 열도 안 받아요!?”
“왜 자꾸 대장이라고...”
프레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세이렌을 위험하게 만든 장본인에게 대장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알리칸과의 전투 중에는 정신이 없어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프레이가 뭐라고 하려는 찰나였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크라켄이라고, 크라켄! 그것도 언데드 크라켄!”
“크라켄이 뭔데요?”
바이런의 호들갑에 세이렌이 되물었다. 그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세이렌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NPC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거, 모를 수도 있겠군. 방금 본 촉수는 그놈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 문어 다리요?”
“문어 다리... 그래, 오징어든 문어든! 아무튼, 바다 곳곳에 존재하는 거대괴수인데... 아무래도 언데드가 된 모양이야!”
크라켄을 단순한 문어로 생각하는 세이렌의 태도. 바이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그놈들은 대륙 북쪽 바다에 출몰하는 걸로 알려져 있었는데... 도대체 이 남쪽까지는 어떻게!?”
“언데드라면서요? 그 모르테미안 놈들이 데려온 것 아니겠습니까?”
프레이는 자신의 추측을 던졌다.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우조스가 나타나고 본래 영역을 잃은 몬스터도 많아. 상처 입은 놈을 언데드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어.”
“아니, 지금 크라켄이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합니까?!”
크젤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프레이가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그러면이라니... 아니, 그보다 말이 좀 짧아졌...”
크젤은 프레이가 정색을 하자 당황했다. 바이런이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다시 껴들었다.
“자자, 일단 우리가 이 배를 조종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상황을 지켜...”
쿠릉-
“뭐야?”
“뭐지? 뭐였어!?”
배에 전해지는 진동 바이런은 말을 멈추고 다른 유저들은 불안함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촤아악-!
물기둥이 솟구쳤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리는 보라색의 촉수, 그리고 그 밑으로 떨어지는 물보라.
유저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아... 아아...!”
촤악- 촤아악-!
촉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배 좌우로 솟구치는 촉수는 꿈틀거리며 흔들거렸다. 상처 사이로 보이는 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흐물거렸다.
크라켄의 뼈는 여타 몬스터의 뼈와 다르게 매우 유연했다.
쏴아아악-
촉수가 빠르게 갑판으로 하강했다.
“피해!”
누군가 소리쳤다.
어디로? 아무리 배가 크다 한들 한계가 있었다. 어디로 도망치란 말인가.
콰지직-
“끄아아악!”
촉수에 깔린 유저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재로 변했다. 갑판이 우그러졌고, 돛대가 위태롭게 기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개중에는 갑판 위에 떨어진 촉수를 공격하는 유저도 있었다. 그들의 공격에 크라켄의 촉수가 베어지며 검은 피를 갑판에 흩뿌렸다.
치이이익-
“내, 내 검이...!”
“무기가 녹는다!”
유저들은 당황했다. 내리쳤을 때에는 멀쩡했던 검이 빼고 나니 손잡이 부분만 남아있었으니.
“모두 이쪽으로 오십시오!”
고개를 돌리니 고위사제의 주변으로 결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크라켄의 촉수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다, 달려!”
“비켜! 비키라고!”
살기위해서 유저들은 서로를 밀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바이런은 프레이를 돌아봤다.
“프레이!”
프레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압도적인 적, 절망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무력한 자신.
그날의 악몽이 현실로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프레이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 안돼...!”
“프레이...!?”
세이렌이 프레이의 안색을 보고 다급하게 그의 뺨을 붙잡았다. 프레이의 동공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 뭣 하는 겁니까?! 여기 있으면 다 죽어요!”
콰직- 콰지직-!
촉수가 조여 오며 배를 두 동강 내려 한다. 점점 선수와 선미 부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갑자기 벌어진 틈으로 떨어진 유저는 비명과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시간을 지체하면 결계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할 상황.
“프레이!”
“프레이! 어서!”
세이렌과 바이런의 외침, 그는 동시에 인벤토리를 열어 회색빛 잎을 꺼내 손에 문질렀다.
“젠장...!”
그가 빠르게 손을 비비자 잎에서 진물이 나왔다. 바이런은 그 손으로 프레이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크흡...!”
프레이는 강렬한 악취에 진저리를 쳤다. 그는 인상을 구기면서 소리쳤다.
“바이런...!? 그게 도대체...!”
“어린 엘드리안의 잎이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어서 가자고!”
바이런의 설명에 놀란 건 크젤 쪽이었다.
“엘드리안이요? 그 나무인간들? 어디서 구한 겁니까?!”
“내 말 뭘로 들은 겁니까!? 설명은 나중이라고!”
바이런이 황급히 프레이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좋아, 좋아. 아직 늦지 않았어!”
바이런은 끙끙대며 벌어진 틈을 바라보았다. 선미 부분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아예 바다에 수장되리라.
“아뇨... 저기로 가면 죽습니다.”
프레이는 막 뛰쳐나가려는 바이런을 붙잡았다. 그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지만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이들을 미끼로 씁니다...!”
프레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행이 타고 있던 배는 그래도 방향을 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선미 쪽으로 유령선 2척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메리나의 마법연합 지부.
지부장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마법진 앞에서 기다렸다.
우웅-
짧은 공명과 함께 순간이동 마법진에 푸른빛이 차올랐다.
지부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섰다. 마른 침이 절로 삼켜졌다.
슈욱-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 위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지부장은 준비한 인사를 건넸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있기를.”
“그대의 지식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남자는 능숙한 듯 인사를 받았다. 지부장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제트람 경.”
“예, 급하게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순간이동을 통해 메리나에 도착한 건 제트람이었다. 베르핀의 명령을 받고 그는 곧장 프레이를 찾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데일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건 그가 틀림없었으니까. 추적결과 메리나의 상인조합에서 프레이가 대리인을 고용해 서신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혹시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순간이동 마법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순간이동의 대상이 되는 공간, 즉 마법진 위에 이물질이 있어서는 곤란했다. 자칫하면 순간이동 사용자의 체내에 이물질이 겹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직접 관리한 마법진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었다.
“음, 괜찮습니다. 실례지만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제트람은 짧게 말을 끊었다.
상인조합 쪽에서는 최근 메리나에서 배가 뜨지 않는다고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프레이를 찾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안녕하시길.”
지부장은 인사를 건네며 그를 내보냈다.
제트람은 곧장 여관으로 향했다. 유저들의 행방을 찾기에는 그곳이 제격이었으니까.
“아니... 제트람 선배님!?”
그는 곧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자가 이곳에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중에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펠린 경...”
제트람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펠린이 좌천된 곳이 이곳이었던가.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군요!”
“펠린 경... 밖에서는 선배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히죽히죽 웃음 짓는 펠린에게 한마디 하려던 제트람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펠린이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어깨를 펴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자식들아! 이분이 어떤 분이시진 아느냐!? 무려 황실 친위대장을 역임하시는 제트람 선배님이시다!”
“화, 황실 친위대장이요!?”
“그래! 너희들 운 좋은 줄 알아. 살면서 제트람 선배님을 볼 기회가 있겠... 아, 근데 선배님께서 메리나에는 무슨 일로!?”
펠린이 뒤늦게 놀랐다. 제트람을 봐서 반가움에 부르긴 했는데, 이런 항구마을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사람을 찾고 있다.”
“사람이요? 누굽니까? 어떤 흉악한 놈이기에 제트람 선배님이 직접...!?”
펠린이 놀라서 물었다. 제트람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펠린 경. 누누이 말하지만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뒤에 호칭을 붙이... 아니다.”
제트람은 고개를 흔들었다. 펠린은 기사로서의 격식이 떨어지는 자였다. 물론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하는 행동이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었기에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니던가.
그런 펠린을 말 한마디로 고치려는 쪽이 잘못이었다.
“선배님! 어떤 놈이든 말만 하십시오! 제가 당장에 잡아드리겠습니다!”
펠린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물론 내심 바라는 것도 있었다.
‘제트람 선배님 보다 그놈을 잡으면... 수도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음... 혹시 들어본 적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제트람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이유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데일이 실종됐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황태자의 시찰이 중지된 것, 황실 친위대장인 그가 혼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인들의 입소문까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
제트람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프레이라는 유저를 알고 있나?”
“프레이! 들었지? 그놈을 당장...! 예? 누구... 라고요?”
펠린은 바로 몸을 돌리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려 했다. 그러나 제트람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익숙하자 다시금 물었다.
“프레이. 그렇게 어려운 이름은 아닌데...”
“프레이...? 호, 혹시 약간 짧은 갈색 머리에 키는 제 어깨만 하고...”
펠린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프레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제트람의 얼굴이 밝아졌다.
“맞아...! 본 모양이군!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제트람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어... 그 유저라면 분명 펠린 님과... 읍!”
부하들이 중얼거리자 펠린은 곧바로 솥뚜껑만 한 손으로 부하의 입을 막았다.
“아하하! 예, 예.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합니까...”
“왜 그러는가?”
“아... 그게 이번에 유령선 공격대로 참가하는 걸 봤습니다.”
“유령선... 공격대라니...?”
펠린은 빠르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제트람의 얼굴이 침통해졌다.
“이런... 내가 늦은 건가...!”
“예. 그런데 그놈은 왜 찾으십니까? 보니까 여자나 데리고 다니는 한량 같던데...”
펠린이 제트람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제트람이 펠린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네? 아, 한량 같다고...”
“아니, 그 전에 말이야!”
펠린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자기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걸까?
“여...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한량?”
“여자...! 일행이 있었나!?”
“네? 예. 이, 있었죠.”
“그 여자는 어디에 있지?!”
제트람이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혹시...!?’
사그라졌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트람은 데일을 주군으로 선택했다. 주군을 지키는 것이 기사가 해야 할 일.
주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정당한 제국의 후예였으니.
그녀의 죽음에 얼마나 절망했던가.
그런데, 그녀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 같이 배를 타고 갔습니다.”
“배를...!”
제트람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펠린을 바라보았다. 펠린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펠린...”
그가 입을 열었다. 펠린은 그의 눈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배를 준비해주게.”
제트람은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어두운 바다를.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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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