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유령선 레이드 -->
날이 다 빠진 곡도가 날아들었다. 바이런은 황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비켜요!”
세이렌은 덤벼드는 좀비의 옆구리를 단검으로 찔렀다. 그녀는 이를 악다물고 찌른 단검을 위로 쳐올렸다.
꾸르륵-
옆구리가 갈라지며 내장이 흘러나왔다. 바이런은 질색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꼭 그렇게 해야...”
“조심해요!”
바이런은 기겁하며 고개를 숙였다. 세이렌은 바이런의 옆으로 다가온 해골 선원의 골반을 걷어찼다.
콰지직-
허리가 무너지면서 상반신이 앞으로 쓰러졌다.
빠각- 빠각-
“으아아! 죽어! 죽어!”
바이런이 검을 마치 곡괭이처럼 내리쳤다. 앞으로 쓰러진 해골의 두개골이 박살이 났다.
“후우... 후우...”
세이렌은 숨을 고르며 추가로 다가오는 언데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비롯해 많은 유저들이 갑판의 후미 부분까지 밀려났다.
“탱킹되는 사람 앞에 좀 서요!”
“그러다가 뒤지면 더 악화된다고요!”
유저들 중에서 먼저 나서는 이는 없었다. 괜히 개죽음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쓰러진 유저들이 언데드가 된다니...!’
문제는 적들의 숫자였다. 쓰러진 유저가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면서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캉- 카캉-!
선수 부분에서는 솔리스의 사제들이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글거리는 언데드들이 그 보호막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도망쳐야 하나...!?’
세이렌은 갑판 옆부분을 바라보았다. 언데드들이 있긴 하지만 빠르게 돌파해서 뛰어내리면 상륙선을 탈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프레이가 뛰어든 유령선으로 향했다. 바이런이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 살아있습니다. 실루엣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바이런의 눈에는 같은 공격대원인 크젤과 프레이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렇기에 그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
“젠장...! 레이드 난이도가 뭐 이래?”
“조금만 더 버텨요! 뒤에서 다른 배들이 오고 있으니까!”
유저들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곧 다른 배가 도착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
지금 그들이 열세인 건 유령선 2척을 한꺼번에 상대했기 때문, 곧 도착할 다른 유저들과 합세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조금만 힘을 냅시다!”
* * *
‘미치겠군...!’
프레이는 덤벼드는 해골 선원의 어깨 관절을 후려쳤다. 팔이 빠지며 무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화르륵-
크젤의 마법에 좀비 선원들이 불타오른다. 불화살과 화염구가 터지며 강렬한 열기를 내뿜었다.
“대장! 슬슬 마나가 후달리는데요?!”
크젤이 외쳤다. 마법이라고 만능이 아니었다.
그가 미리 준비한 마법은 이미 모두 소모했고, 즉석에서 캐스팅과 수인(手印)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뿐.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았다.
프레이는 알리칸을 돌아보았다. 유령선장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인간들에게 격분을 쏟는 것 같았다.
“끄... 크아악...!”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독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멱살을 붙잡힌 유저의 몸이 빠르게 썩어가기 시작했다.
“선장실에 허락도 없이...! 네놈들은 선원 자격조차 없다...!”
모르테미안 토템을 파괴하고 기쁨에 겨워하며 밖으로 나오자마자 맞닥뜨린 유령선장. 그들은 들어가기에 앞서 다른 탈출구가 있는지 먼저 확인했어야 했다.
파스스-
피와 살은 물론 뼈까지 부식되어 검은 먼지가 되어 바다로 흩날렸다. 알리칸은 그렇게 침입자를 모두 처리하고 나서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네 운명은 다를 거라 생각지 마라...!”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며 크젤을 돌아보았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제길! 우리 배도 완전 언데드 소굴이에요!”
프레이도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려고 해야 돌아갈 수가 없었다.
배 위에는 언데드들이 바글바글했고, 선수에서 사제들이 땀을 흘리며 정화된 모르테미안 토템을 보호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언데드가 우글거리는 배로 돌아가느니 알리칸을 상대하는 게 그나마 더 쉬운 길이었다.
‘이 배의 토템은 파괴된 게 분명해...’
토템을 파괴하지도 않고 유저들이 밖으로 나왔을 리 없었다. 사제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은 알리칸을 처치할 최적의 환경인 셈.
‘해보는 수밖에...!’
프레이는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힘으로 밀리지 않으려면 한 손보다는 양손이 나았으니까.
“크젤! 엄호해요!”
“아 씨...!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크젤은 독 면역이 없었기에 멀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법으로 프레이에게 달라붙으려는 놈들을 처리했다.
화르륵-
바로 옆에서 열기가 치솟았지만 프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알리칸.
“물고기 밥으로도 못 쓸 놈들...!”
크워어어어-
알리칸이 흉성을 터트리자 그의 몸 주변으로 짙은 녹색의 독안개가 뿜어진다. 프레이는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쏴아악-
“큭...!”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알리칸의 공격. 프레이는 갑판을 구르며 공격이 날아온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에 걸리는 건 없었다.
‘어디지!?’
끼익- 끼긱- 끽-
갑판의 썩은 나무가 비명을 지른다. 프레이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연신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썩어 문드러지는 편이 좋았을 것을...!”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공격. 프레이는 뒤늦게 몸을 틀었지만 완벽히 피해낼 수 없었다.
욱신-
어깨가 베이자 핏물이 흘러나왔다.
프레이는 독안개를 빠져나가기 위해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대장! 조심해요!”
크젤의 목소리, 프레이는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판 난간이 몸에 닿았다.
‘뭐...!?’
안개가 그렇게 넓게 퍼졌단 말인가?
“대장을 따라서 안개가 움직이고 있어요!”
크젤의 목소리. 프레이는 왜 독안개가 사라지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걸 안다고... 바뀌는 건 없다...!”
프레이는 뒤로 검을 휘둘렀다.
카각-
검과 검이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안개 속에서 알리칸의 모습이 드러났다.
난간으로 막혀있으니 공격이 올 방향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프레이는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연신 검을 휘둘렀다.
“잔몹은 다 잡았습니다!”
크젤이 소리치며 수인을 빠르게 맺었다.
지금 그가 여기서 살아나갈 구멍은 프레이 하나뿐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는 레이드 보스와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지금 수세에 몰리는 건 저 안개 때문.
‘그러면... 안개를 날려야지!’
수인을 마치고 읊조리던 캐스팅이 끝났다. 크젤의 손에 수박만한 크기의 화염구가 형성되었다.
“조심해요!”
그는 마치 야구를 하듯 화염구를 던졌다.
콰아앙-!
갑판 바닥이 터져나가며 썩은 나무판이 바닥에 떨어졌다. 폭발점을 중심으로 공기가 흔들리며 독안개를 걷어냈다.
“이런 쥐새끼 같은...!”
입가의 절반이 벗겨져 썩은 근육과 치아구조가 보였다. 알리칸의 흉물스러운 입이 벌어졌다.
“네 상대는 나다!”
프레이는 시야가 걷히자 빠르게 쇄도했다. 알리칸의 검을 올려 쳐내고 곧바로 다시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툭- 투두둑-
알리칸이 입고 있던 선장복이 찢어지며 좌우로 벌어졌다.
‘저건...!?’
언데드가 되어 썩어버린 알리칸의 몸, 그리고 그 안에서 맥동하는 검은 심장.
마치 피 대신 먹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알리칸은 뒤로 물러서며 프레이를 견제했다.
“감히...! 아무리 네놈들이 발악한들...”
알리칸의 말 따위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프레이는 알리칸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확실히 보인다!’
토템이 파괴된 덕일까, 아니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알리칸 주위의 잔영이 더욱 선명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잔영은 알리칸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약점이라는 걸 알았기에.
프레이는 내려치는 알리칸의 검을 옆으로 피했다. 놈이 곧바로 옆으로 검을 휘둘렀다.
퍼엉-
알리칸의 몸이 흔들렸다. 그의 등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 진짜 안 죽네...!”
크젤이 낭패라는 듯 진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프레이는 곧바로 알리칸의 손목을 내리쳤다.
투둑-
“네놈...!”
손목이 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알리칸은 뼈만 남은 다른 손을 들어 프레이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프레이는 오히려 안쪽으로 몸을 파고들며 검은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
“끝이다!”
썩어가는 살점, 드러난 갈비뼈, 그 사이로 프레이의 검이 깊숙이 들어갔다. 맥동하던 검은 심장을 꿰뚫었다.
주륵-
상처 사이로 질퍽한 검은 액체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크아아아아아-!
망자의 비명과 함께 알리칸이 포효가 터져 나왔다. 곧 그의 입을 통해 망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쿠궁-! 쿠구구구-!
모든 망령이 빠져나가자 알리칸의 몸이 무너졌다. 그러나 무너지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장! 배가...!”
우직- 우지지직-
갑판이 벌어지며 유령선이 침몰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유령선을 양옆으로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서!”
크젤이 소리쳤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반대편으로 뛰었다. 선수 부분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밧줄을 잘라요!”
프레이는 난간으로 다가가 밧줄을 검으로 잘랐다. 이대로 놔두면 유령선과 함께 배가 좌초될 터.
“네? 뭐 할 게 이렇게 많아...!”
크젤은 불평하면서도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갈고리에 부착된 밧줄을 태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오! 그래도 언데드 숫자가 좀 줄었어요!”
프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배 위를 덮었던 언데드 중 일부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유령선을 처리하면 그 배의 선원들도 해결할 수 있는 건가?’
프레이는 크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뛰어요!”
더 늦으면 바다로 빠진다. 프레이는 언데드 사이로 뛰었다.
“하... 레이드 빡세다!”
크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프레이의 뒤를 따랐다.
프레이는 빠르게 양옆을 처리했다. 크젤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했다.
“아! 씨바! 뒤질 뻔!”
그나마 다행이라면 솔리스의 은총 버프 효과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 프레이와 크젤 주변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굼떠졌다.
“지원군이 오고 있소!”
양손을 펴며 보호막을 유지하던 사제가 배의 뒤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뒤이어 따라온 배들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크아아아아-!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유령선도 처리했는지 망령들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주변의 언데드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살았다!”
“됐어!”
갑판 후미에 있던 유저들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프레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옆! 갈고리를 끊어요!”
아직 갈고리가 남아있었으니까. 프레이의 말에 다른 유저들도 정신을 차리고 갈고리의 밧줄을 잘라냈다.
왼쪽 유령선에 있던 유저가 뛰어 내려왔다. 사제들은 보호막을 거두며 앞으로 쓰러졌다.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보호막 유지에 모든 힘을 쏟았는지 그들은 숨을 헐떡였다.
“우리도 서두릅시다! 얻은 게 하나도 없잖아!”
“이대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뒤에서 따라오던 배의 유저들이 소리쳤다. 제자리에 정박해서 유령선과 싸웠던 프레이의 배와 달리 그들은 속도를 유지하며 전방의 유령선을 향해 나아갔다.
“프레이!”
“아, 세이렌, 바이런.”
세이렌과 바이런이 다가왔다. 그녀는 프레이의 생환에 기뻐했다.
“아니, 전 보이지도 않나요?”
크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이렌은 가뿐히 그를 무시하고 바이런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반겨줄 뿐이었다.
“아하하... 고생했네.”
“음... 왠지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긴 한데... 아무튼 이제 좀 쉽시다. 이 정도 했으면 다른 유저들이 해결해주겠죠.”
크젤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유령선장을 처리한 것만으로도 큰 공이리라.
다른 유저에게 양보 좀 한다고 손해 볼 게 뭐 있는가? 그것보다는 안전이 우선이었다.
모두들 레이드 성공의 기쁨에 도취한 순간이었다.
“잠깐... 저, 저게 뭐야?!”
누군가 소리쳤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오... 솔리스시여...”
사제는 무릎을 꿇었다.
쿠우우웅- 철퍽- 철퍽-
거대한 촉수가 앞서간 배를 뒤엉켜 붙잡았다.
촉수의 살점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거대한 뼈는, 촉수의 주인이 살아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었다.
떠오른 배의 잔해, 다시 잔잔해진 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다가오는 유령선.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금 긴장이 감돌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3 (96%)]
[초급 단검술 Lv8 (8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