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56화 (56/141)

<-- 13. 유령선 레이드 -->

호화로운 저택, 값비싸 보이는 내부 장식은 물론, 과시용으로 걸어둔 초상화들.

초상화의 주인공은 콧수염을 기르고 한껏 거만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 저택을 방문하는 이들을 깔보듯이.

“제트람 경이 왔습니다.”

“들어오라 하게.”

집사장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제트람은 굳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탁-

문이 닫히고 제트람은 묵묵히 서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왔음에도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남자.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제트람 경.”

제트람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 남자는 그럼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예.”

“왜 아직 살아있습니까?”

제트람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는 사뭇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

“베르핀 님...”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베르핀 디케일. 데일 도프람의 삼촌이자 제 1왕비 세이란 디케일의 오빠.

그가 황제에 이어 제국의 후예 권력 서열 2위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을 이었다.

“친위대장은 살아있고 조카는 실종이라.”

베르핀은 책상 위에 올려있는 잉크병을 잡았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정상이 아닙니까?”

“베르핀 님, 송구하오나 데일 저하의 생존확률은...”

촤악-

“큽...”

제트람은 입을 다물었다. 베르핀이 던진 잉크병이 갑옷에 부딪쳐 깨졌다. 잉크가 그의 갑옷을 더럽혔다.

베르핀은 사람의 기분을 더럽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친위대장인 제트람에게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멸감은 다르다. 기사로서, 친위대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위해 베르핀은 그의 갑옷을 더럽히는 쪽을 택했다.

“데일은 ‘실종’됐습니다.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트람은 내키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베르핀은 실종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의 권력 기반은 제 1 황태자 데일, 그의 조카였다. 만약 데일이 사망했다고 인정하게 되면 그의 기반이 흔들릴 터.

“찾아오세요.”

제트람의 눈이 흔들렸다. 베르핀은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독사처럼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데일이 돌아올 때까지 수도에 발을 들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예.”

제트람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가려 했다. 베르핀은 그의 뒷모습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황제께는 제가 말할 테니, 쓸데없이 혀를 놀리지 마시길.”

제트람은 말없이 문을 닫았다. 잉크로 더럽혀진 갑옷을 본 시종들이 서둘러 눈을 깔았다.

그는 시종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빠르게 걸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하...’

제트람은 데일을 떠올렸다.

‘정말... 살아계십니까?’

* * *

콰앙-!

풍덩-!

“젠장... 진짜로 포탄이 안 먹히잖아!?”

범선의 양측으로 발사된 포탄은 허무하게 유령선을 통과해 바다에 빠졌다. 사제들은 다급하게 멀미를 겪는 유저들을 치료해주었다.

“옵니다!”

유령선이 가까이 올수록 그 배의 탑승한 것들이 선명해졌다.

딱- 딱-

턱뼈에서 소리를 내며 곡도를 들은 해골 선원들, 팔 하나, 눈 하나, 혹은 코가 없는 좀비 선원들.

그리고 다른 놈들과 달리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해골 선장.

“얘들아...! 갈고리를 걸어라!”

선장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다.

명령을 받은 언데드 선원들이 빠르게 범선에 갈고리를 던졌다.

턱- 턱-

“솔리스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사제는 벌벌 떨면서도 기도를 올렸다. 정화된 모르테미안 토템은 연신 빛을 내뿜었다.

“하아...! 저 타락한 토템을 부수어라!”

유령선장의 입장에서는 정화가 타락과 같은 의미인 것 같았다. 날카로운 곡도를 앞으로 내세우며 선장이 소리쳤다.

“모르템의 자비를 받아들여라! 영생에 합류하라!”

딱- 딱딱-!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갈고리를 당겼다. 양쪽에 유령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선원들과 유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프레이와 세이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 젠장 쪽수가 너무 밀리잖아요.”

크젤이 불평했다. 유령선 갑판 위에는 언데드 선원들이 우글거렸다. 반면 유저들은 양쪽으로 흩어져 있었고, 아직 다른 배는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정면에서 적이 추가될 거예요.”

프레이는 장검을 꺼냈다. 경량화 덕분에 움직임이 한결 수월했다.

“캐스팅에 시간이 걸리니까 잘 좀 보호해주세요.”

쿠웅-!

딱- 딱딱-! 크륵- 크르륵-!

유령선과 맞닿자 곧바로 선원들이 넘어왔다. 바이런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무기를 들었다.

“일단 흩어지지 마요!”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해골 선원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좀비보다는 해골인가.’

언데드 선원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우아아악!”풍덩-!

비명과 함께 바다로 떨어지는 선원과 유저, 언데드들. 사방에서 무기가 부딪쳐 쇳소리를 냈다. 프레이는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해골 선원 하나가 곡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 뭔가에 걸린 것처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솔리스의 은총 버프로 인한 효과. 프레이는 쉽게 공격을 피해내고 검면으로 해골 선원을 후려쳤다.

빠각-

두개골에 금이 가며 선원이 쓰러졌다.

“쉬운데?”

바이런도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속도로 움직이는 적을 상대하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비켜요!”

크젤이 바이런을 옆으로 밀쳐냈다. 손 위에 떠 오른 불화살이 빠르게 날았다.

화르륵-

좀비 선원이 불화살을 직격으로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와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다.

“휘유, 어렵지 않아!”

세이렌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양손에 단검을 쥐고 빠르게 좀비의 몸통을 찔렀다.

“죽어!”

그녀는 좀비의 멱을 따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빼낸 단검을 머리에 찍었다.

“하아... 하아...”

딱- 딱딱-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뭐, 뭐야! 살아난다!”

“설명 못 들었어!? 토템부터 파괴해야 해!”

프레이는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일어나는 해골 선원을 다시금 쓰러뜨렸다. 다른 유저들의 말대로였다.

‘토템...!’

크젤을 죽이는 건 아직이었다. 그는 지치지 않았다. 더욱 확실하게 처리를 해야 했다.

어차피 신성제국으로 가야 하기도 했기에 유령선을 격퇴하는 게 우선이었다.

“바이런, 세이렌을 부탁해요! 크젤, 따라 와요!”

“야, 우리 대장님. 욕심 좀 있는 분이었구나.”

크젤이 웃으며 프레이의 뒤를 따랐다.

“프레이!”

세이렌의 외침을 뒤로하고 프레이는 단숨에 배를 뛰어넘었다. 이미 다른 유저들도 유령선에 뛰어들어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은 모르템의 영역! 신에게 굴복하라!”

[모르테미안 토템 영역에 진입했습니다.]

[‘솔리스의 은총’ 효과가 반감됩니다.]

[독 저항력이 하락합니다.]

[주변 언데드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프레이는 메시지를 읽을 새도 없이 덤벼드는 해골 선원을 상대했다.

“이런... 버프가 없어졌어!”

크젤이 불평불만을 토했다. 그의 손에서 불화살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썩어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라...!”

유령선장의 주변에 초록빛 독안개가 피어올랐다. 선장을 상대하던 유저들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쿨럭...!”

“독이...!”

“아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선원이 되어라!”

유령선장의 칼이 유저의 배를 꿰뚫었다. 사망한 유저의 사체가 빠르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저건...!’

해안가에서 보았듯이 언데드에게 당한 자는 언데드가 된다. 썩어버린 유저의 사체가 천천히 일어났다.

“오, 대장.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자꾸 대장이라고 불러요?”

프레이와 크젤은 아직 독안개의 영향권 밖이었다. 프레이는 덤벼드는 좀비 선원을 걷어차며 말했다.

“공격대장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지.”

콰앙-!

화염구를 던지자 폭발이 일어나며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프레이는 검을 고쳐 쥐고 말했다.

“멀리서 지원해주세요.”

“대장? 뭘 어쩌려고...!?”

얼추 주위를 정리하자마자 프레이가 빠르게 뛰어갔다. 크젤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캐스팅을 했다.

“아씨... 막무가내잖아?”

프레이는 빠르게 유령선장의 앞에 섰다.

“물러서요! 독이...!”

유령선장을 상대하던 유저들이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경고했다. 그러나 프레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 배에 올라선 이상... 아무도 내릴 수 없다!”

유령선장과 프레이가 마주했다. 다른 유저들은 프레이가 피를 뱉으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이는 멀쩡히 검을 겨누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유령선장 ‘알리칸’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알리칸.”

유령선장의 스테이터스는 일개 언데드가 비빌 수준이 아니었다.

두근- 두근-

느껴지는 힘에 심장이 요동쳤다. 이렇게 강한 힘이니, 유저들이 들러붙어도 상대하기 어려울만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알리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토템은 어디에 있지?!”

“모르템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니...”

알리칸은 미소를 지었다. 썩은 살점 사이로 구더기가 꾸물거렸으니 보기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역겹군.”

프레이는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저렇게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거지?”

“그, 그 유저잖아? 고위사제 버프일 거야!”

살아남은 유저들은 프레이가 버티는 이유가 고위사제의 버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독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프레이의 이퀄라이저 특성. 스테이터스에는 저항력도 포함되어 있다.

언데드는 독에 면역이었기에, 알리칸이 내뿜는 독 역시 프레이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프레이는 빠르게 알리칸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소롭구나... 네놈도 결국 내 선원이 될 거다!”

알리칸이 칼을 들어 프레이의 공격을 막아냈다. 프레이는 잔영이 이끄는 대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다른 유저들은 유령선장과 호각을 이루는 프레이를 보고 넋을 놓았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린 듯 같은 공격대원에게 말했다.

“우리는 토템을 찾자!”

“움직이자고!”

크젤은 슬쩍 다른 유저를 쳐다보았다. 토템 파괴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큰 메리트는 없지만 저렇게 떠넘기듯 사라지는 유저들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씨... 짜증나네.’

다른 유저들 보다 먼저 토템을 파괴할까 했지만 프레이가 마음에 걸렸다.

‘아이... 놔두고 갈 수는 없잖아.’

그래도 같은 공격대가 아닌가. 게다가 프레이는 유령선장과 호각으로 싸우는 실력자. 빚을 만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다른 유저들이 선실로 향하는 사이 크젤은 공격마법을 준비했다. 웬만하면 일격을 먹일 수 있는 것으로.

“네놈... 특별히 갑판장을 시켜주지.”

“후우...”

알리칸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의 전투 방식은 독특했다. 칼을 쓰는가 싶다가도 발과 주먹이 날아들었다.

‘실용적이군...’

무기에 의지하지 않고,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검술이라기보다 살인에 특화된 것 같았다.

‘나도 그에 맞춰야겠어...!’

프레이는 빠르게 검을 찔러 넣었다. 알리칸은 피할 생각도 없이 손바닥을 검끝으로 밀어 넣었다.

“고통은 없다...!”

‘제길...!’

설마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을 줄이야. 다음 움직임을 알려주는 잔영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알리칸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칼을 들었다. 단숨에 허리를 끊을 생각으로 알리칸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떨어져요!”

안 그래도 프레이는 검을 버릴 생각이었다.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허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알리칸의 칼을 피해 뒤로 굴렀다.

화르륵-!

알리칸의 아래가 붉게 빛나더니 이내 불기둥이 치솟았다.

“어떠냐!”

크젤이 소리쳤다. 프레이는 화끈한 열기에 다시 뒷걸음질 쳤다.

탁- 탁-

불기둥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알리칸이 그을린 옷을 털어냈다.

살점이 벌어졌는지 프레이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알리칸이 불길에 휩싸인 사이 그는 빠르게 검을 회수했다.

붉게 익어버린 살점은 조금 지나자 다시금 복구되었다. 프레이의 검을 막아낸 손바닥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헛수고다... 여기는 모르템의 영역...!”

“젠장...”

크젤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대장, 도망칩시다!”

프레이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이런 괴물일 줄이야. 도저히 승산이 없지 않은가?

‘잠깐...!’

알리칸이 우뚝 멈춰 섰다. 프레이도 그의 변화를 감지했다.

“이 쥐새끼들이...!”

알리칸의 시선이 선실 쪽으로 향했다.

“크젤, 다시 부탁해요!”

프레이는 빠르게 알리칸에게 덤벼들었다.

프레이의 힘, 알리칸의 힘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알리칸은 칼을 갑판에 내리꽂으며 흉성을 터트렸다.

“일어나라...! 바다의 망자들이여...!”

그와 동시에 알리칸의 곁으로 파동이 터져 나왔다. 프레이는 다급히 검을 갑판에 박아 넘어지지 않았다.

거리가 있던 크젤은 낭패라는 듯 소리쳤다.

“씨바... 페이즈 2네...!”

딱- 딱딱-!

크륵-!

지금까지 쓰러뜨렸던 언데드의 몸이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3 (21%)]

[초급 단검술 Lv8 (8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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