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유령선 레이드 -->
세이렌이 가리키는 남자는 비교적 말끔한 인상이었다. 짧은 흑발에 매끈한 턱선, 여타 유저와 같이 생김새는 멀쩡했다.
“확실해요?”
프레이의 물음에 세이렌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저 자식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세이렌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저 마법사가 마비 폭탄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납치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납치되지 않았다면 고블린에게 쫓길 일도, 강물에 빠져 이상한 약을 먹고 몸이 바뀔 일도, 그리고 그 끔찍한 레이판도 만나지 않았으리라.
그녀에게 모든 일의 원흉은 저 마법사였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생각해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원망할 대상은 실체가 있는 편이 좋았으니까.
“당장 죽여버리겠어...!”
“잠, 잠깐...!”
세이렌이 단검을 빼 들고 움직이려 하자 프레이가 다급하게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녀는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뭐, 뭐 하는 거야?!”
“미안해요. 일단, 일단 진정해요.”
“하지만...!”
프레이는 빠르게 손을 올려 그녀의 말을 막았다.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완벽하게 하자는 거지...”
“완벽...?”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마법사를 죽이면 마음이 좀 풀릴까? 답은 아니오였다.
“유저를 죽여 봤자 큰 피해는 주지 못해요. 그리고 지금은 저놈에게 동료가 있잖아요.”
프레이는 힐끔 마법사의 일행을 살폈다. 여자 쪽은 석궁을 들고 있었고, 남자는 검과 방패로 무장했다.
‘한 번에 유저 셋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프레이와 세이렌이 사정을 설명한들 유저가 믿어주겠는가? 증거라고는 세이렌의 기억뿐이다.
“그건... 그렇지...”
세이렌도 사정을 이해한 듯 손을 내렸다. 그러나 분은 풀리지 않는 듯, 그녀의 눈은 마법사를 향해있었다.
“토템을 구하고 있다는 건, 놈도 신성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일 겁니다.”
“그렇겠지. 나를 습격한 반역자인데. 전국에 수배가 내렸을 거야.”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이 가라앉자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맞아... 유저는 죽여도 소용없어. 놈들에게 고통스러운 건 자유를 빼앗는 일이지.”
“자유를요?”
“유저가 감옥에 갇히게 되면 죽어도 감옥에서 부활한다고 들었어. 정해진 형기를 마치고 나오거나 탈옥하는 수밖에 없지. 아니면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던가.”
세이렌의 설명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죽어도 다른 곳에서 부활한다면 감옥은 의미가 없을 터.
“그래도... 한 번은 놈의 멱을 따야 속이 후련하겠어...!”
세이렌은 이를 악물었다. 프레이는 잠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일단... 따라가 봐요.”
프레이는 세이렌과 함께 그들의 뒤를 추격했다.
* * *
‘마법사라...’
프레이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고심했다. 마법사는 선천적으로 신체 능력이 약한 것이 정설이다.
‘더스틴 마을에 찾아오는 마법사들은 모두 후방에 있었지...’
프레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마법사들은 몬스터를 한 번에 쓸어버릴 정도로 강하지만 다른 이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움직임도 굼뜨고, 갑옷처럼 무거운 장비도 착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힘과 민첩은 일반인보다 부족한 것 같았다.
‘문제는... 저자의 스테이터스가 내 것이 된다는 건데...’
마법사와 단독으로 싸우게 되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스킬이 좋다고 해도 마법사의 스탯으로 어떻게 상대하겠는가. 그 이전에 마법사의 마법으로 결판이 나리라.
“프레이.”
“네? 아...”
어느새 솔리스 신전 앞이었다. 해가 졌음에도 신전 앞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자자 좀 비켜주세요.”
마법사의 동료 중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갔다. 줄을 서 있던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지금 줄이 안 보입니까?”
“이렇게 대놓고 새치기라니, 너무 참신한데?”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대답 없이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는 금이 간 해골문양의 토템이 들려 있었다.
“어... 저, 저거!”
“모르테미안 토템이다!”
“와... 저게 나오긴 하나 보네?!”
부러움과 선망의 시선, 프레이는 사람들에 밀려 더 이상 그들을 뒤따르지 못했다.
“어, 어쩌지?”
세이렌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사 일행의 앞길을 막은 유저들이 빠르게 옆으로 갈라섰다.
“신성제국 가는 배에 저도 끼워 주세요!”
“저, 저도!”
유저들은 황급하게 그들에게 부탁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모르테미안 토템은 신성제국으로 가는 티켓과 다름없었으니까.
“아아, 일단 정화의식을 끝내고요. 저희도 아무나 못 태워드립니다.”
마법사 일행은 거만한 웃음과 함께 신전 안으로 사라졌다. 프레이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마음을 먹었다.
‘좋아... 도박을 해보자...’
프레이는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그리고 세이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따라와요.”
“프레이? 뭘 어쩌...”
프레이는 세이렌의 손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에 치여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세이렌은 입을 다물고 그 뒤를 따라갔다.
“아, 뭐야 또...”
“새치기? 지금 장난하나?”
“뭐야? 당신도 토템을 가져왔어?”
유저들은 다시금 짜증을 부렸다. 모르테미안 토템이 연달아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프레이는 아까 전 일행처럼 손을 들어 모르테미안 토템을 들었다.
“저, 저거...!”
“상태가 더 좋은 건데?!”
유저들은 선망보다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것이 방금 봤던 것과 달리 토템의 상태가 매우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비켜주세요. 지나가겠습니다.”
프레이는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신전에 들어가 보니 마법사 일행이 먼저 정화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정화의식이 끝났습니다. 이 토템을 항구로 가져다주시면 배를 타고 가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걸로 드디어 신성제국에 갈 수 있게 됐네요.”
석궁녀가 해맑게 웃음 지었다. 마법사는 뒤에서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일로... 그, 그건...!”
대기하고 있던 사제가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다가 놀랐다. 그의 시선은 프레이가 들고 있는 토템에 꽂혀있었다.
“이, 이 사악한 기운... 어, 어디서 이걸 구한 겁니까?”
“언데드를 처리하니까 나왔습니다.”
프레이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반은 진실이었다. 바르푼의 집에서 언데드를 처리하긴 했으니까.
“오... 토템을 구한 유저가 또 있었네...?”
소곤거린다고 하지만 신전 내부가 조용했기에 방패남의 말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프레이는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사제에게 다가갔다.
“토, 토템을...”
정화의식을 맡은 사제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는 손에 들고 있던 모르테미안 토템을 내밀었다.
사제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토템에 축적된 마력 때문이었다.
“정말... 이걸 언데드에게서...?”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정화를 시작하죠.”
사제가 웅얼웅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 일행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마법사는 조금 불만인 표정이었다.
“어서 가는 게 낫지 않나요?”
“네? 아하하... 그래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이벤트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럼 토템이라도 먼저 주십시오. 제가 먼저 가서 미리 준비할 테니까요.”
“그래도 같이 가야죠. 크젤님 말대로 할까요?”
석궁녀가 둘을 중재하려는 듯 나섰다.
‘저놈의 이름이 크젤인가...’
“...이에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솔리스, 우리의 태양이시여. 어둠을 몰아내고 신성한 생명을 돌보소서.”
사제가 진땀을 흘리며 말을 마쳤다. 그러자 토템을 향해 사제의 손에서 빛이 쏟아졌다.
쏴아악-
프레이는 빛줄기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토템의 해골 부분이 마치 녹아내린 듯 사라져 있었다.
“후... 됐습니다.”
프레이는 토템을 바라보았다.
[정화된 모르테미안 토템]
[죽음의 신 모르템을 섬기는 신도의 상징이었으나 솔리스의 권능으로 정화되었습니다. 언데드는 모르템의 상징을 더럽힌 자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주변 언데드의 제 1 목표가 됩니다.]
‘뭐야 이거...?’
언데드의 제 1 목표가 된다는 설명, 차라리 정화되기 이전이 더 쓸모가 있지 않은가?
“후우... 이 토템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이죠?”
세이렌이 사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아이템의 설명을 읽을 수 없었기에 궁금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분들이 구해온 건 불완전한 토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토템만 있다면, 유령선을 직접 유인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네?”
프레이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사제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령선을 퇴치하고 바다를 되찾을 기회입니다. 다른 유저들에게 알리십시오! 지금부터 모든 배를 징발하겠습니다!”
“잠, 잠깐 이게 무슨...!”
프레이는 당황해서 일어났다. 그러나 사제는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솔리스의 사제들이 나서면 유령선은 겁을 먹었는지 정체를 숨기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 토템으로 유령선을 유인하여 격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프레이이가 당황하는 사이 크젤의 일행이 다가왔다.
“잠깐 배를 모두 징발하겠다니 무슨 소립니까?”
방패남이 황당하다는 듯 사제에게 물었다.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 유저께서, 아 죄송합니다. 성함도 모르고 있었군요.”
“아... 프레이입니다.”
“예, 프레이 님께서 구해주신 토템을 이용해 유령선을 격퇴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니만큼 모든 자원을 동원할 예정입니다.”
프레이는 크젤 일행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가장 먼저 열을 낸 건 역시 크젤이었다.
“그러면 신성제국으로 가는 배는요?”
“유령선을 퇴치하면 바닷길이 열립니다. 그 뒤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뭐라고?”
크젤은 미간을 찌푸렸다. 개고생해서 토템을 구해왔는데, 갑자기 길이 막혔으니 열이 받을 만도 했다.
“급하시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사제에게 돌아갔다.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선을 격퇴하고 그 길로 신성제국으로 가면 해결될 일이죠. 프레이 님과 일행은 반드시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제는 일방적인 통보를 마치고 돌아갔다.
“아니... 갑자기 유령선 레이드라니...”
크젤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방패남과 석궁녀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음... 저희는 이만 빠지겠습니다. 레이드에 참가할 실력은 아니라서요.”
“자, 잠깐만요. 뭐라고요?”
크젤이 놀라서 물었다. 방패남과 석궁녀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크젤 님처럼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꼴 좋다. 뭔지 몰라도 저 자식한테는 안 좋은 거지?”
말을 잊고 멀어져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크젤을 보며 세이렌이 고소하다는 듯 속삭였다.
‘레이드라고...?’
프레이는 크젤이 중얼거린 내용을 되새기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크젤... 님이라고 하셨죠?”
“예. 왜요?”
크젤은 프레이에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된 원인 제공자가 프레이였으니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저희도 신성제국으로 급히 가야 할 일이 있어서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실까요?”
“같이 가자고요?”
크젤은 프레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프레이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프레이는 신전 옆에서 사람들이 머리 위에 띄웠던 메시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검술 중급, 궁술 중급입니다. 초급 수리도 가능하고요.”
“음...”
크젤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후... 알았습니다. 나중에 배에서 봅시다.”
프레이는 웃으며 그를 보냈다. 크젤은 한숨을 내쉬다가도 머리를 헝클이며 신전을 빠져나왔다.
“프레이, 저 자식은 왜?”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요. 바이런에게 확인할 것도 있고...”
프레이가 앞장서서 신전을 나갔다. 세이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2 (84%)]
[초급 단검술 Lv8 (8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