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재회 -->
펠린과 그 부하들이 먼저 수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들어온 프레이는 부하들이 치우는 오토마톤을 발견했다.
‘오토마톤까지 쓰나...?’
의외로 재정이 충분한 걸까. 상관없었다. 저 오만방자한 놈의 입에서 사과를 들어야겠다.
그것도 진심 어린 사과를.
아버지가 비록 산골 마을에서 사냥과 나무를 하며 살아왔지만, 이렇다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아버지였지만. 프레이에게는 그 누구보다, 이 나라를 통치하는 황제보다 훌륭한 아버지였다.
가끔은 엄격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위해 몸을 내던지고 당신보다 가족의 안위를 걱정했던 아버지.
프레이는 핸슨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를 떠올리니 다시금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지가 그리운 만큼, 아버지를 사랑한 만큼 그를 욕보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도둑놈, 얻어터질 준비는 됐어?”
펠린이 몸을 풀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부하가 건네준 훈련용 장검을 잡았다.
부웅- 부우웅-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에게 과시하는 몸짓.
그러나 프레이는 차분하게 앞으로 나섰다.
“프레이...!”
뒤늦게 세이렌이 도착해서 그를 불렀다. 프레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저 펠린이라는 놈이 얼마나 강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펠린의 스테이터스가 곧 자신의 스테이터스니까.
프레이는 무기함에서 적당한 장검 하나를 들었다.
“오... 괜찮은 척하는데?”
펠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프레이를 보며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은 놈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뭐... 그래 봤자 풋내기지.’
같은 유저라고 해도 수준 차이가 나는 법이었다. 강한 유저들은 대부분 수도와 우조스에 몰려 있었다.
펠린은 적어도 메리나에 오는 유저 중에 자신을 상대할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웬만큼 강한 유저들은 겉으로도 티가 난다.
강한 만큼 좋은 장비를 갖추기 때문, 그에 반해 프레이의 장비는 어떤가?
시작의 마을에서 받은 기본 갑옷에 조금 장식이 특이한 장검이었다. 어렴풋이 마법 아이템이라고 추측이 됐지만 수련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천천히 갖고 놀아주지.’
여유로운 모습으로 펠린이 검을 들었다. 프레이는 절도있게 검을 들어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허, 도둑놈 주제에 예의는 좀 아나 보군.”
펠린도 검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그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한 명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좋다.”
펠린이 씨익 웃었다. 패배를 인정하기 전에 말도 못 꺼내도록 묵사발을 내줄 셈이었다.
프레이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메리나 순찰대장 ‘펠린’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음...’
프레이는 속으로 신음을 뱉었다. 느껴지는 힘으로 보아 오크를 상회하는 힘.
‘제트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하다.
이 정도로 수련했다면 검술 수준도 꽤 높을 터.
‘섣불리 나서면 안 되겠어...’
들이켠 숨을 뱉으며 펠린의 빈틈을 찾았다.
전투에 돌입하자 펠린은 껄렁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의외로... 어려울 수도 있겠어...’
보이는 잔영은 2개.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본래 고수는 첫 공격을 양보하는 법이지.”
“... 바라는 대로.”
펠린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프레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처음은 가볍게...!’
펠린의 허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펠린은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오... 힘은 좀 있네.”
펠린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외로 신체 능력은 발군인 것 같았다.
프레이는 대답 없이 곧바로 검을 회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펠린은 검을 들어 올려 프레이의 검을 위로 쳐냈다.
“큭...!”
자칫하면 검이 튕겨 나갈 뻔했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펠린의 검끝이 자신이 있던 자리에 멈췄다.
“오... 그래도 감은 있구먼.”
펠린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어디 그 주둥아리만큼이나 잘 하는지 볼까!”
‘제길...!’
연신 쇄도해 오는 검격,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잔영들. 프레이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막는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
세이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펠린의 부하들은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야! 벌써 포기하면 안 된다?”
“그래! 조금 더 버텨봐!”
주위에서 조롱했지만 프레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오롯이 눈앞의 펠린의 검에 쏠려 있었다.
‘공격보다 방어...!’
게리슨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전투에서 중요한 건 공격보다 방어라는 말.
《T.O.Y》는 여타 다른 게임과 달리 데미지라는 개념이 없다. 현실성을 극대화한 게임인 만큼, 전투 역시 되도록 현실에 맞추었다.
목을 베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장을 뚫린다면?
언데드가 아니라면, 스테이터스가 아무리 높아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 그렇기에 일순간의 방심이 생사를 가른다.
다른 게임이 공격을 통해 HP를 전부 소모시켜 적을 처리한다면, 《T.O.Y》에서는 급소를 노려 적을 무력화하고 숨통을 끊어 적을 처리한다.
방어, 그중에서도 급소만 방어할 수 있다면 기회는 있다.
“이제 네 주제를 알겠나?”
검을 밀어붙이며 펠린의 얼굴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표정에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검과 검은 팽팽하게 붙어 있다.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았다.
펠린은 연신 공세를 퍼부은 탓인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반면 프레이는 냉정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레이는 검을 슬쩍 뒤로 빼내며 옆으로 몸을 숙였다. 펠린과 다른 점은 그의 체격이 더 왜소하다는 것.
원래대로라면 단점이지만, 스테이터스가 같을 때는 작은 체구가 더 유리했다. 그만큼 몸을 움직이는데 드는 힘이 적기 때문에.
검을 흘려낸 프레이는 곧바로 검 손잡이로 펠린의 옆구리를 쳤다.
캉-
“흡...!”
뭉툭한 부분이 그의 갈비뼈를 가격했다.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전달된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순간 자세를 무너뜨릴 정도는 되었다.
프레이는 잔영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뒤로 밀려난 펠린의 가슴으로 검끝이 찔러 들어갔다.
“이 자식이!”
만약 실전이었다면 치명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펠린이 프레이의 검을 손등으로 쳐내며 공격해 들어왔다.
“컥!”
숨이 턱 막혀왔다. 펠린의 검이 명치 아랫부분을 때렸다. 프레이의 가죽 갑옷으로는 충격을 완화하기가 힘들었다.
“건방진 놈!”
펠린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검을 내리쳤다.
프레이는 몸을 굴려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서며 펠린의 허벅지 안쪽을 때렸다.
“크악!”
이번에는 충격이 있는지 펠린이 휘청거렸다.
“페, 펠린 님...!”
부하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세이렌은 프레이가 반격에 성공하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됐어! 해치워 버려!”
프레이 역시 몰아쳤다. 펠린은 프레이와 달리 바닥을 구르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날아오는 검을 몸으로 맞을 생각이었다.
‘이 정도는...!’
어깨로 날아오는 검, 이 정도는 갑옷으로 막아낼 수 있다. 그대로 막고 곧바로 놈의 발목을 쳐내 넘어뜨리리라.
짧은 시간 안에 다음 움직임을 예상했던 그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어...?’
분명 어깨로 날아오는 걸 봤다. 그러나 프레이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 경로를 바꾸었다.
검은 펠린의 목을 쳤다.
갑옷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부분, 투구로도 막지 못한 부분이었다.
생살에 그대로 검이 부딪쳤다. 만약 날이 벼려진 검이었다면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터.
그나마 날이 세워지지 않은 뭉툭한 훈련용 장검이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게 용했다.
호흡이 흐트러지고 동시에 골이 흔들렸다.
“크아악!”
뒤늦게 느껴지는 고통, 펠린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쓰러진 펠린, 그러나 프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캉- 캉-
집요하게 머리만 노리며 후려치는 프레이. 모든 공격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펠린은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페, 펠린... 님...!”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펠린은 검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기사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듯 휘적거리는 손, 그저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프레이는 발을 움직여 펠린의 뒤로 돌아가 펠린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손목을 쳐냈다.
“끄아악!”
카강-!
펠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검이 바닥을 굴렀다. 저항수단이 없어지자 프레이는 다시금 펠린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그만! 그만!”
머리로 전해지는 충격 때문에 구토가 치밀었다. 펠린이 소리쳤다. 그러나 프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만해!”
부하들이 놀라서 프레이를 막으러 나왔다가 멈춰 섰다. 그들을 향해 프레이가 검을 겨누었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뭐, 뭐!?”
프레이는 펠린의 등을 걷어찼다. 앞으로 고꾸라진 펠린의 목을 겨누고 크게 허리를 틀었다.
전력으로 휘두르면 목이 부러지리라.
펠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도 눈이 있었다.
‘지, 진심이다...!’
프레이의 표정에는 한 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졌어! 졌다고!”
우뚝.
펠린의 턱밑에서 프레이의 검이 멈추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프레이의 눈빛.
펠린은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우욱...우에엑...”
“페, 펠린 님! 괜찮으십니까!”
“치울 것 좀 가져와!”
부하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프레이는 짧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과해라.”
“우웨엑...!”
펠린은 다시금 먹은 걸 게워냈다. 프레이는 그의 사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약속을 지켜.”
“지, 지금 그런 걸 말할 상황이 아니...!”
“후욱... 후욱... 미, 미안하다...”
부하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펠린을 돌아보았다. 펠린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다.
“내가... 실수했다...”
프레이는 차갑게 펠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뒤에 붙여야 할 말이 있지 않나?”
“펠린 님이 사과하지 않았나!”
부하가 발끈해서 대들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펠린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다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혀... 형님.”
“펠린 님...!”
아무리 성격이 개 같아도 펠린은 기사였다.
기사는 입 밖으로 한 말을 지켜야 한다. 자신에게 거짓되지 않는 것, 그것이 기사의 수칙이었다.
“지금부터 수련장을 이용할 테니 정리를 해주세요.”
펠린은 부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치워라...”
“예? 아,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빠르게 정리를 시작했다. 펠린은 절뚝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프레이, 괜찮아?”
세이렌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프레이는 맞은 부분이 욱신거려오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괜찮아요...”
프레이는 애써 웃어 보였다.
* * *
정리가 끝나고 부하들이 수련장을 비워주었다. 그사이 충격에서 벗어난 펠린이 조심스럽게 프레이에게 다가왔다.
“다시 사과드립니다. 형님.”
“... 형님이라고 부르시지 않아도 됩니다.”
프레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사람과 오래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 언동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펠린은 정중히 사과했다. 비록 유저라고는 하나 자신을 이긴 남자였다. 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그가 깔보는 건 그보다 약한 사람들이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성격. 의외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향이었다.
“오토마톤 사용은...”
“알고 있습니다.”
펠린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오토마톤 사용법을 알고 있다니... 보기와는 다르게 좋은 곳에서 훈련한 모양이군...!’
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토마톤을 이용하는 유저는 빠르게 성장한다.
‘괜히 더 부딪치기 전에 피해야겠군.’
약속한 이상 그를 볼수록 체면만 구길 것이다.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놈에게 형님 대접이라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펠린이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프레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세이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훈련 시작하죠.”
프레이는 오토마톤을 꺼내며 말했다.
“후... 알았어!”
“아무래도 힘이 부족하니 단검을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휴대하기도 좋고.”
“단검... 단검... 아, 이거지?”
세이렌이 훈련용 단검을 꺼내며 말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마톤 하나를 더 꺼냈다.
“너도 훈련하려고?”
“아뇨.”
프레이는 먼저 꺼내둔 오토마톤 옆에 방금 꺼낸 오토마톤을 세우며 말했다.
“시간을 아끼려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죠.”
“응...?”
세이렌은 설마 하는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말없이 오토마톤을 설정했다. 마력이 차오르며 오토마톤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죠.”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2 (2%)]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