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48화 (48/141)

<-- 12. 재회 -->

프레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글렌이 재차 물었다.

“황태자님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 않나!?”

멱살을 쥐고 흔드는 통에 프레이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만둬!”

세이렌이 나서자 글렌이 눈을 부라렸다.

“네년은 또 뭐야?”

“뭐? 네, 네년!?”

글렌은 프레이가 대답을 하지 않아 짜증이 오른 상태였다. 그런데 몸이나 굴릴 법한 년이 끼어드니 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네가 년이지 놈이냐? 관계없는 이야기니 빠져 있거라!”

“뭐, 뭐라고!?”

세이렌은 기가 찬다는 듯 되물었다. 데일의 몸이었을 때는 간이든 쓸개든 다 내줄 것처럼 굴더니?

프레이는 일단 상황을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멱살을 쥔 손을 잡고 밑으로 빼냈다.

“우웃...!”

숱한 전투 속에서 프레이의 스테이터스는 변화했지만 성장도 멈춘 건 아니었다. 그의 본래 스테이터스도 수련을 통해 증가하였기에, 평화에 찌든 귀족 한 명쯤은 가뿐했다.

“글란...”

“글렌이라고 불러! ‘님’도 붙이지 말고!”

혹여나 누가 들을까 글렌은 다급하게 호칭을 고쳐주었다.

“알았습니다. 글렌, 일단 말로 하죠.”

글렌은 얼굴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힘으로 못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좋아... 나도 조금 흥분한 것 같군... 미안합니다. 아가씨.”

글렌이 힐끔 세이렌을 보며 사과했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세이렌, 어떻게 해요?”

“뭘? 아.”

프레이가 귓속말을 했다. 세이렌이 되묻다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일단 숨겨야지... 경비병들처럼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세이렌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데일이라고 밝힌다고 한들 그가 믿기나 하겠는가.

“알았어요. 그럼 저한테 맡겨줘요.”

“뭘 그렇게 속닥속닥하는 건가?”

글렌이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프레이는 애써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황태자께서는 행방불명입니다.”

“행방불명...!?”

“예. 제가 뒤쫓았지만 그 간악한 놈들을 놓치고 말았죠.”

글렌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제트람을 비롯한 친위대도 황태자를 찾지 못했다.

프레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그럼 이놈은 왜 메리나에... 아하!’

글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측은한 눈빛이었다.

“글렌?”

“그렇군... 고생 많았네. 얼마나 걱정되겠는가. 비록 자네 잘못은 아닐지라도 처벌이 두려웠겠지. 내가 다 아네.”

“네...?”

“자네도 신성제국에 몸을 의탁할 생각이었던 거지?”

글렌의 추리는 이러했다.

비록 유저라고는 하나 황태자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했다. 일단 황태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처벌을 면치 못할 터, 프레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도 자신처럼, 제국의 후예를 떠나 신성제국으로 갈 생각이라고 판단한 것.

‘그 와중에 저런 여자를 일행으로 삼다니... 유저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글렌은 곁눈질로 세이렌을 훑었다.

“아... 네... 뭐...”

프레이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빠르게 붙였다.

“잠깐, 그럼 글란 님...”

“글렌이라니까!”

“아, 네. 그쪽도 신성제국으로 도망치는 중이었습니까?”

“흠흠, 도망이라는 말은 듣기에 좀... 망명이라고 생각하게.”

조금 다르지 않나 싶었지만 프레이는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게 됐고, 그에게 도움도 받았으니.

“제트람 경이 수도로 돌아갔으니... 아마 5일은 걸릴 걸세. 다시 메리나로 오려면 적어도 열흘... 그 안에 배를 띄워야 하네!”

“제트람 경이?”

세이렌이 놀라 묻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글렌이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여자로군. 아무튼 그 유령선인가 뭔가 때문에 신성제국으로 배가 가지 않아...”

“그건 좀 문제로군요.”

“그러니까 말일세. 자네는 유저니까 뭔가 다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기대가 어린 눈빛,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프레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음... 그건 모르지만, 알 것 같은 사람은 있습니다.”

“오오! 역시 유저로군. 그게 누군가?”

“안 그래도 그 사람을 만나러 가려 했습니다. 저희는 일단 레스톤에 갔다 오려고 합니다.”

프레이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바이런이었다. 그의 말에 글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스톤에? 레스톤에 뭐 하러...? 설마...?’

글렌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자식이 설마 내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밀고한다면...?’

레스톤에 머물면서 수도에서 파견한 추적대에게 그의 위치를 알린다면, 적어도 처벌이 약해지지는 않을까. 그걸 노리고 레스톤에 간다는 건 아닐까.

글렌의 머리는 의심으로 가득했다. 도망자가 됐다는 사실에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을 부르면 되지 않나?”

“부른다니요?”

프레이가 되묻자 글렌은 답답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유저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상인 조합에 의뢰해서 서신을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서신이요?”

“허, 정말 몰랐나 보군...”

글렌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짧게 설명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전달해야 할 때 유저들은 상인 조합에 의뢰하지. 본래 상인들은 이곳저곳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니 겸사겸사 서신을 전해주도록 부탁하는 거지. 상인 조합이 보관하는 서신을 조합원들이 오가며 전달을 하는 게야.”

“아하... 근데 왜 전사나 용병... 아, 그렇군요.”

“다행히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군.”

프레이는 왜 다른 조합이 그 일을 맡지 않느냐고 물어보려다가 곧 스스로 깨달았다.

전사나 용병 조합은 도시보다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니 그들보다는 상인이 의뢰를 수행하기에 유리한 환경일 터.

“아, 하지만...”

프레이는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상인 조합에 다시 들어가기 좀 껄끄러워졌습니다.”

“으음... 알았네. 내가 대신 의뢰를 하도록 하지. 찾는 사람 이름이 뭔가?”

“아,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바이런이라는 유저에게 메리나로 와달라고 하면 될 겁니다.”

프레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이런이 올까 생각했다.

‘그래도 왠지 그 사람이라면 올 것 같아...’

“좋아. 그럼 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나는 먼저 상인 조합에 가볼 테니, 자네는 배를 띄울 방법을 좀 찾아봐.”

“네, 그러죠.”

“그럼 저녁에 여관에서 보자고.”

글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세이렌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황태자일 때는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뭐... 누가 찍소리를 하겠습니까. 우리도 가죠.”

프레이가 앞장서자 세이렌이 뒤에서 그를 따랐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황태자라는 직위를 보고 있던 거로군...’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그들이 복종하는 건 그녀 자신이 아닌 제 1 황태자라는 직위였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황태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변한다는 건가...’

세이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더욱 프레이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그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에.

* * *

세이렌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는 왜 왔어? 신성 제국에 가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야?”

“네? 아... 그건 제가 찾는 사람이 오면 할 거예요.”

프레이는 글렌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찾아봐야 한계가 있는 법,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만약 유령선을 만난다면... 적어도 자신을 지킬 방법은 알아야죠.”

“하지만 여기는...”

세이렌은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메리나의 경비본부였다.

“시작의 마을은 아니지만... 수련장 정도는 있을 거예요.”

프레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있는 경비병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인기척에 머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여기...”

프레이가 용건을 말하려는 찰나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미친 여자와 도둑놈이 아닌가.”

“확실히 멍청하긴 하군요. 제 발로 또 오다니.”

조롱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상인 조합에서 만났던 경비병 무리였다.

“이래서 오기 싫었던 건데...”

세이렌은 입술을 깨물었다. 프레이는 그들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 수련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예? 아... 예, 그런데 시작의 마을이 아닌지라 이용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용료요? 얼마 정도죠?”

프레이의 질문에 경비병은 고개를 돌렸다.

“아... 하루에 10실버인데...”

“어이, 지금 도둑놈한테 수련장을 내주겠다는 거야?”

“펠린 님, 그게...”

경비병이 난처한 얼굴로 프레이와 상관, 펠린을 번갈아 보았다. 프레이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마차나 훔치는 도둑놈 주제에, 이용료는 정당하게 벌었나 싶어서 말이지.”

펠린이 비아냥거렸다. 그의 뒤로 경비병들이 낄낄거리며 서 있었다.

“그런 것까지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허허, 이놈 봐라? 다들 들었어? 나보고 당신이라네?”

“겁을 상실한 놈인 것 같습니다!”

“아예 생각이라는 걸 못하는 건 아닐까요?”

부하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펠린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한번 봐줬다고 또 그럴 거라 생각하나 본데... 아까 널 풀어줬던 아저씨는 어디 갔어? 그 남자가 네 아빠냐?”

우득-

프레이가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깨물었다. 세이렌은 불안한 눈으로 프레이와 펠린을 바라보았다.

“오.. 열 좀 받으셨나 봐? 왜? 아빠한테 뭐라고 하니까 화났어요?”

펠린이 낄낄거리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여기는 너 같은 애송이가 올 곳이 아니다. 도둑놈이면 도둑놈답게 뒷골목에 가서 놀아. 쯧, 자식새끼가 이 모양이니 아버지가 어떤 놈인지 뻔하네.”

“말이 너무 심하잖아!”

세이렌이 참다못해 소리 질렀다. 펠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이구, 황태자께서 누추한 이곳까지는 어떻게...?”

“그 말 취소해.”

세이렌이 다시 뭐라고 하려는 찰나 프레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우리 아버지는 너 같은 놈이 입에 담을 분이 아니다. 당장 그 말 취소해.”

프레이의 눈이 분노로 물들었다. 펠린은 그 눈빛에 움찔거렸지만, 곧 뒤에 부하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되려 성을 냈다.

“허! 이 도둑놈이 주제도 모르고...!”

“그래 이 쥐새끼 같은 놈아! 펠린 님이 나서면 넌 한주먹 거리도 안 돼!”

부하가 소리치며 웃었다. 그 말이 맞다는 듯 펠린은 어깨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내가 아량을 베풀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썩 여기서 나가도록!”

“내가 이긴다면?”

펠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

“너를 쓰러뜨린다면 사과할 건가?”

“뭐? 네가... 나를...?”

“프레이...?”

세이렌이 놀라 물었다. 물론 제트람과 겨룰 정도로 실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펠린이라는 작자의 품행이 나쁘기는 해도 한 도시의 치안을 맡은 몸, 이기기는 쉽지 않으리라.

“허! 만약 네가 날 이기면 사과는 물론 평생을 형님으로 모시마.”

“그 약속 지키기를 바란다.”

이쯤 되니 펠린도 물러설 수 없었다. 반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그 역시 무인, 눈앞의 놈을 묵사발 내주고 싶었다.

“좋다! 수련장으로 따라와! 죽지 않을 정도로만 혼쭐을 내주도록 하지.”

펠린이 앞장서자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프레이가 그를 뒤따라갔다.

세이렌이 막 뒤따라가려는 찰나, 요금 안내를 해주던 경비병이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말려요! 펠린 님이 성질을 괴팍해도 기사 직위에 오르신 분입니다!”

“기사라고요? 그런데 왜...?”

기사 직위에 오를 정도라면 웬만한 도시의 경비대장은 맡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왜 경비대장도 아닌, 순찰대를 인솔하고 있단 말인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죠... 품행 문제로 여기까지 좌천당하신 거예요.”

실력은 출중하나 그 품행이 기사에 어울리지 않다는 문제, 그 결과 이런 변두리 항구도시까지 흘러들어왔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이렌은 다급하게 프레이의 뒤를 따라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1 (46%)]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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