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47화 (47/141)

<-- 11. 메리나를 향해 -->

프레이와 세이렌이 메리나에 도착한 건 이른 점심때 즈음이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세이렌은 조금 괜찮아졌는지 마차에서 나와 말에 올라탔다. 조금 미숙한 모습이지만 말을 타본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으음... 괜찮은 것 같아.”

세이렌은 프레이의 걱정어린 물음에 애써 웃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세이렌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에는 어떤 시선인지 몰랐다. 그녀가 황태자였을 적에는 남자로 살아왔기에 그런 시선을 받은 적도 없었고, 황태자를 상대로 그런 욕정 어린 시선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당장에 목이 날아갔을 테니.

그러나 레이판의 만행을 겪은 후에는 그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끈적끈적한 시선이 매우 불쾌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들보고 눈을 감고 말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프레이는 다르니까...’

그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프레이뿐이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렇게 몸이 변하고 나서도 자신을 그대로 대해주는 건 그뿐이었다.

물론 프레이도 참고 있는 것이지만 세이렌은 그것까지 알지 못했다.

프레이는 곧바로 상인조합을 찾았다. 경비병에게 마차의 매매가 상인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레이판과 관련된 물건은 모두 처리해야지.’

마차가 있으면 좋았지만 레이판의 것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팔고 다른 마차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처분하고 싶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갔다 올게요.”

“아, 아냐... 같이 가.”

세이렌은 조금이라도 프레이와 떨어지기 싫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인조합 건물로 들어갔다.

“젠장... 유령선이라니? 신성제국은 뭘 하는 거야?”

“지금 무역로가 꽉 막혔어. 해적 놈들이 낸 소문 아냐?”

“아냐, 오히려 해적 놈들이 당해서 유령선이 됐다고 하던데?”

“해적이든 유령이든 어쨌든 군대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뭐야?”

상인 유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이렌은 이토록 많은 유저를 보는 게 처음인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쪽이에요.”

레스톤의 상인조합과 구조가 같았기에 프레이는 가볍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많아 흩어질까 프레이는 세이렌의 손을 잡았다.

“아, 알았어.”

항구도시라 그런지 상인조합이 발달한 걸까. 건물 규모는 레스톤보다 더 컸다. 프레이는 바이런이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이렌을 옆에 앉혔다.

“금방 순서가 올 거예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야... 데일 황태자가 죽었다며?”

“덕분에 지금 신성제국으로 몰리는 거 아니냐. 이게 소문이 금방 퍼진다니까.”

“오피셜이야? 뇌피셜 아냐?”

“뇌피셜은 무슨. 근데 지금 항로가 막혔으니 미리 간 놈들만 땡 잡은 거지.”

프레이는 그들의 대화에 놀라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듣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리라.

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세이렌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들었어? 황태자가 죽었대.”

본인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로... 내가 자유의 몸이 된 거야...”

지금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프레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 분.”

“아, 우리 차례에요.”

프레이가 세이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외눈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죠?”

그의 시선이 세이렌에게 갔다가 다시 프레이에게 돌아갔다. 프레이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마차를 팔고 싶습니다.”

“오... 마차요?”

“네.”

“조합증 좀 보여주십시오.”

외눈 안경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는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아, 저는 상인조합원이 아닙니다.”

“아, 그럼 저 숙녀분이?”

“아뇨, 저희 모두 상인이 아닙니다.”

외눈 안경이 눈을 크게 떴다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네? 아... 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예? 아, 네.”

그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힐끔거리더니 곧 문을 나섰다.

“뭐야? 왜 저러는 거지?”

“어... 글쎄요?”

세이렌의 질문에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발소리와 함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네놈들이냐!”

놀라서 돌아보니 경비병 무리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 무슨...!?”

“맞습니다. 이 멍청한 도둑놈들!”

외눈 안경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경비병 중 직위가 높아 보이는 남자가 프레이와 세이렌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체포해!”

“예!”

“저항은 소용없다!”

프레이는 다급하게 세이렌을 뒤로 끌어당겼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는 무슨, 너의 무식함이 발을 붙잡은 게지!”

외눈 안경이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프레이는 도통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쯧쯧, 상인의 마차를 습격하는 도적놈들은 있어도 마차를 팔려는 네가 처음이다. 마차는 오로지 상인 조합에 소속되어야 매매가 가능한 걸 몰랐느냐!”

외눈 안경은 프레이의 말을 듣고 곧바로 그가 세워두었던 마차를 확인했다. 레이판이 사용하던 마차는 짐마차, 그리고 짐마차는 상인조합원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세이렌은 마차의 매매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황태자로서 이용했던 마차는 여행용 마차였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외눈 안경의 말은 절반은 맞았다.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점, 그러나 프레이와 세이렌은 도둑이 아니었다.

물론 경비병들이 그 말을 믿을 리 없다는 게 직면한 문제였지만.

“끌고 가라!”

“자, 잠깐...!”

“살다 살다 이런 무식한 도둑놈들은 처음이군.”

경비병들은 도둑들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로 착하지 않다. 그들은 빠르게 프레이를 붙잡았다.

“그래, 순순히 따라오도록.”

“자, 잠깐! 내가 누군지 아느냐!”

프레이가 결박당하며 무릎을 꿇자 세이렌이 소리쳤다. 프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

“허, 네가 누군데?”

“나, 나는...”

세이렌은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제 1 황태자 데일 도프람이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느냐!”

“뭐...!?”

경비병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와하하하!”

“멍청할 뿐만 아니라 미친년이었어!”

경비병들은 물론 외눈 안경도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조롱했다. 경비병은 세이렌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자, 미친 아가씨. 순순히 갑시다.”

“지, 진짜라니까!”

“예, 예. 그러시겠지. 이 여자, 황태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나 본데?”

경비병이 웃으며 세이렌의 손목을 묶는다.

“자자, 장난은 끝이야. 어서 가자고.”

“예, 알겠습니다.”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빠르게 손짓했다. 프레이는 세이렌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유의 몸이 됐다는 걸 실감했다.

* * *

“왜, 왜 배가 안 뜬다는 거요?”

“아나, 이 사람이 귓구멍에 미끼가 박혔나. 요즘 유령선 출몰 때문에 항로가 막힌 거 몰라요? 어선도 요 근해에서만 돌아다니는 마당에 무슨...”

선원의 구박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글란은 어쩔 도리 없이 참아야 했다. 지금 그는 레스톤 성주 글란이 아니라 모험가 글렌이었으니까.

‘당장에라도 이놈의 목을 쳤을 텐데...’

글란, 아니, 글렌은 분을 삭이며 돌아서야 했다. 지금 저 선원의 무례한 행동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이미 다 퍼졌을 텐데...!’

아마 레스톤 영지 관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본래 사무관이 도맡아 하던 일이었으니.

이미 성주 직위를 버리고 도망친 시점부터 그는 그런 걱정을 떨쳤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 건 그의 뒤를 쫓아올 추격대였다.

‘머리가 있으면 내가 신성제국으로 도망칠 것이라는 걸 알겠지. 그리고 추격대는 내가 메리나로 갔다고 생각할 거야.’

조사하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몰랐다. 그런데 이렇게 메리나에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었다.

‘프리헬름에 몸을 숨길까? 으...’

글렌은 머리를 헤집으며 고민했다.

“뭐야, 뭐야?”

“저렇게 대놓고 체포당하는 장면은 처음 보는데?”

주변 사람들 목소리에 글렌은 무심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발견한 프레이의 모습.

‘저건...!’

분명 그 현장에 있던 유저였다. 이름이 프레이라고 했던가.

제트람은 저자와 황태자가 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저, 저자라면 혹시...!’

황태자의 행방을 알고 있지 않을까? 혹시 황태자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레스톤 성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비병에게 붙잡혀가는 중이란 말인가?

‘저 여자는 또 누구야?’

뒤에 또 다른 사람이 따라오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 물론 황태자가 경비병에게 잡힌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 여자를 꾀어 놀고 있었단 말인가...!’

글렌은 인상을 찌푸렸다. 뒤에 따라 나온 여자의 모습을 보아하니 딱 매춘에 어울리게 생겼다.

아무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프레이에게 물을 게 있었으니.

“저, 저 잠시만...!”

“음? 무슨 일입니까?”

가장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접근하는 글렌에게 물었다.

일단 부르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그는 레스톤 성주가 아니었으니 명령을 내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 그게... 제가 아는 사람이라서요.”

고개숙인 프레이가 얼굴을 들었다.

‘음...?’

잠시 글렌의 얼굴을 바라보던 프레이는 눈을 크게 떴다.

“글란 성...”

“와하하하! 아, 메리나의 치안유지를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십니다.”

프레이의 말을 급하게 자른 글렌은 상관의 팔을 붙잡고 조금 멀리 떨어졌다.

“지금 뭐 하자는...”

상관은 버럭 성을 내려 했지만 곧 글렌의 손아귀에 들린 은화를 보고 침을 삼켰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너그러이 봐주신다면...”

“흠흠, 지금 내게 뇌물을 주겠다는 거요...!?”

상관은 짐짓 소리를 쳤다. 그러나 글렌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은화를 향하고 있었다.

“아유, 그 무슨 말씀을... 저 인간들이 붙잡혀서 감옥에 가면 보석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징역살이를 피하려면 그에 걸맞은 보석금을 내야 한다. 글렌은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으음... 그렇지.”

“그 보석금을 미리 내는 거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까.”

상관이 빠르게 눈을 굴렸다.

지금 잡은 도둑을 감옥에 가둔다 한들 그에게 돌아오는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은화를 받는다면?

부하 놈들과 나눠서 가져도 남는 게 꽤 될 터, 게다가 글렌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이 정도 돈이라면 곧바로 도둑들이 풀려날 게 분명했다.

“어흠... 그럼 이건 보석금으로 알겠소.”

“예예, 번거로운 과정을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글렌이 웃으며 슬쩍 은화를 내밀었다. 상관은 주변을 훑고는 은화를 품에 넣었다.

“오해가 있던 것 같군. 그들을 풀어줘라.”

“네?”

경비병들은 돌연 변한 상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관은 부하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내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건가?”

“아, 아니... 그래도...”

상관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렇게 모여든 부하들은 잠시 후 헤실헤실 웃으며 프레이와 세이렌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십쇼.”

“아니지, 이 친구야. 다음에도 또 잡히십쇼.”

경비병들이 낄낄거린다. 프레이는 도저히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풀려났으니 군말은 하지 않았다.

“프레이...!”

세이렌이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경비병들이 떠나고 나자 글렌이 다가왔다.

“아니, 글란 성주...”

“쉬, 쉿!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세!”

프레이의 입을 급하게 막은 글렌은 주변을 훑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유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봤기에 프레이와 세이렌도 그 뒤를 따랐다.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골목에 들어서면서도 글란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글렌은 프레이의 멱살을 잡았다.

“서, 성주님?”

“성주는 개뿔! 황태자님은 어떻게 된 건가?!”

프레이는 세이렌을 돌아봤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게 좋을까.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1 (46%)]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5 (16%)]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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