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메리나를 향해 -->
바이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예, 맛있게 드세요.”
저렴한 소금과 맥주풀, 그리고 물을 섞어 만든 소금맥주는 원가 대비 소득이 가장 높은 상품이었다.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저를 보면서도 틈틈이 리스폰 지점을 확인했다.
‘아니, 이 자식은 도대체 언제 올 셈이야?’
부활하려면 벌써 부활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어쩌면 현실 쪽에 문제가 있어서 접속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가상현실은 오로지 하나, 캐릭터 삭제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다른 가상현실에 접속은 불가능했다.
‘으음... 아니면 죽지 않은 건가?’
어쩌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프레이가 레스톤으로 돌아올 것인가?
‘그래도... 나름 정을 쌓았는데...’
온라인에서 만난 인연, 가상현실이 만들어진 이후로 현실의 인연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이런은 프레이가 돌아올 거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 같은 인간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판타지 라이프를 즐기는, 마치 이곳을 현실처럼 생각하는 유저는 흔치 않다. 바이런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황태자 사망은 확정인가 본데...’
도시를 떠났다던 친위대가 돌아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황태자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제 1 황태자가 사망했으니 다연 승계권은 제 2 황태자인 마틴에게 돌아가겠지. 그렇다면 신성제국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겠군.’
바이런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상인으로서 큰돈을 거머쥐려면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했다.
‘신성제국 쪽 물건을 미리 떼 와야 하나? 그쪽에서 여러 가지 압박을 할 것 같은데... 마틴을 볼모로 갑질을 할 가능성이 높으니...’
아마 신성제국 쪽 관련 의뢰가 늘 가능성이 높았다.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프레이가 돌아오면 신성제국으로 가서 놀자고 해야겠어. 그쪽이 앞으로 핫할 테니까.’
* * *
레이판과 프레이는 아무 말 없이 마차를 몰았다.
메리나로 향하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초지가, 왼쪽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초지 쪽에서 들짐승이 나와도 금방 확인할 수 있고, 숲에서 나온다면 도망가기도 쉽군.’
비교적 안전하다는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프레이는 조용한 마차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응... 으, 속이 메슥거려...”
세이렌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이판은 허허롭게 웃었다.
“제가 판매하는 게 주로 생고기라서 그럴 겁니다. 날씨가 더우면 조금 부패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신속 배달이 생명이죠.”
“아... 고기를 배달하시나 보군요.”
“네. 메리나는 아무래도 항구도시다 보니까 육류보다 어류가 많아서요. 비교적 육류 값을 잘 쳐주거든요.”
레이판은 입이 심심했는지 술술 말을 쏟아냈다. 프레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프레이 씨는 메리나에는 무슨 볼일이신가요? 혹시 신성제국 쪽으로 가십니까?”
“네?”
“아뇨, 신성제국 쪽으로 가시나 해서요. 그런데 요즘 동쪽 해안에 언데드가 출몰한다고 해서 난리도 아닙니다. 소문에는 유령선이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유령선이요?”
프레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전사 조합에서 유저들이 나눈 대화 중에 언데드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네. 참 아이러니하죠? 신성제국으로 가는 바다에 유령선이라니.”
레이판은 피식 웃었다. 프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어차피 바로 바다를 건널 건 아니라서요.”
“아, 그러신가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시금 정적이 흐르고 한참을 길을 걸었다.
“프레이...?”
“네?”
뒤에서 들려오는 세이렌의 목소리. 기운은 여전히 없었지만 그녀는 좀 더 빠르게 말을 뱉었다.
“저거... 개 같은 게 쫓아오는 데?”
“개 같은 거요?”
프레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개 같다니, 황족이 쓸 말인가?
“개가... 아닌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
“개라고요?”
레이판도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살짝 몸을 뉘여 마차 옆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저게 뭐지...?’
세이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개 같은 게 쫓아오고 있었다.
그냥 개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어라...?’
일단 개라고 하기에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비록 마차를 달고 있었고, 말의 체력을 생각해 전속력을 내지 않고 있다지만 개가 말을 따라오다니?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그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붉은 색의 피부와 부패한 살점,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뼈. 그럼에도 그 개는 달리고 있었다.
레이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 이런... 좀비견이잖아!?”
“좀비요?”
“네! 언데드에요! 맙소사!”
레이판은 빠르게 고삐를 잡았다. 말도 따라오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는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크르륵- 크륵-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좀비견, 프레이도 다급하게 고삐를 잡았다.
“프레이? 저게 뭐야...?”
“활 잡아요!”
세이렌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묻자 프레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레이판은 연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처리할 수 있겠어요?”
“언데드랑은 싸워본 적이 없는데요.”
“그렇죠? 저도 그래요!”
레이판은 다시금 박차를 가했다. 말이 거품을 물며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좀비견은 조금씩 따라붙었다.
프레이는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마차 뒤편에서 날아간 화살은 엉뚱한 땅에 꽂혔다.
‘이런...’
그녀의 솜씨로는 달리는 놈들을 잡을 수 없었다.
컹-! 컹컹-!
“왜 여기에 언데드가 나와요?”
“몰라요! 해안가에서 여기까지 온 놈들인가 보죠!”
레이판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쫓아오는 좀비견은 총 5마리. 그중 2마리가 레이판과 프레이 양쪽에 하나씩 붙었다.
“으아아아! 어떻게든 해봐요!”
말은 미칠 듯이 달리고 있었다. 레이판은 그래도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어디까지나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프레이는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들었다.
좀비견이 짖어대며 접근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좀비견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무슨... 스테이터스가...?’
느끼기에는 홉고블린을 능가하는 수준, 아무래도 언데드가 되면서 신체가 강화된 모양이었다. 평범한 개가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컹- 컹컹-!
좀비견이 짖어대며 프레이를 향해 뛰어올랐다. 프레이는 잔영이 이끄는 쪽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콰직-
손끝으로 전해지는 이질감. 분명 살을 찔렀는데 마치 돌을 두드린 것 같았다. 그래도 검을 휘두른 충격 때문인지 좀비견은 옆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저리 가!”
레이판이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그에 따라 말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레이판! 진정해요!”
“진정하게 빨리 해결해요!”
레이판이 버럭 성을 냈다. 그렇다고 프레이가 레이판과 말을 바꿔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행히 레이판의 저항이 효과가 있는지, 아직은 피해가 없어 보였다.
“맞았다!”
세이렌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좀비견 한 마리가 나뒹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제길...! 어쩔 수 없지!”
레이판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세이렌이라고 하셨죠? 안에 있는 짐을 뒤로 던져주세요!”
“뭐라고요!?”
세이렌이 되묻자 프레이가 얼른 말을 받았다.
“고기요! 고기! 전부 던지면 놈들이 쫓아오지 않겠죠!”
레이판의 의도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좀비견들에게 살아있는 인간 대신에 먹을 것을 던져주겠다는 것.
“아, 알았어! 여기 있는 거 다 버리면 되지?”
“빨리요!”
쿠웅-
잠시 후 마차 뒤편으로 상자 하나가 떨어지며 부서졌다. 좀비견 2마리가 추적을 포기했다. 그것들은 상자주위를 서성이며 머리를 집어넣으려 애썼다.
“다른 것도요!”
“하고 있어!”
또 다시 하나의 상자가 떨어졌다. 나머지 좀비견들이 속도를 늦추더니 곧 멀어져갔다.
“후아...”
레이판은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그는 진이 빠진 듯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다행입니다.”
좀비견의 모습이 점으로 사라질 때가 되어야 말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말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다행... 다행이라뇨?”
레이판은 참담한 심정을 겉으로 표출했다. 그의 얼굴은 당장에라도 죽을상이었다.
“배달은 신뢰가 생명이거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요...?”
프레이는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호위비용을 받는 건 무리인 듯싶었다.
“네... 일단 도중에 배달지가 하나 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사과를 해야죠.”
“네? 배달지요?”
“예. 마침 저기 갈림길이 나오네요.”
프레이는 레이판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말한 갈림길이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레이판은 능숙하게 숲으로 말을 몰았다. 프레이 역시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음? 프레이? 길을 벗어났는데?”
“아, 잠깐 들를 곳이 있습니다. 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레이판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길인가?’
프레이는 레이판이 말하는 길의 의미가 자신이 아는 길과 다른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나무 사이로 집이 보였다.
“저깁니다.”
레이판의 얼굴은 도통 풀리지 않았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햇빛이 안 들어서 그런가?’
뭔가 퀴퀴한 냄새와 한기가 돌았다. 집 주변에 자라는 식물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종류였다
프레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혹여나 짐승이 나올까 걱정해서였다.
“도착했습니다.”
레이판이 천천히 말을 세웠다. 그는 프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랑 같이 좀 가주시겠습니까?”
“네? 무슨 일로...”
“좀비견이랑 마주쳐서 고기를 잃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그래도 증인이 있어야 어떻게 비벼보기라도 하죠...”
레이판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프레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프레이는 말에서 내려 마차로 다가갔다.
“잠깐 갔다 올게요.”
“알았어. 근데 여기 좀 분위기가 이상해. 으스스 한 게...”
세이렌이 천막을 들추며 말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산짐승이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고 있어요. 금방 갔다 오겠지만...”
“알았어. 빨리 와.”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이판을 따라 발을 옮겼다.
‘사냥꾼? 아니면 나무꾼...?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이런 산속에서 집을 짓고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냥꾼 혹은 나무꾼이 아닐까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장작이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똑- 똑-
“바르푼 님. 계십니까?”
레이판이 노크를 하며 말했다. 바르푼이 집 주인 이름인 걸까.
프레이는 레이판의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끼이익-
겉모습처럼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프레이는 슬쩍 주인이 누군지 확인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눈이 퀭한 노인이었다.
“레이판인가? 뒤에는 누구지?”
“아, 제가 고용한 사람입니다.”
“그래? 음...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바르푼은 생김새만큼이나 컬컬한 목소리였다. 마치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레이판이 들어가자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프레이 씨?”
“아, 네.”
슬쩍 마차 쪽을 바라봤던 프레이는 바르푼의 집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1 (44%)]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4 (21%)]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