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메리나를 향해 -->
이른 아침.
프레이는 조금 피곤한 눈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여관 식당 쪽으로 내려오자 주변에서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온다.
‘하아...’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이렌은 피곤했는지 금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프레이는 불편한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으니까.
프레이도 남자였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세이렌과 같은 방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끝없이 치솟는 유혹을 이겨낸 끝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배고프다, 배고파. 뭐 먹을까?”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세이렌. 프레이는 나가려다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가 밤사이 겪은 내적갈등을 그녀가 알까?
“뭘 먹게요?”
“그럼? 아침도 안 먹고 출발하려고?”
그녀의 말에 프레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이렌은 앞으로 몸을 숙이며 소곤거렸다.
“서민 음식 한번 먹어보고 싶었거든.”
그녀가 몸을 숙이자 흉부가 두드러진다. 프레이는 얼른 눈을 돌리며 말했다.
“서민이 뭡니까, 서민이...”
“여기 메뉴 드릴게요.”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힐끗 세이렌에게 눈을 돌리며 메뉴를 올려놓는다. 그는 옆에서 힐끔거리며 주문을 기다렸다.
“뭐 먹어?”
“으음...”
[버섯구이 & 소고기 스테이크 – 10실버]
[토끼고기 스튜 – 3실버]
[빵과 에그 스크램블 – 1실버]
식사 메뉴는 세 가지. 그러나 프레이는 웃을 수 없었다.
‘완전 날강도 아냐...?’
확실히 시작의 마을과 다른 가격이었다.
프레이의 머릿속에는 토끼 스튜의 원가가 빠르게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1실버가 안 되는 가격.
“원하는 걸로 골라줘.”
세이렌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주문했다.
“스튜 2개 주세요.”
“예. 토끼고기 스튜 2개.”
그래도 황족인데 빵만 먹일 수는 없었다.
직원은 세이렌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주문을 적어 내려갔다. 그는 매우 흡족한 얼굴로 계산대로 돌아갔다.
“으흠, 기대되는데?”
“후... 일단 그 습관부터 고쳐야겠네요.”
“무슨 습관?”
“아닙니다. 일단 스스로 돈을 벌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프레이가 그렇게 말하자 세이렌도 조금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갑자기 서민들 생활을 하라고 해도...”
“그 서민이라는 말부터 고쳐요.”
프레이의 지적에 세이렌이 입을 내민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서... 아니, 아무튼. 짐짝 취급받을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내게 뭐라도 가르쳐 줘.”
“뭘요?”
“응. 밖에는 몬스터도 많잖아? 저항도 못 하고 죽을 수는 없지. 싸우는 법은 알려줘야지.”
프레이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이렌은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일단 그래도 기본적인 검술 교육은 받았는데, 아무래도 근력이 부족해서 무거운 건 잘 못 썼어.”
“그러면 검술은 제외하죠. 제대로 된 무기도 못 쓴다면...”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리고 가르치는 편이... 내게도 도움이 되겠지.’
싸우는 법을 모른다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컸다. 틈틈이 교육을 해놓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활은 어때요?”
“활?”
세이렌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녀 나름대로 계산을 하는 것 같았다.
“음... 직접 맞붙는 건 네가 하고 내가 후방에서 도와준다?”
“뭐... 그렇게 되겠죠. 아무래도 그게 더 안전할 테고.”
프레이 자신은 스테이터스가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활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적을 먼저 발견하면 첫 공격은 유효하겠지만...’
스테이터스 보정 전이라면 모를까, 전투 중에는 제대로 된 조준도 어렵고 근접전에서는 별 위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으니.
“음... 뭐 나쁘지 않겠네.”
“좋아요. 레스톤으로 돌아가면서 틈틈이 연습하도록 하죠.”
그렇게 결정하자마자 주문한 토끼 스튜가 나왔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직원이 세이렌에게 미소를 날린다. 아쉽게도 그녀의 시선은 스튜에 꽂혀있었다.
“와... 이런 걸 먹어?”
“이 정도면 특식이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스튜를 보며 프레이도 군침을 흘렸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아 뜨!”
세이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프레이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박고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세이렌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훑었다. 프레이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런 짓 좀 하지 마요.”
“왜?”
“아무튼... 그냥 하지 마요.”
“이상하네. 아무튼 레스톤까지는 어떻게 가지?”
프레이는 슬쩍 눈을 돌렸다. 식당 벽에 걸려있는 테크론 대륙 지도.
“우리가 여기, 프리헬름이니까...”
“음, 레스톤 북쪽에서 강을 타고 여기까지 왔지.”
세이렌도 손가락을 짚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경로를 표시한다.
“전에는 이렇게 산을 통해서 갔거든.”
“네.”
“근데 코볼트가 습격하기도 해서 좀 위험하지 않을까?”
세이렌은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물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블린 놈들이 아직 주변에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럼 이렇게 가는 건 어때?”
“어떻게요?”
“조금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남동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메리나라는 곳이 나오거든?”
‘메리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프레이는 기억을 더듬다가 바이런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아... 항구도시라는 곳이요?”
“응. 여기서 다시 레스톤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걸어가면... 한 나흘 걸리려나?”
세이렌은 자기가 말하고도 혀를 내둘렀다.
“으아... 걸어서 나흘이라고?”
“말을 살 돈이 없으니까요.”
프레이는 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메리나로 가야 신성제국으로 갈 수 있으니까. 미리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걸?”
“원래 산을 타면 얼마나 걸리죠?”
“음... 아마 이틀? 사흘?”
세이렌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프레이는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들을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저...”
“네?”
“아하하, 안녕하십니까.”
말을 건 사람은 드문드문 턱수염이 난 남자였다. 세이렌과 프레이의 시선에 그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도움이라고요?”
“아, 저는 레이판이라고 합니다. 작은 마차로 상업을 해서 먹고 살죠.”
레이판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상인증을 슬쩍 내밀었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메리나로 가십니까?”
“네, 그럴 생각입니다.”
프레이의 대답에 레이판이 살짝 손뼉을 쳤다.
“다행이군요. 혹시 저와 동행하시지 않겠습니까?”
“동행이요?”
“네. 물론 공짜로 태워드리지는 않습니다만...”
레이판이 슬쩍 눈치를 보았다. 세이렌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뭘 원하죠?”
“고용한 호위계약이 끝나서요. 그 사람들은 뭐, 무슨 연금술사의 유물을 찾는다나... 아무튼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또 찾아야 하는데... 여러분의 이야기가 들려서 말입니다.”
프레이는 눈을 돌렸다. 다른 일행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혼자십니까?”
“네. 아, 메리나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큰 위험은 없을 거예요. 기껏해야 들짐승들이 나오면 모를까.”
“그럼 저희를 호위로 고용하는 대신에 메리나까지 데려다주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레이판은 웃으며 대답했다. 프레이는 세이렌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이미 넘어간 모양이었다.
“보수는요?”
“보수요...?”
“네. 그냥 마차를 얻어 타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레이판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이쪽의 숙녀분도 전투를 할 줄 아십니까?”
“그건...”
“갑옷은 입고 있지만 무기로 보이는 건 없군요.”
프레이는 둘러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레이판은 셈이 빠른 남자였다.
“그렇습니다. 실질적으로 호위는 저 혼자겠군요.”
“좋습니다. 보통 하루 거리의 마차 이용료가 10실버니, 2인으로 계산 20실버. 호위 비용으로 30실버를 지급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10실버를 드리는 셈이 되겠군요.”
레이판은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 셈인 것 같았다.
프레이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도중에 몬스터를 만나게 된다면 전리품은 모두 이쪽이 갖는 걸로.”
“좋습니다.”
레이판이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프레이는 그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맞잡았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남쪽 입구로 오십시오. 저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먼저 여관을 나섰다. 프레이는 먼저 일어나서 계산을 마쳤다.
“바로 가?”
“아뇨. 잠깐 따라오세요.”
프레이는 세이렌을 데리고 여관과 가까운 서쪽 입구로 나갔다. 마을 벽을 따라 걷다가 적당한 위치에 멈춘 프레이는 활을 꺼내 내밀었다.
“잡아요.”
“응?”
프레이가 건넨 활을 잡은 세이렌은 신기하다는 듯 활시위를 튕겼다.
“여기 화살도.”
“여기에 거는 거지?”
그녀가 시위에 화살을 대충 걸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흔들며 세이렌의 손을 잡았다.
“아무 데나 걸면 안 돼요. 시위의 힘을 받으려면 정확히 중앙에...”
세이렌이 미소를 지었다. 혹독하고 엄하게, 그리고 거리를 유지하며 가르쳤던 황실의 선생들과는 달랐으니까.
“됐어요. 그러면...”
프레이는 빠르게 단검을 빼내 벽으로 던졌다. 벽에 박힌 단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기가 과녁이라고 생각하고 쏘세요.”
“쏘라고?”
“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숨을 멈추고 정확하게 화살 끝과 시선을 맞춰요. 활을 잡은 손은 흐트러지지 않게 주의하고요.”
프레이의 지도에 따라 세이렌은 연거푸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전혀 엉뚱한 곳에 날아가다가 차츰 단검에 가까워졌다.
“으... 손가락 아파...”
세이렌이 울상을 짓는다. 쉴 틈 없이 시위를 당겼더니 손가락이 얼얼해졌다.
“더 해요.”
“바로?”
“레이판이 기다리니까요. 아니면 걸어갈래요?”
세이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프레이의 재촉에 그녀는 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그러기를 잠깐,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까지 30번 중에 2번은 근처에 갔으니... 이 정도면 뭐...”
속성으로 가르친 것 치고는 훌륭한 성과였다. 정작 세이렌은 뻘뻘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문질렀지만.
“그럼 갈까요.”
세이렌은 무심한 프레이의 행동에 실망하는 한편, 자신을 황족으로 대접하지 않는 점이 또 마음에 들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프레이의 태도가 더욱 친구 같았다.
“아, 화살은 다 주워오세요.”
세이렌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정정했다. 친구 대접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고.
* * *
“아, 오셨군요.”
레이판은 정말 작은 짐마차를 가지고 있었다. 마부석이 없고 말 두 마리가 앞에서 마차를 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 그런데...”
프레이는 슬쩍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짐은 많지 않았지만 빈 곳에는 겨우 한 명이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분은 제 옆에 앉아주시면 됩니다.”
“음...”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하게도 탈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프레이는 세이렌을 돌아보았다.
“타시죠.”
“사양하지 않겠어.”
세이렌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배부른 소리를 하다니.
“참아요. 그래도 편하게 가는 건데.”
“으... 서민들 마차는 다 이래?”
“그 말 쓰지...”
프레이가 다시 지적하려는 순간, 레이판이 앞에서 소리쳤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슬슬 출발해야 합니다.”
“아, 아닙니다.”
프레이는 소리 높여 대답하며 마차 뒤편의 천막을 다시 닫았다.
“좀 참아요. 그럼 이따가 봐요.”
프레이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세이렌에게 말하고 서둘러 뛰어 말에 올라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1 (43%)]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2 (5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