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뜻 밖의 동행 -->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지만 데일은 마치 추위를 느끼는 듯 몸을 떨었다.
“하아... 하아...”
“조금만 참아요...!”
굽이굽이 이리저리 휘어져 생겨난 동굴을 따라 들어갔다. 되도록 그녀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천천히 갈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니 동굴 벽과 달리 반듯한 벽이 나타났다.
‘여기부터인가?’
반듯한 벽은 적어도 어떤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벽을 따라 움직이자니 곧 안쪽으로 좁아지는 통로가 보였다. 그 옆에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썩어버린 나뭇더미가 보였다.
‘이건... 원래 배였나?’
나무가 썩었어도 형태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판자가 부러져 있긴 했지만 한 사람은 거뜬히 태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배였다.
프레이는 잠시 멈춰 섰다가 품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데일을 보았다.
‘돌아갈 길은 없어...’
이 배를 타면 그대로 수장되기 좋을 것이다. 데일을 수장시켜줄 생각이 아니라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대로 놔두면 데일이 죽는다는 사실.
결국 선택권은 하나였다. 통로로 들어가는 것, 그러나 안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몰랐다.
“조금 불편해도... 참아주세요.”
“으...”
“좋아요. 어깨 쪽에 팔을 올려 봐요.”
힘겹게 팔이 프레이의 얼굴 앞으로 나왔다. 프레이는 곧바로 천으로 데일의 허리를 묶었다.
데일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프레이는 검을 들었다.
뜨거워진 그녀의 몸이 등에 느껴졌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낫게 해줄 테니까.”
물론 확신은 없다. 어떻게 그녀를 치료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연금술사라고 했지...? 그렇다면 뭔가 쓸 만한 게 있을 거야.’
베긴네르의 알튼도 연금술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가짜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지만 이렇게 실험실까지 갖춘 연금술사라면 다를 것이다.
프레이는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벽면에 박힌 수정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발광석인가...’
횃불을 대신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지만, 재활용을 위해 매번 마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렇기에 재산이 좀 되는 사람이나 쓰는 물건이었다.
‘버려진 곳이라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버려진 지 좀 시간이 지났는지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거미도 이곳을 떠난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버려진 걸까?
프레이는 의문을 털어내고 발을 옮겼다. 그가 지나가면 발광석이 빛을 잃었다. 그렇기에 앞도 뒤도 어두웠다.
마치 검은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갈림길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으으...”
데일이 신음을 낼 때마다 프레이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나마 신음이 들린다는 건 다행이었다.
의식을 잃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있자니 마음이 아려왔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할 수 있었다.
프레이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얼마간 걸어가자 좁은 통로가 넓어졌다.
‘이건 뭐지...?’
프레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거대한 원형의 손잡이가 달린 금속문, 그리고 그 양옆에는 고개를 숙인 갑옷이 세워져 있었다.
프레이는 통로로 돌아가 데일을 내려놓았다.
“잠깐만 여기 있어요.”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얕은 숨을 내쉴 뿐이었다.
‘서둘러야 해...’
프레이는 검을 쥔 채로 문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 갑옷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식품인가?’
왜 이런 장식을 해놓았겠는가. 장식을 하기에는 위치가 너무 이상했다.
뭔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갑옷을 검으로 쳐보았다.
캉-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여전히 갑옷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캉캉-
다시금 쳐봐도 같았다. 혹시나 해서 다른 쪽에 있는 갑옷을 건드려도 마찬가지.
“후...”
프레이는 짧게 숨을 내뱉고 문으로 다가갔다.
금속문과 손잡이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녹이 슬어 있었다. 프레이는 다시 검을 집어넣고 손잡이를 붙들었다.
“흡...!”
끼긱- 끽-
손잡이가 뭔가에 걸린 기분이었다. 프레이는 숨을 참으면서 힘을 주었다.
“크흡...!”
끼긱- 끼이이익-
걸린듯한 부분이 빠지면서 손잡이가 돌아갔다. 한번 풀린 손잡이를 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차칵- 차칵차칵-
‘뭐지?’
놀란 프레이가 뒤로 물러섰다. 한번 돌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장치인지, 손잡이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뭔가 이상하다!’
프레이는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검을 들었다. 소음 사이로 들려오는 진동.
철컥-
그의 생각이 옳다는 듯 갑옷이 고개를 들었다. 손잡이가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갑옷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사용자 확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도와줄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인데.’
「사용자 승인 실패. 재확인.」
스르릉-
갑옷이 검을 빼냈다. 그것들은 프레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사용자 승인 실패. 침입자 확인.」
“제길...!”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경비용 오토마톤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오토마톤, 레스톤 성의 훈련장에서 본 것과 같았다.다만 지금은 전력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점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몸 상태 변화로 보아 힘과 민첩이 상당했다. 오토마톤은 주저 없이 프레이에게 달려들었다.
프레이를 향해 날아드는 검을 다급하게 막았다.
‘이런...!’
그러나 적은 하나가 아니다. 프레이가 하나를 막아내는 사이 다른 오토마톤이 프레이의 옆을 치고 들어왔다.
“흡!‘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오토마톤의 검끼리 부딪쳐 두 개의 검이 바닥을 때렸다.
프레이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돌아서는 오토마톤의 투구를 찔렀다.
머리를 맞은 오토마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그사이 다른 오토마톤이 프레이를 공격했다.
“크윽...”
가까스로 팔을 빼냈지만 완벽히 피할 수 없었다. 팔에 새겨진 가느다란 실선에서 핏물이 배여 나왔다.
상처가 욱신거렸다. 그러나 주저할 틈은 없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니까.
“하앗!”
다시금 일어서는 오토마톤을 놔두고 덤벼드는 놈을 노렸다. 보이는 잔영의 개수는 몇 개 없었다.
허리로 날아드는 검을 막아내고 몸통 부분을 걷어찼다. 그대로 뒤로 밀쳐지는 놈의 손목을 내려쳤다.
툭-
검을 쥔 손이 떨어졌지만 비명은 없었다. 살아있는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대로 결정타를 먹이려 했다. 그러나 다른 놈이 프레이의 옆구리를 노렸다.
결국 방향을 틀어 방어로 전환했다.
‘그래도 한 놈은 무기가 없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퍼억-!
옆구리에 전해지는 충격에 프레이는 그대로 나뒹굴었다.
“크악...!”
바닥을 나뒹굴던 프레이는 눈앞에 보이는 날붙이에 더 굴러야 했다.
캉-
검이 바닥을 때리며 쇳소리를 냈다. 프레이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로 일어서며 오토마톤의 머리를 쳐냈다.
투구가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곧바로 방어를 해야 했다.
‘빌어먹을...!’
머리를 날려도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손목이 잘린 놈은 떨어진 손목을 줍더니 곧 다른 손으로 검을 들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프레이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고민했다.
오토마톤, 오토마톤.
‘마정석...!’
훈련용 오토마톤은 마정석이 없자 멈춰버렸다. 이놈들도 마력을 공급받는, 마정석이 부착된 곳이 있을 터였다.
그 위치는 단연코 머리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머리 없는 놈이 움직일 리 없었으니.
‘그렇다면...’
가장 방어가 두터운 곳. 갑옷의 구조로 보아 쉽게 잘라낼 수 있는 팔과 다리는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통짜로 된 몸통 쪽이 유력했다.
날아드는 공격을 방어하면서 틈틈이 몸을 찔렀다. 그러나 프레이의 검으로는 갑옷을 뚫지 못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자잘한 상처는 늘어갔다. 프레이가 다시 문 앞에 섰을 때였다.
‘음?’
지금까지 협공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놈들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프레이는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에서 멀어져야 했다.
‘아... 그렇군.’
프레이는 그 이상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놈들은 본래 목적은 저 문 안으로 침입자를 허용하지 않는 것.
최우선 목표를 지켜야 했기에 협공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레이는 손목을 잃은 놈에게 돌격했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자 놈이 밀리기 시작했다. 벽으로 밀어붙이자 머리 없는 놈이 프레이의 뒤를 노렸다.
그때를 노려 프레이는 빠르게 몸을 빼내 문 쪽으로 달려갔다. 당연 오토마톤은 프레이를 저지하기 위해 쫓아왔다.
‘역시...!’
프레이는 급격하게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오토마톤도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무릎 관절이 뒤틀리며 쓰러졌다.
예상이 맞았다.
금속문이 녹슬 정도로 이곳은 버려져 있었다. 오토마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투 중에는 움직임이 한정되어 쉽게 눈치챌 수 없었지만 놈들이 문을 지키려 무작정 달려올 때 알 수 있었다.
프레이는 놈들이 일어서기 전에 빠르게 다리 관절을 내려쳤다.
콰지직-
기계 부품이 마치 살점인 것처럼 흩어졌다.
“후우...”
다리에 이어서 어깨를 베었다. 사지가 절단당한 오토마톤은 고물에 지나지 않았다.
프레이는 무력화된 오토마톤의 갑옷을 벗겨냈다.
‘역시...’
등 부분에 박혀있는 마정석이 보였다. 발로 오토마톤의 등을 짓누르며 마정석을 비틀어 꺼냈다.
우웅-
마정석의 빛이 사그라들며 오토마톤의 떨림이 멎었다. 프레이는 다른 놈의 마정석도 똑같이 회수했다.
‘됐어... 빨리 들어가자.’
프레이는 데일에게 돌아갔다.
“데일, 데일!?”
프레이가 외쳤지만 데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상황이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의식을 잃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그녀를 들어 문으로 들어갔다.
다시 이어지는 짧은 통로를 지나니 문이 보였다. 그대로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찼다.
쾅-
문이 오래됐는지 열리지 않고 앞으로 쓰러졌다. 먼지가 피어오르며 내부가 보였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고 그 주위로는 찢긴 책과 종이가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먼저 이곳을 휩쓸어 간 것 같았다.
‘이런...!’
문제는 깨진 유리 조각 대부분이 원래 약물 병이었다는 점이었다. 프레이는 잡다한 쓰레기가 올려져있는 책상을 치워버리고 데일을 그 위에 뉘였다.
‘제발... 제발...’
뭐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프레이는 다급하게 찬장을 열고 책상을 뒤졌다. 그러나 나오는 건 없었다.
“제기랄...!”
쿵-
먼지가 피어올랐다. 혹시 책장 뒤에 숨겨진 게 없을까 책장마저 넘어뜨렸건만, 나온 건 책장 형태로 쌓여있는 먼지 덩어리였다.
프레이는 암담함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가 막 데일에게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저건...?’
먼지가 가라앉고 책장이 쓰러진 바닥이 깨져 있었다. 프레이는 빠르게 책장을 밀어내고 조각난 돌조각을 끄집어냈다.
바닥 밑에 숨겨져 있는 작은 나무함. 그는 곧바로 나무함을 열었다.
안에는 노란 용액이 담겨있는 약병이 있었다.
‘뭐지?’
[미확인 아이템]
어떤 약인지도 모르고 사용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물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온 건 겨우 두 단어였다.
프레이는 약병을 들고 데일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지금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망설일 틈은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데일은 확실히 죽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약을 사용한다면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약에 거는 수밖에...’
프레이가 약병의 뚜껑을 열자, 살짝 달콤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데일의 척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제발 효과가 있기를...’
약병에서 나온 노란 용액이 천천히 그녀의 입으로 스며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2%)]
[중급 검술 Lv1 (43%)]
[초급 단검술 Lv8 (7%)]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2 (5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8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