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29화 (29/141)

<-- 8. 제 1 황태자 -->

프레이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장이도 정말 할 짓이 못 된다...’

뻐근한 허리와 어깨를 돌리며 풀어주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한 덕분일까. 대장간 내에 쌓여있는 장비는 이제 바닥이 보였다.

‘듬성듬성 보일 뿐이지만...’

이르면 오늘 안에 처리할 수 있으리라.

막 프레이가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 참이었다.

“하르판! 하르판!”

“예, 하르판 여기 있습니다.”

하르판이 일어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다급한 목소리에 수습생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돌아갔다.

“어, 어디까지 됐나?”

“아니, 경비대장님 아니십니까?”

“얼마나 남았어?!”

“예? 아, 그 조금 더 남았는데 무슨 일로...”

경비대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같이 온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옮겨라! 그리고 하르판, 실력 있는 애들 좀 데려오게. 성내에서 할 수 있나?”

“예? 성안에서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네. 예상보다 황태자가 일찍 도착할 모양이야. 아무튼 서둘러주게!”

“아,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대장간으로 들이닥쳐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를 수레에 옮기기 시작했다.

‘어? 아직 정산 안 된 건데!’

프레이는 당황했지만 병사들은 막무가내였다. 하르판이 프레이에게 와서 말했다.

“어제 정도 했다고 생각하겠네. 일단 80실버로 해놓고 같이 성까지 가줄 수 있겠나?”

“성이요?”

“그래,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조금만 더 도와주게.”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르판은 곧바로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나와 프레이에게 물건을 건넸다.

“이건 뭡니까?”

“성안에 이런 화로가 있겠나 뭐가 있겠나. 휴대용 숫돌이랑 화염석일세.”

“화염석이요?"

"그래. 화로만큼은 아니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니지. 아무튼 서두르자고.“

하르판은 그 외에 수습생 중 둘을 선발해 움직였다.

“무기는 병사들이 가져올 테니 가세!”

“예? 아, 네.”

육중한 몸매와 달리 빠르게 움직이는 하르판을 따라 프레이는 성으로 향했다.

* * *

“흐아암...”

널찍한 마차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남자. 짧고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기사 제트람은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저하, 길이 고르지 않으니 위험하옵니다.”

“제트람, 고작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다칠 정도라면 이렇게 나오지도 않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기사를 바라보는 남자. 그가 바로 제 1 황태자 데일 도프람이었다.

“지루하구나, 지루해. 아버지도 노망이 나신 것이지. 이런 지루한 여행이 도대체 통치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저하...”

“알았다, 알았어. 벽에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 말은 질리도록 들었다. 허나 마차의 벽도 벽이라고 치는 건 과하지 않은가?”

데일은 몸을 들어 고쳐 앉았다. 제트람은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트람.”

“예, 저하.”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이번 여행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 같은가?”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제트람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데일은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이 질문도 함정이 숨어 있다.

도움이 된다고 대답하면, 방금 이야기한 데일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된다. 그렇다고 도움이 안 된다고 답하면, 그건 황제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기사의 입장에서 곤란한 일이었다. 데일은 김이 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갈수록 잔꾀만 늘어나는구나.”

“송구합니다.”

“송구하기는 무슨.”

히히힝-

말소리와 함께 마차가 덜컥 멈췄다. 만약 데일이 계속 누워있었다면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트람이 곧바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그르릉- 그릉-

“코볼트입니다!”

병사들이 무기를 빼 들며 소리쳤다. 마차의 앞뒤로 코볼트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오, 코볼트!”

데일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시민들의 삶이나 돌아보는 따분한 일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이 이런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었다.

“저하, 위험합니다. 여기에 계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그냥 구경만 하려는 것이다.”

이번 순시는 비교적 안전한 곳만 가는 것이기에 호위 병력은 많지 않았다.

기사 하나와 병사 열 명.

물론 최정예로 구성되었기에 그 힘은 웬만한 도시의 치안병력의 수준이었다.

“제트람, 보여다오.”

“...알겠습니다.”

코볼트는 기사가 나설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그는 군말 없이 명령에 따랐다. 데일은 제트람의 활약을 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몇 마리는 살려둬라.”

병사들은 이미 코볼트를 도륙하고 있었다. 코볼트의 수준으로 맞설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예상한 듯 이미 겁에 질린 코볼트를 포위하고 있었다.

제트람이 검을 들었다. 코볼트는 다가오는 제트람을 보며 짖어댔다.

크르릉- 크릉-!

“제트람, 단칼에 끝내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크릉-!

코볼트 네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놈들은 나무를 깎아 만든 곤봉을 들고 있었다.

제트람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덤벼드는 코볼트를 상대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코볼트가 곤봉을 내리쳤다. 제트람은 가볍게 곤봉을 손으로 붙잡아 끌어당겼다.

크릉-?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울음소리. 제트람은 지척까지 다가온 코볼트의 관자놀이에 검을 쑤셔 넣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진 코볼트 뒤로 다른 놈들이 연달아 덤벼들었다. 제트람은 코볼트의 뒤통수로 검을 빼내 날아드는 곤봉을 막아내고 가까이 있는 놈을 걷어찼다.

뒤따라 오던 놈이 부딪쳐 넘어지고 다른 한쪽에 있던 코볼트가 제트람의 어깨를 내리쳤다.

빠각-

그러나 부러진 건 제트람의 어깨가 아니라 곤봉 쪽이었다.

크르륵-!

“하하! 제트람 당했어!”

데일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제트람은 여유롭게 곤봉 조각을 털어냈다.

이렇게 당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그는 만족했다. 데일은 일방적인 도륙이 벌어지면 금방 흥미를 잃었다.

제트람은 가끔 자신이 기사인지 아니면 쇼를 벌이는 광대인지 헷갈렸지만, 어쩌겠는가. 기사는 주군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법.

주변의 병사들도 그 사정을 알고 있기에 제트람을 우습게 여기는 자는 없었다.

‘끝내야겠군.’

공격이 성공하자 기세가 붙은 듯 넘어진 코볼트들도 연달아 덤벼들었다.

제트람은 덤벼드는 코볼트를 향해 뛰어 검을 찔러 놓고 착지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뒤의 놈을 차고 코볼트 몸속에 박힌 검을 빼냈다.

제트람의 발에 얻어맞은 코볼트는 뭉그러진 내장 덩어리를 뱉으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코볼트를 향해 몸을 돌리는 힘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머리부터 발까지 두 동강이 난 코볼트의 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피와 내장을 흩뿌렸다. 제트람은 무표정하게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내고 병사들에게 말했다.

“길을 치워라.”

“예.”

쇼는 이걸로 끝이었다. 제트람은 병사 하나가 가져다준 천으로 검에 묻은 피를 마저 닦아내고 검집에 넣었다.

“제트람, 너무 빨리 끝낸 거 아니야?”

“송구합니다.”

“말로만 그렇지. 뭐,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어.”

데일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병사들이 시체를 치우자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숲의 끝자락이 보였다.

최근에 벌목한 듯, 나무 밑동이 넓게 퍼져 있었다. 레스톤의 영주 글란의 지시로 주변 일대를 벌목했다는 사실을 데일이 알 리가 없었다.

“아니, 무슨 나무를 이렇게 잘라냈대? 저기가 레스톤이야?”

“예, 그렇습니다.”

데일은 자신 때문에 벌목을 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작 데일은 자신의 안전과 벌목을 연관 짓지 못했으니까.

마차는 천천히 레스톤을 향해 나아갔다.

* * *

“다들 순서대로 꽃잎을 뿌려주시는 거 잊지 않으셨죠?”

“예, 예.”

병사 하나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건물 곳곳의 창문에서 사람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뭔 이벤트야?”

“황태자가 온다고 했잖아. NPC들 말 좀 들어라.”

“에이... 난 또 뭐라고. 길까지 통제하고 짜증만 난다.”

유저들은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내일로 예정되었던 황태자의 방문이 앞당겨짐에 따라 갑자기 병사들이 길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

“황태자 저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다른 병사 하나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상황을 정리하던 병사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연습한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곧이어 북쪽 입구를 통해 마차 하나가 나타났다.

호위병들은 예리한 눈으로 구경꾼들을 노려보며 나아갔다.

“데일 황태자 저하 만세!”

“제 1 황태자 저하 만세!”

사람들이 소리치며 2층에서 꽃잎이 뿌려졌다.

“뭐야, 왜 얼굴도 안 보여줘?”

“이벤트 X망이네.”

마차는 굳건히 닫혀있었다.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도 데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결국 광장을 빠져나가 성으로 들어갈 때까지 데일의 얼굴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뭐야, 이게?”

“이럴 거면 뭐 하러 통제를 해?”

유저들은 어리둥절했다. 고작 이 짧은 순간을 위해서 그 며칠간 노점도 못 열게 했단 말인가?

“이제 가셔도 됩니다.”

병사들은 빠르게 통제를 풀고 허둥지둥 성으로 돌아갔다.

* * *

글란은 떨리는 마음으로 경비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문제없지?”

“예. 다행히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말끔하게 닦인 장비를 갖춘 병사들이 문 앞에 도열해 있었다. 병사들이 착용한 갑옷은 그들의 긴장한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했다.

“유저들 출입도 금지했고?”

글란의 물음에 경비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 유저라는 족속들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만에 하나라도 유저가 황태자에게 무례를 범한다? 그 책임을 유저에게 물을 것인가?아니었다. 관리하지 못한 영주의 잘못이 될 터였다.

혹여나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틀 전부터 글란은 유저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문제는 글란도 경비대장도 하르판과 같이 들어온 프레이가 유저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 글란은 황태자 맞이할 생각에, 경비대장은 경비병들의 장비만 집중한 탓이었다.

“좋아. 저하께서 오시면 무조건 미소. 알았지?”

“예, 예.”

“웃어봐.”

“네?”

“웃어보라고.”

글란의 말에 경비대장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웃었다. 글란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마치 끔찍한 것을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비대장은 그 덩치만큼이나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그가 짓는 미소는 호의보다 적의가 느껴졌다. 설령 그가 호의를 가졌더라도.

“아냐, 웃지 마. 자네는 웃지 마.”

“네? 아...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상 없나?”

경비대장이 막 글란의 위아래를 훑으려는 순간이었다.

“저하께서 오십니다!”

척- 처척-

공기가 팽팽해지며 병사들이 몸에 힘을 주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배에 힘을 바짝 불어 넣었다.

끼이이익-

굳건한 성문이 열리며 비명을 질렀다.

흙먼지로 더럽혀진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안을 살피고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그들의 뒤에 있던 제트람은 다시금 주변을 확인하고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숙였다.

“흐아암... 이제야 도착이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걸어 나오는 데일. 글란은 미소를 지었다.

도열한 병사들이 검을 들어 가슴으로 당기며 소리쳤다.

“제 1 황태자 저하를 뵙습니다!”

우렁차게 소리치자 데일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글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도 한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 태연한 표정으로 데일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깃들기를, 데일 황태자 저하를 뵙습니다.”

“제국의 후예에 영광이 깃들기를. 일어나게.”

데일은 대충 대답하고 글란을 일으켰다.

“여정에 문제는 없으셨습니까.”

“도중에 코볼트를 만났는데... 뭐 나쁘지 않았네.”

글란은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그의 원망어린 시선은 경비대장을 향했다.

코볼트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건가? 그런 질문이 담겨있는 시선이었다.

다행히 데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글란이 그 짧은 순간에도 어떻게 이 상황을 넘길지 고민하는 사이, 침묵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슥- 스슥- 슥-

“이건 무슨 소린가?”

“예? 아, 이게...”

글란이 설명하기도 전에 데일이 움직였다. 제트람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저, 저하! 먼저 식사부터 하심이...”

“그대가 내 길을 막는가?”

“아, 아닙니다!”

글란은 황급히 데일의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분노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저기 뭐가 있는가?”

“아, 그... 대장장이들이...”

“대장장이?”

데일이 들은 건 숫돌에 무기를 가는 소리였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7 (91%)]

[초급 단검술 Lv6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7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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