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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퀄라이저-28화 (28/141)

<-- 8. 제 1 황태자 -->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내용을 듣고 결정하는 게 당신순리였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 그 황태자께서 오시지 않소?”

“예, 그렇죠.”

황태자 방문은 레스톤에 있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대장장이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태자 방문 때문에 영주님이 아주 예민해지셨소. 거, 레스톤 주변 일대의 나무를 싹 다 베어버리고 가만히 있던 오크들도 쫓아내지 않았소?”

“그렇죠.”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상인들도 불만이 많소. 예전에 오크들이 있을 때는 고블린들이 활개 치고 다니지 않았는데...”

프레이는 그제야 칼카락이 오크를 욕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호랑이 떠난 곳에서는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더니...’

오크들이 쫓겨나자 숨어있던 고블린들이 상인들을 습격한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하여간 지금 도시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일이 이만저만 늘어난 게 아니오.”

“저, 그래서 제게 부탁드릴 일이라는 게...?”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구먼.”

대장장이는 민망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몸을 슬쩍 비키며 안쪽을 가리켰다.

“보이시오?”

“예.”

무기와 갑옷 등 장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수습생으로 보이는 어린 청년들이 바쁘게 장비를 손질하고 있었다.

“다 레스톤 병사들 것이오. 황태자가 오셨을 때 장비에서 빛이 날 정도가 돼야 한다나...”

대장장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프레이는 대충 상황을 추리할 수 있었다.

“황태자 방문이 임박해서야 장비들을 맡겼다는 거로군요?”

“그렇소. 그 이전에 손질해봐야 다시 빛이 바래버리면 소용이 없으니까. 당신같은 유저들 장비도 손보랴, 병사들 장비도 보랴... 밤낮없이 일하느라 쓰러질 지경이오.”

프레이는 다시금 안을 바라보았다. 수습생들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확실히 손이 부족해 보였다.

“다른 유저들은요?”

“흠... 다들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오. 거들떠보지도 않던데... 그쪽도 바쁘오?”

대장장이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보수는 어떻게 됩니까?”

“장비 하나당 1실버, 게다가 장비 수리 기술까지 전수해주겠소. 내가 얼마나 급박한지 아시겠소?”

프레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장장이와 같은 기술자에게는 기술이 생명이다.

모두가 장비를 수리할 줄 안다면 누가 대장간을 찾겠는가?

사냥꾼이었던 프레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냥 기술이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것처럼, 다른 기술도 그러했다.

‘기술은 배우면 평생 간다.’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기술만 배우면 먹고살 걱정이 줄어든다.

‘그래, 앞으로 수리비가 얼마나 나갈지 모르니...’

강해지려면 수많은 적과 싸우며 기술을 갈고 닦아야 했다. 장비는 계속 손상될 것이고, 프레이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프레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정말인가? 고맙네! 고마워!”

대장장이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프레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나는 하르판이라고 하네.”

“아, 예. 프레이입니다.”

“좋아, 당장 시작할 수 있겠나?”

“그러죠.”

하르판은 곧바로 프레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다른 유저들은 기술을 전수한다고 해줘도 거절하던가요?”

“응? 아아... 자네에게 처음 말한 거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야.”

하르판은 시간이 아깝다는 듯 빠르게 빈자리 쪽으로 안내했다. 다른 수습생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곧 그들은 다시 장비로 눈을 돌렸다.

“자, 잘 보게. 유저는 배우는 게 빠르다고 했으니 걱정은 하지 않네만...”

산처럼 쌓여 있던 무기 중 미늘창을 잡은 하르판이 말했다.

“보면 날이 닳아 있는 게 있네, 여기 보이나?”

“예.”

“이런 건 그나마 쉬운 일이야. 여기 숫돌이 있으니 앞뒤로 빠르게 갈아주면 된다네.”

하르판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날을 갈았다. 그러자 곧 날이 새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졌다.

“날이 상한 건 이렇게 하면 되고...”

그는 곧바로 우그러진 갑옷을 잡았다. 속성 기술 전수가 시작됐다.

“여기 우그러진 부분을 이렇게 두드리면...”

“얼룩진 부분은 이걸로 닦아내면...”

“광은 불광이 최고야. 여기 화덕에 검을 빠르게 넣었다가 빼서...”

프레이는 정신없이 스킬을 전수받았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도록 집중했다.

하르판이 손을 털며 말했다.

“이게 전부라네.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나?”

“해보겠습니다.”

“그래, 직접 해보는 게 빠르지. 아, 혹여나 무기가 상하면 배상해야 하니 조심하게. 일단 기술을 정확히 익히는 게 좋아. 너무 서두르지 말게.”

“예.”

“그럼... 부탁하네.”

하르판이 돌아가자 프레이는 빠르게 보고 배운 대로 움직였다.

[초급 수리를 익혔습니다.]

[초급 수리 Lv1 (0%)]

‘또 나오는군.’

이제는 메시지에 익숙해졌다. 프레이는 후끈한 열기 속에서 작업을 시작했다.닦고, 갈고, 펴고, 두드리고.

‘쉬운 일이 아니군.’

작업을 마친 장비들은 옆에 놔두었다. 개수대로 보상을 받아야 했으니까.

‘확실히 유저들이 하지 않으려는 게 이해가 된다...’

덥고 땀나는 환경에 자세는 불편하다. 팔과 어깨가 금방 뻐근해지고 목도 뻣뻣해진다.

그런 고생에 비해 버는 돈은 장비 하나당 1실버.

‘고블린을 잡아도 7실버...’

유저들이 몬스터 사냥에 집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는 알고 있었다.

눈앞에 이익을 좇는 것보다 멀리 봐야 한다. 그는 이제 불멸자, 얼마나 삶을 이어갈지 모르는 몸이었다.

단순히 몇 실버 차이로 스킬을 배울 기회를 놓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지금 배운 이 기술로 얼마나 돈을 아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장비는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언제 그놈을 만날지 모른다.’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장비의 상태가 엉망이라면? 그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프레이는 다른 수습생들이 쉴 때도 손을 움직였다.

다른 이들은 그런 프레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 * *

레스톤 영주 글란의 집무실.

“고블린 문제는 모두 처리된 건가?”

“예, 그렇습니다.”

“고블린과 교접한 아이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경비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후... 다행이군.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하게.”

“예, 다행히 잡혀간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없는 고아였습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이 괴물들이 어떻게 도시에 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뻗친 건가?”

글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경비대장 역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 이름을 걸고 레스톤이 괴물로 들어온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도대체...”

“아무래도 먹을 걸 구하러 밖에 나갔다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글란은 마음 구석이 영 찜찜했다. 뭔가 불안한 느낌, 마음속에 걸리는 게 느껴졌다.

“아, 고블린 들이 훔쳐갔던 물건은 모두 돌려주었나?”

“예, 상인조합 쪽에서 사람이 나와서 같이 갔었습니다.”

“뭘 훔쳐갔던가?”

“그것까지는...”

“아니, 됐네. 고블린들이 훔쳐가는 거라고 해봐야 먹을 것이겠지.”

글란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 황태자 방문에는 전혀 오점이 없어야 하네. 다름 아닌 제 1 황태자, 그 악명 높은 데일 도프람이니까.”

글란의 눈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경비대장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도 들어서 알 거야... 펠튼에서 대접한 음식 중에 무른 과일이 나왔다고 그쪽 영주를 비롯해 일가족이 모두 쫓겨나지 않았는가.”

“아, 알고 있습니다.”

“흠집 하나라도 있으면 안 돼. 알았나?”

“예!”

경비대장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했다. 글란은 그 정도면 됐다는 듯 그를 향해 손짓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앞으로 이틀...’

그 안에 완벽히 준비를 마쳐야 했다.

* * *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프레이는 대장간에 출근했다.

“프레이! 일찍부터 와줘서 고맙네!”

“바쁘시니까요.”

프레이는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자, 어제 일한 일당이야.”

두둑한 은화 주머니를 내밀며 하르판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유저라서 그런지 수습생보다 체력도 좋고 배우는 것도 빨랐다.

“보너스로 5실버 더 채워서 80실버를 맞추었네.”

“그러실 필요까지야...”

“그럼 돌려줄 건가?”

“그건 아닙니다.”

프레이가 고개를 흔들자 하르판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솔직해서 좋구먼. 그럼 오늘도 수고해주게. 아, 자네가 맡긴 검은 오늘 저녁쯤에 볼 수 있을 것 같아.”

“네? 아, 알겠습니다.”

프레이가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있자니 수습생들이 하나씩 도착했다.

힐끗 프레이를 바라본 그들은 따라서 작업을 시작했다.

묘한 시선에 프레이가 고개를 돌리면 수습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그들은 곧 고개를 돌렸다.

‘경쟁심 같은 걸 느끼는 건가? 아니면...’

프레이는 대충 그들의 심정을 눈치챘다.

그건 경쟁심이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더스틴 마을에서 그가 유저들을 보며 부러워했듯, 수습생들도 프레이를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묘하네...’

입장이 달라졌다. 선망하는 사람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변했다.

‘하지만... 유저 생활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야...’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프레이가 바라는 건 부모님과 지내던, 사냥을 통해 밥값을 벌고, 해가 지면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는 그런 일상이었다.

무기를 들고 괴물과 맞서는 생활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상이었다.

프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에게 할 일이 있으니까.

“어서 오쇼.”

“아,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소?”

“아... 일 때문은 아니고 아는 친구가 있어서요.”

익숙한 목소리,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바이런?”

“음? 아는 사람인가?”

하르판이 몸을 비켜주었다. 프레이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인마, 어딜 갔는지는 얘기를 해줘야지.”

바이런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그러냐. 뭐, 알바라도 하는 거야?”

“알바가 뭐죠?”

프레이가 되묻자 바이런은 눈을 껌뻑이다가 대답했다.

“너 금수저구나?”

“네?”

“아냐, 됐다. 어쩐지 여기에만 붙어산다 했어. 아무튼, 일은 언제 끝나?”

프레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하르판을 바라보았다. 하르판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하루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흐음...”

“왜요?”

“아니... 병사들이 아예 좌판을 금지했어. 덕분에 할 일이 없어졌다.”

“좌판을요?”

프레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바이런도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 황태자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여러모로 민폐네요.”

듣고 있던 하르판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상인 조합에 갔는데. 여기서 동쪽으로 하루 정도 가면 항구마을이 나오거든. 거기 가서 물건이나 떼오려고. 해산물 좀 가져다가 팔면 수익이 좀 나올 것 같아서.”

“항구마을이요?”

“메리나라는 곳이네.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

하르판이 슬쩍 끼어들었다. 바이런은 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바쁘다니 나 혼자 갔다 올게. 어차피 하루면 가니까. 왕복 이틀이면 황태자도 가고 없을 테니까.”

“음... 알았어요. 갔다 오세요.”

“너무 쉽게 보낸다?”

“제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겁니까?”

“그건 아니지. 넌 나를 잘 아는 것 같아.”

바이런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튼 누구랑 다르게 나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왔지.”

“그건 미안하다니까요.”

“네네, 그러시겠지. 아무튼 그럼 이틀 뒤에 보자.”

바이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멀어졌다. 하르판은 슬쩍 프레이를 향해 말했다.

“혹시 자네... 그쪽 취향인가?”

“네?”

“그 있잖나, 남자랑 남자가...”

프레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하르판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절대로.”

* * *

레스톤의 북문.

성벽 위에서 연신 하품을 하던 병사의 눈에 뭔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응?’

초원을 달려오는 말, 그리고 그 말을 탄 한 명의 병사.

그는 매우 다급한지 연신 말을 채찍질하며 달려왔다.

“황태자! 황태자께서 오십니다!”

목청이 터지라 외치는 그, 내용을 들은 병사는 곧바로 경비대장에게 달려갔다.

“허억... 허억... 대장님! 대장님!”

“음? 무슨 일인가?”

마침 늦은 점심을 먹던 경비대장은 식사를 방해하는 병사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황, 황태자께서 오시고 있답니다!”

먹기 좋게 잘라둔 빵을 입으로 가져가던 경비대장이 마치 석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었다.

툭하고 빵이 바닥에 떨어지며 굴렀다.

“지금... 뭐라고?”

물론 경비대장은 말을 정확하게 들었다. 단지 믿을 수 없어서, 부정하고 싶어서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의 동공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7 (91%)]

[초급 단검술 Lv6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초급 수리 Lv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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