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거짓의뢰 -->
프레이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굴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곧바로 굴 벽이 뒤에 닿았다.
‘젠장!’
크워-!
짐승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검 끝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프레이는 양손을 단검을 교차해 마치 가위처럼 만들어 방어했다.
차칵-!
단검과 단검 사이에 검 끝이 붙들렸다.
“인간! 복수!”
‘크읍!’
온 힘을 다해 홉고블린이 밀어붙이자 두 팔이 떨리며 밀리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양팔을 옆으로 비틀었다.
검이 튕겨 나가며 프레이의 머리 옆을 찍었다.
크와아-!
다시금 흉성을 내뱉으며 홉고블린이 그대로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프레이는 급하게 몸을 숙였지만 머리카락이 베이며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일단 손목!’
프레이는 홉고블린 쪽으로 뛰쳐나가며 손목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홉고블린도 쉽게 당할 생각이 없는지 손목을 뒤틀며 빼냈다.
단검은 홉고블린의 손등을 베는 것으로 끝냈다. 프레이는 나머지 다른 한손으로 단검을 내던졌다.
“소용없다!”
홉고블린이 몸을 비틀어 날아오는 단검을 피해냈다. 그러나 프레이의 목적은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단검을 던져서 손을 비우고 장검을 뽑는 것이 목적. 프레이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집에서 장검이 빠져나왔다.
‘좋아, 제대로 해보자.’
나머지 단검을 던지고 양손으로 장검을 고쳐 쥐었다. 홉고블린은 단검을 쳐내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캉- 카캉-
검을 휘두르는 족족 홉고블린은 손쉽게 막아냈다.
‘빌어먹을, 고블린 주제에...!’
이 자식은 검을 다룰 줄 안다. 홉고블린이 이빨을 드러내며 비웃었다.
“약한 인간!”
‘반격을 노려야겠어!’
프레이는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골랐다. 무작정 덤벼들어서야 승산이 없었다.
“인간 약하다!”
자신감이 붙었는지 홉고블린이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신 날아오는 검을 막아내며 프레이는 빈틈을 찾으려 애썼다.
‘지금이다...!’
느껴지는 열기. 프레이는 홉고블린이 덤벼들기를 기다렸다가. 모닥불을 걷어찼다.
“크악!”
불똥이 튀며 홉고블린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찰나의 순간, 프레이의 검이 홉고블린의 어깨를 꿰뚫었다.
캉-!
뒤늦게 홉고블린이 프레이의 검을 쳐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악수였다. 어깨에 박혀있던 검이 부딪치며 살점이 찢어지고 붉게 물든 뼈가 드러났다.
“후우... 후우...”
유효한 공격이었다. 모닥불의 불빛이 약해지며 마치 주변의 공간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피를 흘리며 인상을 찡그린 홉고블린은 다치지 않은 쪽으로 바꿔 검을 들었다.
‘힘으로 밀리지 않는다!’
프레이는 쉴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돌진했다. 양손으로 쥔 프레이와 한 손만 쓰게 된 홉고블린, 밀리는 쪽은 홉고블린이었다.
프레이는 벽 쪽으로 고블린을 몰아붙였다.
턱-
당황한 홉고블린이 검을 들었다. 프레이는 홉고블린의 몸이 아닌 검을 든 손목을 베어냈다.
“크아아악!”
울음소리가 굴 안을 가득 메웠다. 프레이는 빠르게 피를 털어내고 떨어진 손목을 옆으로 걷어찼다.
“말해! 아이는 어디 있지?”
프레이는 검을 들어 어깨의 상처를 후벼팠다. 다시금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서 말해!”
“크윽...!”
“말해!”
손목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검 끝이 뼈끝을 긁어낸다. 신경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홉고블린이 게거품을 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프레이는 놈이 잠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인간의 아이는... 두목에게 바쳤다.”
“두목이라고!?”
“두목... 인간 여자 좋아한다...”
“어디 있어!?”
반대쪽으로 검 끝을 돌린다.
홉고블린은 차라리 단칼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잔혹한 인간은 자비를 베풀 마음이 없어 보였다.
“돌... 돌탑...”
“뭐라고?!”
“돌탑이 방향이다...”
프레이는 검을 빼냈다. 홉고블린은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인간을 데려가면 뭘 하지?”
“인간, 고블린의 아이를 낳는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더러운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검이 높이 들렸다. 홉고블린은 드디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러나 프레이의 검은 머리가 아닌 다리로 향했다.
“크아아악!”
한 번에 다리가 잘리지 않았다. 프레이는 다시금 높이 검을 들어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아!”
“죽을 때까지 고통을 느껴봐라.”
프레이는 무서운 눈으로 홉고블린을 노려보며 단검을 들었다.
“인간...! 무슨 짓을...!”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고 홉고블린의 귀를 붙잡았다. 단검의 날이 빠르게 앞뒤로 움직였다.
홉고블린은 고통 속에서 무엇이 더 큰 고통이 모를 정도였다. 피거품을 물며 홉고블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를 다 잘라낼 때 즈음, 홉고블린은 의식을 잃었다.
‘빌어먹을...!’
기분이 더러웠다. 프레이는 서둘러 굴을 빠져나갔다.
* * *
돌탑.
홉고블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프레이는 숲을 헤매며 돌탑을 찾아 움직였다.
돌탑이 가리키는 방향은 산속이었고 프레이는 등산을 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이 서성이는 지역을 찾아낼 수 있었다.
‘후우...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프레이는 어둠 속에 숨어 기습으로 고블린들을 처리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곰이 지날 수 있을 만큼 큰 굴이 있었다.
피곤한 얼굴로 굴에서 나오는 고블린. 프레이는 이곳이 고블린의 본거지임을 직감했다.
툭-
돌멩이 하나를 던져 고블린의 주의를 끌었다.
키익-?
흐리멍덩한 얼굴로 돌아보는 고블린이 다가온다. 프레이는 숨까지 참아가며 기척을 죽였다.
키엑-?
고블린이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프레이는 빠르게 뛰쳐나가 고블린의 숨통에 검을 박아넣는다.
메시지가 나올 틈도 없이 고블린이 절명하면, 시체를 끌어 숨긴다.
죽은 고블린의 귀를 챙기는 건 잊지 않는다. 검에 묻은 피를 고블린이 입고 있는 옷가지에 닦아낸다.
‘홉고블린은 후각이 발달한 모양이니...’
피 냄새를 최대한 지우지 않으면 발각될지 모른다.
프레이는 천천히 굴 안으로 들어갔다.
벽 곳곳에 횃불이 타오르며 내부를 밝혀주고 있었다.
일렁이는 그림자는 없는지 주의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굴 안쪽은 바깥보다 서늘했다. 통로가 점점 넓어지더니 조금 큰 공동이 나타났다.
‘여기인가...!’
프레이는 슬쩍 머리를 밀어 안을 확인했다.
크륵- 크르륵-
가래 끓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온다. 굴속에 또 굴을 만들어 놨다.
그 굴 안에 고블린들이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었다.
‘저기...!’
프레이의 눈에 다른 굴과 달리 감옥처럼 두꺼운 나무막대를 세운 곳이 보였다.
초록색이 아닌 살결이 보였다. 그 안에 헐벗은 여자들이 누워있었다.
그녀들의 옷은 넝마처럼 찢어져 있었는데, 하반신 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좋아...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이곳의 고블린과 모두 싸울 수는 없었다. 그녀들만 조용히 깨워서 도망치면 될 일이었다.
프레이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별다른 잠금장치는 없었지만, 지친 여성들의 힘으로는 바닥과 천장을 지탱하듯 세운 나무막대를 빼낼 수 없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나무막대를 바닥에 끌며 옆으로 기울였다.
“우웅...”
한 여자가 몸을 뒤척였다.잡혀있는 여자는 넷.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그중에 가장 어린아이가 베이트 씨의 딸이 틀림없었다.
다행히 아이의 옷은 멀쩡했다. 아무래도 붉은 천 조각은 저항하다가 피가 났던 모양이었다. 어깨에 생겨난 상처에 피딱지가 생겨 있었다.
툭-
나무막대 하나가 빠지며 빠져나올 공간이 생겼다. 프레이는 검을 거꾸로 쥐어 손잡이 쪽으로 여자들을 건드렸다.
“우웅...”
프레이는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고블린들의 가래 끓는 소리 때문에 들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건드렸다.
“웅...”
한 여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곧 프레이의 얼굴을 보고 크게 입을 벌렸다.
“쉿...!”
프레이는 다급하게 검지를 들며 낮게 소리쳤다. 깨어난 아이는 잠이 단번에 달아난 듯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프레이는 손짓으로 다른 아이를 깨우라고 말했다. 그녀의 눈이 연신 돌아가더니 곧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의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웅...”
“우우웅...”
모든 아이들이 깨어났다. 처음 일어난 여자처럼 모두 놀란 표정이었지만, 다들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한 명씩...”
프레이는 소곤거리며 손짓했다. 가장 어린아이가 기어서 틈을 빠져나왔다.
“아빠가 베이트 씨니?”
아빠의 이름을 들어서일까.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쉿...! 조금만 참으렴!”
빠져나온 아이를 품에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이도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또 한 명, 다른 한 명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큰 여자아이의 차례였다.
“흡...!”
“이런...!”
프레이는 당황하며 베이트의 딸을 다른 아이에게 맡겼다. 틈이 너무 좁았던 걸까.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끼어버린 그녀, 프레이는 다른 쪽 나무를 붙들었다.
“금방 꺼내줄게...”
이전에 했던 것처럼, 나무를 천천히 빼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아이, 잡혀 온 아이 중 두 번째로 큰 아이가 불안한 눈으로 그와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탁- 탁탁-
들려오는 발소리에 놀라 프레이가 돌아봤다.
“잠깐...!”
그녀는 다른 아이를 품에 안고 움직였다. 프레이가 말릴 틈이 없었다.
‘제길...!’
다행히 고블린은 깨어나지 않았다. 프레이는 조금 서둘러 나무를 잡아당겼다.
“됐다...!”
나무가 빠져나오며 여유가 생겼다. 끼었던 아이가 힘겹게 기어 나왔다.
“가자!”
“가, 감사해요!”
속삭이듯 나눈 대화, 먼저 도망간 아이는 벌써 출구에 다다랐다.
프레이는 빠르게 베이트 씨 딸을 품에 안았다.
기특하게도 아이는 울지 않았다. 프레이는 고마움에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조막만 한 손이 프레이의 옷을 움켜쥐었다.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이끌고 굴을 가로질렀다.
킁- 킁킁-
가래 끓는 소리 사이에서 홉고블린의 코가 움찔거렸다.
“피 냄새...!”
홉고블린의 상체가 일어났다. 그것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도망치는 프레이와 여자를 향했다.
여자의 하반신에 묻어나온 피. 그녀가 움직이며 냄새가 굴 안에 퍼진 것이었다.
“침입자! 인간!”
프레이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젠장! 이 아이를 부탁해!”
키에엑-! 키엑-!
홉고블린의 외침에 고블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프레이는 곧바로 베이트의 딸은 아이에게 맡겼다.
“어쩌시려고요!?”
“일단 도망쳐! 내가 길을 막을 테니까!”
쿠당탕-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오며 짐들이 엎어졌다. 상인들에게서 약탈한 물건이었다.
소금, 검은 화약, 옷감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상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서! 어서!”
프레이는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검을 들었다. 일순간 고민하던 그녀는 곧바로 아이를 받아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숫자가 꽤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 세어도 20마리는 족히 넘어 보였다.
‘일단 굴로 유인하자!’
프레이는 그 와중에도 이퀄라이저의 특성을 하나 알 수 있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홉고블린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수많은 고블린과 몇몇 홉고블린.
다수, 그것도 다른 종류의 적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가장 강한 놈의 스테이터스를 얻는 건가!’
고블린 산적보다는 홉고블린의 스테이터스가 월등할 터. 다수의 적을 상대할 경우 강한 적의 스테이터스를 얻을 수 있다는 추리였다.
키에엑-!
날이 빠진 단검을 들고 덤벼드는 고블린, 그러나 단검의 리치는 너무 짧았다. 프레이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휘둘렀다.
고블린의 콧등 위가 잘려나가며 윗부분이 바닥에 떨어지고 몸체가 앞으로 쓰러졌다.
‘좋아, 할 수 있다...!’
고블린들은 동족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7 (47%)]
[초급 단검술 Lv6 (2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