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25화 (25/141)

<-- 7. 거짓의뢰 -->

베이트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과 다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제가 모아둔 재산이 얼마 없어 거짓 의뢰를 하였습니다.”

“거짓 의뢰라니...?”

프레이는 일단 베이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일단 상황파악이 먼저였다.

“일단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저께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딸아이가 사라졌습니다. 밭 근처에서 흙장난을 했던 터라 그때도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해가 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밖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베이트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그때의 충격이 다시 떠오른 것처럼.

그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밭 근처에서... 딸아이가 가지고 놀던 모종삽을 발견했습니다. 밭 근처에는 큰 발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발자국은 숲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급하게 따라갔지만... 아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바로, 바로 도시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농부의 자식을 찾는데 쓸 인력이 없다고 합디다. 황태자께서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도시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한다는 둥 제 이야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합에...”

“예, 조합을 찾아갔습죠. 허나, 제가 가진 전 재산을 바쳐도 의뢰금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급하게나마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베이트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가득했다.

“전사님! 하지만 그 아이는 제가 가진 하나뿐인 보물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드릴 테니 제발 그 아이만은....”

프레이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의뢰는 잘못된 의뢰다. 보통은 의뢰를 거절하고 조합에 알려 다른 의뢰를 받을 것이다.

여기서 베이트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호구 짓이었다.

생각해보라. 그가 전 재산을 준다 한들 얼마나 되겠는가?

밭작물,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받아서 무얼 하겠는가? 농부가 모아둔 돈은 얼마나 될까?

조합에서는 의뢰의 수준에 합당한 의뢰금을 요구한다. 그 말은 곧 이 의뢰는 농부의 전 재산보다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뜻.

시간 대비 보상이 너무 적다. 성공 가능성도 불확실한 의뢰, 보통은 거절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평범한 유저라면.

그러나 프레이는 달랐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연민이었다. 베이트에게서 자신을 지키려 쓰러졌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유저를 향해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던 어머니, 그리고 그 도움을 단칼에 거절했던 유저들.

도리어 어머니를 미끼로 삼았던 그 가증스러운 인간들.

‘지금 내가 이 분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자신과 어머니를 죽게 놔둔 그 유저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그 자신이 증오하는 부류의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 인간이 된다면 복수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자신이 되살아난 의미가 사라진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프레이는 베이트를 놔둘 수 없었다. 그는 베이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서두릅시다.”

“예?”

“따님이 사라진 곳으로 데려 가주세요.”

베이트는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

“여기, 여기였습니다.”

베이트는 곧바로 근처 밭으로 프레이를 데려갔다.

“제가 발자국이 없어지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놨습니다.”

베이트의 절박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밭작물을 모두 뽑아버리고 울타리를 옮겨놨다.

덕분에 발자국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게 맡겨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사님!”

베이트가 다시 눈물을 터트리려 했다. 프레이는 그를 진정시키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따님이 돌아오셨을 때 이런 얼굴로 맞이할 수는 없잖아요.”

“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베이트는 프레이의 말에 감격한 듯 연신 허리를 숙였다.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발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발자국은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유저라는 게 다행이야.’

프레이는 빠르게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이미 해가 기울어진 시각이라 숲은 매우 어두웠다.

나무 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던 햇빛은 곧 사라졌다.

적막과 어둠, 프레이는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발자국을 따라 다녔다.

‘아이를 납치한 목적이 뭐지? 몸값이 목적이라면 왜 숲으로?’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빛이 점차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발자국이 사라져간다.’

프레이는 낭패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마지막 발자국에서 그는 멈춰야 했다.

발자국과 발자국이 뒤섞여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성인의 것은 아니야.’

작은 발자국과 큰 발자국이 뒤섞여 추적이 끊긴 것 같았다.

‘이상하군... 작은 발자국은 계속 이어져 있어...’

큰 발자국이 끊긴 지점에서 작은 발자국이 이어져 있다. 프레이는 이번에는 작은 발자국을 추적했다.

그렇게 따라가니 작은 굴이 나왔다. 발자국이 굴까지 이어진 걸 확인한 프레이는 단검을 빼 들었다.

‘몸집으로 보면 힘이 강한 놈은 아닐 터...’

프레이는 심호흡을 하고 굴 옆으로 다가갔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의외로 굴이 깊은 것 같은데.’

발자국은 굴로 이어져 있다. 단서는 이것뿐, 프레이는 어두운 굴로 몸을 움직였다.

타닥- 타닥-

쉬익- 쉬익-

모닥불 타는 소리와 옅은 숨소리. 프레이는 더욱더 몸가짐을 조심하며 빛이 새어 나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고블린...!’

굴 안쪽에는 고블린 2마리가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프레이가 찾고 있던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틀린 건가...?’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려 했다. 아이가 없다는 걸 안 이상 다른 곳을 찾아야 했으니까.

그런 프레이의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저건...?’

고블린이 입은 가죽옷과는 다른 옷이었다. 찢어진 붉은 천 조각.

프레이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피...!’

손을 뻗어 잡은 천 조각은 원래부터 붉은 것이 아니었다. 피를 머금은 탓에, 모닥불의 불빛으로 인해 붉게 보였던 것.

키엑-?

파르르 떨리던 고블린의 눈이 프레이와 마주쳤다.

프레이는 고블린의 입이 크게 벌려지기 전에 반사적으로 단검을 목덜미에 꽂았다.

끄륵-

피 끓는 소리와 공기 새는 소리가 들렸다.

피 냄새 탓일까 다른 고블린이 눈을 뜨고 프레이를 발견했다.

키이익-!

고블린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근처에 있던 몽둥이를 집었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단검을 양손에 쥐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고블린 산적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이놈들도 산적인가...!’

키야악-!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달려드는 고블린. 프레이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는 방망이를 옆으로 피해냈다.

곧바로 포옹하듯 양손을 안으로 끌어당기며 단검을 휘둘렀다.

키약-! 키아악-!

고블린의 오른팔에 그어진 2개의 붉은 선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프레이는 능숙하게 피를 바닥에 흩뿌리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키익- 키이익-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인지 고블린은 힘겹게 왼손으로 몽둥이를 바꿔 쥐었다.

‘고블린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프레이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가 싸웠던 늑대나 오크에 비하면 고블린은 너무나 약했다.

스테이터스는 같았지만 프레이가 가지고 있는 스킬과 아이템, 특히 활력의 반지 덕분에 체력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번엔 먼저 간다!’

프레이는 앞으로 뛰어들었다. 고블린 산적은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몽둥이가 날아들었지만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팔인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눈에 훤히 보였다.

단검을 몽둥이에 박아 움직임을 고정하고 길게 늘여진 고블린의 팔에 단검을 박았다.

키아아-!

날카로운 비명이 굴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프레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단검이 내리꽂힐 때마다 비명이 울렸다. 고블린의 팔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양팔을 늘어뜨린 고블린의 다리를 걷어찼다.

“하아... 하아...”

프레이는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고블린의 숨통을 꿰뚫고 숨을 뱉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설마... 베이트 씨 딸이...’

프레이는 천 조각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쓰러진 고블린의 귀를 잘라냈다.

킁- 킁킁-

키익-!

“피 냄새...”

귀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프레이는 고개를 돌렸다.

‘이런... 다른 놈들이 있었나?’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바짝 몸을 긴장시켰다. 그런데 말소리라니?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 분명히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말이었다.

‘제길... 출구는 하나뿐인데...’

프레이는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벽으로 몸을 붙였다.

‘소리로는 두 놈이다. 한 놈은 기습으로 처리해야겠어.’

스테이터스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첫 기습으로 하나를 처리하고 다른 하나를 상대한다.

프레이가 그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 냄새 때문인지 놈들도 급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프레이는 숨을 멈추었다.

허벅지는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긴장했고, 단검을 놓치지 않도록 굳게 쥔 손아귀는 허옇게 변했다.

‘온다...!’

프레이는 참았던 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모닥불에 비친 고블린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프레이의 단검이 움직였다.

끄륵-

턱밑을 노리고 올려친 단검의 끝이 고블린의 뇌를 헤집었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고블린과 그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고블린.

‘기습은 성공이다!’

프레이는 곧장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다른 고블린의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뿔...?’

다른 고블린과 달리 이마에 솟은 작은 뿔. 게다가 비교적 갑옷다운 갑옷을 입고 있는 놈이었다.

척 보기에도 일반적인 고블린과 달랐다.

“인간...!”

고블린의 입에서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다른 고블린의 사체를 둘러본 그놈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프레이는 단검을 쥐고 상대할 준비를 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홉고블린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홉고블린?’

프레이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힘도 체력도, 민첩도 고블린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런...!’

이 정도 힘이라면 단검보다는 장검이 낫다.

홉고블린이 들고 있는 무기 역시 장검, 무기의 사정거리를 생각하면 결론은 같았다.

그러나 무기를 교체할 틈이 없었다.

“복수한다!”

사나운 외침과 함께 홉고블린이 장검을 들고 덤벼들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1%)]

[초급 검술 Lv7 (10%)]

[초급 단검술 Lv5 (9%)]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3 (27%)]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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