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조합원이 되자 -->
바이런이 다시 접속했을 때, 프레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응? 수면 모드로 해놨나?’
모닥불은 다 타고 꺼져 있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음... 이 자식 현실에서도 이렇게 생겼을라나.’
바이런은 유심히 프레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음...”
프레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바이런이 그를 깨우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아버지... 어머니...”
괴로워하듯 중얼거리던 프레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바이런은 눈을 껌뻑였다.
‘악몽?’
“으... 안 돼... 으... 제발... 제발...”
“프레이? 프레이?”
파르르 떨리며 눈이 떠졌다. 프레이는 바이런의 얼굴이 보이자 벌떡 일어났다.
“아...”
“괜찮아?”
“예? 네. 네...”
“악몽이라도 꿨어?”
바이런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도 수면 모드를 해둔 경험이 있었다.
이쪽의 시간이 아침이 될 때까지 짧게 수면을 유도하는 모드. 그러나 꿈을 꾼 적은 없었다. 애초에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뇌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이를테면 여기서 꾸는 꿈은 꿈속의 꿈과 같았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터였다. 아니, 바이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 네, 그런 것 같아요.”
‘특이하네...’
“출발하죠. 노숙도 의외로 나쁘지 않네요.”
프레이는 자신의 뺨을 두드리며 일어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바이런도 준비를 시작했다.
* * *
소도시 레스톤.
베긴네르에서 시작한 유저들이 본격적인 모험의 준비를 다지는 곳이었다.
비록 작은 도시지만 웬만한 조합이 자리를 잡았으며 유저들은 원하는 조합을 찾아가 모험을 시작한다.
“생각해둔 조합은 없어?”
“조합이라고 해도...”
바이런의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질문을 던졌다.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직업이라는 개념이 없긴 하지만, 동시에 다른 조합에 가입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니 신중하게 선택해.”
“음...”
“조합에 가입하면 스킬 숙련도 쉽고, 관련된 의뢰를 찾아주기도 하고. 나쁘지 않아.”
“리반, 리반은 어떤 조합이었죠?”
프레이는 조금 굳은 얼굴로 물었다. 바이런은 갑작스레 나온 이름에 눈을 껌뻑이다가 대답했다.
“그걸 모르고 있었어?”
“아... 네.”
“리반은 좀 특이한 케이스지.”
바이런은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는 연신 눈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알기로, 리반은 조합이 아니라 기사가 됐지. 유저가 기사가 되는 건 꽤 어려운 일이거든.”
“기사요?”
“그래, 자유 기사 생활, 사실 말이 자유 기사지 그냥 백수야 백수. 백수 생활을 지내면서 여러 귀족들의 의뢰를 수행했다나? 그런데 도중에 제 2 황태자인 마틴 도프란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야.”
“제 2 황태자요?”
“그래, 하긴. 아직 모를 수 있겠네. 아무튼 그래서 마틴을 따라서 신성제국에 갔는데, 거기서 인정을 받았지.”
프레이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의 말에 집중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리반에 대한 정보를 될 수 있는 대로 수집해야 했다.
“그래서 성기사가 된 거야. 제국의 후예와 신성제국의 연결고리가 된 셈이지.”
“그렇군요...”
프레이는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성기사? 성기사라고?’
그런 자가 도움을 청하는 자의 목을 베었단 말인가. 프레이는 다시금 분노의 의지를 불태웠다.
‘위선자... 가증스러운 인간...!’
오직 자신만이 그의 진면모를 아는 게 틀림없었다. 주먹에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프레이는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아, 드디어 도착이네.”
프레이는 바이런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멀리 높게 쌓여있는 성벽과 도개교가 보였다. 도시 주위로는 해자가 깊게 파여 있었고, 그 주변 일대는 벌목을 했는지 바짝 마른 나무 밑동이 가득했다.
프레이와 바이런이 접근하자 경비병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오신 겁니까?”
“베긴네르입니다.”
바이런의 대답에 그들은 더욱 놀란 모습을 보였다.
“베, 베긴네르... 어떡하지?”
경비병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바이런이 나섰다.
“왜 그러시죠?”
“아... 그게, 혹시 신분을 증명하실 물건이 있으십니까?”
“네? 아, 있긴 하지만...”
바이런은 자신의 상인증을 꺼냈다. 하지만 프레이는 아무것도 꺼낼 게 없었다. 바이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원래 레스톤과 베긴네르를 왕복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베긴네르에서 처음 나오는 터라...”
“그건 조금 곤란하군요... 현재 레스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이유로?”
“제 1 황태자께서 순시를 돌고 계십니다. 아마 일주일 이내로 도착하실 예정인데, 엄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제 1 황태자가요?”
바이런도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단 레스톤 마을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럼 어떡합니까?”
“하... 그게 저도 참...”
경비병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가 곧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이건...”
“아, 이 배지는...”
“오, 이거라면 충분합니다. 다행이군요. 이 배지를 받은 유저는 많지 않은데...”
하이스톨의 역사학 수료 배지. 경비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문제없나요?”
“예,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베긴네르는 오크의 습격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오크도 쫓겨난 겁니다.”
프레이의 대답에 경비병은 입을 다물었다. 냉랭한 분위기에 경비병은 헛기침하며 물러섰다.
“흠흠, 레스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프레이와 바이런은 그를 지나쳤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황태자의 방문... 일정에 맞추어 이 주변을 대대로 청소했겠지. 나무를 벤 것도 그렇고... 오크들 역시 습격한 게 분명하다.’
단 한 명을 위해 이 주변의 숲을 벌목하고, 오크 부족을 내쫓는다. 쫓겨난 붉은 바위 부족은 거처를 옮기다가 베긴네르 근처의 숲으로 온 게 분명했다.
‘황태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프레이?”
“네?”
“어떻게 할래? 나는 일단 상인 조합에 들를 건데.”
“같이 가죠.”
프레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바이런은 미소지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도시 내부는 떠들썩했다. 황태자의 방문 소식 때문일까.
‘마치 축제인 것 같아.’
광장에는 새로 꽃장식을 놓는 것 같았다. 경비병들이 돌아다니며 노점을 하는 유저들을 찾아다녔다.
“여기서 장사하시면 안 됩니다.”
“아유...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호들갑이야.”
“영주님의 명입니다. 광장에서 노점을 금합니다.”
노점을 하던 유저들은 불평을 쏟았지만 다른 유저들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어휴, 안 그래도 길이 막혔는데 잘됐네.”
“이참에 노점은 그냥 외곽으로 몰아버렸으면 좋겠어.”
바이런과 프레이는 그런 그들을 헤치며 지나갔다.
“여기다. 들어가자.”
상인증에 그려진 그림과 똑같은 간판. 바이런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신성제국 쪽에 가서 물건 떼 오는 게 더 낫지 않아?”
“그보다는 마도연합에 가서 물약을 대량으로 가져오는 게 더 많이 남을 것 같은데?”
“요즘 물약 시세가 개똥이야. 그러면 파산하기 딱 좋지.”
상인 유저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같이 움직일 동료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물건을 많이 살수록 할인율이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바이런은 그들을 제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1층은 유저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아따... 사람 많네.”
2층이라고 적은 건 아니었다. 열댓 명의 유저들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런도 자리에 앉으며 옆자리를 손으로 두들겼다.
“금방 빠질 거야. 의뢰를 받는 게 대부분이거든.”
“그렇군요.”
바이런의 말은 사실이었다. 앉아있던 유저들은 순서가 되면 안으로 들어갔고, 금방 밖으로 나왔다.
바이런과 프레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눈 안경을 쓴, 콧수염이 인상적인 남자가 그들을 반겼다.
“조합증 보여주시고.”
“여기요.”
“뒤에 계신 분은?”
바이런이 내민 상인증을 본 콧수염이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바이런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 동료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무슨 일로 오셨죠? 의뢰가 필요하신가요?”
바이런은 그의 말에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베긴네르의 보급문제와 주변 치안에 대한 설명이었다.
“아... 드디어 해결됐군요.”
“예. 그래서 촌장님 부탁으로 소식을 전달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콧수염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나오니 바이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혹시 오시는 길에 고블린 산적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아, 맞아요!”
“예, 저희 쪽에서도 베긴네르로 몇 번 사람을 보냈습니다만... 번번이 물건을 빼앗겨서요. 여러분이 오셨기에 문제가 해결됐나 싶었는데...”
“산적 규모가 큽니까? 저희가 몇 놈 잡았는데요.”
“오, 그렇군요. 혹시 증거를...?”
“아, 여기 있습니다.”
바이런이 손짓했다. 프레이는 주섬주섬 고블린 산적의 귀를 꺼냈다.
“오호... 안 그래도 산적 놈들 제거 의뢰를 냈었습니다. 정산을 바로 해드리죠.”
“하나에 얼마 정도 합니까?”
“두당 7실버입니다.”
프레이는 바이런의 말과 달라 그를 째려봤지만 바이런은 당당하게 그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그거라도 어디냐는 눈빛.
“총 6개로군요. 여기 42실버입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산적 두목은 70실버입니다. 요즘 병사들이 도시 통제에 바빠서 유저에게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70실버...”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꽤 높은 금액이었다. 산적 열 마리 몫은 되는 값.
“놈들이 훔쳐간 화물이 꽤 됩니다.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화물까지 되찾아주시는 조건입니다.”
“하하, 기회가 되면 꼭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 외에는...”
“아아,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 친구가 여기 처음 와서요.”
바이런이 능수능란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콧수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알겠습니다. 베긴네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이런과 프레이는 밖으로 나왔다.
“어때? 상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상인...”
“복수가 목적이라고 했나? 꼭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면 돈을 모아서 다른 사람을 기용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거야.”
“아뇨, 직접 할 겁니다.”
프레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른 이의 손에 복수를 맡길 수는 없었다.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그럼 어디부터 가볼까? 내가 알기로 레스톤에는 전사 조합, 용병 조합, 마도 연합 지부 그리고... 무슨 신이더라? 아, 맞아. 솔리스.”
“솔리스?”
“빛의 신, 몰라? 이거 완전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군. 하긴,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좋을 때도 있지.”
바이런은 마음에 든다는 듯 프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복수를 원한다면 솔리스의 사제가 되는 건 어렵지. 솔리스는 호구 신이거든.”
“호구요?”
“그래, 회복을 전담으로 하는 사제거든. 언데드에게는 천적이라고는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더라고.”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신전은 갈 생각도 없었다.
‘신이 있다면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 뒀을까...’
신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기에, 리반이라는 자가 성기사로 활동하기에, 프레이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냥 가까운 조합에 먼저 가요. 아, 마법을 배울 생각은 없어요.”
“그래? 하긴, 너 싸우는 거 보면 지능캐는 아닌 것 같아. 그럼 일단 전사 조합으로 가자.”
‘지능캐?’
프레이는 바이런의 말을 곱씹었다. 이것 또한 유저의 말일까.
조합 건물은 도시 내 한 구역에 몰려 있었기에 전사 조합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과 도끼가 교차하는 문양의 간판.
바이런과 프레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3%)]
[초급 검술 Lv7 (15%)]
[초급 단검술 Lv3 (8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