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퀄라이저-22화 (22/141)

<-- 6. 조합원이 되자 -->

프레이와 바이런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대부분 아쉬워했지만 그들이 유저임을 알고 있기에 다들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됐지?”

“네.”

바이런은 동쪽 출구 앞까지 말을 이끌고 왔다. 프레이는 바이런을 돌아봤다.

“저...”

“응?”

“왜 말이 한 마리에요?”

“나한테 말이 한 마리밖에 없으니까?”

프레이는 잠시 말을 잊고 그를 쳐다보았다. 너무나 당당한 바이런의 태도에 프레이는 눈을 껌뻑였다.

“아니, 저, 그럼 저는요?”

“너? 뭐?”

“제 말은요?”

“너도 말이 있어?”

바이런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으니, 프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근데?”

바이런이 멀뚱히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프레이는 대화의 초점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는 확실히 이야기해야 했다.

“아니, 전 제 말도 준비해주시는 줄 알았죠.”

“그건 무슨 소리야? 말이 얼마나 비싼데? 너 돈 얼마나 있는데?”

“어...”

프레이는 주머니를 뒤졌다. 마을 사람들이 편의를 봐준 덕에 그동안 돈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다.

“72실버 35코퍼요.”

“그럼 안 돼. 이런 조랑말도 1골드는 줘야 하는데.”

푸르릉-

투레질을 하는 말을 쓰다듬은 바이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말 역시 그걸론 어림도 없다고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그럼 전 걸어가요?”

“왜 걸어? 뒤에 타면 되지.”

바이런은 말에 올라타며 뒷자리를 두드렸다. 프레이는 순간 인상을 썼지만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뭐해? 더 늦으면 노숙할지도 몰라?”

“알았어요.”

프레이는 바이런이 내민 손을 잡고 그의 뒤에 올라탔다.

“잘 잡아라.”

말의 안장이 1인용이었기에 자연스레 프레이는 안장 없는 자리에 올라탔다. 말 근육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다각- 다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프레이와 바이런은 베긴네르를 떠났다.

‘하아...’

왠지 모를 한숨이 프레이의 입에서 나왔다.

* * *

들썩이는 엉덩이의 고통을 참아내며 도로를 따라가기를 한참, 프레이는 바이런의 뒤통수에 대고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남았어요?”

“아직이야. 출발한 지 얼마 안 지났는데. 재촉한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이런은 느긋했다. 얻어 타는 입장인 프레이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프레이의 눈은 주위로 돌아갔다.

항상 더스틴 마을에서만 지냈던 터라 탁 트인 초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며 짧게 자란 풀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몸을 뉘었다. 그 초원 뒤로는 울창한 숲이 보였다.

‘평화롭군...’

“정말 이런 거 보면 다른 게임이랑 엄청 다르다니까.”

바이런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게임 보면, 이런 들판에 몬스터나 늑대 같은 짐승들이 깔렸어. 그런 세계에서 사는 NPC들은 얼마나 강심장인 거야? 당장 마을 밖에 괴물이나 짐승이 돌아다니는 데, 무섭지도 않나?”

“그러게요.”

바이런은 그런 식으로 다른 게임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프레이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하긴 그만큼 많은 유저들이 몬스터를 때려잡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보면 몰입이 깨진다니까.”

“그러시군요.”

“그래, 반면에 T.O.Y는 얼마나 현실적이야?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라니. 그런 괴물들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한참을 잡담을 나누며 움직였다. 풍경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길은 숲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자자, 여기서 조심하자고. 숲에서부터는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낮은 언덕이 시작되었다.

말은 조금 지친 듯 힘겹게 발을 뗐다. 바이런은 말을 쓰다듬으며 독려해주었다.

완연한 산길이 시작되었다. 프레이는 서늘함을 느꼈다.

“프레이, 나 육포 좀 주라.”

바이런이 고개를 돌려 손을 내밀었다. 메리스에게 받은 육포가 아직 조금 남아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알았어요.”

육포를 조금 뜯어서 넘겨준다. 바이런이 우물거리며 냄새를 풍기자 말이 머리를 흔든다.

푸르릉-

“말도 고기를 먹나?”

“...안 먹죠.”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은 초식동물이다.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그런 상식조차 모른다니.

푸르릉-

“그래? 근데 얘가 왜 이러지...”

“육포 냄새를 안 좋아하는 걸까요?”

“그런...”

쏴아악-

바이런이 고개를 돌린 사이 그들 앞에 뭔가가 날아들었다.

히힝-

“우왓!”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자 뒤에 앉아 있던 프레이가 떨어졌다.

“윽...!”

“워! 워워!”

놀란 바이런이 말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치고 흥분한 말은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우악! 잠깐! 잠깐!”

이리저리 말이 몸을 흔들자 바이런은 고삐를 놓쳤다. 바닥에 떨어져 구른 바이런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들었다.

“안 돼! 가지마!”

말은 이미 전력으로 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멀어져가는 말을 보며 애절하게 소리친 바이런이 중얼거렸다.

“내 1골드...”

“조심해요!”

프레이는 다시금 날아오는 뭔가를 쳐냈다.

‘뭐야, 이건?’

끝을 날카롭게 깎은 나무 창이었다.

“우왓!”

쓰러진 바이런의 머리맡에 다시 나무창이 떨어졌다.

“일단 피해요!”

프레이는 바이런을 일으켜 나무 뒤로 숨었다.

키익- 키이익-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작은 괴물들. 초록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 가죽을 꿰매어 만든 조잡한 갑옷.

“고블린?”

“고블린이요?”

“어... 젠장, 산적질 하는 놈들인가 본데.”

고블린 산적은 총 4마리. 바이런은 일단 가지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4마리 좀 많은데...”

“정면 대결은 피해요.”

나무창을 전부 던졌는지 고블린은 낡은 무기를 들고 다가왔다. 프레이는 활을 잡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이퀄라이저’ 특성이 반영됩니다.]

[고블린 산적의 스테이터스로 보정합니다.]

“웃...!”

갑자기 전신이 무거워졌다. 프레이는 땀을 흘리며 시위를 당겼다.

키이익-!

프레이를 발견했는지 빠르게 다가온 한 놈, 프레이는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젠장...!’

머리를 노렸건만 흔들리는 조준점은 어깨에 멈췄다.

캬악-!

비명과 함께 쓰러진 고블린 산적, 다른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준비해요!”

고블린 산적의 주 스테이터스는 힘보다 민첩인 것 같았다. 놈들은 움직임이 날렵하고 가벼운 몽둥이와 단검을 쥐고 있었다.

프레이 역시 단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바이런이 이를 악물며 프레이와 등을 맞댔다.

고블린 산적은 바로 그들을 포위했다.

“덤벼! 이 난쟁이들아!”

“바이런, 섣불리 나가면 안 돼요.”

부상을 입은 놈 외에는 3마리. 자신과 바이런이 맞대고 있으니 뒤는 걱정 없고, 그들이 숨은 나무가 한 면을 가로막고 있었다.

‘공격이 온다고 해도 동시에 2명. 뒤는 바이런에게 맡긴다.’

프레이는 단검을 움켜쥐고 호흡을 골랐다.

키이익-!

한 놈이 울음소리를 내뱉자 동시에 놈들이 달려들었다.

“흡!”

단검을 잡은 고블린 한 마리가 달려들며 프레이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다. 프레이는 고블린의 팔을 단검으로 내리찍으며 옆으로 비틀었다.

키아악-!

비명과 함께 고블린의 단검이 방향을 틀며 옆에 나무에 박혔다. 프레이는 곧장 다른 손으로 훤히 드러난 고블리의 목을 꿰뚫었다.

촤아악-

갈라진 목 사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프레이의 얼굴에 튀었다.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등을 맞대고 있던 바이런이 앞으로 나아갔다.

“받아라!”

“조심해요!”

바이런의 힘이 약한지 몽둥이와 맞부딪친 그의 검은 몽둥이에 박혀있었다. 검을 빼내려 이리저리 힘을 주는 바이런에게 고블린 한 마리가 달려들고 있었다.

프레이는 곧장 달려드는 고블린의 복부를 걷어찼다. 숨이 턱 막힌 듯 고블린 한 마리가 뒤로 나자빠졌다.

곧장 넘어진 고블린을 처리하려던 찰나였다.

“도와줘! 프레이!”

“이런...!”

결국 검을 빼내지 못한 바이런, 고블린이 몽둥이를 뒤로 빼자 오히려 검을 빼앗긴 상황이 되었다.

몽둥이에 박혀있는 검이 거추장스러운 듯 고블린은 이리저리 몽둥이를 흔들고 있었다. 바이런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숙여요!”

“뭣...!”

프레이는 바이런의 뒷머리를 숙이며 잡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꽤 가까운 거리였기에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키아악-! 키악-!

얼굴에 단검이 박히자 고블린 산적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몽둥이를 떨어뜨렸다. 얼굴에 박혀있는 단검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흡...!”

떨어진 몽둥이를 발로 밟고 박혀있는 검 손잡이를 들어 당겼다. 조금 애를 쓰자 검이 들려 나왔고 프레이는 바이런에게 검을 던져주며 소리쳤다.

“뒤!”

“어? 어어!”

얻어맞은 고블린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하지만 싸울 생각이 없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바이런은 엉거주춤 무기를 잡고 일어섰다가 그 꼴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인간의 무서움을 알았느냐!”

프레이는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고블린의 멱을 따고 돌아섰다. 얼굴에 묻은 피를 옷에 대충 닦아내고, 단검에 묻은 피도 털어냈다.

‘후우...’

전투가 끝나며 무게감이 사라진다. 바이런은 연신 숲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개 같은 놈들!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

“바이런.”

“어딜 감히 우리의 앞길을...”

“바이런!”

“응?”

프레이가 조금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바이런이 진정됐다는 듯 돌아보았다. 프레이는 주위를 훑으며 말했다.

“말이 도망갔는데 어떡하죠?”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아, 내 교역품들...!”

다시 자신이 입은 손해가 떠올랐는지 바이런은 울상을 지었다.

“교역품이요?”

“그래... 교역품은 인벤토리에 넣을 수가 없거든. 아씨...”

낭패라는 듯 바이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빌어먹을 산적 놈들!”

바이런은 검을 들고 고블린의 귀를 자르기 시작했다.

“웃... 뭐하시는 거예요?”

“뭐 하긴, 어떻게든 손해는 메꿔야지.”

“귀는 왜 자르는 건데요?”

“안 그러면 증거가 없잖아. 레스톤에 가서 몬스터를 잡은 증거를 보여주면 보상금을 주거든.”

“아... 그런가요.”

“그래, 야, 양쪽 하나씩 나눠 갖자. 원래 한 마리에 귀 하나인데, 그 자식들 모를 거야.”

바이런은 잔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프레이는 그런 바이런의 행태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귀를 자르기 시작했다.

“고블린 산적이면 한 마리에 10실버는 줄 거야.”

거절하기에는 꽤 큰 금액이었다.

* * *

“여기요.”

“아, 왔어? 오...”

바이런은 박수를 치며 그를 맞이했다. 프레이의 손에는 갓 잡은 토끼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도축은 할 줄 알아?”

“도축이요?”

“어렵지 않을 거야. 그냥 단검으로 해도 될 걸? 나는 도축용으로 하나 가지고 다니기는 하는데.”

바이런이 단검을 꺼내 토끼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헤집었다. 프레이는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

“자, 시스템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이렇게 가죽이 쏙하고 나오지. 그리고 나머지 고기 부분은 이렇게...”

도축이 끝나자 토끼는 가죽과 고기로 분리되었다. 바이런은 기다리면서 만든 나무꼬챙이에 고기를 꿰었다.

“이렇게 모닥불에 세워두면 오케이.”

[초급 도축을 익혔습니다.]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를 익혔습니다.]

[초급 요리 Lv1 (0%)]

바이런을 따라 하자 프레이의 눈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제는 익숙해진 터라 프레이는 곧장 메시지를 치웠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면서 토끼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하... 소금 사 놓은 거 좀 인벤토리에 넣어 놓을걸.”

바이런은 아쉽다는 듯 대답했다. 프레이는 대답 없이 토끼 구이를 잡았다.

‘퍽퍽하네...’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고블린 산적의 습격으로 이동수단을 잃은 프레이와 바이런은 결국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거 먹어봐.”

“네?”

“맛이 좀 다를 거야. 먹어. 수고했으니까 네가 맛있는 걸 먹어야지.”

바이런이 내민 토끼 구이는 한 입 베어 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 조금 먹긴 했지만 괜찮아.”

그러나 프레이는 냉정하게 그 위쪽을 잘라냈다. 물론 바이런이 상처받지 않도록 둘러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눠 먹죠.”

“정말?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니까.”

바이런은 웃으며 잘라낸 부분을 먹기 시작했다.

‘뭐가 다르다고...’

같은 토끼 구이인데 뭐가 다르겠는가. 바이런이 구운 고기를 베어먹은 순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지?’

퍽퍽한 건 같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육즙.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

“아, 내 요리 스킬이 좀 높거든. 이런 생활을 자주 하기도 했고.”

“스킬이요?”

“응. 같은 재료라도 스킬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

프레이는 묵묵히 고기를 먹었다.

“그래도 끼니는 때웠다. 이제 문제는 없을 거야. 일단 내일 접속하자고.”

“접속...이요?”

“음. 날 밝을 때까지 기다리기는 뭐 하잖아?”

“아... 네. 그럼...”

“그래, 내일 보자.”

바이런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남겨진 프레이는 그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닥불 가까이에 누워 눈을 붙였다.

새삼,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3%)]

[초급 검술 Lv7 (15%)]

[초급 단검술 Lv3 (81%)]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12%)]

[초급 도축 Lv1 (0%)]

[초급 요리 Lv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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