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조합원이 되자 -->
베긴네르의 전쟁지역이 해지되고 며칠이 흘렀다.
“멀쩡하게 접속되네?”
“그러게. 오크랑 싸워서 이겼나봐.”
“그런가, 아무튼 빨리 무기 받고 떠나자.”
유저들의 대화를 듣던 프레이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에게 있어 이 마을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아, 프레이 왔는가.”
“안녕하세요. 할린 아저씨.”
“무기 손질은 다 해뒀어. 여기 있네.”
대장장이 할린이 건네준 검과 단검을 받아든 프레이는 주섬주섬 인벤토리를 뒤졌다.
“어허, 뭐 하는 건가?”
“예? 당연히 값을 치르려고...”
“예끼, 이 사람. 마을의 은인에게 돈을 받으면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얼른 가져가게.”
할린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무기를 툭툭 쳤다.
“네? 아니, 그래도...”
“뭐지? 저 유저는 공짜로 수리 받나 본데?”
“베긴네르에서?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는데...”
다른 유저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프레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유저의 관심을 받는 건 그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기에, 빨리 자리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또 오라고.”
할린이 기분 좋게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근처에 있던 유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저도 손질...”
“하나에 50코퍼.”
“네? 하지만 방금...”
“50코퍼.”
“차별하는 거예요?”
“50코퍼.”
할린은 단호한 어투로 값을 이야기했다. 결국 유저는 양손을 들며 대답했다.
“미치겠네. 알았어요!”
“좋아, 고맙네!”
할린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유저가 돌아와 한결 살림이 편해진 덕이었다.
* * *
끼이익-
프레이가 문을 열자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알튼 할아버지?”
“아... 프레이. 어서 오게.”
알튼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프레이는 슬쩍 안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늙은이가 별일 있겠나...”
목소리와 표정을 보면 별일이 있는 것 같았다. 프레이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에밀리 때문에 그러시죠?”
“후우...”
알튼은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을을 구했다는 소식에도 쉽게 기뻐하지 못했다.
애꿎은 손녀를 마을에서 내쫓은 꼴이 되었으니까.
뒤늦게 에밀리가 사라졌다는 걸 안 마을 사람들은 알튼을 이전처럼 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프레이가 주기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알튼의 입에는 거미줄이 쳤으리라.
“연락할 방법이 없나요?”
“멀리 갔어... 너무 멀리...”
“그래도... 마을이 무사한 걸 알게 되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니... 아들놈이 놔주지 않을 거야.”
“아들이요?”
“그래... 아니, 자네는 상관없는 일일세.”
알튼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꼬장꼬장하긴 했어도 기운이 넘치는 알튼이었다.
프레이는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그래도 남의 가정사였다. 자신이 너무 개입하는 것도 실례일 터.
막 일어서려던 참에 알튼이 입을 뗐다.
“그래... 원래 이렇게 돼야 했었네. 에밀리도 평소에 원했던 일이고...”
“에밀리가요?”
“그래... 그 아이는 계속 마법을 배우고 싶어 했지. 그러니 됐네. 됐어.”
“어디로 갔는데요?”
“마도연합...”
프레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알튼이 멀다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도연합은 동쪽 끝 엘레타스 대륙에 위치한 국가.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마... 다시는 못 보겠지...”
“마도연합... 혹시 가게 될 일이 있으면, 에밀리를 만나면 안부 전해드리겠습니다.”
“자네가...?”
“예.”
“그래주면 고맙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겠네.”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먹을 것좀 챙겨 드세요.”
알튼은 대답할 기운도 없다는 듯 손을 휘휘저었다. 프레이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하고 잡화점을 나섰다.
* * *
‘역시 사라졌군.’
프레이는 다시금 산속으로 들어와 붉은 바위 부족이 있던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나무 벽만 남았을 뿐 내부는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허리에 맨 토끼 사체가 흔들거렸다. 프레이는 곧바로 산에서 내려와 여관으로 향했다.
“아, 왔어요?”
“예, 여기 있습니다.”
“프레이 씨는 사냥도 잘 하고, 못 하는 게 없네.”
푸짐한 외모의 여관주인, 메리스가 웃으며 고기를 받아들고 돈을 건네주었다.
“자, 80코퍼. 그리고 이것도.”
“이게 뭐예요?”
프레이는 종이에 감싸진 두툼한 덩어리를 보며 말했다.
“훈제한 육포야. 나름 오래 먹을 수 있겠지만... 웬만하면 빨리 먹어.”
“어휴, 이런 걸 다... 정말 감사합니다.”
프레이는 종이를 조금 풀고 육포를 뜯어 맛보았다. 고기가 조금 질기긴 했지만 짭짤하니 맛있었다.
“맛있어?”
“야... 끝내주네요.”
“그러면 됐고. 나중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부를게.”
메리스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프레이는 육포를 씹으며 여관을 지나다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오, 프레이.”
“바이런, 여기서 뭐 해요?”
“뭐 하기는, 원래 일로 돌아온 거지.”
바이런은 그날 이후로 프레이와 가깝게 지냈다. 일방적인 접근이었지만 프레이는 다른 유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바이런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이 조사를 끝낸 바이런은 금방 프레이에게 말을 놓았다. 그는 여관 앞 노점에서 맥주를 팔고 있었다. 프레이는 술꾼 경비병의 의뢰를 기억해냈다.
‘그때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
“많이 파세요.”
“그래, 근데 뭐 먹어?”
프레이는 얼른 지나치려 했지만 바이런이 프레이가 물고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으음...”
“뭔데, 혼자 먹기야? 우리 사이가 이 정도 밖에 안 돼?”
프레이는 다른 의미로 유저와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육포를 뜯어 주었다.
바이런은 헤실헤실 웃으며 육포를 씹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흔들며 프레이를 배웅했다.
* * *
“후우... 솔직히 말해 이제 더는 가르칠 게 없어.”
게리슨을 비롯한 교관들은 프레이에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유저가 성장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프레이는 거기에 독종이었다.
오크 사건 이후로 쉴 법도 하건만, 프레이는 매일 수련을 쉬지 않았다.
‘최근 변화가 없던 게 그 이유였나.’
프레이는 가볍게 땀을 닦아냈다.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도 다른 유저들처럼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네.”
게리슨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진짜 그렇다는 말이었다. 프레이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니... 그럼,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뭘, 내가 자네를 가르친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전사의 증명을 통과한 남자에게.”
프레이는 멋쩍게 웃었다. 마을 모두가 그를 존중해주고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떠날 때가 된 건가.’
본부를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있었지?’
프레이는 곰곰이 지난날을 떠올렸다. 얼추 3주는 있었던 것 같았다.
‘확실히... 오래 있긴 한 것 같아.’
돌아다니면서 얼굴이 익은 유저는 바이런밖에 없었다. 다른 유저들은 베긴네르를 금방 떠났다.
‘유저처럼 행동하려 했는데... 역시 안 되나.’
프레이는 실소하며 여관으로 돌아갔다. 일단 마을을 떠날 시점을 생각해봐야 했다.
“아, 프레이.”
“바이런, 종일 여기 있었어요?”
“노점을 놔두고 갈 수는 없잖아.”
‘하긴... 이 사람도 좀 특이하지.’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래서, 많이 팔았어요?”
“아니. 사람들이 안 사네.”
“당연하죠. 여관 앞에서 맥주를 파는데 누가 사먹겠어요. 여관이 더 싼데.”
“어허, 이 사람. 내 맥주는 프리미엄 맥주야, 프리미엄. 그래도 조금은 팔았다니까.”
바이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사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프레이는 굳이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가 꺼낸 건 다른 말이었다.
“저, 이제 여기를 떠날까 합니다.”
“음? 이제야?”
“이제야라뇨...”
“너는 나처럼 판타지 라이프를 즐기는 쪽인 줄 알았지.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유 이야기 안 해줬잖아.”
“이유요?”
“그래, 나는 말해줬는데, 너는 쏙 빠져나갔잖아.”
프레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복수... 때문입니다.”
“복수라고? 오크랑 원수를 졌어?”
“아, 아뇨. 그냥...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요.”
프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대답하기 껄끄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바이런은 유저였으니까.
“음... 뭐,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
“여기서는 더 강해질 수 없다고 하네요. 복수를 위해서라면 힘이 필요한데...”
“그래서 여기를 떠난다는 말?”
“그렇죠. 내일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가려고요.”
바이런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같이 가자, 그럼.”
“네?”
“같이 가자고.”
“저랑요?”
“그래. 혼자 가면 뭐해, 길동무라도 있어야지.”
“아뇨, 하지만...”
“그리고 나도 놀러 가는 거 아냐. 촌장님이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바이런은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그 표정이 조금 장난스러워 프레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부탁이요?”
“보급문제. 행상인들이 안 오는 걸 보니 레스톤 사람들이 베긴네르가 안전하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레스톤?”
“떠난다며? 거기로 가는 거 아냐?”
프레이는 그제야 자신이 행선지를 정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바이런은 프레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아이고... 이 친구를 어쩔꼬. 나 없으면 그냥 산으로 들어가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지는 않죠.”
“농담이야, 농담.”
프레이가 정색하자 바이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왜 촌장님이 굳이?”
“왜 굳이 나를 선택했냐고? 그야... 나한테 상인증이 있으니까?”
바이런이 품속에서 손바닥 크기의 종이를 꺼냈다. 겉면에는 짐이 쌓여있는 수레가 새겨져 있었다.
프레이도 본 적이 있었다. 가끔씩 더스틴 마을에 오는 행상인들은 저런 증서를 가지고 다녔다.
“상인이에요?”
“그럼... 노점은 아무나 여나? 증서가 없는 놈들은 다 세금도 안 떼는 가짜들이야. 조심해.”
“세금도 떼요?”
“당연하지.”
“음...”
프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바이런은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나 말도 있다?”
“말이요?”
“그래, 레스톤까지 걸어가려면 이틀은 족히 걸릴걸?”
프레이는 인정하기로 했다. 바이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걸.
편견이었다. 베긴네르에 있는 유저들은 모두 처음 시작하는 유저라고 생각했던 것.
‘하긴, 나도 3주를 넘게 여기 있었는데...’
바이런도 다를 수 있었다. 그의 스테이터스가 너무나 유약했기에 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와는 달리 바이런은 다른 쪽에 관심이 많았다.
“자, 그럼 그렇게 결정된 걸로 알고. 내일 같이 인사 돌고 출발하자고.”
“네? 아... 알았어요.”
프레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이런은 주섬주섬 노점을 정리했다.
‘뭔가 휘말린 느낌인데...’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프레이는 자신이 계속 혼자라고 생각했으니까.
바이런의 말마따나 길동무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보유 스킬 목록]
[중급 궁술 Lv1 (13%)]
[초급 검술 Lv7 (15%)]
[초급 단검술 Lv3 (32%)]
[약초 채집 Lv3 (39%)]
[초급 추적 Lv1 (12%)]
[초급 승마 Lv1 (3%)]